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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中通信>

작성자정대재|작성시간18.01.01|조회수128 목록 댓글 12

  
 <伏中通信> |♣.........우리들의 이야기
정대재 | 조회 75 |추천 0 |2013.07.2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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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중통신(伏中通信)

 

                                                                                                                     악산(嶽山) 정대재(鄭大載)

 

◆ 중북부 지방엔 지루한 장마가, 남부 지방엔 폭염과 열대야가 연일 계속되고 있는 요즘입니다. 이런 고약한 일기 속에서 동기 여러 분들께서는 어떻게들 지내시고 계시는지요? 


 늘 바쁜 일상이겠지만 그래도 한번쯤 시간을 내어 더위를 피해 보시는 건 어떨는지요? 요새 나도 그런 꿈에 들떠 있답니다. 한 시도 손을 떼고 소홀히 할 수 없었던 제 쌍둥이 외손주 놈들이 드디어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제 어미와 함께 큰댁이 있는 싱가포르로 영어 어학 연수겸 여행을 떠나려나 봅니다. 


 늘 가슴에 보듬다시피 하면서 고락을 함께 하던 56개월 된 쌍둥이들을 놓아주고 우리 내외는 이참에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충북 보은 속리산 언저리에 있는 시골 농가주택에나 다녀올까 합니다.
 거기엔 내가 죽으면 묻힐 3만평쯤 되는 산과 농가 주택이 하나 있지요.
 장만한 지 십년이 훨씬 넘는 집이라 집 주변과 텃밭에 심어 둔 밤나무, 매실나무, 배나무, 복숭아나무를 비롯한 온갖 유실수들이며, 불두화, 배롱나무, 꽃사과, 해당화, 능소화를 비롯한 온갖 꽃나무들이며, 옥잠화, 작약이며 원추리 같은 갖가지 화초들의 씨앗과 묘목들을 양재동 꽃시장과 충북 옥천 이원면의 묘목 단지들을 찾아다니면서 수없이 사다가 심고 뿌린 세월이 십 오륙 년이나 된다면 그 공을 생각해서라도 백과와 기화요초가 마음껏 어우러진 무릉도원과도 같은 제법 그럴싸한 풍광을 지녀 줄 법도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니 속이 상할 뿐입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각종 감나무들은 해마다 새로 사다 심기가 무섭게 채 일이 년을 넘기지 못하고 죄다 말라 죽기 일쑤요, 거금(?)을 개의치 않고 열심히 사다 심었던 블루베리와 같은 값비싼 몇몇 과수며 화목들 역시 나의 극진한 정성에도 불구하고(사실은 곡식과 야채며 과수와 같은 각종 농산물들은 주인의 발자욱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데, 사정상 나는 그 계율을 전혀 지키지 못했거든요.) 사흘이 멀다 하고 돋아나는 잡초들의 등쌀에 배겨나지를 못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 어디든 심기만 하면 잘 자라기 마련인 감나무가 냉해에 그렇게 취약한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곳 이씨들의 양반촌인 동화리 일대와 심지어 우리 농가 주택 앞의 누구네 선산 가의 감나무들도 내게 약을 올리며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이 잘도 자라고 있었거든요.
 시행착오를 수없이 거듭하던 끝에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게 속리산 국립공원에 인접한 우리 농가 주택의 특별한 지형적 특성상 생긴 냉해 때문이라나요, 뭐라나요. 그것도 그동안 열심히 찾아다니며 인정을 쌓아 온 나와 동갑인 그곳 이장님의 설명을 듣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요. 


 아닌 게 아니라, 여름방학을 맞아 농가주택에 내려갈 때마다 그런 기이한 낌새를 전혀 느끼지 못한 건 아니었습니다. 잔디를 심어놓은(근년에 이르러서 자주 들르지 못해 이제는 숫제 잡초 밭으로 변해 버린) 앞마당의 접이식 의자에 드러누워 저녁 식사 후의 망중한을 즐길 때면 지상의 낙원이 따로 없지요.
 그런데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올려다보며 대전 교통방송의 <세월 따라 노래 따라>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를 들으며 먼 옛날의 추억에 취해 있노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에어컨 바람보다도 더 차가운 냉기가 어디서 났는지 내 주변을 섬뜩하게 감싸고도는 걸 느끼곤 부랴부랴 두툼한 외투를 찾아 입은 게 한 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각설하고, 그 기이한 냉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가 초창기에 심어 공을 있는 대로 다 쏟아 부은 끝에 그토록 잘 자라서 여름 석 달 동안 연분홍 꽃구름을 온통 덮으며 그 수종 특유의 고고한 풍모를 자랑하던 배롱나무마저 지난 겨울의 그 혹독한 추위 때문에 기어이 얼어 죽고 말았으니, 나의 농가주택 사랑도 이제는 힘없는 늙마에다 호사다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일이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우리 집 내자는 하나뿐인 자기네 여동생이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배경으로 유명한 경기도 양평 옥천면 <소나기 마을>근처에다 별장 삼아 하절기 생활 터전을 하나 마련하려고 하니, 우리도 그쪽으로 휴식처를 하나 알아보는 게 어떠하냐고 하는군요. 이제는 백수건달로 돈도 없고 빽도 없는데, 무슨 재주로…? 게다가 내 마음은 언제나 보은에 가 있는데 말입니다.
 
 동기 여러분, 시시콜콜한 나의 이런 신변잡기를 지루하게 늘어놓아서 뭣합니다만, 어쨌든 나무와 화초를 가꾸는 나의 취미는 해가 가고 세월이 흘러도 식을 줄을 모르니 내가 아직도 살아 있음이 분명함이라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 아닐까요?
 그래서 나의 외손주 돌봄이 일터인 쌍둥이네 집에도 아이들의 아토피를 막아 줄 생각에 크고 작은 화분들로 팔십평형 아파트 거실 사방을 가득 채우고 그것도 모자라서 베란다에다 물안개가 자욱한 분수대와 맷돌물이 흐르는 실내 정원도 소담하게 가꾸어 놓았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갈 곳 많은 내 발목을 또 잡고 있으니 이걸 어찌합니까?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쌍둥이들이 해외 영어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동안을 이용하여 오래도록 못 가 본 보은 농가를 다녀오려면 쌍둥이네의 그 많은 화분들과 실내 정원을 나 대신 누군가가 돌봐 줘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번에 회사 일로 쌍둥이 아들네와 동행을 못 하게 된 사위에게 부탁을 하면 어떨까 했는데, 큰 딸애는 자기 양말 하나 제대로 찾아 신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그 어마어마한 일을 맡긴다고요? 아빠, 기대하실 것을 기대하셔야지 천만의 말씀입니다. 게다가, 자기 밥 챙겨 먹는 것도 귀찮아서 우리가 여행을 다녀오는 동안에 숫제 도곡동 어머님 댁에 가 있겠다던데요? 하면서 고개를 흔드는 것입니다.  


 그래도 다른 대안이 없는 걸. 그러면서 나는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 이번 기회에 가사 일에 백면서생인 사위를 양말은 물론 집안일을 제대로 돌볼 줄 아는 불세출의 가사 도우미로 만들어 놓을 수만 있다면, 이번 기회야말로 우리 딸애의 구원투수 한 사람을 만들어내는 천재일우의 빅빅 찬스가 아니겠습니까?

 
 동기 여러 분!
 촌놈 출신인 내가 관광지 인근이라곤 하여도 거기 역시 촌구석임이 분명한 충북 보은에 왜 한사코 가려고 하는지 아십니까? 그건 내 영혼의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옛날, 어릴 적에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시골의 유년 생활을 되짚어 보면서 순수한 대자연과 호흡을 맞추며 고달픈 도회지 생활의 묵은 찌꺼기와 피로감들을 조금이나마 잊고 지낼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릴 때 우리 집 소꼴 머슴이었던 내 고향 친구 진수 생각이 기다렸다는 듯이 불쑥 되살아나는 것도 거기서 비롯된 나만의 특권이지요. 아득한 그 옛날, 여름방학이 가까운 이맘때쯤이면 소꼴 지게를 지고 짙은 송기 향기와 들꽃 향기를 잔뜩 풍기는 소꼴 지게를 지고 꽃더미와 함께 넘실넘실 사립문을 들어서곤 하던 김진수! 


 집이 찢어지게 가난하여 끼니때마다 큼직한 바가지를 들고 살기가 좀 나은 마을의 집들을 찾아가 사립문 밖에서 서성이던 아이 진수. 끼니때마다 늘 그렇게 반복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진수는 막상 우리 집 앞에 이르러서는 우리와 눈이 마주칠세라 얼른 몸을 숨기기 일쑤였지요. 날마다 반복되는 밥동냥이라 어린 나이에도 얼마나 마음의 부담이 컸으면 그랬을까요!
 “야야, 진수가 왔나 보다! 얼른 나가서 데리고 들어오너라.”
 매번 그에게 자기네 식구들이 다 먹을 수 있도록 바가지 가득 밥을 채워 보내곤 하던 우리 어머니는 어느 날 마침내 그를 우리 집 소꼴 머슴으로 맞아들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형편이 좀 낫다곤 하여도 집에 떠꺼머리 머슴이 있는데, 진수를 또 들이기란 사실 쉽지만은 않은 일인데 말입니다. 


 동기 여러 분, 오늘은 옛날 얘기를 하다가 생각 난 김에 우리 집 소꼴 머슴이 된 진수네 아버지를 모델로 하여 창작한 내 문학 초기의 작품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내가 초등학교 2, 3학년쯤 되었을 때, 타고 난 가난 때문에 초근목피로 연명을 하다 못해 멀리 서부 경남의 함안, 산청 지역의 지리산이나 거제도 장승포 쪽의 소나무 벌목장으로 돈벌이를 떠나던 절량농가의 젊은 가장들이 속출하던 그 때 그 시절! 1950년대 후반이었으니까 벌써 까마득한 옛일 이 되고 말았네요.


 숯을 굽던 마을 인근의 산판마저 문을 닫게 되었을 때, 유일한 생계 수단을 졸지에 잃어 버린 마을 사람들이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소나무 벌목장이 있는 머나먼 객지로 나가는 일이 다반사였던 그때 그 시절에 그 역시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홀연히 고향을 떠났던 친구네 아버지! 나는 지금도 그분이 떠나가던 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답니다. 


 겨울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이른 아침, 산 속의 시오리 신작로 길을 걸어서 학교로 가야만 했던 우리들은 그날도 손을 호호 불어가며 들굣길을 재촉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 특별보호림>이라는 커다란 양철 입간판이 세워진, <수삼텅>이라는 표충사 스님들의 다비식이 열리곤 하던 마을 어구의 송림이 저만큼 뒤돌아 보이는 시작로 한 옆(지난 여름에 30여 년만에 가 보았더니 지금은 천지개벽을 하여 넓은 주차장과 카페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에 빈 지게를 벗어 놓고 곰방대로 모닥불을 휘저어가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매방우 마을의 아저씨 한 분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그 즈음 연일 끼니를 굶는 바람에 누렇게 부황이 든 나머지 학교에도 잘 나오지 못하는 친구 진수네 아버지였던 것이지요.

 그날 이후 얼마 안 되어서 진수는 우리 집 소꼴 머슴이 되었고, 열댓 살, 열 예닐곱 살 된 그의 누나들도 부산으로 식모살이를 떠나갔던 것입니다. 지리산의 산판(山坂)인지, 거제도의 장승포 소나무 벌목장인지는 몰라도 이른 아침에 어딘가로 길을 떠났던 친구네 아버지!
 그리고 그뿐, 내 친구, 아니 우리 집 소꼴 머슴인 진수네 아버지는 그 후 십 년이 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떠나간 뒤로 진수 네의 가세는 더욱 기울어만 갔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진수네 어머니는 아내를 잃고 졸지에 홀아비가 된, 그러나 어릴 적부터 남편과 같이 자란 단짝친구인 뒷집 남자와 재혼을 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또 몇 년의 세월이 더 흘렀을까요. 내가 군대엘 갔다 오고 서울로 가서 복교를 한 후 대학 졸업반이 되던 그 전 해의 한겨울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겨울방학을 맞아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갔을 때, 우리 어머니께서 뜬금없이, 아니 기다렸다는 듯이 진수네 아버지의 소식을 전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우리 집안의 일이기나 한 것인 양 아주 가슴 저미고 만감이 교차하는 어조로 말입니다.
 “몇 달 전에 진수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단다!” 


 아하, 저런 변이 있나? 일이 어찌 그 지경이 되고 말았단 말인가? 나는 우리 집 밥을 같이 먹으면서 고락을 함께 하였던 옛 친구네 집의 일이라 그 놀라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고향을 떠난 지 십년이 훌쩍 넘어서 뒤늦게 고향을 찾아왔다면 그 처지는 보나마나 뻔한 일이라, 남의 일 같잖게 내 가슴에 아프게 와 닿았던 것이지요!
 자신의 자취라곤 흔적도 없이 완전히 사라지고 남의 집이 되어 버린 지 벌써 오래인 당신의 옛집이 아니었던가! 그런 집엘 진수네 아버지가 뒤늦게 찾아 왔었다니-.
 그래서 결국 진수네 아버지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로 혹시나 하고 왔다가 거기도 결국 발을 들여놓을 데가 없는 기러기 신세가 된 것을 절감하고는 산 너머 산내면에 있는 저기네 친척 집을 찾아갔었다는데…. 그러나 바로 며칠 전에 거기서도 당신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고 결국 한 많은 일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풍문으로 전해져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디 가서 무얼 하다가 이제야 돌아오셨을까? 나는 그날로부터 타관으로 떠난 후로 베일에 가려진 진수네 아버지의 과거사를 머릿속에 그려 보기 시작하였던 것이지요. 지금은 부산 하단동의 어느 양돈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진수와의 추억을 생각해 보면서 말입니다.


  동기 여러분, 다음에 소개하고자 하는 『동행同行』은 바로 그렇게 하여 탄생하게 된 나의 문단 데뷔작이기도 합니다. 1976년도의 <한국문학> 신인상 수상 작품이니 37년 전에 창작된 것이지요. 


  내가 상상해 본 진수네 아버지의 과거사인 이 작품은 지난 1986년도에 극작가 이은성씨가 각색하여 KBS TV문학관(안해숙, 정동환, 최종원, 아역-주희 주연)으로 방송된 이후로 요즘도 케이블 TV에서 보았노라는 지인들의 얘기가 가끔씩 들리곤 하는 작품이지요. 


 그 이후, 이은성씨는 당시에 집필 중이던 『소설 동의보감』을 끝내고 표충사 대처승들의 삶을 다룬『달빛 서곡』이란 내 장편 소설을 미니시리즈 방송 드라마로 만들겠다며 나의 동의 하에 함께 작업 계획을 세웠었는데, 그러나 그 해 겨울 서울 은평구에 있는 자택 근처에서 테니스를 하다가 뇌일혈로 쓰러진 후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영영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지요.
  - 2013. 07. 20-


 <단편소설>
                                                             동행(同 行)
                                                                                                                                                                                              鄭 大 載
 
 감밭골[柹田里]로 가는 막버스가 밀양읍(密陽邑)을 출발한 지 한 시간 반 만에 범도리(汎棹里) <뱃물> 가에 닿았다. 해는 이미 진 뒤였고, 쓸쓸한 늦가을 강바람이 어둠을 몰고 올 무렵이었다. 종점을 아직 이십여 리나 남겨 놓고 있는 버스는 길가 물레방앗간 옆의 빈터를 한 바퀴 돌아 방금 왔던 방향으로 머리를 돌리더니 급기야는 엔진 소리마저 안으로 삼켜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래도 승객들은 불평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제각기 분주히 짐을 챙겨 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다들 읍내 장에 갔다 오는 장꾼들인 모양이다. 돼지 새끼를 옭아맨 망태기를 둘러멘 장정, 생선 꾸러미를 늘어뜨린 노파, 해물 함지를 머리에 인 아낙네….
 그들은 차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몇 사람씩 떼를 지어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대며 뿔뿔이 흩어져 갔다.
 남나중 버스에서 내린 최 씨는 낡은 군용 배낭을 앞에 놓고 서서 멀어져 가는 장꾼들의 뒷모습을 멀거니 지켜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열 두 세 살쯤 되어 뵈는 승복(僧服) 차림의 아이 하나가 잿빛 바랑을 짊어지고 서 있었는데, 머리는 푸른빛이 나도록 빡빡 밀었으나 갸름한 얼굴과 호리호리한 몸매로 보아 계집아이 같아 보였다.
 멀리 산을 돌아 나온 <뱃물>이 범도리 앞을 노적가리 모양으로 가로막은 메밀산 기슭을 감돌아 유유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뱃물> 저쪽은 그리 넓지 않은 들판과 아불 장터가 연해 있고, 이쪽으론 수천수만 평이나 되는 모랫벌이 강을 따라 비단결처럼 휘엄하니 펼쳐져 있다.
 어둠이 짙어 오는 강가 모랫벌엔 군데군데 자갈 더미가 쌓여 있었으며, 강을 가로질러 세우다 만 다리의 교각(橋脚)들이 흉물스레 치솟아 있었다.
 "얘야, 가자."
 이윽고 최 씨가 아이를 돌아보며 정이 담뿍 담긴 어조로 말했다. 그는 꽤 묵직해 보이는 배낭을 한 쪽 어깨에 느슨하게 걸머메었다. 배낭 속에 뭐가 들었는지 절그럭거리는 쇠붙이 소리가 났다.
 그러나 아이는 최 씨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는 계속 나는 쇠붙이 부딪는 소리보다 배낭을 떠받치고 있는 그의 왼쪽 손이 더 이상한 모양이었다. 사실,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이 한 마디씩 죄다 잘려 나간 그 손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흉측스러웠다. 최 씨는 아이의 그런 낌새를 알아차리곤 손을 밤색으로 물들인, 그러나 이제는 낡고 퇴색하여 회색으로 보이는 야전잠바의 큼직한 호주머니 속에 슬그머니 집어넣어 버린다. 그리고는 공연히 아이에게 말을 붙인다.
 "배고프지?"
 그러나 아이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대신 걸음만 열심히 떼어놓는 눈치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요기라도 하구 오는 건데…. 아불 장터에서 한 술 뜨고 가야겠군."
 그는 아이에게 미안했던지 들으라는 듯이 혼자 중얼거렸다. 점심때가 다 되어 청도(淸道) 운문사(雲門寺)에서 콩나물 국밥 한 그릇씩 먹은 것이 오늘 식사의 전부였다. 최 씨 역시 시장했지만 그런대로 걸을 만했다. 이미 오십 줄에 들어섰으나 그의 체구는 왕년의 산판 인부답게 당당했고, 걸음걸이도 힘차 보였다.
 그러나 반 넘어 센 짧은 머리털과 기름기라곤 찾아볼 길이 없는 거친 피부와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얼굴의 주름살이 험난했던 그의 반생을 말해 주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흘러내리는 <뱃물>이 바로 그들의 눈앞에 펼쳐졌다. 최 씨는 물에서 풍기는 섬뜩한 냉기를 얼굴에 받으며 검은 강물을 굽어보았다. 장꾼들은 벌써 강을 건너 어디로 사라졌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최 씨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물을 굽어보며 잠시 난감한 표정이더니 메고 있던 배낭을 내려놓고 <당꼬> 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렸다. 이어서 아이의 바랑도 벗겨 땅에 내려놓고는 등을 내밀었다.    
 아이는 잠시 망설이는 듯했으나 이내 그의 등에 개구리처럼 납작 달라붙었다. 그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 물속으로 들어섰다. 시월 중순께라고는 해도 산중의 물이라 뼈를 찔렀다. 강심을 향해 들어갈수록 물은 최 씨의 종아리를 잠그고, 정강마루를 잠그고, 드디어는 허벅지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그는 어느 새 물의 냉기는 까맣게 잊고 등줄기에 전해 오는 아이의 따뜻한 체온에 온 몸이 느긋해지는 심사였다.
 그 순간, 최 씨는 나른한 환각 속에 빠져들었다. 야릇한 환각, 아련히 손짓해 오는 것, 달 밝은 운문산 속의 개울물에 잠긴 진줏댁의 하얀 알몸이다. 길게 풀어헤친 검은 머리채다. 풍만한 젖가슴이다. 싱싱한 사지를 버둥거리며 깔깔 웃어대는 요염한 얼굴이다. 그 얼굴이 선명하게 확대되어 와서 눈앞을 확 덮쳤다. 최 씨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망령이 들어도 분수가 있지, 이제 와서…!>
 그는 아이를 저쪽 뚝 위에 내려놓고 짐을 가지러 다시 강을 건너왔다.
 누군가 황소 한 마리를 몰고 모랫벌을 지나 걸어오고 있었다. 벌써 적잖게 어두워진 황량한 모랫벌을 어슬렁거리며 걸어오는 그는 날이 저물어도 만사태평인 듯 여유가 있어 보였다. 다가오는 사람은 후리후리한 키에 골덴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는 물가에 우두커니 서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최 씨 앞으로 걸어오더니 혼자 주절댔다.
 "이놈의 소 새끼가 어찌나 코가 센지… 육십 리 길을 걷는다고 생똥을 쌌네."
 최 씨보다는 네댓 살 젊어 뵈는 사내였다. 최 씨가 말했다.
 "먼 길을 걸어온 모양이 구만요."
 "예, 읍내 우시장(牛市場)에 갔다가…."
 사내는 소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고삐를 밟고 물 건널 차비를 차리기 시작했다. 최 씨는 그가 소를 몰고 물속으로 들어서기를 기다렸다가 바랑과 배낭을 양쪽 어깨에 하나씩 둘러메고는 주둥이를 하늘로 쳐들고 뻗대는 소를 뒤에서 쫓았다. 완강한 힘으로 버티던 소도 일단 물속으로 끌려 들어가자 순순히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넌 그들 두 나그네는 강둑에 나란히 앉아 걷어 올렸던 바짓가랑이를 내리고 양말과 신발을 꿰신었다. 아이의 행장까지 포개어 지고 일어서면서 최 씨가 물었다.
 "댁은 어디까지 가시우?"
 "아실려나 모르겠네. 사자평(獅子平)이라고…."
 사내도 소고삐를 쥐고 일어섰다.
 "마침 잘 되었소 그려. 나도 감밭골까지 가는 길인데."

 사자평이라면 감밭골 동쪽에 위치한 재악산(載嶽山)정상의 평원을 말한다.  최 씨는 가다가 도중에 헤어지게 되더라도 우선 말동무나 있었으면 싶던 차에 사내가 사자평까지 간다니 고향 사람을 만난 듯 반가웠다.

 그들이 뚝 위로 올라서자 어두운 벌판 위에 찍힌 아불 장터의 불빛들이 가물가물 흔들리고 있었다. 둑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자갈이 하얗게 깔린 신작로 길이었다. 길 양쪽으로는 그대로 탁 트인 들판이었는데, 이미 추수가 끝난 뒤라 버려진 땅처럼 허허로웠다. 신작로 길로 들어선 그들 일행은 옆으로 나란히 늘어섰다. 강을 건널 때부터 최 씨에게 바랑을 맡긴 아이는 걸음이 한결 가뿐해 보였다.
 최 씨는 지난날 약초를 캐러 수없이 다녔던 황량한 사자평 벌판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사내 쪽을 돌아보았다.
 "요즘 거기두 집이 들어섰소?"
 "들어서다마다. 젖소가 이백 마리도 넘는 목장까지 들어섰는데요."
 최 씨는 억새풀만 무성해 있던 사자평에 목장까지 들어설 정도로 세상이 변했나, 하고 내심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딴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바깥세상이 많이 달라졌으리라고 짐작은 해 온 터였다. 
 사내는 앞만 보고 걸으면서 호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찾아 물고는 성냥불을 그어 댔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사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같은 주제에 그런 목장이야 꿈이나 꿀 수가 있겠소? 그저 소마리나 멕이구 약초를 가꾸어 그런대로 속 편하게 사는 데에 만족해야지요."
 "궁색한 살림이래도 내 집만큼 좋은 데는 없습디다. 소싯적엔 몰랐지만서두. 그런데 거기 몇 세대나 사시우?"
 "목장을 제외하고 우리까지 다섯 집이요. 그래도 땅이 남아돌아가는 판인데…. 사자평이란 원래 왜놈들이 스키 타던 곳이라잖소. 또, 동란 직후에는 빨갱이들이 비행장까지 닦아 놓고 진을 쳤다는 말도 있던데, 하여간 평원이 어지간히 넓어야 말이지. 난두 첫눈에 반해서 정착하기로 했다니깐요!"
 "재악산 사자평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약초가 젤이었댔지. 산 전체가 맨 약초밭이었다니까."
 "야생 약초를 캐던 시절은 벌써 옛날 얘기요. 이젠 하루 종일 산 속을 뒤져 봐야 삽초 한 뿌리도 못 캘 거요. 실은 난두 소문만 듣고 왔다가 허탕을 쳤었는데…. 그래도 운이 슬슬 트입디다. 팔자에도 없던 계집에다, 거참…. 아무튼 그때부터 사자평과 인연을 맺고 약초 재배를 시작했지요. 벌써 오륙 년 전 얘기지."
 최 씨는 묵묵히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나 사내는 제 풀에 신명이 났는지 연신 담배를 빨아대며 이야기를 계속 한다.
 "그 넓은 땅이 감밭골 정도의 낮은 곳에 자리만 잡았어도 굉장할 겝니다. 고지대라서 그렇지 팥고물 같은 게 토질이야 그만 아닙니까? 그놈의 눈이 동짓달 초순부터 내려 쌓이기 시작하여 삼월이 되어도 녹을까 말까 하니…. 게다가 여름 한 철은 또 사흘이 멀다 하고 안개에다 샛바람가지 불어대니 되는 곡식이 있어야 말이지. 그래도 사자평 전체가 관목과 억새밭 천지여서 약초 한 가지만은 희한하게 잘 됩디다. 허허…."
 사내는 담배꽁초를 허공으로 날려 버리며 흡족한 얼굴로 최 씨 쪽을 돌아본다. 최 씨는 속으로 사자평에 완전히 둘러빠진 양반이군, 하고 중얼거렸으나 입담 좋은 사내가 그리 싫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육십 리 길을 걸어온 사람 같잖게 시원시원한 그의 말투가 맘에 들었다.
 최 씨가 느긋한 언성으로 물었다.
 “그래, 어떤 약초를 심어 봤소?”
 “천궁, 당귀에다 지황, 감초, 작약 등 많지요.”
 그들은 벌판을 지나 아불 장터 초입의 오르막길을 올라섰다. 길 양쪽으로  쭉 늘어선  각종 점포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발소와 양장점도 있었고, 건어물전, 잡화상, 전파사, 문방구, 그리고 식당과 주점이 노천 옹기전 앞에 여러 채 늘어서 있었다. 길거리엔 행인들의 발걸음이 뜸했으나 전파사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소리와 가게의 휘황한 불빛들로 해서 저녁 한 때의 시골 장터거리 치곤 꽤 흥청거리는 편이었다.
 최 씨에겐 이 장터마저도 객지의 어느 신흥도시처럼 낯설었다. 그가 알고 있던 아불 장터는 장날이 되어야 기껏 뜨내기 장사치들과 인근 부락의 장꾼들이 모여드는 갈데없는 벽촌 마을의 쓸쓸한 길거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거리를 걸으면서 갖가지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길가의 여러 점포들을 부신 듯이 둘러보았다. 전파사의 스피커에서 쾅쾅 울려 퍼지는 유행가는 최 씨도 잘 아는 <유정 천리>란 흘러간 옛 노래였다. 그는 한청 팔팔하던 산판 인부 시절,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인생길은 몇 굽이냐는 그 가사 내용이 맘에 들어 곧잘 흥겹게 불러대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황혼을 바라보는 지금 듣는 그 노래는 왠지 그의 가슴을 아프게 때리는 것이었다.
 버스 정류소와 식당을 겸하고 있는 가게 앞에 이르렀을 때,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길가 대추나무 둥치에 소고삐를 비끄러매며 사내가 말했다.
 “뭐든지 한 술 뜨고 갑시다.”
 “따끈한 게 있을까.”
 본 부락민인 듯한 청년 둘이 나무 의자에 앉아 한가롭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뿐, 가게 안은 한산했다.
 “어서 오세요.”
 조리대 앞에 무료하게 서 있던 젊은 여인이 행주치마를 고쳐 매며 최 씨네 앞으로 냉큼 걸어왔다. 자리를 잡고 앉으면서 사내가 물었다.
 “국밥 있소?”
 “쇠고기, 돼지고기 다 있는데 어느 걸로 할까요?”
 “쇠고기루다 셋만 말아 주쇼. 아, 그리구 우선 막걸리부터 한 잔 할까요?”
 사내는 초췌한 최 씨의 몰골을 이윽히 바라보더니 주방 안으로 들어가는 여인의 뒤통수에 대고 다시 소리쳤다.
 “국밥 둘은 곱빼기루 해 주쇼!”
 술이 먼저 나왔다. 사내가 주전자를 들며 잔을 내밀었다.
 “밤길 가는 덴 이놈이 젤 입디다.”
 최 씨는 별로 내키지 않았으나 사내의 말이 그럴싸해서 잔을 받았다. 
 “참, 인사 늦었소. 나 최용만이요.”
 “어, 나도 최간데, 본관이 어디요?”
 마디가 억센 손으로 까칠한 턱 언저리를 쓱 훔치며 최 씨가 다그쳐 물었다.
 “경주요.”
 “허, 경주라…! 본관도 같구만. 따져 보나 마나 우린 일가요. 자, 내 술 한 잔 받구려.”
 최 씨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돌았다. 그는 사내에게 술을 권하며 새삼 그의 얼굴을 훑어본다. 부리부리한 눈매며 번들거리는 구릿빛 피부색이 한 마디로 말해 혈기 왕성한 중년 농군의 얼굴이었다.
 사내는 혈통 관계엔 별 관심이 없는 듯, 최 씨가 건네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주방을 향하여 소리친다.
 “여보슈, 거 바께스에 술 한 말만 갖다 주쇼!”
 여인이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다가 곧 술 바께스를 들고 왔다.
 “짐승도 한 잔 걸쳐야….”
 사내가 술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래도 여인은 이상하다는 얼굴로 거기 서 있었다.
 “술이 소한테는 보약이요. 인심 후한 농가에선 농번기가 되면 농주를 빚어 소를 칙사 대접한다오.”
 최 씨의 말에 여인은 기겁을 하고 밖으로 달려 나간다. 뒤미처 여보세요, 음식 담는 그릇을 소 입에 갖다 대면 어떡해요! 하는 여인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소는 사람보다 정한 동물이요, 하는 사내의 넉살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 씨는 여인의 칼날 같은 질책에도 불구하고 의연히 소에게 술을 먹이고 있을 사내의 믿음직한 모습을 그려보며 혼자 빙그레 웃음을 떠올렸다.
 이윽고 여인이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돌아왔다.
 “참 별꼴이야!”
 최 씨가 무어라고 한 마디 하려는데 사내가 빈 바께스를 들고 득의에 찬 얼굴로 나타났다.
 “그렇게 원통해할 건 없잖소. 말이야 바른 말이지 댁이나 나나 소보다 나은 줄 아쇼? 짐승의 탈을 썼다 뿐이지 사람보다 정직하고 성실하다구.”
 여인은 그냥 샐쭉한 얼굴로 사내의 손에서 바께스를 거칠게 빼앗아 안으로 사라진다. 최 씨가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시골 인심도 다됐구만.”
 “막가는 세상 아닙니까.”
 “글쎄 말이요. 거기 같은 양반이면 어떤 세상이라도 견뎌날 것 같소.”
 “그럴 리야….”
 그러나 사내는 모든 일에 자신이 있어 보였다. 그들이 남은 술을 마저 마셨을 즈음 국밥이 나왔다. 그런데 아이는 숟갈을 들 생각도 않고 소곳이 앉아만 있었다. 최 씨가 먹어도 괜찮다고 두 번 세 번 재촉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아뿔싸, 내가 잘못 했군.”
 사내가 국밥이 적어서 그러는 줄 알고 자기의 것을 아이 앞으로 돌렸다. 그러나 아이의 태도엔 변함이 없다.
 “육미라곤 안 먹어 봤어?”
 최 씨가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소곤거리며 묻자. 그제야 아이의 입이 겨우 떨어졌다.
 “스님이 먹지 말랬어요.”
 “이젠 환속(還俗)을 했으니까, 중이 아니야, 먹어도 돼.”
 이러한 최 씨의 말에 사내가 물었다.
 “따님이요?”
 최 씨가 둔중하게 고개를 끄떡였고, 사내는 혀를 끌끌 찬다.
 “이렇게 이쁜 따님을 절간으로 보내다니, 유정도 탈이지. 그래 아기의 이름은?”
 아이는 최 씨의 눈치를 살피더니,
 “계옥이요.”
 “이름두 얼굴처럼 곱구먼. 그런데 이 국밥 정 먹기 싫어?”
 “사람보다 정한 동물이라 해 놓고선…. 안 먹을래요.”
 사내는 계옥이의 야무진 말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이 때 묻지 않은 아이를 위하여 다시 정식 한 상을 청했다. 비로소 숟갈을 드는 계옥이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사내가 말했다.
 “난두 이런 딸이나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
 “객지 생활 반평생에 얻은 유일한 내 재산이요. 아니 정푠지도 모르지.”
 최 씨는 숟갈을 멈추며 먼 곳을 바라보듯 눈을 가늘게 뜨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감밭골이…?”
 “내 고향이오.”
 “꽤 오랜만인 것 같은데….”
 “한 십 오륙 년 됐지.”
 “야, 그렇담 감회가 대단하겠소, 정말.”
 “가 봤자 반겨 주는 이도 없을 게요.
 “그래도 고향은 고향 아니오? 사실, 난두 객지에서 잔뼈가 굵어진 몸이라 그 마음 잘 알지. 그런데 아기 엄마는…?”
 최 씨는 힘없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의 눈이 초점을 잃고 차츰 흐려져 갔다. 사내는 최 씨의 흐려진 표정을 무심하게 쳐다보다가 국밥을 열심히 떠 넣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국밥을 거뜬히 먹어치우고 탁주 한 되를 더 걸친 뒤에 그 집을 나왔다. 속을 든든하게 채운 사람은 물론 술 대접을 받은 황소가지도 걷는 데 한결 자신이 생긴 것 같았다. 장터거리를 벗어나면서 사내가 담배 두 갑과 과자 한 봉지를 사서 담배 한 갑은 자기가 가지고 나머지를 최 씨 부녀에게 나누어 주었다.
 장터의 불빛이 그들의 등 뒤로 차츰 멀어져 갔고, 길은 인가도 없는 외진 산모롱이를 따라 바른편으로 꺾어졌다. 다소 비탈지긴 했어도 자갈과 황토 흙으로 다져진 길이라 그런대로 걸을 만했다. 늙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지키고 섰는 작은 내를 건너 원구천(原九川)으로 빠지는 갈림길을 지나쳤다.
 곧 달이 뜨려는지 희끄무레 밝아 오는 하늘 아래 삐죽이 솟은 교회당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선 삼거리(三距里)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뒤론 대밭이 들어찬 야산이 둘러섰고, 요란하게 우짖으며 그들 세 사람의 머리 위를 지나간 수백 마리의 갈가마귀 떼가 그 시커먼 대밭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그들은 연기가 자욱이 깔린 이 한적한 마을을 지나갔다.
 이제부터 길은 본격적으로 산 속으로 접어든다. 산허리에 걸린 신작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사내가 최 씨의 배낭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 보며 물었다.
 “계속 장단 맞춰 소리가 나는데, 이 속에 뭐가 들었소?”
 “잡동사니 연장들이오. 십이 년 전까지 객지를 나다니며 쓰던 건데….”
 최 씨는 갑자기 얘기를 중단하며 헛기침을 한다.
 “그 후엔 쓰지 않았소, 그럼?”
 최 씨는 대답이 없다. 천 년을 침묵해 온 바위처럼 그렇게 묵묵히 앞만 보고 걸어간다.
 산등성이에 올라서자 마침내 검은 산봉우리 위로 둥근 달이 둥실 떠올랐다. 달빛이 하얗게 쏟아지는 길 한복판에 웬 말 같은 처녀 둘이 머리를 무릎 위에 처박고 쭈그리고 앉아 있었고, 최 씨만큼이나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 하나가 격한 음성으로 무어라고 한창 떠들어대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며 이쪽의 길손들을 바라보았다.
  최 씨네 일행도 이 고개 마루턱에서 잠깐 쉬어 가기로 했다.
  최 씨가 동년배의 남자 곁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왜들 이러슈? 무슨 곡절이 있나 본데….”
 최 씨의 말참견에 장년 남자는 다시 기가 올랐다.
 “글쎄, 이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답디까? 아, 아무리 말세가 되었다기로서니 제 집을 마다 허구 야반도주하는 년도 있답디까. 집에 밥이 없나 옷이 없나 이건 간에 바람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어. 네 이년, 옥자 니가 부산 가발공장에 취직시켜 준다구 우리 선희를 야시같이 꼬여낸 줄을 내 모를 줄 알구. 하지만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어림두 없다. 암, 어림두 없구 말구!”
 장년 남자는 처녀들을 꾸짖기보다는 차라리 자기의 의지를 다져 보이 듯한 격한 언동이었다.
 “어른의 말이 맞아요. 친구 잘못 만나면 신세 망치는 일이 허다하지. 도회지로 나가면 곧장 일확천금을 모을 수 있는 것처럼 말들을 하지만 말짱 헛거야. 미꾸라지는 개천에 살아야지, 바다엔 못 사는 법이거든.”
 최 씨가 장년 남자를 두둔하고 나서자 사내까지 한 마디 거들었다.
 “패기만만한 남자들도 객지 생활에 못 이겨 누렇게 뜨는 판인데, 처녀 몸으로서야 어디…. 게다가 자칫하면 윤락의 길로 빠져들기 딱 알맞지.”
 이들의 말이 정녕 듣기 싫어서일까. 아니면 마음이 돌아선 것일까. 그때까지 날 잡아 잡소, 하고 버티고 앉아 있던 그들 처녀 중 하나가 화들짝 고개를 쳐들고 일어서더니 저쪽 내리막길을 향하여 냅다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뒤에 남은 처녀도 이젠 할 수 없다는 듯이 친구의 뒤를 좇아 부랴부랴 달려간다.
 장년 남자는 힘이 되어 준 최 씨와 사내를 향하여,
 “고맙소. 안녕히들 가시오.”
하고 인사치레를 하기가 바쁘게 처녀들을 놓칠세라 황망히 쫓아간다.
 최 씨와 사내는 길가에 걸터앉아 제각기 담배를 피워 물었다.
 “햐, 그놈의 달 되게 밝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시월 보름이구먼!”
 사내가 달을 바라보며 감탄을 하자, 최 씨도 한 마디 거들었다.
 “달을 보니 정말 근심 걱정이 왼통 사라지는데 그랴!”
 물론 달빛에 감동한 탓도 있겠지만, 오래간 만에 마셔 본 술기로 해서 최 씨의 얼굴은 적잖게 붉어져 있었다.
 “그런데 노형, 저 아기 말요.”
 사내는 살찐 황소의 볼기짝을 어루만지고 있는 계옥이를 턱짓을 가리키곤,
 “저 이쁜 아기를 얻게 된 사연 한 번 들어 봅시다. 밤길 가는 덴 술과 계집 얘기가 젤인데, 술은 이미 마셨구, 달도 밝겠다….”
 그러나 최 씨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멀리 산 아래를 말없이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개울을 끼고 먼 산을 돌아나간 길이 푸른 달빛에 젖어 더욱 아득하게 보였다.
 그는 진주 댁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던 청도 운문산 산판 시절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산판 인부들을 상대로 색시 몇을 데리고 술장사에 밥까지 팔고 있었는데, 전쟁 통에 남편을 잃은 얼굴 반반한 젊은 과수댁이었다.
 객지의 여러 공사판을 전전하며 주색잡기에 관록이 붙어 있던 최 씨의 눈에 교태가 졸졸 흐르는 진주 댁이 예사로 보일 리 만무했다. 주막을 암내 맡은 수캐처럼 뻔질나게 드나들던 산판 인부와 술집 주모가 마침내 배가 맞았던 것이다. 그 무렵부터 고향을 버렸지만, 최 씨에겐 삭막한 객지 생활 반평생 중에서 그때만큼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절은 없었다.
 “이제 슬슬 가 볼까요.”
 사내가 소를 앞으로 몰아세우며 새 담배를 갈아 대는 최 씨 쪽을 돌아보았다. 최 씨도 행장을 지고 슬며시 일어선다. 계옥이가 사내의 손에서 고삐를 빼앗아 소를 대신 몰았다. 최 씨가 뿜어대는 하얀 담배 연기가 밝은 달빛 속에 입김처럼 퍼져 나갔다가는 이내 무르녹았고, 댕그랑거리는 소방울 소리가 길을 따라 앞으로 앞으로만 흘러갔다. 뒤에 가는 최 씨와 사내는 흡사 소 방울 소리에 끌려가는 꼴이었다.
 양쪽으로 잡목이 꽉꽉 들어찬 산 속이었다. 길이 내리막이 되면서 발걸음들이 훨씬 가벼워졌다. 앞에 가는 소가 산 속이 쩡쩡 울리도록 크게 한 번 울었다. 겹겹이 에워싼 먼 산골짜기마다 연기 같은 기운이 뿌옇게 껴 있었다. 최 씨는 그것이 달빛이 쌓인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가만히 입을 열었다.  
 “운문산 골짜기가 꼭 이랬소.”
 마침내 진주 댁의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자기보다 젊은 사내에게 늘어놓기가 다소 거북살스럽긴 했지만, 그 얘기를 털어놓지 않고는 못 배길 심사였다.
 “아마 칠월 보름께는 되었을 게요. 오늘 밤처럼 달이 밝았으니까.”
 동료 인부들은 바람을 쐬러 나가거나 주막에 간 뒤였고, 토막에 남은 축들은 여느 때처럼 벌써부터 화투판을 벌여놓고 있었다. 최 씨는 그날도 진주 댁을 어떻게 해 볼 궁리만 하고 있었다. 화투판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뛰어드는 성미였으나 진주 댁한테 딴 마음을 먹고부터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나 진주 댁의 속을 알 길이 없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이건 넌지시 언질을 주어 보아도 톡 내쏘고, 우격다짐으로 손목을 잡아도 발끈해서 뿌리칠 뿐, 정녕 자기가 싫은 건지 겉으로만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진주 댁이 그럴수록 최 씨는 더욱 기가 올랐다. 언젠가 호젓한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참이었는데, 그날따라 괜스레 심란한 생각만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밤중이나 되어서 주막을 찾아갔으나 진주 댁이 보이질 않았다. 어느 사내놈을 끼고 자빠졌나 하고 방방이 다 뒤져 보아도 취객들과 농탕치는 작부 년들뿐, 진주 댁은 보이질 않았다.
 “무슨 수를 쓰든지 내 사람으로 만들 작정이었는데, 그만 눈알이 확 뒤집어집디다 그려. 언놈이 꿰차고 산골짜기로 들어간 줄 알았던 게지. 절세미인에 청상과부라, 넘보는 사람이 많아가지고설랑….”
 여기서 최 씨는 담배 한 모금을 길게 빨아 넘겼다. 사내가 답답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래 그게 사실입디까?”
 “들어 보시오.”
 최 씨는 술기가 오른 얼굴에 빙긋이 웃음을 떠올리더니,
 “계집을 찾아 주막 뒤의 숲 속을 한참 헤매고 있을 때였소. 허, 세상에 나같이 박복한 놈에게도 그런 복된 일두 다 있었던지….”
 바로 눈앞에 기막힌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진주 댁은 세상모르고 멱을 감고 있었는데….
 “개울물 속에 들앉은 계집의 알몸이 박속처럼 흽디다 그려. 대낮같이 밝은 달빛 속에서 말이지.”
 “노형께서도 같이 멱을 감으신 게로군.”
 사내가 끄르르 웃어 제겼다.
 “여부가 있겠소. 쩝, 하면 입맛이라고…. 잘 아시누만. 인연이란 원래 그렇게 닿는 법 아니오?”
 “저 아기가 엄마를 닮았다면 꽤 미인이었겠는데….”
 최 씨는 소를 앞세우고 몇 발짝 앞에 가고 있는 계옥이를 바라보며,
 “얼굴도 얼굴이지만 몸매도 그만이었지. 사내들이 군침 흘리기 딱 알맞은 여자였소. 한 삼  년 같이 사는 동안에 쟤두 낳고 정이 들 대로 들었는데….”
하고 말끝을 흐렸다. 사내가 최 씨의 흐려진 얼굴을 동정 어린 눈으로 쳐다보다가 앞으로 고개를 돌리며 조용히 말했다.
 “헤어진 거군요.”
 “내가 일만 저지르지 않았어두 지금까지 같이 살았을지도 모르지.”
 “일이라니…?”
 최 씨는 대답은 않고 연신 담배만 빨아댔다. 사내도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잠자코 걸었다.
 산등성이를 내려오자 길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 방향을 몰라 갈림길 앞에 서 있는 계옥이에게 사내가 목청을 돋워 일렀다.
 “신작로를 따라 곧장 걸어가면 돼. 바른편의 샛길은 삼밭골로 빠지니까.”
갈림길을 지나고 산기슭을 벗어나 작은 개울 하나를 건넜다. 길옆으로 손바닥처럼 작은 논뙈기들과 마른 억새풀이 자욱한 돌밭이 펼쳐져 있었다. 하얀 억새꽃이 달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모양이 퍽 인상적이었다.
 이윽고 최 씨가 입을 열었다.
 “죄 받았지. 고향을 버렸으니까….”
 “뭐가 말이오?”
 사내가 최 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노름판에서 사람을 죽였던 거요.”
 “네? 사람을요?”
 사내가 깜짝 놀랐으나 최 씨는 의외로 침착하게 말했다.
 “토방 안으로 낫을 가지고 들어와서 먼저 휘두른 건 저쪽이었소. 김 서기라고, 산판 인부들을 못 살게 구는 깡패 같은 친구였지. 다들 주머니를 툭툭 털고 물러나 앉구 둘이서 막판을 겨루다가 실랑이가 벌어졌던 게지. 그 친구는 장땡을 잡구 나는 양광을 잡았던 건데, 판돈이 엄청나게 많았으니까 그 친구가 단박에 생떼를 씁디다. 속임수를 썼다구 말이지. 노름판이란 원래가 그런 거 아뇨? 속임수로 먹고 먹히는 판인데, 내게 잘못이 있었다면 수가 높았던 것이라고나 할지…. 그런데 그 친구는 자기의 말발에 내가 먹혀들지 않으니까 완전히 미쳐 가지고설랑 낫을 들고 설칩디다.”
 “아무도 말리지 않던가요?”
 “말리는 게 다 뭐요. 까딱 잘못 하다간 시퍼런 낫에 찔려 죽을 판인데…. 사실 나도 첨에 피하고 싶은 생각도 납디다만, 어느 한 쪽이 죽어 나자빠지기 전엔 결판이 안 날 성질의 싸움이라는 걸 알고는 기를 쓰고 맞섰던 거요. 그 친구, 돈도 돈이지만 계집을 빼앗긴 분까지 풀려던 눈치던데…. 하여간 이 결판에서도 결국 내가 이겼지만 속임수는 아니었던가 봅디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구 보니까 내 이 손가락 네 마디가 몽땅 잘려 나갔고….”
 최 씨는 지금까지 숨기고 있던 왼쪽 손을 선뜻 내보이고 나서,
 “그 친구는 사지를 뻗고 누워 있었는데, 가슴팍에 자기가 갖구 설치던 낫이 박혀 있습디다. 방바닥은 피바다가 되 있구….”
 사내가 진저리를 치고 물었다.
 “그래 몇 년이나 사셨소?”
 최 씨는 긴 한숨을 내쉬고는 갑자기 처량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감형을 제하고도 십 년 넘게 살았지. 고생을 많이 했지만 역시 죄인이 가야 할 곳입디다. 저절로 사람이 되어지더만.”
 그들은 어둑한 산모롱이를 돌아 나갔다. 길은 무서리가 내려 촉촉하게 젖은 빈 밭과 큼직한 돌들이 늘어선 황무지 사이로 뻗어 있었다. 밭두둑의 마른 잡초 속에 들국화가 여기저기 외롭게 피어 있었다. 최 씨는 갈수록 걷기가 힘이 드는지 걸음이 자꾸만 느려졌다. 한사코 마다하는 것을 사내가 기어이 그의 짐 하나를 빼앗아 들었다. 최 씨가 자기의 배낭을 두드려 보이며 말했다.
 “녹슬어빠진 이 연장들처럼 이젠 나도 다 되었나 보오. 마음은 뻔해도 몸이 말을 듣질 않으니….”
 “옥살이 십여 년에 근기가 다 빠져서 그렇소. 몇 달간 몸보신만 잘하면 힘이 절로 솟을 거요. 그런데 헤어진 뒤에 아기의 엄마 소식은 전혀 못 들으셨소?”
 최 씨는 침통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지가 춘향이 아닌 담에야 살인 내고 감옥에 간 기둥서방을 기다릴 리가 있겠소. 삼 년 동안 같이 살면서 아무리 정이 들 대로 들었다지만 말이오.”
 “하기야 그럴 거요.”
 “그래도 딸린 새끼가 있으니까 어찌 되었나 하고 출감하고 오는 길에 운문산 골짜기를 찾아가 보지 않았겠소. 세상 많이 달라졌습디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쳐내던 산판엔 다시 잡목들이 들어찼고, 인부들의 토막과 주막이 있던 자리에도 관광객이 득시글거리는 상가가 들어섰더란 말이요. 마침 거기서 식당을 하고 있는 본 고장 인부 한 사람을 만났는데, 소문을 들어 보니 모든 게 예상했던 대루 풀려 나갔더만. 아기를 운문사 신중들한테 맡기구 고향을 다녀오겠다고 떠나고는 영 꿩 궈 먹은 자리가 되었다는데….”
 사내가 하늘을 바라보고 장탄식을 했다.
 “허허, 세상에 그런 매정한 모정도 다 있나!”
 “계집 탓할 거 있소. 사내가 못난 놈인걸….”
 최 씨의 얼굴은 어느 새 술기가 완전히 걷혀 있었다. 그는 어깨가 아파서 두 손으로 멜빵을 하나씩 떠받치고 걸었다.
 신작로를 가로질러 흘러내리는 개울 앞에 이르렀다. 계옥이는 벌써 저편에 건너가 있었다. 소를 몰고 서 있는 아이의 얼굴이 유난히 파래해 보였다. 밤이 꽤 깊었는지 달빛이 더욱 푸르고 골골거리며 흐르는 개울물 소리만이 한밤의 정적을 겨우 깨어가고 있었다.
 신작로 옆으로 나 있는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최 씨가 혼자 중얼거렸다.
 “인제 오릿길밖에 안 남았군.”
 그는 고향이 가까워지자 아련한 꿈속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먼저 개울을 건너간 사내가 그를 기다리고 섰다가 어깨를 맞대고 걸으면서 물었다.
 “감밭골엔 누가 있소?”
 “모르오, 죽었는지 살았는지.”
 최 씨는 비통하게 내뱉었다. 자기의 과거를 죄다 알고 있는 사내에게 지금까지 버려둔 노모와 처자식의 얘기를 무슨 낯으로 입에 담을 수 있을 것인가. 명색이 가장으로 아들 노릇, 남편 노릇, 아버지 노릇, 그 어느 구실 한 번 제대로 못한 걸 생각하니 죄책감과 후회가 골수에 사무친다. 잠시나마 허황한 진주 댁의 생각에 취해 있었던 일조차 죄스러웠다.
 사내가 다시 물었다.
 “농토는…?”
 최 씨는 쓸쓸하게 웃었다. 그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산답 말반지기와 자갈밭 두어 뙈기가 전 재산이요. 그래서 떼돈 벌겠다구 일자리 찾아 나선 것이 결국 이 지경이 되고 말았나 보오. 이젠 정말이지 눈감고 죽을 자리밖에는…. 그렇게 될는지는 모르겠소만.”
 사내가 불길이 확 당기는 눈으로 최 씨를 바라보았다.
 “노형, 마음을 크게 잡수시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졌다지만 살길은 아직도 얼마든지 있습디다. 집안 형편이 그렇다면 그 농사 때려치우고 사자평으로 올라오시오, 나랑 배 두드리며 약초 재배나 하게.”
 최 씨는 막연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사내의 말에 귀가 다소 솔깃해지긴 했으나 그 황무지를 개간하자면 몸이 견뎌날 것 같지가 않았다.
 저만큼 앞에 외딴집 한 채가 보이고, 그 초가 주위로 계단식으로 나붙은 논에 짚 더미가 여러 군데 쌓여 있었다. 박구장네가 살던 집이다. 여기서부터 감밭골 땅이지만 본 마을까지는 아직도 한 굽이의 산모롱이와 솔숲 하나를 더 지나야 하는 것이다.
 울타리도 없는 외딴집을 지날 때, 진홍색의 불빛을 함빡 머금은 봉창 안에서 아기를 어르는 듯한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한가롭게 흘러 나왔다. 최 씨는 콧마루가 시큰해져서 몇 차례나 헛기침을 했다. 소를 몰고 앞에 가던 계옥이도 심심해졌는지 그들 곁에 바싹 붙어 걸었다.
 그들 세 사람은 이제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고, 자갈길을 밟는 발자국 소리와 소방울 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창백한 최 씨의 이마에서는 허연 김이 솟아 오르고 있었다. 마지막 산모롱이를 돌아 나갔다. 굴속처럼 어둑한 솔숲 사이를 지나면서 사내가 말했다.
 “밤중이 다 되어야 집에 떨어지겠는걸…. 아무튼 오늘 노형 덕분에 지루한 줄 모르고 잘 왔소.”
 “왜 여기 좀 쉬었다 가시잖구 곧장 가실라우? 길이 험할 텐데….”
 “가파르긴 해도 거기까지 이런 신작로가 나 있소. 아마도 집사람이 아이들을 데리고 마중을 나올 모양이던데….”
 사내는 마을 어귀의 갈림길에서 최 씨에게 바랑을 돌려주고 나서 소 고삐를 받아 들며 계옥이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아가야, 잘 가거라.”
 그리고, 최 씨를 돌아보며,
 “노형, 살기가 마땅찮으면 사자평으로 올라오시오. 내 힘닿는 대로 도와 드리리다.”
하고 최 씨를 잠시 지켜보고 섰다가 저쪽 길로 접어들었다.
 “조심해서 가시오!”
 최 씨는 멀어져 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아쉬운 듯이 바라보며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은 우선 보기에도 옛날보다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집들이 스레트나 함석으로 개량되었다는 것과 길가에 가게 몇 개가 더 늘어난 정도였다.
 최 씨는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지붕이 개량된 듯한 뒷동네 맨 끄트머리의 자기네 집 불빛을 발견하고는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갑자기 주름살이 펴진 얼굴로 옛날부터 있던 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출입문 여는 소리에 방문이 열리며 중년 여인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아직도 여전하구만. 안녕들 하시우?”
 최 씨의 말에 여인은 머뭇거리며,
 “가만 있자, 뉘시더라….”
 “허허, 몰라 보시누만. 나 뒷동네 살던 돌이 애비요.”
 그제야 여인이 손이라도 마주 잡을 듯이 문턱을 내려섰다.
 “아이고머니나! 최 씨 양반, 이게 웬 일이세요? 객사라도 하신 줄 알았더니!”
 “죽지 못해 이렇게 살아 왔소.”
 “그 동안 어디에 가 계셨에요?”
 “남한 일대에 안 가 본 데가 없소.
 최 씨는 이렇게 얼버무리며 과자 몇 봉지를 골랐다. 그의 행색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던 여인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세요?
 “모르다니요?”
 “최 씨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여인은 그의 놀라는 기색에 잠시 망설이는 눈치였으나 어차피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음인지 속에 든 얘기를 다 하고야 말았다.
 “지금 집으로 가신대두 아무 소용이 없을 거예요. 돌이 할머니는 벌써 옛날에 돌아가셨구요. 돌이 엄마도 가산을 정리하여 오래 전에 개가를 해 떠났다구요, 글쎄.”
여인이 들려주는 얘기는 십여 년 전 대구의 어느 법정에서 들었던 살인죄의 판결문과도 같이 최 씨의 가슴에 한 마디 한 마디 비수처럼 아프게 와 박혔다.
 고개를 늘어뜨린 최 씨에게 여인이 조용히 말했다.
 “너무 고깝게 생각지 마세요. 하도 보기가 딱해서 그만….”
 “아니, 괜찮소. 그런데 아이들은…?”
 여인은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다.
 “개가를 할 때 데리고 갔어요.”
 최 씨는 그들이 살고 있는 곳만이라도 알고 싶었으나 그럴 필요조차 없을 것 같았다. 그는 과자 봉지를 도로 내려놓고 힘없이 밖으로 나왔다.
 “주무실 만한 곳두 없을 텐데 어딜 가실려구 그러세요?”
 “여인이 따라 나오며 물었으나 최 씨의 귀에는 잘 들리지도 않았다. 그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계옥이의 손을 꼬옥 쥐고 행길로 향해 걸었다. 여인이 이번에는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우리 집 양반이 곧 돌아오실 거니까 같이 주무시고 가세요.”
 “최 씨는 여인의 손을 가만히 뿌리쳤다.
 “말씀은 고맙소만 지금 갈 곳이 있어놔서….”
 “갈 곳이라니, 이 오밤중에 어딜 가신다는 말씀이세요?”
 “사자평에나 갈까 하오.”
 “거긴 뭣 하러 가세요?”
 “이제 내가 발붙일 땅이란 거기밖에 없는 것 같소.”
 여인이 갑자기 맥 빠진 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최 씨 양반도 벌써 다 알고 계셨군요.”
 “뭘 말이요?”
 “ 돌이 엄마가 사자평에 살고 있다는 것 말예요.”
 최 씨는 후딱 걸음을 멈추었다.
 “그게 사실이요?”
 “아따, 갑자기 시치미를 떼시긴…! 하지만 잘못 생각하셨어요. 최용만이란 사람이 호인인 줄은 온 동네가 다 아는 일이지만 최 씨 양반이 들어서면 그 따뜻한 집안도 풍비박산이 날 텐데.”
 “최용만이라면!”
 그 순간 최 씨의 머릿속에 지금쯤 아내의 마중을 받고 있을지도 모를 아까 그 사내의 얼굴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리고 자기가 마음의 정처조차 없는 기러기 신세가 되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텅텅 비어 버린 가슴 속에 믿음직한 아우에게 가문을 맡긴 것 같은, 그러면서도 지난 반생 동안에 저질렀던 모든 죄의 대가를 이제야 비로소 깨끗하게 청산한 것 같은 희열이 가득 차오르는 데 대하여 스스로 놀랐다.
 천천히 발길을 돌리는 그의 잔등에 달빛이 함빡 쏟아졌다. <끝>
(1976년 <한국문학>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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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中通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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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렬  13.07.20. 18:50 
친구의 글쓰는 재능을 계속이어 가길 기원하구려 파인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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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길  13.07.21. 10:24 
등단의 작품을 읽을 수있게 하여준 친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보내고, 댓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스마트 phone 이라서 당장 색인이 힘들지만 귀가시에 pc를 이용하여 kbs tv 홈페이지에서 친구의 작품 '동행'을 색인하여 down 받을 수 있다면 우리의 카페에 동영상으로 올려서 많은 친구가 영상으로도 감상할 수있도록 하여 보겠습니다. 요즈음 국가기록원의 특정 기록물 처럼 존재여부가 힘들지 않기를 기대하면서 ....그리고 동행이 이중으로 게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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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장털보안봉환  13.11.16. 00:08 
늣게친구의 글을 봐서 미안하네.. 동기생중 너와같은 문학가 가 있다는것이 행복하네 나도 고향이 밀양 하남 명례네지난주 마누라와 밀양댐을 돌아 표충사에 갔다왔네.이제 시간을 억지로 내어 더늙기전에 해외여행을 다니려 하네지난 추석은 9일간 터키여행을 다녀왔고 다가오는 구정에는 스페인 폴투칼 모로코을 다녀올까 하네..건강하시길 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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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대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1.02 그것을 본 어린 아이들이 겁을 잔뜩 집어 먹고 저마다 도망을 친 것은 당연지사였지요. 불이 붙은 내 동생의 왼쪽 소매에서는 점점 더 연기가 심해지면서 윗쪽으로 타들어 가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울며불며 집을 향해 숲속 길을 아장아장 걸어오는 내 동생의 처참한 모습을 거너편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우리 어머님이 발견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
    소매 끝에 불이 붙은 채 걸어오는 내 동생의 모습을 발견한 우리 어머님의 심정이 과연 어떠하였겠습니까?
    근 일백 미터나 되는 개울가의 반석길을 아무리 달려도 달려도 근육이 굳어 버려서 제대로 뛰어갈 수도 없었답니다.
  • 작성자정대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1.04 우리 아버님이 그 아이를 둘러 업고 부산으로, 대구로, 용하다는 병원이란 병원마다 다 돌아다녀 보았으나,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이 왼팔 절단수술밖에 대안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들은 멀쩡하던 내 자식을 불구자로 만들 수는 도저히 없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다시, 부산 대구 마산으로, 진주로, 밀양읍내로,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세월이 무려 만 20년이었습니다. "이놈아, 네 밑에 들어간 돈을 모두 합치면 장골의 지게에 한 짐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이런 소리를 들으며 사투를 벌이던 내 동생은 화상을 입은 지 만 20년이 되던 해에 25살의 꽃다운 나이에 그만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습니다.
  • 작성자정대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1.04 그때 제 나이 스물여덟-
    “엄마, 인자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내가 죽으면 독수리가 될 기이다. 우리 엄마 콩밭 보리밭 맬 때 제가 발갈퀴로 대신 다 매어 줄게.”
    임종할 때 제 동생이 남긴 유언이었습니다. 동생이 안 되겠다는 말을 했을 때, 동생의 죽음을 직감한 우리 어머님은 옆에서 울고 있던 저더러 밖으로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저는 땅을 치며 통곡하는 어머니의 절규를 문 밖에서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로부터 시작된 우리 가족들의 기나긴 20년 통한의 세월들-.
  • 작성자정대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1.04 하지만 제 고향 생가 앞 개울 한복판의 드넓은 <자라방우> 소(沼)는 여름과 겨울철의 주요한 놀이터로서 제 유년시절의 아름다운 모든 추억들이 어려 있는 곳이기도 하니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돌이켜 보면 저의 그리운 추억담은 대하장편소설 하나를 쓰고도 남을 정도로 무궁무진 하니 이 가슴 저미도록 아프고도 그리운 추억들에 대하여 들끓는 애증(愛憎)의 본능을 대체 어떻게 주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작성자도재국 | 작성시간 18.01.02 독수리님이
    하늘 높이 마음껏 영원토록 날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 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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