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상 신부]2026년 6월 12일 (금)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 말씀 묵상 (신명 7,6-11) (이근상 신부)

작성자박베드로SJ|작성시간26.06.12|조회수43 목록 댓글 1

2026년 6월 12일 (금)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 말씀 묵상 (신명 7,6-11) (이근상 신부)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6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며,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선택하시어 땅 위에 있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너희를 당신 소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7 주님께서 너희에게 마음을 주시고 너희를 선택하신 것은, 너희가 어느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가 아니다. 사실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수가 가장 적다. 8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시어, 너희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시려고, 강한 손으로 너희를 이끌어 내셔서, 종살이하던 집,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손에서 너희를 구해 내셨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참하느님이시며,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진실하신 하느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10 또 당신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그를 멸망시키시어 직접 갚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 없이 직접 갚으신다. 11 그러므로 내가 오늘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명령하는 계명과 규정들과 법규들을 너희는 지켜야 한다.”(신명7,6-11)

모세는 백성에게 말한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며,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선택하시어 땅 위에 있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너희를 당신 소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그런데 그 선택의 이유는 이유가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크기는 오늘날 가치중립적인 크기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였다. 작은 이들은 작은게 아니라 덜 가치있는 이들이었다. 하느님의 선택은 작은 이들이었다. “사실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수가 가장 적다.” 선택은 우월함의 증명이 아니라 연민과 사랑의 사건이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마음을 두셨다. 이유는 그들 안에 있지 않았다. 이유는 하느님 안에 있었다. 그분이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예수성심대축일의 첫 독서가 바로 이 말씀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예수성심은 이 신명기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느님은 큰 백성을 사랑한 것이 아니다. 작은 백성을 사랑하셨다. 잘난 백성을 붙드신 것이 아니다. 종살이하던, 종살이에 딱 맞는 죄스러운 백성을 선택하여 사랑하고 끌어내셨다. 그러니 성심은 열심히 살아서 달성하는 트로피가 아니다. 그건 신심깊은 이들이 다다를 선물이 아니다. 성심은 성심에서 가장 먼 죄인들에게 손수 가 닿은 하느님의 마음이다. 선택받았다는 말은 높아졌다는 뜻이 아니라, 더 깊이 사랑에 빚졌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어지는 말씀도 명령이기 전에 호소다. 사랑했으니 너도 사랑하라는 말은, 더 정확하게 해석하자면 이렇게나 너를 사랑했다는 말이다. 사랑하라는 말은 거기까지 들어야 한다. 도무지 사랑할 만한 사람이 아닌 이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계명과 규정들과 법규들을 지켜야 한다.” 너희를 먼저 사랑하신 그분을 사랑하여라. 너희를 끌어내신 그분의 마음을 배반하지 마라. 너희가 받은 자애를 너희 삶의 모양으로 삼아라.

예수성심은 바로 이 마음이 살이 된 신비다. 십자가에서 예수의 옆구리가 찔렸고, 거기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교회는 그 몸통의 상처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보았다. 심장을 보았다. 찔린 심장을 보았다. 방어하는 마음이 아니라 찌른 자에게 쏟아지는 마음. 그 마음을 본 이들은 단지 감동하지 않았다. 그 마음을 설명할 수도, 가르칠 수도 없었다. 다만 그 마음 안에 숨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마음을 닮고자 했다. 성심신심은 그렇게 남몰래 숨긴, 나만의 아린 부끄러운 신심이다. 그렇게 닮는 신심이다.

꼴롱비에르 성인으로 대표되는 예수성심 신심은 예수회의 사명과 분리될 수 없다. 물론 이것이 예수회의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사실 예수회처럼 예수성심의 가난하고 겸손한 모습을 자주 배반한 수도회가 또 어디 있을까. 우리는 잘난 체하며 도통 찔리지 않는 높다란 자리에서 참 오래오래 성심을 가르쳐왔다. 찔리는 자리에서 가장 먼 수도회가 아닐까. 상처 입은 마음 곁에 머물기보다, 상처를 해석하는 일에 익숙했다. 찔린 심장을 따르겠다 하면서도, 정작 우리는 잘 찔리지 않는 심장으로 달려왔다. 단단한 철갑 심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심은 여전히 우리를 부른다. 그 마음은 우리가 따라야 할 이상을 너무나 군더더기 없이 보여 준다.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 먼저 사랑하는 마음. 작은 이, 자기 죄가 부끄럽지만, 당신 앞에서만은 드러내도 좋을, 무장해제시키는 마음. 배신당하고도 닫히지 않는 마음. 찔리고도 흘러나오는 마음. 성심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또 우리를 일으킨다. 우리가 배반해온 바로 그 마음이 다시 우리를 부르기 때문이다.

요새 낮을 채우는 빛처럼 밤을 어루만지는 시원한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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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함께 | 작성시간 26.06.18 new 상처 입은 마음 곁에 머물기보다,
    상처를 해석하는 일에 익숙했다.

    찔린 심장을 따르겠다 하면서도,
    정작 우리는 잘 찔리지 않는 심장으로 달려왔다.
    단단한 철갑 심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심은 여전히 우리를 부른다.


    낮을 채우는 빛처럼
    밤을 어루만지는 시원한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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