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공자를 신나게 씹고 뒤에 달린 댓글 보고 하나 느낀게 있습니다.
너무 위대하고 유명한 인물은 건드리면 안되겠다는 것이죠.
이유는 두가진인데 하나는 예상치 못한 논쟁이 벌어질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제 본전이 너무 빨리 드러납니다.^^;;
언제 귀차니즘으로 그만둘지 모르는 글이지만 그래도 너무 빨리 본전 나오면 좀 쪽팔리긴 하니까요.
그래서 왠만하면 많은 분들이 알만한 이야기는 피하고 이름이나 간단한 업적이나 들어봤음직 한 사람들이나 숨겨져 있는 사람들을 우선으로 할려구요.
오늘의 주인공은 조조와 유비입니다.
삼국지의 조조와 유비는 아니고 그보다 300년 전쯤의 두 라이벌들이죠.(제목을 저렇게 붙은건 괜히 관심을 끌고 싶은 고도의 술수^^;;;)
초한지의 싸움에서 승리를 하고 한나라를 세운 한고조 유방은 국가의 체제를 두고 고민을 하는데요, 하나는 주나라식의 봉건제이고 다른 하나는 진나라식의 군현제입니다.
둘다 장단점이 있는데 봉건제는 여러 인척들이 지방의 왕이 되서 황제가 위기시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지만 중앙이 지방 세력을 누르지 못할 경우 춘추전국시대같이 지방세력들에게 나라를 넘겨주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군현제는 명확한 구역에 의한 중앙집권적인 통치로 통치하기엔 편하지만 지방관들이 지방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서 장악력이 약한데다가 위기시에 목숨걸고 도와주지 않아서 진나라처럼 우수수 무너질 가능성이 있죠.
그래서 이 둘을 혼합한 체계가 나오는데 군국제입니다.
이는 군현제로 나라를 군현으로 일단 구획을 한 후 중앙에서 먼 지역은 왕의 인척들을 보내서 왕으로 세우고 나머지 지역은 직접 통치하는 것이죠.-번국이라고 합니다.
(대략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세력은 반반에서 지방정부가 조금 우세한 정도입니다.)
초기엔 한신, 진회, 경포, 팽월, 한왕 신, 노관 등 개국 공신들을 국왕으로 삼기도 했지만 저들을 모조리 숙청해버린 후(주역은 유방의 마누라 여태후입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잔인한 여자죠. 덕분에 사후 일가가 몰살당하는 화를 입기는 합니다.) 유방의 인척만을 왕으로 세우게 됩니다.
다만 유방 사후 여태후가 나라를 통치하면서 이 원칙은 깨집니다만(한 3명 정도의 여씨 성의 왕이 나옵니다.) 여태후 사후 여씨 일가가 몰락하면서 다시 원칙대로 가죠.
이때 여씨 일가가 몰락하는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이 제왕 유연으로 여태후 사후 15국 정도의 지방 정부가 모조리 여씨 일가를 공격하면서 유방이 처음에 구상한 위기시에 인척들이 나라를 지킨다는 생각을 확인시켜주죠.
근데 여씨 일가를 몰락시킨후 황제가 된 명군으로 알려진 문제가 죽은 후에 약간 문제가 골치아파집니다.
문제와 그를 이은 경제는 꽤나 명군들로 나라의 힘을 엄청나게 키우는데요, 특히나 중앙정부의 힘이 엄청나게 커집니다.
물론 지방정부도 커지지만 중앙정부와의 폭이 생기기 시작하죠.
여기서 그쳤으면 좋았을 것을 힘이 강해진 중앙정부는 지방 정부들, 즉 번국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택합니다.
처음 시도한 것은 문제때지만 이때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고 문제가 그리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어서 실패하고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터지는게 그의 아들 경제때죠.
중앙정부로선 간접지배를 하는 번국들이 귀찮아지기 시작한데다가 또한 혈연이 멀어지면서(국가 세운지 50년 가량 지나면서 조금 먼 친척들이 되죠.) 서로 거리감이 생기는 데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하죠.
이런 경제의 정책에 등용된 사람이 조조입니다.
조조는 냉철한 사람으로 지방정부의 약점을 찾아서 그들의 일부 군현들을 중앙정부에 병합하면서 그들의 약화를 꽤하죠.
초왕은 주색을 한다는 이유로 땅을 빼앗겼고 조왕 역시 비슷한 이유로 땅을 잃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노린게 오왕 유비입니다.^^;;;
오왕 유비는 당시 번국의 국왕중 최고령자로 경제의 아버지 문제와 사촌간입니다.
오왕이 걸린 문제는 문제 시절 오태자와 경제가 서로 바둑을 두다가 시비가 붙어서 경제가 던진 바둑판에 오태자가 죽은 사건이 있었다는 거죠.
아들을 잃은 오왕은 이에 열받아서 장안에 인사하러도 안가고 문제도 자기 아들이 잘못이라서 이를 인정해줍니다.
경제 즉위시 이미 20년이나 황제에게 인사하러 안 갔으니 이게 트집이 잡힌 거죠.(원래 1년에 한번은 꼭 가야한다고 하네요.)
안그래도 다른 제후왕들이 최고령자인 오왕에게 우리가 살려면 어떤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냐고 말이 나오는 판에 조조의 주장에 따라서 오왕에게 땅의 몰수 명령이 떨어집니다.
특히 중앙에서 몰수하려는 땅은 구리 광산이 있는 예장군과 소금 생산지인 회계군으로 오나라의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곳이라서 오나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였죠. 그래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때 같이 반란을 일으킨 국가는 이렇습니다.
오, 초, 교동, 교서, 치천, 제남, 조.(7국이라서 오초 7국의 난이라고 하죠.)
그리고 처음에 가담하려다가 중간에 포기한 국가가 제, 제북.
그리고 아예 처음부터 즐~하고 나선 나라가 양, 대, 연, 성양, 형산, 회남, 여강.
여기서 조조의 약점이 드러나죠.
조조는 뛰어난 능력과 자신감을 가진 젊은 정론가이자 관리였지만 뛰어난 정치가는 아니었던 것이죠.
조조가 추진한 제후왕의 세력 약화는 반발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이런일을 예상 못한 것은 너무 자신감에 넘친 나머지 나온 실책입니다.
게다가 조조는 원앙이란 사람과 철천지 원수지간인데요,(조조가 권력으로 사이나쁜 원앙을 죄인으로 만들어버릴 정도입니다.) 웃긴건 둘의 주장은 거의 비슷합니다.
즉 잘만 사궜으면 동지가 될 사람을 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니 그의 정치적인 능력이 부족함이 드러납니다.(결국 이 약점으로 조조가 몰락합니다.)
아무리 오초7국이 반란을 일으켰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본가를 치는 셈이니 대의명분이 없으면 사람들이 따르지 않겠죠?
그래서 나온 명분이 황제 주위에 있는 간신(=조조)를 제거한다는 명분을 들고 나오죠.
이때 원앙은 반란을 멈추게 할 계책이 있다고 경제에게 말하는데 조조를 죽이면 된다는 간단한 계책이죠.
결국 경제는 아끼고 신뢰하는 신하지만 반란을 멈추거나 명분을 없애기 위해서 조조를 처형합니다.(허무하다 조조)
하지만 오왕 유비를 필두로 한 반란군은 당연하게도 멈추지 않고 진격합니다.(반란 일으킨 놈이 저정도로 멈추면 안되죠.)
당시 반군측의 경제력은 구리와 소금으로 부강한 오나라 덕분에 괜찮은 편이지만 군사력이 엄청나게 부족한 상태입니다.
(대표적으로 유비는 14세 이상 62세 이하의 모든 남자들을 동원하는데 20만명 뿐입니다.ㅡㅡ;;;)
그래서 조왕은 흉노에게 원군 요청을, 그리고 오왕은 외번인 동월과 민월에게 원군을 요청하고 동월은 군사를 보내줍니다.
(참고로 장사, 동월, 민월의 3국은 외번이라고 불리는데요, 말이 제후국이지 실제론 한나라 외부의 독립국입니다. 그냥 한나라를 받들면 인정해준다 해준 지방정권이죠. 이들은 다음 황제인 무제때 병합됩니다.)
현재 상황만 따지면 나라의 위기를 막으라고 해놓은 군국제가 오히려 반란을 잃으켰으니 실패다 할 수 있지만(15국중 반이 반란을 일으켰으니) 의외로 제대로 기능합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양나라입니다.
오초 연합군이(이게 반군의 주력입니다.) 처들어 간 곳은 장안을 칠때 후방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은 양나라인데요, 양왕은 경제의 막내동생으로 애초부터 반란 가능성이 없어서 모의에도 포함 안시킨 왕으로 오초군에게 결사적으로 버팁니다.
양군은 비록 오초군에게 패배합니다만 수도는 끝끝내 지켜내면서 오초군이 어쩔수 없이 놔두고 진격하게 만들죠.
교동, 교서, 치천왕은 반란에 거의 동참할 뻔 하다가 배신 때린 제왕을 공격합니다만 제왕 역시 3:1싸움에서도 결사적으로 막아내면서 이 3나라의 서진을 최대한 방어해냅니다.
이렇게 시간을 끌다보니 중앙에선 군사를 끌어모을 시간을 갖게 되고 건국 공신 주발의 아들 주아부가 중앙군을 밀고와서 오초군의 배후를 끊어버리고 이들의 보급품이 떨어질때까지 수비만 하고 지켜버립니다.
결국 오초군은 포위를 풀고 퇴각하다가 반격을 받아 패배하고 초왕은 자살하고 오왕은 달아나죠.
이 싸움으로 반란의 형세가 크게 뒤바뀌며 이 패배 소식을 들은 제왕을 치던 3왕은 제국 수도 임치의 포위를 풀고 퇴각하다가 다 자살하고 말죠.
유일하게 남은 조왕은 수도 한단에서 저항하다가 바로 자살하구요.
도망친 오왕 유비는 동월로 갔지만 배신당해 죽임을 당하고 시체는 경제에게 보내저 효수됩니다.
결국 제후왕의 힘을 줄이자는 조조의 계획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죽은 후 반란이 실패하면서 각 국가가 몰락하면서 이루어집니다.
결국 이 두명의 라이벌의 대결은 죽어서는 조조의 승리로 마무리 짓게 되죠.
이 반란으로 중앙 집권이 강화되면서 바로 다음 국왕인 무제때 강화된 국력과 권력을 이용해 한나라는 국가 역사상 최전성기를 맞습니다.
너무 위대하고 유명한 인물은 건드리면 안되겠다는 것이죠.
이유는 두가진인데 하나는 예상치 못한 논쟁이 벌어질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제 본전이 너무 빨리 드러납니다.^^;;
언제 귀차니즘으로 그만둘지 모르는 글이지만 그래도 너무 빨리 본전 나오면 좀 쪽팔리긴 하니까요.
그래서 왠만하면 많은 분들이 알만한 이야기는 피하고 이름이나 간단한 업적이나 들어봤음직 한 사람들이나 숨겨져 있는 사람들을 우선으로 할려구요.
오늘의 주인공은 조조와 유비입니다.
삼국지의 조조와 유비는 아니고 그보다 300년 전쯤의 두 라이벌들이죠.(제목을 저렇게 붙은건 괜히 관심을 끌고 싶은 고도의 술수^^;;;)
초한지의 싸움에서 승리를 하고 한나라를 세운 한고조 유방은 국가의 체제를 두고 고민을 하는데요, 하나는 주나라식의 봉건제이고 다른 하나는 진나라식의 군현제입니다.
둘다 장단점이 있는데 봉건제는 여러 인척들이 지방의 왕이 되서 황제가 위기시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지만 중앙이 지방 세력을 누르지 못할 경우 춘추전국시대같이 지방세력들에게 나라를 넘겨주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군현제는 명확한 구역에 의한 중앙집권적인 통치로 통치하기엔 편하지만 지방관들이 지방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서 장악력이 약한데다가 위기시에 목숨걸고 도와주지 않아서 진나라처럼 우수수 무너질 가능성이 있죠.
그래서 이 둘을 혼합한 체계가 나오는데 군국제입니다.
이는 군현제로 나라를 군현으로 일단 구획을 한 후 중앙에서 먼 지역은 왕의 인척들을 보내서 왕으로 세우고 나머지 지역은 직접 통치하는 것이죠.-번국이라고 합니다.
(대략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세력은 반반에서 지방정부가 조금 우세한 정도입니다.)
초기엔 한신, 진회, 경포, 팽월, 한왕 신, 노관 등 개국 공신들을 국왕으로 삼기도 했지만 저들을 모조리 숙청해버린 후(주역은 유방의 마누라 여태후입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잔인한 여자죠. 덕분에 사후 일가가 몰살당하는 화를 입기는 합니다.) 유방의 인척만을 왕으로 세우게 됩니다.
다만 유방 사후 여태후가 나라를 통치하면서 이 원칙은 깨집니다만(한 3명 정도의 여씨 성의 왕이 나옵니다.) 여태후 사후 여씨 일가가 몰락하면서 다시 원칙대로 가죠.
이때 여씨 일가가 몰락하는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이 제왕 유연으로 여태후 사후 15국 정도의 지방 정부가 모조리 여씨 일가를 공격하면서 유방이 처음에 구상한 위기시에 인척들이 나라를 지킨다는 생각을 확인시켜주죠.
근데 여씨 일가를 몰락시킨후 황제가 된 명군으로 알려진 문제가 죽은 후에 약간 문제가 골치아파집니다.
문제와 그를 이은 경제는 꽤나 명군들로 나라의 힘을 엄청나게 키우는데요, 특히나 중앙정부의 힘이 엄청나게 커집니다.
물론 지방정부도 커지지만 중앙정부와의 폭이 생기기 시작하죠.
여기서 그쳤으면 좋았을 것을 힘이 강해진 중앙정부는 지방 정부들, 즉 번국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택합니다.
처음 시도한 것은 문제때지만 이때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고 문제가 그리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어서 실패하고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터지는게 그의 아들 경제때죠.
중앙정부로선 간접지배를 하는 번국들이 귀찮아지기 시작한데다가 또한 혈연이 멀어지면서(국가 세운지 50년 가량 지나면서 조금 먼 친척들이 되죠.) 서로 거리감이 생기는 데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하죠.
이런 경제의 정책에 등용된 사람이 조조입니다.
조조는 냉철한 사람으로 지방정부의 약점을 찾아서 그들의 일부 군현들을 중앙정부에 병합하면서 그들의 약화를 꽤하죠.
초왕은 주색을 한다는 이유로 땅을 빼앗겼고 조왕 역시 비슷한 이유로 땅을 잃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노린게 오왕 유비입니다.^^;;;
오왕 유비는 당시 번국의 국왕중 최고령자로 경제의 아버지 문제와 사촌간입니다.
오왕이 걸린 문제는 문제 시절 오태자와 경제가 서로 바둑을 두다가 시비가 붙어서 경제가 던진 바둑판에 오태자가 죽은 사건이 있었다는 거죠.
아들을 잃은 오왕은 이에 열받아서 장안에 인사하러도 안가고 문제도 자기 아들이 잘못이라서 이를 인정해줍니다.
경제 즉위시 이미 20년이나 황제에게 인사하러 안 갔으니 이게 트집이 잡힌 거죠.(원래 1년에 한번은 꼭 가야한다고 하네요.)
안그래도 다른 제후왕들이 최고령자인 오왕에게 우리가 살려면 어떤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냐고 말이 나오는 판에 조조의 주장에 따라서 오왕에게 땅의 몰수 명령이 떨어집니다.
특히 중앙에서 몰수하려는 땅은 구리 광산이 있는 예장군과 소금 생산지인 회계군으로 오나라의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곳이라서 오나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였죠. 그래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때 같이 반란을 일으킨 국가는 이렇습니다.
오, 초, 교동, 교서, 치천, 제남, 조.(7국이라서 오초 7국의 난이라고 하죠.)
그리고 처음에 가담하려다가 중간에 포기한 국가가 제, 제북.
그리고 아예 처음부터 즐~하고 나선 나라가 양, 대, 연, 성양, 형산, 회남, 여강.
여기서 조조의 약점이 드러나죠.
조조는 뛰어난 능력과 자신감을 가진 젊은 정론가이자 관리였지만 뛰어난 정치가는 아니었던 것이죠.
조조가 추진한 제후왕의 세력 약화는 반발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이런일을 예상 못한 것은 너무 자신감에 넘친 나머지 나온 실책입니다.
게다가 조조는 원앙이란 사람과 철천지 원수지간인데요,(조조가 권력으로 사이나쁜 원앙을 죄인으로 만들어버릴 정도입니다.) 웃긴건 둘의 주장은 거의 비슷합니다.
즉 잘만 사궜으면 동지가 될 사람을 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니 그의 정치적인 능력이 부족함이 드러납니다.(결국 이 약점으로 조조가 몰락합니다.)
아무리 오초7국이 반란을 일으켰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본가를 치는 셈이니 대의명분이 없으면 사람들이 따르지 않겠죠?
그래서 나온 명분이 황제 주위에 있는 간신(=조조)를 제거한다는 명분을 들고 나오죠.
이때 원앙은 반란을 멈추게 할 계책이 있다고 경제에게 말하는데 조조를 죽이면 된다는 간단한 계책이죠.
결국 경제는 아끼고 신뢰하는 신하지만 반란을 멈추거나 명분을 없애기 위해서 조조를 처형합니다.(허무하다 조조)
하지만 오왕 유비를 필두로 한 반란군은 당연하게도 멈추지 않고 진격합니다.(반란 일으킨 놈이 저정도로 멈추면 안되죠.)
당시 반군측의 경제력은 구리와 소금으로 부강한 오나라 덕분에 괜찮은 편이지만 군사력이 엄청나게 부족한 상태입니다.
(대표적으로 유비는 14세 이상 62세 이하의 모든 남자들을 동원하는데 20만명 뿐입니다.ㅡㅡ;;;)
그래서 조왕은 흉노에게 원군 요청을, 그리고 오왕은 외번인 동월과 민월에게 원군을 요청하고 동월은 군사를 보내줍니다.
(참고로 장사, 동월, 민월의 3국은 외번이라고 불리는데요, 말이 제후국이지 실제론 한나라 외부의 독립국입니다. 그냥 한나라를 받들면 인정해준다 해준 지방정권이죠. 이들은 다음 황제인 무제때 병합됩니다.)
현재 상황만 따지면 나라의 위기를 막으라고 해놓은 군국제가 오히려 반란을 잃으켰으니 실패다 할 수 있지만(15국중 반이 반란을 일으켰으니) 의외로 제대로 기능합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양나라입니다.
오초 연합군이(이게 반군의 주력입니다.) 처들어 간 곳은 장안을 칠때 후방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은 양나라인데요, 양왕은 경제의 막내동생으로 애초부터 반란 가능성이 없어서 모의에도 포함 안시킨 왕으로 오초군에게 결사적으로 버팁니다.
양군은 비록 오초군에게 패배합니다만 수도는 끝끝내 지켜내면서 오초군이 어쩔수 없이 놔두고 진격하게 만들죠.
교동, 교서, 치천왕은 반란에 거의 동참할 뻔 하다가 배신 때린 제왕을 공격합니다만 제왕 역시 3:1싸움에서도 결사적으로 막아내면서 이 3나라의 서진을 최대한 방어해냅니다.
이렇게 시간을 끌다보니 중앙에선 군사를 끌어모을 시간을 갖게 되고 건국 공신 주발의 아들 주아부가 중앙군을 밀고와서 오초군의 배후를 끊어버리고 이들의 보급품이 떨어질때까지 수비만 하고 지켜버립니다.
결국 오초군은 포위를 풀고 퇴각하다가 반격을 받아 패배하고 초왕은 자살하고 오왕은 달아나죠.
이 싸움으로 반란의 형세가 크게 뒤바뀌며 이 패배 소식을 들은 제왕을 치던 3왕은 제국 수도 임치의 포위를 풀고 퇴각하다가 다 자살하고 말죠.
유일하게 남은 조왕은 수도 한단에서 저항하다가 바로 자살하구요.
도망친 오왕 유비는 동월로 갔지만 배신당해 죽임을 당하고 시체는 경제에게 보내저 효수됩니다.
결국 제후왕의 힘을 줄이자는 조조의 계획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죽은 후 반란이 실패하면서 각 국가가 몰락하면서 이루어집니다.
결국 이 두명의 라이벌의 대결은 죽어서는 조조의 승리로 마무리 짓게 되죠.
이 반란으로 중앙 집권이 강화되면서 바로 다음 국왕인 무제때 강화된 국력과 권력을 이용해 한나라는 국가 역사상 최전성기를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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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리스트-
작성자뒤틀어eat 작성시간 05.11.28 삼국시대의 그 둘이 아니군요. 묘하네요 그전에도 라이벌이었던 동명이인이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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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타블로우 작성시간 05.11.28 글쎄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요. 조조는 경제의(아들이었나요?) 신하였고 유비는 오국의 왕이었는데요...라이벌이었을까요 과연!? ㅋㅋ 제목을 위해 라이벌이라는 뉘앙스가 참 좋았던 거 같기는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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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UPPER DECK 작성시간 05.11.28 언제나 실패한 반란군에는 미련이 남습니다. 오초칠국의 난 당시 대장군이 전 머시깽이였는데 유비는 의심이 많아 병권을 주고도 주춤주춤하죠. 어떻게 해도 결국엔 실패했겠지만.. 한무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최전성기와 동시에 1대도 못버티고 바로 쇠퇴기를 가져옴 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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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a.k.a jk 작성시간 05.11.28 사실 라이벌이라고 보긴 힘들지만 레드보이스 님이 글의 재미를 위해 잘 사용하신것 같네요. 결국 오초 7국의 난의 스타는 조착도 오왕 비도 아닌 주아부죠. 주아부도 끝이 좋진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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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Dirk Nowitzki[Deustland] 작성시간 05.11.29 오초 7국의 난이란 부제를 보고 바로 감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