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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고의 스윙맨-파디 엘 카티브

작성자소만|작성시간21.10.03|조회수1,891 목록 댓글 18

이전에 타사이트에 업로드했던 글인데 살짝 수정해서 올립니다.

기사를 짜깁기한 부분이 많고 글재주 딸리는점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엘 카티브가 누군데?"

 

 

농구에 관심이 있더라도 파디 엘 카티브란

 

이름은 다소 낯설 수 있다.

 

하지만 2000~2010년대 대한민국 국대경기를

 

봤다면 절대 잊지 못할 이름일 것이다.

 

198cm 100kg 다부진 몸에 1~3번을 두루 볼 수 있는

 

다재다능함을 갖춰 레바논의 허재, 아시아의 르브론 제임스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엘 카티브는

 

FIBA공홈에서 연재되는 아시아 레전드 시리즈에서도 

 

야오밍과 허재를 제치고 가장 먼저 소개될 정도로 위상이 높다.

 

 

 

"한국과의 악연의 시작"

 

 

한국과의 첫만남은 2001년 상하이.

 

당시 타도 중국밖에 모르던 대한민국은

 

서장훈 김주성 트윈타워에 주희정 조성원 김병철 추승균 방성윤 등 

 

신구조화를 갖춰 드림팀이라고 불리우며 농구월드컵 티켓은 당연하고

 

내심 중국을 넘어서길 기대했다.

 

하지만 4강전에서 레바논을 만나고

 

24점을 쏟아부은 젊은선수에게 무릎을 꿇게 된다.

 

세계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던 한국농구에 있어

 

듣보잡이었던 팀과의 경기에서 패배는 충격적이었다.

 

우승을 노리던 팀이 약체에게 패배했다는

 

정신나간 기사도 있었을 정도였다. 

 

이후 레바논은 결승전에서 야오밍 왕즈즈가 버티는 중국에게 패배하지만

 

엘 카티브는 이 대회에서 베스트5와 FIBA 농구월드컵 티켓을 얻게된다. 

 

월드컵에선 5전전패를 기록하지만

 

평균 17.6점을 올리며 대회득점 10위에 오르며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한번 더 월드컵."

 

 

2003년 그는 NBA진출을 시도하여 아시안컵을 불참하게 된다.

 

대다수의 아시아선수들이 테스트를 겸한 초청을 오퍼라고 포장하는 것에 비해

 

LA클리퍼스와 계약이 성사되기 직전까지 가지만

 

소속팀 구단주가 클리퍼스를 압박하여 계약은 파토나게 된다. 

 

그는 실망했지만 절치부심하여

 

도하대회에서 중국에 이은 2위의 성적으로 농구월드컵 티켓을 얻어낸다. 

 

레바논의 선전을 기대한 사람이 있었을까?

 

대회 직전 캐나다를 잡긴했지만 단지 연습경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와의 첫경기.

 

엘 카티브는 35점을 쏟아부으며 팀의 첫 승리를 이끌었다.

 

1승에 고무된 레바논은 토니파커가 부상으로 빠졌지만

 

보리스 디아우, 미카엘 피에투르스, 요한 페트로, 로니 튜리아프 등의

 

NBA라인업을 갖춘 강호 프랑스를 만난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카티브는

 

29점 4리바운드를 기록하여 74-73으로

 

기적적인 승리를 이끌어냈다. 

 

예선 종료 최종결과는 2승 3패 탈락.

 

하지만 중국과 같이 2승을 거둬 아시아의 경쟁력을 보여줬다.

 

 

 

"콩라인."

 

 

김승현 "야오밍 이후로 아시아에서 이렇게 잘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이동준 "희종이가 밀려서 내가 막아봤는데 그냥 날라갔다. 승진이도 밀리더라."

 

 

엘 카티브는 2007년 2009년

 

중요한 고비에서 한국을 막아섰다. 

 

양희종, 이동준, 방성윤을 붙여봤지만

 

엘 카티브는 쉽게 30점을 넘겼다.

 

김승현을 드리블로 제끼고 하승진과 김주성의 골밑을 농락
아니! 멧돼지가 하늘을 날았다고..

 

한국이 레바논을 이긴 FIBA 주관대회는

 

엘 카티브가 불참했던 2003년이 유일했다.

 

하지만 레바논도 아시아 왕좌를 차지하진 못했다.

 

에이스 의존도가 높은 레바논은 야오밍의 중국에 늘 패배했고

 

야오밍이 떠나니 이란이 하다디를 필두로

 

사기라인업을 만들어와서

 

늘 준우승에 머무르고 만다.

 

 

 

"언제까지 뛰나.."

 

 

2011년 이후로 국대은퇴를 해서 걱정하나가 사라지나 했지만

 

2017년 40이 다 된 나이로 국대에 복귀하여 아시안컵에 출전한다.

 

그에겐 마지막 아시아 정상도전의 기회이자

 

한국에겐 마지막 복수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머리숱도..

 

젊고 팔팔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수염이 희끗희끗한 아저씨가 됬지만

 

기량은 여전했다.

 

한국전에서 16점 5리바 4어시를 기록하였고

 

임동섭 김선형 오세근의 분전에도

 

한국은 마지막 경기마저 패배한다.

 

38세 엘 카티브는 25.9점을 넣어

 

대회 득점왕에 오르고 레바논을 8강에 이끈다.

 

 

이후 국대에서 완전히 은퇴한 카티브는

 

레바논 클럽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아들역시 농구선수로 같은 클럽에서 선수생활을 하기도 했다.

 

아 그걸 못넣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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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WhiteChoco | 작성시간 21.10.04 07년 아시아선수권 준결승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그만큼 엄청난 선수였음을 알 수 있죠
  • 답댓글 작성자소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10.05 항상 이길법한데 한끗씩 부족했어요
  • 작성자음헤헤헤 | 작성시간 21.10.04 제 기억이 맞다면 새크라멘토 킹스의 썸머리그 멤버였었던거 같은데요. 그때 무엇때문에 느바행이 어그러졌는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전성기 바라미보다도 더 무서웠던게 전성기 카티브였습니다. 뭔가 꿈뜬거 같은데 스탭으로 척척 수비진 벗겨내고 쉽게 득점을 올리는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깅하게 남아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소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10.05 계속 문은 두드리던데 안되더군요. 저도 기억에 계속 남는 선수에요.
  • 작성자르질라 브롱코스 | 작성시간 21.12.27 우리가 2003년 아시아 선수권 4강에서 카티브 없는 레바논과 연장 접전끝에 85-83으로 이긴 것외에도 레바논을 이겼던 적이 있죠. 2001년 대회 4강에서 레바논한테 75-72로 졌는데 예선에선 26점차로 대파했었죠. 그래서 단시 4강전 패배가 더 충격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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