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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의 일생

작성자세펠| 작성시간15.07.29| 조회수4325| 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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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ShowTime 작성시간15.07.29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합니다 와서 국회의사당 다 박살내주세요!
  • 작성자 fromnowon 작성시간15.07.29 사족이지만 명나라 지도가 참 거슬리네요. 조선왕조실톡에서도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삼킨 것처럼 나오던데...
  • 작성자 ▶◀Justice 작성시간15.07.29 방법론적인 부분에 있어서 동의할 순 없지만 전 훌륭한 왕이라고 봅니다.
    종종 태종과 세조가 비교가 많이 되는데, 사실 세조는 재능은 할아버지 태종이 비할 수 있을지언정 그릇의 크기가 차원이 다르다고 봅니다.
    둘다 왕권국가에서 권력을 위한 냉혹한 모습들이 보이긴 하는데,
    태종의 경우에는 적어도 비정함에 철학이 있었다고 봅니다.
    정도전이 이상으로 삼는 재상중심의 정치체제는 이방원의 가치관에는 틀린 방향이었고, 이방원은 자신의 정치철학에 따라 그를 관철시키기 위한 권력투쟁을 했던것이죠.
    즉 이방원과 정도전은 정적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만,
    세조와 단종(문종)의 관계는 군신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 답댓글 작성자 ▶◀Justice 작성시간15.07.29 즉 이건 명실상부한 쿠데타라고 봐야하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정치철학의 이데올로기 싸움같은 건 보이지가 않아요.
    그냥 순수한 권력욕을 향한 정치암투였던 셈이죠. 그 과정에서 조선 정치는 훈구파/공신세력들을 대거 양성하고 이게 조선정치 후퇴의 단초가 되었다고 봅니다.
    차라리 세조치세 당시에는 세조자체가 태종에 비할만큼 카리스마가 넘치고 유능한 왕이었고, 또한 세종치세의 흐름이 어느정도 남아있을시기인데다가
    세종과 비견할만한 도학군주였던 성종이 후대를 이어주면서 큰 문제가 당장은 없었지만 말이죠.
  • 답댓글 작성자 ▶◀Justice 작성시간15.07.29 어쨌든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한 왕권중심의 정치체계를 꿈꿔왔던 태종으로서는, 특히나 건국초기에 왕권강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태조이성계는 건국왕으로서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가였으나, 정도전이라는 정치적 대리인이 정적인 태종에게 꺾이는 순간 헤게모니가 태종에게 이미 넘어갔고,
    태조의 재위기간이 6년정도라는 점을 감안해본다면 사실상 태종은 건국왕으로서의 왕권강화라는 역할까지 같이 떠맡게 된 셈입니다.
    그런면에서 오히려 태종은 명 영락제보다는 오히려 홍무제에 더 가까운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작성자 PELICANS 작성시간15.07.29 어느 시대나 이런 왕들은 있죠..고려 광종, 같은 이름의 당 태종, 명 성조요..
  • 작성자 곰성애자 작성시간15.07.29 광해군이 왕위계승할때 숙청한거는 태종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네요

    개인적으로 조선왕들중 훌륭한 왕들 4명을 꼽는데

    순위대로

    정조 - 태종 - 세종 - 광해군

    전 이런 순위로 꼽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천윤 작성시간15.07.29 광해군은 빠져야 합니다. 분조 활동과 중립 외교는 칭찬할 만하지만 나머지는 별로였죠. 대동법에 대해서도 대중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폐지하려 하기도 했었구요. 수많은 옥사, 그리고 무리한 궁궐 공사로 백성들을 피폐하게 했습니다. 인조가 반정으로 왕 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것 중의 하나가 백성들 세금 줄여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유교 국가에서 살제는 권력 싸움이라 쳐도 폐모는 최악의 한 수 였죠. 인재 관리도 잘 못해 반정 당시 자기 편도 소수에 불과했구요.
    재평가가 가장 시급한 왕이 바로 광해군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곰성애자 작성시간15.07.29 천윤 뭐 궁궐공사와 페모는 최악이었지만 조선왕들중 최초로 스스로 힘을 지키는,강한나라, 자주적인 국가로 만들려고 했고 실제로 가망이 없는건 아니었죠
    가장 큰적은 명,금 외부가 아니었고 오히려 명나라와 거래해서 돈버는 사람 그것과 연결된 정치하는 권력,사리사욕만 생각하는 내부사람들였죠

    5년만 왕을 더했어도 어떻게 될지 몰랐다고 봅니다.
    자기편이 소수인것도 광해에게 등을 돌린 신하들이 나라걱정보다는 본인 처사,권력에 더 신경을 써서 그랬다고 보기에 반정을 일으킨 그들이 그렇게 옳다고도 할수도 없죠
  • 답댓글 작성자 [Card*하경우*] 작성시간15.07.30 곰성애자 광해군은 정말 뻥튀기된거라 봐야죠.. 비교적 최근에 나온 오항녕 교수의 조선의힘이란 책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책의 광해군 파트를 보면 사료들로 적나라하게 광해군을 까내리는데 장난아닙니다. 조선 이후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수있습니다. 실제 최근 조선후기 젊은 연구자 중 광해군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 작성자 H.Grant 작성시간15.07.29 전 가끔씩 조선말의 왕이 고종이 아닌 이방원이었다면하는 생각도합니다
  • 작성자 카이루 작성시간15.07.29 정치 9단, 숙청의 전문가로써 철혈이나 냉혈한 이미지를 풍기기 쉽지만, 자식 바보라는 것도 의외성이죠.
    그렇게나 감싸고 아끼고 혼냈던 양녕대군(이라 쓰고 희대의 양아치라 읽지요)을 끝까지 지키려다 폐위시키는 과정 후에 결국은 세종에게 양위하면서 못난 아들이 잘난 아들에게 폐를 끼칠까봐 수틀리면 양녕을 죽여달라고까지 말했던 사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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