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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jongheuk 작성시간12.11.20 독립 후 첫번째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의 약 70% 가 일제치하에서 이장 이상의 직급을 받아 왔던 공무원들이었습니다. 독립운동을 해외에서 벌여온 인원은 극소수였고, 새롭게 탄생한 국가에서 필요로 했던 말단 공무원직부터 선출직 국회의원등 다양한 계층의 공무원들을 모두 상해 임시정부나 독립군 출신으로 충당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과연 일제 치하 당시를 살아가던 한국인 개개인이 임시정부나 독립군에 대한 인식을 얼마나 가지고 있었는지도 의문이고, 바로 옆에 있던 이웃이 "먹고 살기 위해" 일제 치하에서 이장직을 수행했다고 해서 이들을 친일파로 몰아 처벌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
답댓글 작성자 jongheuk 작성시간12.11.20 북한의 경우 강경한 사회주의 노선이 스탈린 정권을 등에 업고 강력한 권력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친일파에 대한 숙청이 용이했습니다. 인력의 수급 역시 새로운 사상 교육을 통해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었을 겁니다. 반면 남한은 위로부터는 권력 투쟁을, 아래로부터는 인력 수급에 대한 어려움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이상이 식민지 근대화론 사학자들과 민족주의 사학자들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딜레마와도 같은 부분입니다. 위의 자료는 군대 조직표만 나와 있지만 실제 독립 직후 정부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어느 한 집단이 독점하고 있다기 보다는 "일단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무조건 쓰자" 라는 절박함이 느껴집니다. -
작성자 ms♪ 작성시간12.11.20 어제 똑같은 글이 올라왔었는데 어제랑은 반응이 완전 다르군요.
하다못해 저 당시에 중국에서 활동하던 광복군은 이승만/남한 미군정이 인정을 안해줘서 개인 자격으로 귀국을 해야했습니다.
지청천, 이범석, 의열단을 이끌었던 김원봉 같은 사람들 말이죠.
이런 분들이 고작 일본군 영관, 위관급에도 못미치는 인물들인가요?
김원봉같은 사람들은 이승만과 그 일당들에 너무 실망한 나머지 김구, 김규식의 평양방문때 돌아오지 않고 북한에 남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친일파 척결이라는 가면을 벗은 김일성 집단이 나중에 독립군들을 연안파라 해서 숙청해버리죠..)
어쨌든 쓸만한 인사가 없어서 저런 자식들을 기용했다는건 말이 안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