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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현대의 만남 "경상남도 유교선비문화 정책 세미나(점필재 김종직 선생 관련)" 개최

작성자도재국|작성시간24.11.19|조회수633 목록 댓글 2

전통과 현대의 만남 "경상남도 유교선비문화 정책 세미나(점필재 김종직 선생 관련)" 개최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4518?svc=cafeapp

글 싣는 순서 :
1. 점필재 김종직 선생 선양을 위한 세미나 개최 경과

2. 경남도의회 역사문화연구회 주최 "점필재 김종직 선생" 선양을 위한 세미나 참석자 명단과 행사 진행 순서ㆍ내용

3. "(사)점필재 김종직 선생 기념사업회"에서 작성한 홍보 서류

4. 밀양 표충사(表忠祠) 삼대사(三大師:서산.사명.기허대사) 향사(香祀)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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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개최 경과 :

(사)점필재김종직선생기념사업회ㆍ밀양시ㆍ예림서원ㆍ선산(일선:以下 선산김씨로 적음)김씨문중이 문충공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선양을 위해 계속 사업으로 추진하는 일련(一連)의 사업으로 경상남도의회 역사문화연구회(회장 밀양지역구 장병국 의원)가 주최하는 전통과 현대의 만남 "경상남도 유교선비문화 정책 세미나" 가 2024.11.18(월) 14:00~17:00 경남도의회 대강당에서 다음과 같이 열렸습니다.

※종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이러한 일련의 사업을 추진하는데 숨은 큰 역할을 하시는 분이 (사)점필재김종직선생기념사업회김동원(산산김씨) 사무국장입니다.

●아래의 자료는 위의 책에서 발췌 및 사진을 찍었습니다

본 행사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습니다.

●등록 : 13:30~14:00
■ 본 연구회는 장병국 회장을 중심으로 최동원ㆍ김일수ㆍ백수명ㆍ유계현ㆍ정규헌ㆍ조인종 의원 7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본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 경남도의회 부의장도 참석했습니다.
■ 밀양측에서 세미나 참석자 명단 : 아래와 같이 총 12인이 등록,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 밀양향토사학자 : 3인
○ 향토사학자 황의중(100세) : 점필재 김종직 선생 기념사업회 창시자
※연세가 100세임에도 불구하시고 먼 길 밀양에서 참석하셨습니다.
○ 향토사학자 손흥수 : 밀양의 대표적인 유림으로서 성리학을 실천하는 선비의 사표(師表)
○ 향토사학자 도재국 :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위 손흥수ㆍ도재국은 40여 년째 문강공 강호 김숙자 선생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부친)ㆍ문충공 점필재 김종직 선생ㆍ집경전 참봉 김숭년 선생(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아드님)ㆍ사재감정 박홍신 장군(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외조부로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장천공 이종무 장군과 대마도 정벌에서 큰 공을 세우고 전사)의 묘소를 참배하면서 선양에 평생을 노력하고 있습니다.
□ 예림서원 : 3인
○ 원 장 : 이태범
○ 도유사 : 김상원
○ 박영규 : 별유사
□ (사)점필재김종직선생기념사업회 : 2인
○ 이 사 장 : 이재기
○ 사무국장 : 김동원(선산김씨)
□ 밀양향교 : 2인
○ 전 교: 김대국
○ 직전 전교 : 김명환(선산김씨)
□ 선산(일선)김씨 점필재파 : 2인
○ 시조시인 : 김조수
○ 법 무 사 : 김일동
■ 대학생 다수가 참석했습니다.
(주1)도재국 : 대학생 참석자는 명단을 알 수 없어 생략합니다

●개회 : 14:00~14:10

●특강 : 14:10~15:10
신상필(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발제 토론 : 15:10~15:30 서헌주(이퀘이션(주)대표)
○토론 주제 : 경상남도 유교선비문화 홍보 브랜드화 및 마켓팅 강화 연구 토론

●지정 토론 : 15:30~16:10
○ 坐長 : 김유경 원장(한국공공브랜드진흥원, 선산김씨)
○ 토론자(2명)
○ 이정우 대표(필라프(주)대표)
○ 엄남현 교수(홍익대 교수)

●자유토론 : 16:10~16:30 자유토론 및 질의 응답

●폐회 : 16:10~16:30 마무리

●세미나 주요 내용 :
○ 조선시대 사림(士林)의 종장 점필재 선생 특강
○ 경상남도 선비문화 홍보 브랜드화 및 마케팅 강화 연구 정책연구용역 최종보고회와 토론회를 겸하여 개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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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신상필 교수의 특강 내용입니다.

●특강 : 한국 유학의 전개와 점필재 김종직 : 신상필(점필재연구소 교수)
(주2)도재국 : 신상필 교수는 유학의 학맥과 그 연원을 매우 중요시하면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강의 내용
師弟의 길과 그 연원
夏ㆍ銀ㆍ周의 전성과 몰락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의 출현

○儒家학파 : 공자ㆍ맹자
○道家학파 : 노자ㆍ장자
○墨家학파 : 묵자
○法家학파 : 공손룡
○名家학파 : 공자ㆍ맹자
○兵家학파 : 손자ㆍ오자
○縱橫家 : 소진ㆍ장의

공자의 유학, 주자의 성리학
○공자와 맹자의 시대
- 仁 : 사람다움
- 義 : 옳음
- 禮 : 인간관계
- 忠 : 盡己(최선을 다함)
- 孝 : 心安(부모 마음의 평안)
실행의 생활화

○주자의 시대
- 四端 : 人義禮智
- 三綱五倫 :
ㆍ君, 父, 夫
ㆍ군신유의, 부자유칙
ㆍ부부유별, 붕우유신
ㆍ장유유서
윤리의 규범화

공자 학단의 학통과 전래
○중국
- 공자 : 기원전 551~479 춘추시대
- 맹자 : 기원전 371~289 전국시대
- 주자 : 1130~1200
- 왕양명 : 1472~1528 明나라
○한국
- 통일신라 : 676~918 불교
- 고려 : 918~1392 불교
- 조선 : 1392~1910 유교

●유학의 학맥
(주3)도재국 : 신상필 교수는 유학의 학맥과 그 연원을 매우 중요시하면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주4)도재국 : "유림의 학맥도"가 너무 작아서 잘 안보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위의 "성리학 계보도"를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주5)도재국 : "유림의 학맥도"가 너무 작아서 잘 안보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성리학 계보도"를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1》유학자 정도전 :
○鄭道傳 1342~1398 (陶隱文集 序)
- 일월성신(日月星辰)은 하늘의 문(天之文)이고,
- 산천초목은 땅의 문(地之文)이며
- 詩書禮樂은 사람의 문(人之文)이다
- 그러나 하늘의 문은 氣로써 되고
- 땅의 문은 形으로써 되지마는
- 사람의 문은 道로써 이룩되는 까닭에
- 文을 道를 싣는 그릇이다 라고, 하니
- 이는 人文을 말하는 것이다

《2》유학자 정도전 :
○鄭道傳 1342~1398 (陶隱文集 序)

- 고구려 乙支文德, 신라 崔致遠, 本朝(고려)에 들어와서는 侍中 金富埴, 學士 李奎報 같은 이들이 우뚝한 존재이었고
- 근세에 와서도 大儒로서 鷄林의 益齋 李公같은 이는 비로소 古文의 學을 제창했는데, 韓山 稼亭 李穀과 京山 樵隱 李仁復이 그를 따라 화답하였다.
- 그리고 牧隱 이 선생은 일찍이 가정의 교훈을 이어받고 북으로 중원에 유학하여 올바른 師友와 淵源을 얻어 性命ㆍ道德의 학설을 궁구한 뒤에 귀국하여 여러 선비들을 맞아다가 가르쳤다.

《3》유학자 정도전 :
○鄭道傳 1342~1398 (陶隱文集 序)
- 그래서 그를 보고 흥기한 이가 많았으니, 烏川 達可 鄭夢周, 京山 子安 李崇仁, 潘陽 朴尙衷(), 密陽 子虛 朴宜中, 永嘉 敬之 金九容, 可遠 權近, 茂松 尹紹宗들이며, 비록 나같이 불초한 자로도 또한 그분들의 대열에 끼이게 되었다.

《4》유학자 정도전 :
○鄭道傳 1342~1398 (陶隱文集 序)
- 시서ㆍ예악은 사람의 문(人之文)이다
- 文을 道를 싣는 그릇이다(載道之器). 라고 하니, 이는 人文을 말하는 것이다.
- 이때 文은 무늬 즉, 표현이라는 의미이다.
- 고구려 : 을지문덕
- 신라 : 최치원
- 고려 : 김부식, 이규보

《5》유학자 정도전 :
○鄭道傳 1342~1398 (陶隱文集 序)
○근세(고려 후기) :
- 益賢 : 古文의 학 제창
- 稼亭 李穀, 樵隱 李仁復, 牧隱 李穡 : 가정의 교훈, 성리학 학습, 선비 양성
○고려 말기 :
- 鄭夢周, 李崇仁, 朴尙衷(충), 朴宜中, 金九容, 權近, 尹紹宗, 나(鄭道傳) 같이 불초한 者

(주6)도재국 : "유림의 학맥도"가 너무 작아서 잘 안보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성리학 계보도"를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6》점필재 학단에 대한 평가와 기록 :
○우리 조선에 들어와 정몽주의 학문을 전습한 자는 김종직입니다.
○그는 학문에 연원이 있고 행실도 단정하고 방정하였으며,
○후학을 가르침에 지극한 정성을 쏟았습니다.
○성종이 그의 어짐을 알고 판서로 발탁하였지만, 세상과 뜻이 맞지 않았습니다
○연산군 때 사화가 일어나서 사랑들이 죄를 입었는데, 참화가 그의 제자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화가 스승 김종직에게까지 미쳤습니다.
※기대승, <고봉집 ㆍ논사록(論思錄)> (1568년)

《7》점필재 김종직의 학문적 연원 :
○포은 정몽주 : 1337~1392
○야은 길재 : 1353~1419
○강호 김숙자 : 1389~1456
○점필재 김종직 : 1431~1492
(주7)도재국 : "점필재 김종직 선생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0년 전에 돌아가신 인물이다" 라는, 것을 상기하면 선생의 활동 기간을 외우기 쉽습니다.

《8》성종실록 : 24년 1493년 1월 9일
○봉상시 봉사(奉常侍奉事) 이원(李黿)이 불러서 물은 것을 받들어 書啓하였다
○선비의 습속이 밝지 않은 것은 道學이 행해지지 않은 데에서 말미암은 것이고,
○道學이 행해지지 않는 것은 사도가 전해지지 않은 데에 근원한 것입니다.
○김종직은 비로소 마음을 바르게 하는 학문 《正心之學》을 제창하여 後進들을 인도하여서 도와주어 바른 마음을 근본으로 삼았습니다
○자신이 사도(斯道)를 임무로 하고 사문(斯文)을 흥기시키는 것을 자기의 책임으로 삼았으니
○그 공은 한 일에 공적과 명예가 탁월한 자보다 도리어 현명함이 있었습니다.

《9》점필재학단에 대한 평가와 기록 :
○점필재의 제자들 백세에 이름나니
○문에서 도로 들어가 큰 선비 길렀네
○공을 반도 이루지 못해 난리(史禍) 당하여
○혼미한 자들 미처 잠 못 깨웠네

○점필재는 詩文에 주력하여 전아하면서도 道에 가까웠다
○그 제자들이 따라 도의 근원을 찾았다
○김굉필ㅇ같은 제자들이 크게 분발했으나 대업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사화가 일어나 우리 유가의 재앙이 되었다
○오랠수록 더욱 심해지니 탄식할만 하다

《10》점필재학단에 대한 평가와 기록 :
○우리나라에서 점필재의 제자들은 성대하기가 퇴계ㆍ율곡ㆍ우암ㆍ동춘의 門下라도 따를 수 없을 듯 하다.
○점필재는 비록 도학으로 자임하지는 않았으나, 문하에 나아간 여러 제자는 배운 바로 성취하였다
○김굉필ㆍ정여창은 도학을, 김시습ㆍ남효온은 절의를, 김일손ㆍ조위는 문장을 얻어갔다.
○뒷날의 학자 가운데 어찌 이런 名儒를 제자로 둔 사람이 있었던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11》점필재의 학맥 :
○정몽주

○길재

○김숙자

○김종직

○(도학:김굉필,정여창), (절의:남효온,김시습), (문장:김일손,조위)

《12》밀양의 儒賢들 :
○密州 五賢
- 재령이씨 李申
- 밀양변씨 卞季良
- 선산김씨 金宗直
- 밀양박씨 朴漢柱
- 평산신씨 申季誠

○密州 八賢
- 밀양변씨 卞季良
- 밀양박씨 박증영 1464~1493
- 일직손씨 孫肇瑞 15세기
- 여주이씨 李光軫 1513~1566
- 창녕조씨 曺光益 1537~1580
- 밀성손씨 孫起陽 1559~1617
- 아산장씨 蔣文益 1596~1652
- 벽진이씨 李而杜 1625~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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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發題) :
경상남도 선비문화 홍보 브랜드화 및 마케팅 강화 연구

●서현주 이퀘이션(equation주) 대표

●발제 내용 : 아래 사진과 같습니다.

●제(도재국)가 마지막 자유토론시간에 위의 "성리학의 系譜圖를 널리 홍보하는것이 점필재 김종직 선생을 선양하는 일"이라고 한 이유는 유명한 문하생의 스승이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라는 것입니다.

●제(도재국)가 마지막 자유토론시간에 위의 "성리학의 系譜圖를 널리 홍보하는것이 점필재 김종직 선생을 선양하는 일"이라고 한 이유는 유명한 문하생의 스승이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라는 것입니다.


자유토론 내용 :
토론자들의 지정 토론을 마치고, 방청석에 있는 사람들의 질의 응답 및 의견 발표가 있었습니다

《1》
제일 먼저 내빈으로 참석한 밀양 향토사학자 도재국은 다음과 같이 의견을 발표했습니다.

"오늘 경남도의회 역사문화연구회 장병국 회장님이 세미나를 개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서헌주 대표님께서 계보(系譜)를 주장하게 되면 파벌을 야기시킨다는 말씀을 하신데 대한 의견입니다. 점필재 김종직 선생기념사업회 김동원 사무국장이 배부해드린 "성리학 계보도"는 (동양학의 대가大家) 선산문중의 김기 박사님이 "성리학의 계보와 연원"을 중시하면서 '성리학자는 반드시 그 연윈과 계보가 있어야 한다. 설령 사숙일지라도 그렇다 했습니다. 그리고 점필재 김종직 선생은 고향 밀양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만 전국적으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밀양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도 전국적인 지명도는 매우 저조합니다. 서현주 대표님이 "계보를 내세우면 파벌 조장할 수 있다" 라고, 언급하셨는데, 저는 그런 차원이 아니고,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인물 지명도 차원에서 계보도(系譜圖)를 많이 홍보해주셔야 겠습니다. 왜야하면 율곡 이이, 남명 조식, 퇴계 이황이라 하면 전 국민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데, 그 스승인 점필재 김종직 선생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아 안따깝고, 그래서 이 계보도에 기록된 율곡, 남명, 퇴계 선생 등이 적힌 계보도를 보면 사람들이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위상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도재국의 의견에 대해 서헌주 대표님이 또 "계보를 강조하면 파벌 조장 갈등 문제가 생긴다" 하나, 도재국은 "서헌주 대표가 언급하는 문제와 도재국이 언급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재차 반론 제기를 했습니다.

●이 자리에 밀양에서 오신 연세 100수 황의중 어르신이 계시는데 제가 나이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제가 올해 73살입니다. 제가 나이를 말씀드리는 이유는 앞에 앉아 계시는 밀양 향토사학자 손흥수 선생님과 같이 (무려) 40년째 강호 김숙자 선생, 점필재 김종직 선생, (집경전 참봉) 김숭년 선생의 묘소를 해마다 참배하고 있으며,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외조부 (사재감정) 박홍신 장군 묘소도 참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 제 나이를 말씀드렸습니다. (오해가 없기 바랍니다)

《2》
중간에 몇 사람의 의견 제기가 있었고, 그 다음에 손흥수 선생님이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기했습니다.

"오늘 세미나에서 "선비"에 대한 이야기가 큰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선비란? (학문을 하면서도) 바른 노동(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노동을 하지 않고) 말과 글만을 주장하는 사람은 올바른 선비가 아닙니다. (사람답게 행동하고 사는 사람이 선비입니다)
○우리 마을에 "선비"라고 불렸던 어른이 딱 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옛날에 비포장 길) 몇 십리 길을 가면서도 길에 돌맹이가 있어면 여러 사람이 다니기가 불편하다면서 (길을 갈 때마다) 수많은 돌맹이를 발로 이쪽저쪽으로 걷어차면서 돌맹이를 전부 치웠습니다.
○제가 병원에 (물리) 치료 받으러 다니는데, 사람(물리 치료받으러 온 환자들)들이 자기 신발과 자기가 신은 슬리퍼를 아무 데나 벗어놓고 들락거리는데, 아무도 바로 정리하는 사람이 없어 제가 정리해주기도 합니다.
※관련글 :
지경 선생님, 병원 신발장 정리는 하지 마십시오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4504?svc=cafeapp

○선비란 여러 사람을 위해서 몸소 일을 해야 하지, 말과 글만 하는 사람을 선비라 하면 안됩니다."
※제(도재국)가 여러 사람이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손흥수 선생님이 한 말씀을 편집을 좀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몇 사람의 의견은 다 기억할 수가 없어 여기에 기록을 못해서 생략합니다.

//////

《A》
●아래는 (사)점필재김종직선생기념사업회 김동원 사무국장님이 작성하여 배부한 홍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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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아래 사진 1,2,3,4,5의 서류"를 밀양 향토사학자 손흥수 선생님이 "경상남도 유교선비문화 정책 세미나" 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배부했습니다.

●"경상남도 유교선비문화 정책 세미나" 에 참석하기 위해 밀양에서 온 아래의 내빈들이 세미나 시작 시간이 조금 남아 있어, 본 세미나를 주최한 경상남도의회 역사문화연구회 회장인 장병국 의원(밀양 지역구)의 안내로 경남도의회 의장실에서 20분 정도 차를 마시면서 여담이 있었습니다.

경남도의회 의장실에서 세미나 개최 전에 차를 마시는 대기 시간에 모인 사람은 다음과 같습니다.
밀양향토사학자 : 3인
○ 향토사학자 : 황의중(100세)
○ 향토사학자 : 손흥수(84세)
○ 향토사학자 : 도재국(73세)
예림서원 : 3인
○ 원 장 : 이태범
○ 도유사 : 김상원(의성김씨)
○ 박영규 : 별유사
(사)점필재김종직선생기념사업회 : 1인
○ 이 사 장 : 이재기
밀양향교 : 2인
○ 전 교 : 김대국
○ 직전 전교 : 김명환

●이 자리에서도 손흥수 선생님이 "아래 사진 1,2,3,4,5의 서류"를 배부해 드렸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분들이 전부 밀양의 유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기에, 손흥수 선생님이 배부해드린 서류에 대해서 제(도재국)가 다음과 같이 설명드렸습니다.

1. 밀양 무안 靈鷲山에 表忠祠가 있었을 때는 조선팔도에서 수많은 사찰의 스님들이 몇천 리를 걸어서 밀양의 表忠祠에 삼대사 향사에 참석했으며, 향사에 참석한 참사록(參祀錄)의 문헌을 제(도재국)가 소장하고 있습니다.

2. 아래는 밀양 무안 영취산에 《表忠祠》가 있었을 때 해인사 승통(僧統) 등이 "表忠祠의 사명대사 신위(神位)와 진영(眞影)"을 탈취하여 해인사로 表忠祠(弘濟堂)를 이건(移建)하려 한 사건의 기록입니다. 즉, 표충사가 해인사 보다 위상이 높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이 당시 조선팔도 사찰의 승려들이 삼대사(서산.사명.기허대사) 향사에 구름같이 참사하였습니다.
●즉, 밀양 표충사 "표충사表忠祠", 김종민外 2人 지음,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 2014년 발행, 205~211페이지, "표충사수호승도돈화등장(表忠祠守護僧徒頓和等狀)"에 의하면,
●무오(1738) 기미년(1739) 간(間)에 해인사의 승도가 사역(寺役)을 면하려는 계책을 내어 홀연히 시기하는 마음을 품고 농간을 부리고자 하여 몰래 남붕의 이름을 훔치고 사사로이 여러 僧의 이름을 빌려, 없는 일을 얽어내어 비국(備局)에 글을 올리고 본도에 관문(關文)을 발행하여 옮겨 건립하려고 꽤하였으나, 저 남붕과 각사(各寺)의 여러 승들이 이름을 훔친 간악한 계책과 나라를 속인 못된 정황을 근거로 비국에 글을 맞받아 올리고 임금에게 격고(擊鼓)하였는데, 비국이 아뢰니 임금께서 '비변사가 이미 속았으니 수령이 속는 것은 괴이할 것이 없다. (수령의) 현고(現告)를 논죄하는 한 조항은 그대로 두고 해인사에 첩설한 사우(寺宇)만 훼철하는 것이 좋겠다' 라는, 하교가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비국은 예조(禮曹)에 감결을 발송하고 예조는 본도에 관문을 발행하여 말하기를 '해인사 승도(僧徒)는 곧 도적이라. 이 절의 승통(僧統)과 수창승(首倡僧) 성오(聖悟).현일(玄一 )등이 남붕(南鵬)을 가탁하여 본조에 거짓 소송을 낸 것이 비일비재하니 극히 절통하다. 저들이 농간한 관문은 즉시 수납하여 삭제해 버리고 성오와 현일 등은 잡아와서 가둔 후에 전라도에서 얻은 물건과 강우도(江右道:
慶尙右道)에서 부조한 돈들을 일일이 밀양 表忠祠(무안 영취산 表忠祠)에 거두어 지급하며 비석(일명 '땀 흐르는 사명대사 비석')을 세우는데 보태도록 하고, 등계첩(登階帖)과 수호승통첩(守護僧統帖)은 감영에서 수취하여 태워버리고 수창승 성오와 현일 등이 농간한 죄를 각별히 엄히 형벌을 가한 후에 돌아가는 정황을 첩보하도록' 이라 하였고 비국에서는 또 표충사 총섭(表忠祠摠攝)의 문보(文報)에 뎨김을 내려 말하기를 '이 보고를 보니 해인사 승도들이 예조에 거짓을 고하여 중간에서 농간을 부린 정황이 매우 놀랍다. 이 해인사 승통(僧統)을 너희 절(본 文獻에는 지금의 表忠寺를 載岳寺 또는 靈井寺로 기록하고 있음:춘추제향 관련 406,411,420,425,427,461,441,447,448,450,451,490,499,500,502,503,505,509,511,512,513,516,518,519,530,531,534,537,539,545,546,550,553,554,559페이지)로 잡아다가 곤장 30대를 때린 후에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고, 제수와 복호는 일체 작년 비국에서 발행한 관문(關文)에 따르고 너희들이 담당하여 시행하는 것이 마땅할 일' 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감영에서 해당 읍으로 관문을 보내 한편으로는 해인사에서 새로 지은 홍제당(弘濟堂)을 훼철하고 한편으로는 해인사에서 수창했던 현일 등을 잡아와서 곤장 30대를 때리고 각도의 여러 사찰들에 죄를 알렸기 때문에 해인사 승도가 모두 머리를 숙이고 다툼이 없었던 것이 근 50여 년이 되었습니다. 《後略》


3. 손흥수 선생님이 금방 배부해드린 서류는 조정에서 전라도 대흥사의 表忠祠에 내린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친 삼대사의 봉안축문과 향사축문을 대흥사의 表忠祠에 내려 보내면서 "경상도 밀양 표충사의 향사에 준하여 삼대사를 봉안하고, 향사를 지내라" 라는, 왕명(王命)입니다.

4. 경상도 밀양 영취산 표충사에서도 조정의 完文(공문 : 王命)에 의거 삼대사의 향사를 봉안축문과 향사축문에 의거 향사의 날자는 원래는 춘추 삼월과 구월 중정일(中丁日)에 지내고, 향사의 순서는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대사의 순서로 수백 년 동안 지내왔습니다.

5. 그런데 10여 년 전에 표충사의 삼대사 향사를 주최하는 밀양의 일부 유림들이 향사의 날자도 춘추 삼월과 구월 중정일(中丁日)에서 상정일(上丁日)로 바꾸고, 삼대사 향사 순서도 사명대사, 서산대사, 기허대사 순서로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즉, 할아버지 뻘인 서산대사의 향사를 아버지 뻘인 사명대사의 다음에 지내는 유림의 제사 법도에 전혀 맞지 않게 향사를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6. 밀양 表忠祠의 같은 사당 안에 삼대사 신위를 같이 봉안해놓고, 선대인 서산대사를 뒤로 하고, 아랫대인 사명대사의 향사를 먼저 지내는 것은 향사의 법도가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루빨리 원래대로 향사 날자도 상정일에서 중정일로 바꾸고, 향사 순서도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대사 순서로 원래대로 바꾸어야 합니다.

7. 동래 범어사에 출가하여 스님들에게 불교경전을 가르치던 "무이당거부 큰스님"이 충청도 수덕사에서도 講院을 開堂하여 스님들에게 불교경전을 가르치다가, 表忠寺로 이석하셔서 주석하시다가, 無二精舍를 창건하여 주석하실 때에, 손흥수 선생님과 제가 자주 무이정사에 들러 "無二堂 巨芙 주지 큰스님"으로 부터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무려 700 리나 떨어진 전라도 대흥사에서 스님들이 해마다 밀양 表忠祠에 삼대사 향사에 참석을 하다가, 밀양 表忠祠에서 삼대사 향사를 거꾸로 지내니까, 그로부터는 밀양 表忠祠 삼대사 향사에 오지않는다"
이 말씀을 들어보니까 참으로 기막힌 일입니다.

8. 손흥수 선생님은 평생 사비를 들여 밀양 향토사에 대한 자료를 수없이 모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 드립니다. 평생 배부한 향토사 자료만 해도 아마 수백 종류에 그 량이 사람 키의 몇 질 정도 될 것입니다.

제(도재국)가 위와 같이 이야기하니까, 경남도의회 의장실 소파의 제 바로 옆에 앉은 밀양향교 김대국 전교님이 "그 이야기는 밀양에 가서 합시다" 하셔서, 제(도재국)가 밀양 유림의 대표들이 모처럼 전부 모인데서 여분의 시간이 남았지만 김대국 전교님의 이야기가 있어, 더이상 이야기는 중단했습니다. "무이당거부 큰스님"과 손흥수 선생님ㆍ제(도재국)가 십여 년 동안 잘못된 향사 날자와 향사 순서가 하루빨리 바로 되기를 바라면서 김대국 전교님이 이 건에 대해 빨리 바로잡는데 앞장서주기를 바랍니다.

●표지
●이 문헌에 조정에서 내린 봉안축문과 향사축문 등이 있습니다.

●속 표지

●사진 1 :
○경상도 밀양 表忠祠 사액(1743년 영조 19년)
※위 表忠祠는 密陽府 武安 靈鷲山에 있었던 表忠祠이며, 1839년에 밀양시 단장면 表忠寺 境內로 옮겼음.
○전라도 해남 大興寺 表忠祠 사액(1788년 정조 12년)
※위 "영조"를 "정조"로 수정합니다
○평안도 영변 普賢寺 酬忠祠 사액(1794년 정조 18년)

●사진 2 : 봉안 축문

●사진 3 : 봉안 축문

●사진 4 : 향사 축문

●사진 5 : 향사 축문

●마지막 페이지

●뒷 표지

경남도의회 경남역사문화연구회 장병국 회장님이 고향의 역사 인물이자 조선시대 유림의 최고 지도자인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선양을 위해서 훌륭한 세미나를 개최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경남역사문화연구회 회원이신 여러 경남도의회 의원님께도 고맙습니다.
경남도의회 세미나 자료가 정책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많이 지도해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특강을 해주신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신상필 교수님의 훌륭하신 강의도 정말로 뜻깊게 잘 들었습니다.

이퀘이션(주) 서헌주 대표님께서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쉽고 홍보하기 쉬운 내용으로 발제를 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또 토론을 해주신 좌장인 한국공공브랜드진흥원 김유경(선산김씨) 원장님과 여러 교수님도 고맙습니다.

경남도의회의 본 정책업무 실무팀협조해 주신 밀양시에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2024.11.18(월)

밀양 향토사학자 손흥수ㆍ도재국(내빈 참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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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11.20 해인사 승통과 수창승 성오와 현일 등이 밀양 무안 "영취산 표충사"의 사명대사 신위와 진영 탈취 기도(企圖) 사건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4520?svc=cafeapp
  • 작성자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11.21 6. 그러니까 하루빨리 원래대로 향사 날자도 상정일에서 중정일로 바꾸고, 향사 순서도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대사 순서로 원래대로 바꾸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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