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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me 7 작성시간24.06.07 결승전 생생히 기억납니다. 당시에 86 88 붐업을 위해 86 아시안게임 당시 가을운동회 대신 아시안게임 직관, 혹은 집관 시켰었는데요. 77-74도 기억나고 마지막 포제션에서 하필 김성욱이 3점을 던지는 상황이 발생해서;;; 김성욱이 골밑 투사이긴한데 슛이 없었죠. 그래서 자유투도 극악이었고(당시엔 파작 때 투샷이 아니라 원앤드원 이라서 농구대잔치에서 핵 어 김성욱 작전도 많이 나왔습니다), 극악의 자유투를 극복하기 위해 요즘 선수들 사이에 유행하는 백보드 자유투를 본격 선보인 선수이기도 하죠. 암튼 옛 추억 소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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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octor J 작성시간24.06.07 추억의 장면들 감사합니다.
저는 저 당시 한국팀을 역대 최고로 꼽습니다. 허재와 김유택은 아직 대학생이었죠.
중국과의 결승전은 당연히 이길 것으로 생각하고 보다가 막판에 좌절을 경험했지요. 같은 해 ABC 대회에서 이미 한국이 중국을 꺾었었고, 이 결승전은 안방에서 벌어진 것이어서 더더욱 그랬습니다.
저는 패인을 3가지로 봅니다.
(1) 허재의 발목 부상 (전반전 중반에 허재의 발목이 돌아갔습니다)
(2) 조동우의 부재 (김성욱 자리에 조동우가 있었다면)
(3) 장용준의 3점 4방 (여기서 승부가 갈라졌죠)
포인트가드이자 앞선 수비를 이끌던 허재가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도 막판까지 막상막하였습니다. 경험많고 몸싸움 잘하는 조동우가 있었다면 훨씬 유리했을 것이고요.
키가 큰 장용준을 허재가 앞에서 제대로 떠주기라도 했다면 저렇게 허무하게 3점 4방을 연속으로 얻어맞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발목이 돌아간 허재는 제대로 점프를 뛸 수 조차 없었죠.
한국은 조직력, 슈팅, 전술 면에서 저 당시 중국을 압도했습니다. 객관적 전력에선 앞섰지만, 허재의 부상에서 온 손실이 너무도 컸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졌잘싸' 소리를 들을만한 명 경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