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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성리학자 점필재 김종직과 계보도

작성자도재국|작성시간23.11.18|조회수687 목록 댓글 3

조선시대 성리학자 점필재 김종직과 계보도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4186?svc=cafeapp


●●2024.7.11(목) 18:53 《계보도》를 다음과 같이 최종 수정합니다

=== 다 음 ===

조식을 정여창과 김일손 연결선을 전체 모두 점선으로 표기~~


//////////

●아래의 系譜圖에서 바뀐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백인걸 ~~ 이이 (연결 줄을 흑색 점선으로 변경)
2. 이언적 ~~ 이황 (연결 줄을 흑색 점선으로 변경)
3. 김일손 ~~ 조식 (연결줄을)
》》 정여창과 김일손에서 조식으로 연결
(연결 줄을 흑색 점선으로 연결)
그리고 '사숙'자를 모두 삭제 함
4. 이연경 ~~ 노수신 (이연경 밑에 노수신을 삭제)
●흑색 점선은 사숙을 뜻한다.
●아래의 系譜圖를 2024.6.30(일) 19:11 위의 系譜圖와 같이 수정한다.

●계보도 출처:(사)문충공점필재김종직선생기념사업회
○(社)文忠公佔畢齋金宗直先生記念事業會
※'계보 문인 表'에 '생몰년'을 적어려니까 칸이 좁아서 보류중인 것으로 압니다

●善山(一善)金氏 上係圖

●예림서원의 육덕사(育德祠)에 모셔진 점필재 선생 신위(神位)

●점필재 선생의 신위를 모신 예림서원(禮林書院)의 육덕사(育德祠)

●점필재 선생을 기리는 예림서원

●성리학(性理學)의 정의

송(宋)나라 이후의 유학(儒學)으로 특히 성명(性命)과 이기(理氣)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學文), 신유학(新儒學) ㆍ이학(理學)ㆍ정주학(程朱學)ㆍ주자학(朱子學).

●성리학의 의미와 특성
유학(儒學)을 발전사적으로 볼 때 선진(先秦)의 본원(本源) 유학, 한당(漢唐)의 훈고(訓詁) 유학, 송명(宋明)의 성리학, 청(淸)의 고증학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성리학이라는 용어는 원래 ‘성명·의리의 학(性命義理之學)’의 준말이다. 중국 송(宋)대에 들어와 공자와 맹자의 유교사상을 ‘성리(性理)·의리(義理)·이기(理氣)’ 등의 형이상학 체계로 해석하였는데 이를 성리학이라 부른다. 성리학은 보통 주자학(朱子學)·정주학(程朱學)·이학(理學)·도학(道學)·신유학(新儒學) 등의 명칭으로 통용되고 있다. 송의 주희(朱熹)는 주렴계(周濂溪), 장횡거(張橫渠), 정명도(程明道), 정이천(程伊川)을 계승하여 성리학을 집대성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성리학(性理學)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9308

/////

●(주)도재국 :
우리는 흔히 '유림(儒林)의 본향(本鄕)을 경북 안동(安東)'이라 하고, '경남 밀양(密陽)을 소안동(小安東)'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위의 '조선시대 성리학의 계보도'를 보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성리학자들 모두가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門人)들이다.

사실이 이렇기에 '밀양을 소안동(小安東)'이라 하는 것은 적절한 비유가 아니다.

오히려 '안동이 소밀양(小密陽)'이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소문에 지금까지 경북 안동지역에 유학(儒學) 관련하여 지난 10여 년 동안 투입된 국가예산이 무려 1조 2천억 원 정도 된다 한다

사실이 이렇다면 성리학(性理學)의 실질적인 본향(本鄕)인 밀양(密陽)에 고려시대의 성리학을 조선시대의 강호 김숙자와 점필재 김종직에게 전승시킨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조선시대 성리학을 중흥시킨 점필재 김종직의 선양사업과 우리나라 성리학의 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국가적인 사업 추진에 더 많은 국가예산이 투입되어야 하지 않을까?

또 점필재 김종직의 수많은 문인(門人)들을 성리학의 본향(本鄕)인 밀양에서 선양할 수 있는 국가적인 사업을 추진해야 되지 않을까?

●지금 밀양시(사)문충공점필재김종직선생기념사업회가 많은 노력을 하여 점필재 김종직을 배향(配享)한 예림서원(禮林書院)과 생가인 추원재(追遠齋) 등에 여러 가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유학(儒學)의 본향(本鄕)에 걸맞은 사업을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

●참고

●선진유학(先秦儒學)
○공자, 맹자, 순자로 이어지는 선진시기(先秦時期)의 유학
○https://m.cafe.daum.net/readandchange/asDC/1043?

●훈고학(訓詁學)
○한(漢)나라(BC 206 ~ AD 220) 시대부터 당(唐)나라(618-907) 시대까지 성행한 유학으로 진(秦)나라 때에 훼손, 상실된 경전을 정리하고 자구 해석을 하면서 성립된 학문이다
○https://ko.m.wikipedia.org/wiki/%ED%9B%88%EA%B3%A0%ED%95%99

○다음 > 사전 > 어학사전 > 훈고 [訓詁]
(1) (기본의미) 고문(古文)의 자구(字句)를 해석하는 일.
(2)경서(經書)의 고증, 해석, 주해를 통틀어 이르는 말.

●성리학(性理學)
○성리학이라는 용어는 원래 ‘성명·의리의 학(性命義理之學)’의 준말이다. 중국 송(宋)대에 들어와 공자와 맹자의 유교사상을 ‘성리(性理)·의리(義理)·이기(理氣)’ 등의 형이상학 체계로 해석하였는데 이를 성리학이라 부른다. 성리학은 보통 주자학(朱子學)·정주학(程朱學)·이학(理學)·도학(道學)·신유학(新儒學) 등의 명칭으로 통용되고 있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9308

●고증학(考證學)
○송명이학(宋明理學)의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지향성에 반대하여 생겨난 청(淸)나라 시기의 학문. 유학.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3957
○청나라 초의 학자들은 양명학의 폐단과 명나라의 멸망에 자극되어 경세(經世)를 위해서 실사(實事)에 기초해서 옳은 것을 구하는 것, 즉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내용으로 하는 실학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그 학문적 배경이 되는 경학(經學)과 사학(史學)에서 송명이학자들의 연구방법을 배척하고, 한 · 당나라의 훈고학(訓詁學)을 계승하여 실증적인 연구방법을 채택하였다. 이처럼 경학과 사학에서의 실증적인 연구방법이 발전하여 청대의 고증학이 되었다.

고증학의 주류는 경학을 중심으로 하여 저장(浙江)의 서쪽에서 일어난 이른바 절서학파(浙西學派)였으며, 그 개조는 고염무(顧炎武)였다.

●(양명학)陽明學
○양명학(陽明學)은 중국 명나라의 철학자 왕수인(王守仁, 1472~1528)의 호인 양명(陽明)에서 이름을 따서 붙인 유가 철학(儒家哲學)의 한 학파로 주관적 실천 철학에 속한다.[1] 양명학이라는 명칭은 메이지 유신 이후에 퍼진 것으로, 그 이전에는 육왕학(陸王學) 또는 왕학(王學)이라 불렸다. 육왕학(陸王學)은 육구연(陸九淵, 1139~1192)의 학풍을 이어 왕수인이 대성한 유학(儒學)을 뜻하고,
○https://ko.m.wikipedia.org/wiki/%EC%96%91%EB%AA%85%ED%95%99
https://namu.wiki/w/%EC%96%91%EB%AA%85%ED%95%99

●경학(經學)
○유교 경서의 뜻을 해석하거나 천술하는 학문. 유학.
○경학(經學)의 ‘경(經)’은 유교의 경전을 말한다. 또한 경전은 경서(經書)라고도 일컫는다. 처음에는 ‘경’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논어≫나 ≪맹자≫에서도 보통명사를 그대로 고유명사화하여 ≪시(詩)≫ 또는 ≪서(書)≫라고만 불렀으며, 여기에 ‘경’자를 붙여 ≪시경≫이니 ≪서경≫이니 하고 부르지 않았다.

하나 하나의 경서의 호칭은 시대에 따라 변화가 있었다. ≪서경≫의 경우만을 예로 들면 고대에는 ≪서≫라고만 하다가, 한나라 때부터 ≪상서(尙書)≫라 하였고, 명나라 이후로 ≪서경(書經)≫이라는 칭호가 확정되었다. 하나 하나의 경서에 ‘경’자를 붙인 것은 아니라도 경서를 ‘경’으로 통칭한 것은 ≪장자(莊子)≫의 천운(天運)편에서부터의 일이다.

유가 가운데서 ‘경’으로 부른 것은 역시 전국시대 말기에 나온 순자(荀子)가 처음으로 생각된다. 전국시대에도 도가, 법가, 묵가의 학문에 대립한 유(儒), 즉 유학만 있었지 경학이라는 명칭은 없었다.

‘경학’이라는 두 글자가 기록된 가장 오래된 문헌은 ≪한서(漢書)≫ 유림전(儒林傳)이다. 구양생(歐陽生)으로부터 ≪상서≫, 즉 ≪서경≫의 학(學)을 받고, 또 공안국(孔安國)에게 학문을 배우기도 한 예관(倪寬)이 “무제(武帝)를 처음 만났을 때 경학을 말하였다.”고 한 것을 보면, ‘경학’이라는 명칭이 문헌에 정착한 것은 전한(前漢) 무제시대이다. 이는 경서의 개념 자체가 이 시대에 성립된 것과 관련된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986

●형이상학(形而上學 / Metaphysics)
○https://namu.wiki/w/%ED%98%95%EC%9D%B4%EC%83%81%ED%9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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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形而上學)

존재의 실체와 궁극적인 원리를 감각이 아닌 순수한 사고를 통해 알고자 하는 학문. "우주의 본질은 무엇인가?", "신은 존재하는가?",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등의 물음을 통해, 우주 전체를 하나의 통일된 체계로 파악하려 하며, 사물의 배후에 있는 구조와 본질을 밝히고자 함.
사용자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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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구파(勳舊派)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5785
○‘훈구파’의 학문적 · 사상적 면모는 실용적 관학파(주2)로 평가된다. 신숙주 · 정인지 · 최항 등은 뛰어난 학문적 능력을 인정받아 세종 때 집현전 학사로 재직했고, 그 뒤에는 『 경국대전』 · 『 동국통감』 · 『동국여지승람(주3)』 편찬 등 중요한 관찬 사업을 이끌면서 제도 정비와 학문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관학파
조선 건국 또는 조선 초기의 각종 정변(政變)에서 공을 세워 높은 벼슬을 해 오던 관료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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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1.20 도동서원 김굉필
    https://naver.me/FYI3W81y
  • 작성자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1.21 도동서원 : 김굉필 신도비
    https://naver.me/FYI3W81y
  • 작성자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1.21 ●남계서원 : 정여창,정온,강익
    https://hh2953.tistory.com/m/7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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