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한놈이 자기가 싫어하는 이슈에 관련된 개쌍욕 댓글들을 계속 퍼오면서, 봐라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나쁘다고 한다, 라는 이야기를 자꾸 단톡방에 올립니다. 전 관심이 크게 없는 주제이고, 별 내용도 없는 쌍욕 + 패드립 댓글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어서 그냥 씹고 있는데.. 사실 보기 싫습니다. 왜 혼자만 관심 있는 주제의 글을 계속 올리는지도 잘 모르겠고, 굳이 남이 싸지른 오물의 찌꺼기를 줏어와서 다시 우리한테 뿌리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놈은 이 주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무위키 레벨의 지식은 있을까. 나아가 이 댓글 작성자들은 그 주제에 대해서 얼마나 알까, 정말 관심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댓글 작성자들을 하나하나 추적해서 인터뷰 딸것도 아닌데, 사실 여부는 제가 알수는 없습니다. 다만, 아마도 대부분은 깊게 알지도 못하고 알 생각도 없고 또 다음날 다른 이슈가 나오면 달려가서 거기에 개쌍욕 박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저는 베테랑 2가 제법 흥미로웠습니다.
영화에서 캐릭터, 그리고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서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저 같은 장삼이사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당장 대성공을 거뒀던 베테랑1에서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캐릭터는 서도철이 아니라 조태오였죠. 또 범죄도시 시리즈를 보더라도 빌런이 존재감을 가진 1,2편이 평이 제일 낫다는 점도 주목해볼만합니다. 그런데 베테랑2에서는 메인 빌런인 해치(정해인)의 서사를 싹 덜어내버렸죠. 류승완 정도 되는 감독이 캐릭터의 중요성을 몰라서 그렇게 찍었다는건 말도 안되는 소리니깐 그 쪽은 생각하지 맙시다.
그럼 왜 그랬을까요. 그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전 베테랑2에서 해치가 어떤 특정 캐릭터가 아니라, 감독이 비판하는 현 세태의 문제점의 심볼 같은 느낌이였습니다. 조금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바로 "우리"를 캐릭터로 내세운게 해치이고, 그래서 해치를 캐릭터로 한정시킬 서사, 배경 같은게 모두 생략된것 같습니다.
우리는 왜 진상판별에 그렇게나 진심입니까, 사실관계도 잘 모르면서 참교육에 왜 열광합니까, 관심도 없던 방송인들의 언행에 왜 나락나락을 외칩니까. 그게 일종의 정의구현이라고 생각하니깐요. 해치는 우리가 그렇듯, 본인이 정의라고 믿는걸 행하고 있고 그 정의구현의, 그리고 참교육을 행하고 있다는 뽕에 취해 있을겁니다. 사실관계도 잘 모르지만, 남들이 다 욕하니깐 나쁜놈인거 같고, 실은 사실관계 같은건 크게 상관 없습니다. 본인의 분노를 투영할 대상이, 한걸음 더 나아가자면 알량한 정의감도 충족시킬 대상이 필요했던것에 불과합니다. 한발 더 나아가자면 해치가 범인을 잡을때 짓는 웃음이 그냥 단순하게 사이코패스-소시오패스 류의 설정일수도 있겠지만, 저는 정의구현의 즐거움 처럼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우리는 어제 감히 베테랑2를 빠는 단군을 씹어돌렸고, 오늘은 학교폭력 피해자 팔이하던 곽튜브를 나락 보냈습니다. 내일은 또 누군가의 사과문을 띄어쓰기 까지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부관참시 할꺼고요. 그저께는 교수를 죽일 만큼 증오했지만 어제는 전석우 뚝배기를 깨야 하고 오늘은 폭주족으로 볼링하던 해치 처럼요. 아, 폭주족 참교육은 딴 사람이라고요? 그 해치나 이 해치나 뭐 크게 다른가? 그 놈이 그 놈 같던데..
그 우리에는 서도철도 포함됩니다. 별 생각 없이 남자들은 치고받고 자라는거라고 이야기하고, 전석우를 몰래 때리기도 하고 죽이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는게 서도철입니다. 또 1편까지 되돌아가자면 "사람 때리고 싶어서 경찰이 되었다"라는 평도 있고, 자해까지 해가면서 정당방위 상황을 만든 다음 범인들을 말 그대로 때려잡는게 서도철입니다. 때문에 해치는 계속 서도철에게 "형사님을 보고 경찰이 되었다" "우리는 좋은 팀이 될 수 있다" 라고 말하는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인물이 맞죠.
그런데 그 서도철은 자신의 아이가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전석우를 죽인 해치를 잡아야하는 모순에 위치하게 되면서, 본인이 생각없이 한 언행들이 얼마나 잘못된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또, 서도철과 해치가 꽤 공통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서도철은 나름의 선은 있었고 그걸 넘진 않았거든요. 반면에 해치는 선을 넘어도 너무 심하게 넘은 케이스고요.
그러니깐 베테랑2는 같지만 다른 서도철과 해치의 대비를 통해서, 현 사회의 문제점을 짚고 있는 영화라고 봤습니다. 애초에 베테랑1, 범죄도시, 비질란테, 무도실무관 같은 사이다류의 재미를 추구한 영화라기 보다는, 반걸음 정도는 더 나아간 생각을 표현하고자 한 영화라고 볼 수 있겠죠. 근데 그걸 잘 풀었느냐 하는건 아예 다른 차원의 문제라서...ㅋ 저 또한 베테랑 2가 잘만들어진 영화라고 이야기 하는건 아닙니다.
전에도 몇번 이야기 한적이 있었는데, 영화 후기를 열심히 적고 있지만 저는 영화평론가들처럼 기술적으로 영화를 분석할 능력은 없습니다. 또 그렇다고 감독의 의도를 파헤치는(실제로는 짐작하는) 류의 해석도 좋아하지 않고요. 다만 저는 베테랑 2를 보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생각에 기대어 보니 베테랑2는 이렇게 보이더라.. 정도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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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theo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9.18 그냥 정해인을 비질란테 타입의 절대 악으로 규정해버리고 서도철이 때려잡는 베테랑 1 스타일의 캐릭터 구성이 추석 대박을 노리는 영화로선 훨씬 쉬운 방향일겁니다. 오히려 베테랑 2의 방향은 대중성을 어느정도 포기하더라도 작가주의를 더 살리겠다는 의도로 보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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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사랑의 3점슈터 작성시간 24.09.19 theo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더 안타깝네요. 이게 지금 뭐하자는 거지? 하는 생각이 내내 들었는데... 뭐 제가 입맛이 완전 변해버린 사람처럼 영화취향이 극단적이 된 건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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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theo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9.19 사랑의 3점슈터 그렇지는 않을껍니다. 저도 베테랑2는 잘 만든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ㅋ 의도가 아무리 좋으면 뭐해요, 그걸 풀어내는게 감독이 할일인데 거기에선 실패했다고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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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비하인드 작성시간 24.09.19 전 엄청 구렸습니다. 대충 주제의식은 알겠는데 그걸 풀어나가는 연출이나 대사나 서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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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베커밋 작성시간 24.09.19 요즘은 빌런이 매력있어야하는데 서사도 없고 이유도 없어서 뭐지 싶었네요 개똥철학이라도 있으면 했는데 걍 사이코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