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非스포츠 게시판

나는 군대에서 이것까지 해봤다... 경험담 모집합니다

작성자Game 7|작성시간24.06.26|조회수1,773 목록 댓글 136
명령 한마디로 이동가능한 군대식 움직이는 정자;;;

 

 

채상병 사건을 두고 국회에서 인상 찌푸려지는 일이 일어나고, 훈련병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을 두고도 열받는 일만 계속되는 요즘입니다

 

입대할 때는 대한의 아들, 다치거나 죽으면 느그 아들이라더니.. 군 당국이 스스로 그 말이 참이라는 걸 증명하고 앉았네요...

 

 

그러면서 제 군시절도 생각이 났습니다

 

각종 훈련과 주특기 병과 익히기, 경계 근무 등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건 군 본연의 임무이기도 하고, 내가 국토방위에 기여한다는 사명감으로 잘 견뎌냈던 것 같습니다

 

군 생활이 진짜 힘든 건 바로 말도 안되는 뻘짓들이 '상관의 지시'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하게 행해질 때죠 

 

 

그 중 하나가 각종 작업과 사역일텐데요. 춘추계 진지공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겨울 제설작업도 보급로 확보 등의 이유가 있으니 힘들지만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그 이외에 각종 작업들을 하고 있으면 '내가 지금 여기서 뭘하고 있는건가'라는 생각과 함께 자괴감이 하늘을 찌르고, 그러면서 부모님 보고 싶고 집에 가고 싶고 그랬습니다 ㅋㅋㅋ

 

이런 뻘짓은 훈련소 때부터 시작되었는데요. 전 논산훈련소 출신인데 입소대대에서 교육연대로 넘어가면 바로 교육을 시키지 않고 며칠동안 '동화기간'을 두면서 대기를 합니다

 

이 때 여기저기 차출되어서 잡다한 작업을 했습니다. 그 중 압권은 테니스장 평탄화 작업. 진지공사야 그렇다쳐도 테니스장 평탄화 작업은 군 본연의 임무와 1도 관계없는거죠. 훈련소 내 영관급 이상 높으신 양반들 테니스 치는 게 군 본연의 임무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저, 그리고 함께 차출된 훈련대기병들은 한 여름에 쪼그리고 앉아서 돌 골라내고(정말 작은 돌 하나까지도 다 골라냈습니다), 골라낸 뒤 걸기적거리는 거 없나 손바닥으로 쓸어보고 별의별짓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문제제기를 하지는 못했죠. 제가 20세기 군번이라(90년대 중후반;;), 그 당시만 해도 소원수리나 건의는 형식적이었고 제대로 얘기할 곳도 없었습니다. 요즘처럼 휴대폰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그나마 얘기한다고 해도 내부에서 다 잘라내고 오히려 내부고발자로 찍혀서 고된 생활을 해야 하는..

 

여기에 '대한의 아들로서 국방의 의무는 당연한거고, 상관의 명령은 곧 목숨과도 같으니 상관의 명령을 잘 따르는 게 군 생활 잘하는 길이자 곧 애국'이라는 가스라이팅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왜 해야하는지도 모르는 작업을 스트레스 받아가며 했습니다(아무생각없이 열심히 작업하는 훈련병은 A급, 그렇지 못하면 폐급 소리듣던 시절)

 

 

자대 와서도 이런 뻘짓은 계속되었습니다. 저희 부대 근처에 충혼탑이라고 해서 호국영령을 기리는 추모탑과 함께 조그만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는데요. 신년초나, 명절, 현충일, 국군의 날 등에 사단장이 이곳에 와서 헌화를 하고 추모 묵념을 할지도 모른다는겁니다(매년 때때마다 확실하게 오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올지도 모른다)

 

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사단장님이 부대 근처 충혼탑에 오실지 모르고, 그러면서 우리 부대에 들를지도 모르니 부대 환경미화와 대청소를 해야 한다는 명령이 수시로 떨어졌죠

 

부대 대청소야 그렇다 쳐도, 별의 별 뻘지시들이 이어졌습니다.

 

수송부 친구들은 구두약을 들고 나가서 차량 타이어에 구두약을 바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겨울철엔 짬 안되는 병사들은 빗자루들고 제설작업, 당시 짬이 되던 저와 몇몇 선임들에겐 아이젠이 지급되었습니다. 이 아이젠의 용도는 부대 뒷산(바위산)에 얼음이 얼어있는 모습이 흉하고, 사단장님이 이를 보시면 안되니 제빙작업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짬 좀 찬 고참들은 전투화에 아이젠 끼고 산악인 허영호씨로 빙의되어 절벽위의 얼음을 깨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놓아도 사단장이 온적도 없었고, 설령 온다고 해도 아무것도 없던 부대 뒷편까지 가서 그걸 일일이 체크할 확률도 극히 낮았습니다

 

누구를 위해 그 뻘짓을 했나 생각하면 지금도 어이가 없네요

 

 

뭐.. 군대 많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그런데 겉모습과 시설은 조금 더 좋아졌을지 몰라도 본질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씁쓸합니다...

 

여러분은 군 시절 어디까지 뻘짓을 해보셨나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Andrew Wiggins | 작성시간 24.06.27 1. 2002년 1월 군번인데
    논산 훈련소 입소날 눈이 엄청 많이 왔습니다. 앞이 안보일 정도로요
    근데 갑자기 교관이 훈련소에 있는 탱크를 경비해야 한다면서 저를 포함 4명을 착출 하더니
    판초우의 입히고 625때 사용했다던 전시용 탱크의 각 네 면에 한사람씩 세우고 탱크를 지켜보게 했습니다.
    첫날이라 군복도 없었고 사복 입은채로 태어나서 처음 입어보는 꿉꿉한 판초우의를 덮고, 손에 맞지도 않은 장갑과 귀도리를 쓰고
    눈 쌓이는 탱크를 1시간 정도 서서 지켜봤습니다.
    아 여기가 군대구나라고 바로 느꼈던 순간
    지금도 이해가 안갑니다. 그걸 왜 지키라고 했는지.
  • 답댓글 작성자Andrew Wiggins | 작성시간 24.06.27 2. 논산훈련소에서 교도소 지키는 경비교도대로 착출되었는데
    별별 일들이 다 있었습니다
    2003년에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랑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교도소는 1급시설이라 경비를 강화해야 한다고 위에서 공문이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아마 기억하기로는 911사건 이후 이슬람 테러에 대한 위험이 커졌고,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고, 우리는 미국의 우방 국가이기 때문이다. 라는 식의 내용이었던 같습니다.

    그런데 교도소 직원들도 경비교도대 중대장 소대장들도 어떻게 경비를 강화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그 사람들도 처음 받는 공문이니까)
    경비대원들의 외곽 순찰 조를 늘리는 방안을 제시 했는데
    그와중에 경비대원인걸 표시가 나면 안된다면서 교도소 직원들 안 입는 옷과 운동화를 빌려 입고 교도소 주변을 뺑뺑 돌면서 거수자 발견 시 바로 보고하라는 업무를 받았는데
    20대 초반 남자가 40대~50대 아저씨 스타일의 점퍼와 바지와 운동화를 신고 모자를 눌러 쓰고 귀에 무전기 이어폰을 끼고 교도소를 뺑뺑 돌면 그게 거수자 아닌가 싶었습니다.
    교도소가 번화가 쪽에 있는터라 오히려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를 이상하게 보는...

  • 답댓글 작성자Game 7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28 Andrew Wiggins 진짜 뻘짓의 연속이네요. 이라크 전쟁이라고 경비강화를 지시허는 상부나 그걸 또 한답시고 머리 짜내서 뻘짓하는 부대나.. 참 비합리적입니다
  • 작성자리타이어 | 작성시간 24.06.27 본문에 정자를 옮기는 모습을 보니 생각나는군요.

    훈련교장 근처에 조교들 식사공간 겸 대기실이 있어야한다고 지시가 내려와
    15명 정도가 식사를 할 수 있는 목재 가건물을 지었습니다. 물론 저희들이 직접 지었죠.
    가건물을 지은 곳이 훈련교장 근처 공터였는데 몇달이 지나, 거기가 민간인의 땅이라는 항의가 들어왔습니다.

    항의가 들어오니 위에서는 그 건물을 옮기라는 황당한 지시를 내리더군요.
    말도 안 되는 지시라고 생각했는데 되더군요.

    건물을 지지하기 위해 건물 밑에 1~2미터 가량 철근 및 지지대가 있었는데
    건물 밑을 다 파고, 옮길 곳도 땅을 파둔 후에
    묻혀있는 지지대부터 건물 전체를 줄로 묶고 부대 인원 100여명이 올리고 댕기고 하면서
    20미터 가량을 옮겨서 건물을 다시 새로 판 구덩이로 옮겨서 박았습니다.

    정자 정도 옮기는 뻘짓 정도야 뭐.
  • 답댓글 작성자Game 7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28 인력으로 움직이는 건물 ㄷㄷㄷ.. 진짜 웃프네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