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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농구 게시판

이충희감독에 대한 회상...

작성자조던손가락|작성시간03.10.14|조회수719 목록 댓글 13
1990년도 쯤이었나??...당시 저는 선동열과 김성한등이 스타로 군림하던 야구의 광팬이었습니다(전 해태팬...)...당시 만 8살...ㅡ.ㅡ;;;어느날 저는 아버지께서 열심히 티비시청을 하고있는 장면을 목격합니다...호기심에 아버지 옆에 앉아 같이 봤드랬죠...(아버지께서는 현대팬이셨습니다...)그런데 유독 한 선수가 말 그대로 날아다니는 것이었습니다...그때 그 선수가 3점라인에서 슛을할때 상대선수의 반칙으로 넘어지면서 던진슛이 들어가며 카운트까지 얻어내는 모습이 저의 눈을 사로잡게 됩니다...전 그래서 아버지께 물었죠..."아빠!!저 선수 누구에요??"...아버지 왈 "이충희 아이가!!자가 울나라에서 젤 잘한다"(경상도 분이십니다...ㅡ.ㅡ)그뒤로 저는 이충희에게 매료되어 소속팀이던 현대전자의 경기를 빠짐없이 봤었습니다..,당시 이충희 선수는 아시아 최고 슈터로서 70년대 농구강국인 중국...도 아닌...필리핀에게 아시안게임때 한국이 승리를거두고 우승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신동파씨의 계보를 잊는 최고의 선수였습니다...여기서 이충희선수(선수라고 하겠습니다...)의 실업팀 입단 에피소드를 잠깐 얘기하자면 당시 80년초반 농구계의 양대산맥인 현대전자와 삼성전자가 그를 입단 시키기위해 엄청난 경쟁을 벌였습니다...삼성은 백지수표까지 제시했지만 이충희는 3억2천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현대에 입단하죠...(여기서...83년인가 당시 야구의 최동원선수가 8000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것이 센세이션이었을정도...그리고 선동렬선수가 84년입단할때는 1억4천만원인가 받았던걸로 압니다...이충희선수의 입단년도는 82년입니다...)

그는 한국 농구계의 황제로 불리며 농구대잔치 사상 최초 4000점 돌파 한 경기 최다 득점 인 64점등의 위업을 이루며 전성기를 맞이합니다...하지만...그에게도 시련은 있었으니 바로 당시 대학농구 최강이던 중앙대선수들을 대거 흡수한 기아의 창단이후로 그는 점점 쇠퇴해갑니다...당시 기아는 현대를 무조건 10점이상으로 스윕시키며 전성기를 구가하죠...이충희는 당시 기아의 정덕화(지금 SBS감독이죠)라는 전담마크맨에게 막혀 경기당 10점이하로 묶이고(그때는 정덕화씨가 왜 그렇게 싫던지...) 부상까지 찾아와 말년에 은퇴를 하고 대만으로 진출하게 됩니다...전자슈터 고 김현준을 2인자로 머물게한 그였습니다...제게 농구라는걸 처음 알게해준 이충희감독..
지금의 조던보다 그때 저에게는 더 위대해 보였던 그였습니다...감히 말할수 있는건 다른건 몰라도 슛하나만큼은 허재나 조던보다 떨어지지 않던 그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하루에 1000개이상의 슈팅연습과 엄청난 훈련으로 그는 그렇게 최고의 선수가 될수있었습니다...물론 당시 슈터위주의 한국농구가 지금의 국내농구 수준을 퇴보시켰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으나 그는 농구천재는 아니였을지 몰라도 슛의 천재라고 저는 감히 말합니다...80년대 아시아 농구계에서 가장 무서운 선수는 바로 그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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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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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ROBY | 작성시간 03.10.15 재밌군요.선동열이 트리플리그수준이라...메이저리그의 스카우터들이 탐내던 선동열을 모르시나...-_- 30대중후반의 나이에도 지금의 보스턴에서 스카웃 제의를 했었슴다.
  • 작성자Timmy the Best | 작성시간 03.10.16 다른건 다 제쳐 놓고, 선동열이 트리플리그 수준이란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얘기군요...
  • 작성자김주성화이팅~ | 작성시간 03.10.18 선동렬 대학시절에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시키고 그대회에서 최고구속157Km를 뽑냅니다...저번 시드니 올림픽에 일본대표였던 마쓰자카 기억하시죠? 미국과의 개막전에서 10이닝2실점인가 했던.. 이선수평가가 MLB 10승이상이었는데 선동렬 선수는 그당시 마쓰자카를 훨씬 넘는 잠재력과 임팩트를 지녔었습니다
  • 작성자김주성화이팅~ | 작성시간 03.10.18 또 박철순 선수가 더블A에 있었던건 사실이지만.. 거기까지밖에 못간게 아니고 거기까지 간 상황에서 빅리그에서 큰 성공은 거두기 힘들겠다 싶어 귀국한거지 더블A가 한계가 아녔거든요?인용은 정확하게 해주시길..
  • 작성자김주성화이팅~ | 작성시간 03.10.18 한마디만 더하자면 그때의 한국야구 수준은 지금의 수준과 비교도 안되었습니다. 불혹을 넘겼던 백인천 감독(물론 일본에서 잘했었지만- 당겨치기의 귀재였다고 하죠)이 타격왕 먹을 정도로 투수도 약하고 타자도 약하던 시절이었죠 83년에 일본서 전성기를 지난 장명부가 30승을 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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