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魂은 정신적 의지라고 할 수 있다면,
백魄은 몸통과 사지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손가락을 움직일 때는, 혼이 백에게 손가락을 움직이고 싶다는 뜻을 전한다.
그러면 백은 기운과 혈액을 보내 손가락을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심장이 뛰고 있는것은 혼과 관계없이 순전히 백의 힘으로만 그렇게 되고
있는 것이다.(심장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불수의근이다.)
하지만, 혼이 놀라거나 할 때 심장이 더 빨리뛰고 하는 것을 보면 혼이 전혀 관계가
없다라고도 할 수 없다.
이런 혼과 백이 분리되는 것이 곧, 죽음이라고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런데 죽으면
혼은 자기 목적지를 향해 떠나지만 백은 대개 육체속에 머물러 이전의 생활을 그대로
되풀이하려고 하는 관성적인 성질이 있다. 곧 집착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덤속에 생전에 쓰던 물건을 넣기도 한다. 그리하여 백이 무덤속에서
나오지 않도록 이승의 집착을 여의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그런데 백이 무덤속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이전의 살던 집으로 돌아온다든지 또 갑자기 교통사고고 나서 자기 자신이
죽은지도 모르고 계속해서 그 자리에 머무는 경우가 있다. 그게 바로 귀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원래 '돌아온다' 는 의미의 歸자인데, 똑같은 음으로 '鬼(귀신 귀)'자를 쓰는 것이다.
또, 귀신에 대한 해코지를 생각해 본다면, 그 집으로 돌아온 백은...또는 교통사고의 자리에 있는
귀신은 식구들과 자손들, 주변사람들이 무덤속의 생활보다도 훨씬 잘살고 있는 것을 보고는
시기가 나서 헤살을 놓는 법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백이 제발 무덤속으로 돌아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도록 무덤을 찾아가서 빌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혼이나 백이나 육肉이라고 하는 구분은 살아있을때는 필요한지 몰라도 죽을때는 아무필요가
없다. 이것은 장자莊子에도 한 일면이 나타나 있다.
ㅡㅡㅡㅡ
해골바가지를 베고 장자가 잠을 잤다.
해골바가지 주인이 꿈에 나타나서 하는 말이,
'나는 네가 다시 인간세상에 태어나기를 바라느냐고 물어봤지만,
나는 이렇게 죽어서 사는 것이 이렇게 편하다ㅡ
뭐하러 다시 태어나서 골치아프게 살 것이냐ㅡ'
이렇게 이야기 했다라고 한다. 장자에 쓰여진 이야기이다.
결국은 장자도 죽음을 크게 쉬는 것으로 보고 있다ㅡ
그런데, 사람들은 살기만하려하고 죽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그 인식의 범주에서
괴로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죽고사는 것이 한 모습모양이라는 것을 많은 성인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말에 똑같은 것이 있다.
'넋'이라는 것이다.
생사를 초월한 도의 자리가 진정한 넋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있어서의 넋은 '道'의 다른말이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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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석관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7.10.14 넋을 사람들은 홀연히 생각하기를, 태어나고 죽는 것이 넋인가보다...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생사가 시작되고 道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본래는 넋도 道와 같이 죽지도 태어나지도 않는 것이었다. 다만, 우리는 인식의 범주에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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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나무향기 작성시간 07.11.20 스님!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납니다. '백'이 불쌍해서요. "무덤 속에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거나 교통 사고가 나서 죽었는데도 자신이 죽는 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그 자리에 머무는 백이 있다"는 글을 보고 작년 이맘때 교통사고 당했던 제 자신이 생각납니다. 정말이지 저도 제가 깨어나서 쓰러진 것을 보기 전까지는 교통사고 난 지도 몰랐습니다. 자신을 인식하지도 못하는 '백'이 있다니.....정신적 차원에서 구별하기 힘들던 혼과 백이 죽음 앞에서는 이렇게 세부적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육체란 참으로 허망한 것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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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석관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7.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