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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농구가 2000년대 초부터 발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전에도 농구를 하긴 했겠죠. ^^
때는 1986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당시 홈 경기였고
필리핀 귀화 선수 출전 불가로 인해
금메달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습니다.
( 중국은 세대 교체 )
( 예전 글에서 귀화 선수 2명 뛴 필리핀에 진
허재 - 김현준 - 이충희 이야기를 했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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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귀화 선수 출전 불가 >
이때만 해도 홈경기라 그런지
농구협회가 일을 했네요.
< 86 아시안게임 대표팀 >
감독 : 김인건, 코치 : 정광석
이충희, 이원우, 이문규, 김성욱 ( 현대 )
김현준, 박인규, 임정명 ( 삼성 )
허재, 김유택, 한기범 ( 기아 )
고명화 ( 상무 )
이민현 ( 기업은행 )
기대를 갖고 아시안게임을 시작했지만
첫 경기부터 고전을 합니다.
첫 경기가 요르단 전이었는데
12점차까지 지다가
98 : 94 로 간신히 승리함
< 이충희 33점, 김현준 27점 >
< 이충희 >
< 판정에 불만이었던 요르단 감독 >
< 김유택 vs Murad Barakat >
< 요르단 레전드 >
당시 요르단에는
Murad Barakat 이라는 레전드가 있었죠.
86 아시안게임 득점 1위
2011 ABC 준우승 당시 코치 ( 왼쪽 )
당시 요르단의 그리스 인 외국인 감독을
부러워했던 방열
농구 원로 방열 씨,
한국도 외국인 감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 일본 전 106 : 81 >
이충희 31점, 김현준 26점
< 필리핀 전 103 : 102 >
필리핀 전 간신히 승리하고
중국과의 결승전
뭔가 부산 아시안게임 데자뷰?
그러나 오히려 부산과는 정반대의 결과
전반전 허재 부상 당하고
38 : 45 로 지지만
후반전 오히려 종료 6분전까지
68 : 58 리드
이때 등장하는 중국의 비밀 병기 장용준
1986년 농구 월드컵 미국 전에서 28득점
< Zhang Yongjun ( 62 SG 188cm ) >
교체 투입 후 3점 4개 연속 성공
그렇게 홈에서 어이없는 역전패
87 ABC 때도 아쉽게 우승을 놓치면서
https://m.cafe.daum.net/ilovenba/1p8S/108431?svc=cafeapp
허재 - 김현준 - 이충희 라는
역대 최고의 트리오는
결국 우승 경험을 하지 못합니다.
( 이충희는 82 아시안게임 금메달 )
< 86 아시안게임 최종 성적 >
86 아시안게임 은메달이
더 아쉬운 이유는
금메달 땄으면 종합 성적 1위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Doctor J 작성시간 24.06.07 LaDivina 그것까지는 확실히 기억을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랬었다면 기억을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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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LaDivina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6.07 Doctor J 그렇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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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Doctor J 작성시간 24.06.07 LaDivina 이 결승전 패배가 너무 안타까운 게, 허재가 국가대표로서 중국을 3번 꺾었는데, ABC나 아시안게임 결승에선 한 번도 못꺾었다는 것이죠. 이 86 아시안게임 결승이 최적기였는데... 그 부분이 아쉬웠고요.
그리고 이 경기에서 이겼으면, 한국이 중국을 누르고 아시안 게임 종합 1위도 차지하는 거였죠. 정말 통한의 패배였습니다. -
작성자OUTKAST 작성시간 24.06.08 방열씨도 저 당시엔 되게 진보적인 느낌이 드네요 ㅎㅎㅎ 역시 사람이 나이 먹으면서 변하는건 어쩔수 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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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Doctor J 작성시간 24.06.08 굉장히 진보적이었습니다. NBA를 자주 보고 연구하고 공부한 한국농구의 선각자 두 사람이 바로 김영기, 방열이었습니다. 그런데 둘 다 나이를 먹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