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좋은 점심입니다.
먼저 글 들어가기에 앞서, 사실 이 글을 며칠 전에 쓰고 싶었는데 한창 이 이야기가 나오고 있을 때 쓰면 누군가 의도치 않게 "저격"이라고 받아들일까 우려가 되더라고요. 저는 몰래 "저격"을 하지 않습니다. 반론이 있으면 댓글이나 답글, 혹은 누군가에 대한 반론이라고 멘션을 하겠죠.
그리고 저는 예전에 날선 댓글로 다른 회원분들과 대립각을 세웠다가 한번 탈퇴하고 돌아온 후, 그런 감정적 대립을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댓글로 천일수를 두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물론 가끔 감정적으로 날카롭게 반응할때도 있습니다만;;;) 즐겁기 위해서 하는 카페 활동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제가 표현이 서툴어서 그런지 아직도 오해를 사는 경우가 있는데, 전 제 의견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 누구의 의견도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카페는 올드팬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30대지만, 저보다 훨씬 형님들도 많으시고, 따라서 다들 성인이고 각자의 삶에서 지혜와 지식을 축적해온 분들인데 누구가에게 "가르침"을 받을 입장은 아니겠죠.
따라서 제가 하는 말들은 어디까지나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그렇다" 정도로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전에 제가 올린 르브론 관련 글에서 "시대가 다른 선수들을 스탯만으로 비교 우위를 논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얘기하는 것은 스탯 비교 자체가 의미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스탯은 객관적인 수치로서 많은 것을 얘기해줍니다. 그러나 스탯"만" 보고 비교한다면 스탯이 알려주지 않는 많은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1. 시대별 차이를 반영할 수 없다.
1) 페이스 차이
2019-20시즌 NBA는 48분당 공격권 100.3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1989-90시즌 이후 최고 수치입니다. NBA는 73-74시즌부터 90년대 초반, 정확히는 1986-87시즌까지 계속해서 48분당 공격권 수치가 100이상을 유지해왔습니다. 그 전에는 기록이 없지만 다른 수치를 봤을 때 60년대 역시 분명 100 이상일 겁니다. 73-74시즌 페이스가 107.8에 평균 득점이 105.7인데, 1959-60시즌부터 14시즌 연속 평균 득점 110을 기록했거든요. 이 시즌에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기록의 사나이, 윌트 체임벌린이 데뷔를 했습니다.
어쨌거나 페이스가 시대별로 다르다는 것은, 페이스가 느린 시대에 흔히 말하는 "역보정"이 가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NBA 트렌드를 보면 90년대 후반에 최악을 찍고, 2010년대 초반까지 90대 초반을 유지하다가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해 2015-16에 95를 넘습니다. 그리고 2018-19시즌에 100을 딱 20년만에 넘고, 올해 100.3을 기록한 거죠.
실제로 최근 1,2년동안 선수들 중 정말 괴물같은 스탯을 찍는 선수들이 늘어났다고 체감으로 느끼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페이스 차이가 스탯으로 드러나는 거죠.
일단 2010년대 들어 가장 페이스가 낮았던 2011-12시즌과 2018-19시즌을 비교해보겠습니다. 2012시즌 득점순위는 케빈 듀란트 28점, 코비 브라이언트 27.9점, 르브론 제임스 27.1점, 케빈 러브 26점, 그리고 러셀 웨스트브룩 23.6점 순이었습니다.
2019시즌에는 제임스 하든 36.1점 폴 조지 28점 야니스 아데토쿤포 27.7점 조엘 엠비드 27.5점 스테픈 커리 27.3점이었습니다.
위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 중 르브론 제임스는 27.4점을 올렸으나 출장경기수가 적어 공식순위에 포함되지 못했고, 듀란트는 슈퍼팀 골스의 일원으로 공격권이 줄어들어 26점에 그쳤습니다.
수치상으로 보면 하든만 제외하고는 최상위권이 27점대에 형성되는게 비슷해 보이나요? 여긴 맹점이 있습니다. 듀란트는 38.6분, 코비는 38.5분, 르브론은 37.5분, 러브는 39분, 그리고 러셀은 35.3분을 뛰었습니다. 26점 이상 올린 선수들은 최소 37.5분을 뛰었죠.
그런데 2019년의 경우 하든은 36.8분, 조지는 36.9분 야니스는 32.8분, 엠비드는 33.7분, 커리는 33.8분을 뛰었습니다. 득점 톱10 중 37분 이상 뛴 선수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이 시즌 통틀어서 37분 이상 뛴 선수는 단 한명도 없습니다. 반면 2012년에는 9명이 37분 이상을 뛰었죠. 35분 이상 뛴 선수는 2012년에는 27명, 19시즌엔 불과 8명입니다.
다시 말해 2019시즌의 선수들은 2012시즌과 비교해 더 적게 뛰면서 더 많은 득점을 하고 있다는 뜻이죠.
직접적으로 비교가 가능한 르브론 제임스의 경우 출장시간이 37.5분에서 35.2분으로 2분이나 줄었음에도 오히려 필드골을 한개 더 던지고 (18.9개->19.9개) 득점이 27.4점으로 올랐습니다. 심지어 2012년에는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같은 스타들과 뛰었음에도 2019년에 공격권이 늘은 거죠.
제가 며칠 전에 르브론의 기량을 유지하는 능력이 경이적이라는 글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뜻은 르브론이 진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30대 중반이 되어서 기량이 오히려 늘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르브론은 역대 그 누구보다도 무시무시한 35세+시즌을 보낼 수 있는 선수지만, 35세의 르브론은 예전의 그 압도적인 선수는 아닙니다.
아예 로우페이스 농구가 트렌드였던 90년대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일단 99시즌은 이 시즌에 갑자기 기록이 떨어진 선수들이 너무 많아 정상이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에, 이를 제외하고 페이스 기록을 하기 시작한 이래 역사상 가장 낮은 페이스였던 96-97시즌의 기록을 보겠습니다. (90.1)
이 시즌의 득점기록은 최근과 비교할 때 전체적으로 낮습니다. 득점왕 마이클 조던이 29.6점, 말론이 27.4점, 글렌 라이스 26.8점, 미치 리치몬드 25.9점, 라트렐 스프리웰 24.2점, 알렌 아이버슨 23.5점, 하킴 올라주원 23.2점, 패트릭 유잉 22.4점, 켄달 길 21.8점, 게리 페이튼이 21.8점, 이상 톱 10 득점원들입니다. 25점을 넘긴 선수는 네명, 20점을 넘긴 선수들은 크리스 웨버까지 22명입니다.
위에 언급했던 2019시즌의 경우, 25점을 넘긴 선수가 켐바 워커까지 11명, 그리고 20점을 넘긴 선수가 31명입니다. 이 점에서 "평득 25+", "평득 20점"의 위상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시즌에는 올스타도 못 된 데빈 부커도 25점을 넘겼고, 20점을 넘긴 루 윌리엄스는 식스맨이었습니다.
반면 97시즌의 경우, 25+는 슈퍼스타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글렌 라이스, 미치 리치몬드 모두 해당 시즌 올NBA세컨팀에 오른 선수들이었고, 25점을 넘긴 나머지 선수들은 퍼스트팀이거나 MVP입니다.
출장시간으로 보면 더욱 가관(?)입니다. 당시 조던은 37.9분을 뛰었는데 이는 조던치고 상당히 관리를 받은 편;;;으로 리그 28위에 불과했습니다. 리그 출장시간 1위는 43분을 뛴 앤서니 메이슨, 뒤이어 글렌 라이스 42.6분, 라트렐 스프리웰 41.9분, 데이먼 스타더마이어 40.9분 등 40분 이상 뛴 선수만 8명, 37분 이상 뛴 선수는 무려 39명에, 62명의 선수가 35분 이상을 뛰었습니다.
이처럼 지표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2017년의 논리로 1997년을 보면 여러 자료를 오독할 수 있습니다.
2) 트렌드와 룰 차이
이제 객관적인 스탯의 세계에서 벗어나 해석의 영역입니다. 먼저 10년 단위 비교를 맞추기 위해 97년으로부터 10년 뒤, 2006-07시즌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시즌은 97시즌과 비교해서 페이스가 1.8정도 높습니다만, 그렇게 눈에 띄는 차이는 아닙니다. 그런데 득점순위를 보면 부각되는 것이 있습니다.
07시즌의 경우 1위 코비 브라이언트 31.6점, 2위 카멜로 앤서니 28.9점, 3위 길버트 아레나스 28.4점, 4위 르브론 제임스 27.3점, 5위 마이클 레드 26.7점, 이후 레이 알렌, 알렌 아이버슨, 빈스 카터, 조 존슨까지 9명이 25점을 넘기고, 20명이 20점을 넘겼습니다.
97시즌과 비교하면 25점 이상 넣은 선수들은 두 배 이상 많고, 20점 이상 넣은 선수들은 2명 더 적습니다. 페이스를 생각하면 이 정도야 예상되는 범위죠.
그런데 위 리스트의 이름을 자세히 보면 뭔가 특이합니다. 그렇습니다, 빅맨이 사라졌죠. 예전같으면 리스트 상위권에 올랐을 엘리트 빅맨들의 이름이 톱10 안에 없습니다. 11위가 되어서야 더크 노비츠키가 이름을 올릴 뿐입니다. (24.6점)
이는 97시즌과 비교하면 더욱 대비를 이루는데, 97년엔 득점 2위 칼 말론, 7위 하킴 올라주원, 8위 패트릭 유잉까지 있었습니다. 사실 원래는 더 있어야 정상입니다. 이 시즌엔 평균 26.2점을 올린 샤킬 오닐이 출장경기수가 적어 이름을 못 올렸고, "제독" 데이빗 로빈슨이 시즌 아웃됐으니까요.
실제로 이들이 복귀한 97-98시즌에는 조던 28.7점에 이어 샤킬 오닐 28.3점, 칼 말론 27점, 미치 리치몬드 23.2점, 앤트완 워커 22.4점, 샤리프 압둘라힘 22.3점, 글렌 라이스 22.3점, 알렌 아이버슨 22점, 크리스 웨버 21.9점에 이어 데이빗 로빈슨이 21.5점으로 톱10이 구성됩니다.
즉, 상위 10명 중 5명이 센터거나 파워포워드였습니다.
과거 빈스 카터가 한 말이 있습니다. 2017년 6월쯤에 한 말인데 90년대와 현대 농구를 비교하며 "당시는 얻어맞으면서 득점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그게 룰이었고, 이 룰에 우리는 적응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게 수비를 해야하는지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지금은 득점하기가 더 쉽다. (It's easier to score now), 왜냐면 그게 NBA가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란 말을 남겼습니다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ACoOqUedQ6U
카터는 이 이유에 대해 "현재는 핸드체킹이 없기 때문에, 공격수를 건드리면 파울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지금 플래그런트 파울 같으면 그때(90년대) 같으면 그냥 파울이다. 건드릴 수 없는 농구와 피지컬한 농구의 차이,"라고 설명했죠.
뒤이어 "이젠 공격만 중요하다. (It's all about offense). 잡고, 메달리고, 돌파하면 때리는 그런게 없다"고 설명했죠.
"꼰대의 말이다"라고 넘기기엔 카터는 90년대에 주로 뛴 선수가 아닙니다. 오히려 00년대에 전성기를 누리고 2004년 핸드체킹룰 개정 이후 16년이나 뛴 선수였죠.
물론, 카터가 강조하듯이 득점하기 쉬워졌다는게 플레이하기 쉬워졌다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수비하긴 더 까다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러나 중요한 건 이겁니다. "핸드체킹룰 도입 이후 점차적으로 NBA는 공격의 시대가 되었다". 즉, "공격 스탯"이 의미하는 바가 과거와 현재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90년대의 30점과 2020년대의 30점은 그 의미가 다르다는 거죠.
실제로 90년대부터 연도별 득점순위를 보면 한 가지 트렌드가 두드러집니다. 바로 해가 갈수록 득점 상위권에서 빅맨들이 탈락하고, 그 자리를 외곽득점원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거죠. 즉, 갈수록 로우포스트 득점보다 외곽득점 위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빅맨들이 득점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그 빅맨들이 어디서 득점하고 있는가?"
즉, NBA가 흥행을 위한 지속적인 룰 개정을 통해 외곽 득점이 더욱 용이해지고, 로우포스트 위주로 득점하던 빅맨들은 이에 따라 점점 득점수치가 떨어져갔으나, 빅맨들의 진화로 로우포스트 일변도가 아닌 외곽에서 득점하는 능력을 장착하면서 빅맨들의 득점수치가 올라갔다, 이렇게 해석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2019년 득점을 보면 상위 10명 중 파워포워드, 센터가 조엘 엠비드와 야니스가 있습니다. 엠비드는 경기당 평균 삼점을 1.2개 넣을 정도로 외곽에서도 넣는 선수고, 야니스는 애초에 전통적인 빅맨이 아닙니다.
2020년의 경우에도 "빅맨"이 두 명인데, 엠비드 대신에 이름을 올린 앤서니 데이비스는 다들 알다시피 내외곽을 오가는 선수죠.
즉, 90년대 이후 득점의 비중이 점점 외곽으로 옮겨오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90년대 후반은 로우페이스, 로우포스트 중심의 농구였다면, 현재는 외곽 중심의 달리는 농구이죠.
바로 이 점 때문에 다른 시대를 비교할때 "페이스 조정"만 할 수 없는 겁니다. 만약 그렇게 본다면 페이스가 그리 빠르지 않던 00년대 중반 선수들은 말도 안되는 보정을 받게 되기 때문이죠. 그렇게 본다면 05-06시즌에 35점을 기록한 코비 브라이언트는 물론이고, 33점을 기록한 알렌 아이버슨은 역대 그 누구와도 비교를 불허하는 득점원이란 얘기가 됩니다. 근데 이렇게 보면 이상한게 이 시즌에 31점을 기록한 르브론은 기량이 발전되고, 페이스가 빨라진 시절에 오히려 득점수치가 더 떨어졌거든요. 이대로 본다면 르브론의 전성기는 06시즌이라는 이상한 결론이 나오게 되죠. 이 때문에 여러가지 팩터를 봐야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트렌드와 위에서 언급된 핸드체킹룰의 강화, 거친 파울로 부상유발을 하지 못하게 선수들을 보호하는 방침으로 인해 현재는 득점이 뻥뻥 잘 나오는 리그가 됐습니다.
이와 반대로 수비스탯은 잘 안 나오게 되었죠. 예전에 제가 언급했듯이 2014-15시즌에 크리스 폴이 2.5개로 스틸왕을 차지한 이후 아무도 스틸 2.5개를 기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블럭의 경우 2010년대에 시즌 3개대 블럭이 나온 것은 16시즌 화이트사이드, 12,13시즌 서지 이바카까지 총 세명입니다. 평균 2블럭을 기록한 선수의 경우 2003-04시즌은 97시즌에 필적할 정도로 페이스가 낮은 시즌이었음에도 12명 (블럭 3개 이상 기록한 선수 두명)이었고, 05시즌은 11명, 06시즌 10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꾸준히 수가 줄어 2017-18시즌엔 리그를 통틀어 블럭 2개를 넘긴 선수가 앤서니 데이비스 단 한명(2.6개)였던 적도 있습니다.
레퍼런스를 위해 97-98시즌과 비교해보겠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시즌보다 페이스가 낮은 시즌은 50년대 전으로 넘어가지 않는 이상 단 두 번, 03-04시즌과 96-97시즌 뿐입니다.
그렇게 페이스가 낮은 시절이었음에도 평균 블럭 3개를 넘긴 선수는 마커스 캠비(3.7개), 디켐베 무톰보 (3.4개), 숀 브래들리 (3.3개), 테오 레틀리프(3.1개)까지 네명이나 되며, 블럭 2개를 넘긴 선수는 12명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스탯 차이를 단순히 "선수들이 능력이 더 좋아서"라고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만약 시대보정을 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98년에 고득점을 기록한 선수들은 그만큼 2020년보다 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라고 한다면 마찬가지로 "2020년에 높은 블럭/스틸 수치가 없는 이유는 그만큼 98년에 비해 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거에 비해 선수들이 이상하게 득점력만 늘고, 수비력은 떨어진 걸까요? 그건 당연히 아닙니다. 과거에 비해 득점을 뻥뻥 뽑아내기가 현재는 더 쉬워진 반면, 블럭/스틸을 기록하긴 더 어려워진 시대가 된 거죠.
NBA는 항상 변화합니다. 기술적 발전도 있고, 룰 개정도 있고, 트렌드의 변화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90년대 NBA와 2020년의 NBA는 같은 리그지만 차이점이 있는 거죠.
* 98년엔 무슨 일이?
말 나온 김에 98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이 시즌에 25+득점원의 수는 3명으로 줄었고, 고작 14명만이 20점을 넘겼습니다.
2019-20시즌에는 27명이 20점을 넘긴데다 30점 이상을 찍은 선수가 세명입니다. 25점을 넘은 선수는 무려 12명으로 98년에 20점을 넘긴 선수들과 비슷하죠.
98년의 득점원들과 2020년의 득점원들은 수치상으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98년에 득점 4위에 오른 미치 리치몬드가 2020년으로 온다면, 리그 16위로 추락하게 됩니다. 올NBA세컨팀에 여러번 오르고 명예의 전당을 오른 득점기계가, 잭 라빈, 도노반 미첼, 제임스 잉그램, 제이슨 테이텀보다 득점력이 아래급이 되는 거죠.
이처럼, 시대가 다른 선수들의 스탯을 1:1 비교한다면, 터무니없는 결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2. 스탯은 팀 별 상황, 코트 위 상황을 온전히 반영할 수 없다.
스탯은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에 어떤 과정을 통해서 그 결과가 나왔는지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단적인 예로 팀 던컨이 있습니다. 던컨은 득점력 외에도 훌륭한 스크린 능력과 패스, 시야를 갖고 있는 선수죠.
스퍼스 경기 도중 던컨이 로우포스트에서 스크린을 걸었고, 이 스크린을 타고나와 마누 지노빌리가 공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다시 로우포스트의 던컨에게 패스를 해줬고, 던컨이 수비가 자신에게 몰린 틈을 타서 탑에서 오픈된 토니 파커에게 빼줬지만, 파커는 순간 코너에서 자기보다 슛이 뛰어난 브렌트 베리가 오픈된 걸 보고 패스해줬습니다. 이 경우 스탯은 득점한 베리, 어시스트해준 파커에게만 기록되지만, 저 둘 못지 않게 이 플레이가 가능하게 한 건 바로 던컨이죠. 그러나 기록 상에서 던컨의 공헌도는 0입니다.
보다 직접적인 예를 들자면 스탯은 해당 선수와 팀이 어떤 전략을 통해 득점하게 됐는지 얘기해주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른 상황에 있는 선수들의 스탯, 특히나 다른 시대의 선수들의 스탯을 비교하는 것은 현실과 다른 해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1) 알렌 이야기
제가 정말 좋아하는 선수들 중에 알렌 아이버슨이란 선수가 있습니다. 근데 이 선수는 그리 득점 효율이 좋지 못합니다. 그가 최전성기를 보낸 00-01시즌에 그는 평균 42분을 뛰면서 31.1점 4.6어시스트 3.8어시스트와 2.5스틸, 야투율 42%, 3점슛 32%, 자유투 81.4%, eFG% 44.7%를 기록했습니다.
기록만 보면 어떤가요? "득점 수치가 높긴 하지만 효율이 형편없다. 보니까 혼자 팀 공격권을 다 써서 득점만 높을 뿐이다"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을까요? 그래서 안티들은 그에게 "난사왕," "아역귀"란 별명을 지어줬습니다.
근데 "아역귀"는 팀을 동부 1위로 이끌고 결승에 진출시켰습니다. "난사왕"은 당시 플레이오프에서 서부의 내로라하는 팀들을 전부 스윕한, 견고한 무적함대 LA레이커스를 1차전에서 침몰시켰습니다. NBA 애널리스트들은 "스탯만 좋은" 그에게 MVP를 선사했고, 감독들은 "효율이 꽝인" 그를 올NBA퍼스트팀에 올렸습니다.
이는 스탯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탯은 아이버슨이 얼마나 코트 위에서 위력적인 선수인지, 183cm에 말도 안되는 스피드와 기술을 가진 그가 얼마나 상대 수비전술을 뒤흔들어놓을 수 있는 선수인지, 그를 실제로 코트 위에서 상대한 선수들 중 누구도 "야투율 42% ㅋㅋㅋㅋ 그래그래 많이 쏘면 나야 좋지. 쏘세용 ♥"하지 못했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 시즌 NBA평균 야투율은 44.3%였습니다. 즉, 아이버슨은 야투율 면에서 평균 이하였죠.
2001년 6월 6일, 필라델피아 76ers는 역대 최초로 플레이오프 스윕을 노리는 레이커스의 홈에서 연장접전 끝에 LA를 침몰시켰습니다. 이 경기에서 아이버슨은 야투율 43.9%로 48점을 기록했습니다. 6어시 5리바 5스틸을 곁들였죠. 그러나 스탯상으론 야투율 60.7%로 44점, 20리바운드 5어시를 기록한 샤킬 오닐이 더 압도적이었습니다. 당연한거 아닌가요? 4점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야투율은 거의 20% 차이니...그러나 역사는 이 경기의 영웅을 알렌 아이버슨으로 기억합니다.
단순히 팀이 승리해서? 아니죠. 스탯으로 드러나지 않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버슨의 해당 시즌 스탯은 브래들리 빌의 2019-20시즌 스탯보다 나을게 없습니다. 30.5점 6.1어시스트 4.2리바운드 1.2스틸 야투율 45.5% 3점 35.3% 자유투 84.2%에 eFG%가 52%죠. 득점은 0.6점 차이로 아이버슨이 앞서고 리바운드는 빌이 0.4개, 어시스트는 빌이 1.5개 앞서며 스틸은 아이버슨이 1.3개 앞섭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비슷하지만 슛성공률에서 빌이 모든 분야에서 앞섭니다. 오히려 스탯만 따지면 빌이 더 좋죠. 빌은 출장시간이 36분으로 아이버슨보다 6분 덜 뛰고 저렇게 기록했으니까요.
그렇다면 브래들리 빌처럼 현재 올NBA서드팀급은 아니고 "매우 잘하는 선수"급인 선수들이 00-01시즌 기준으로 MVP급, 퍼스트팀급이 되는 걸까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시대가 다른 선수들의 스탯을 1대1로 비교하기 어렵다는 의미겠죠.
2) 마이클 이야기
시간을 더 거슬러가서 이때보다도 3년 전으로 되돌려보죠. 장소는 솔트레이크 시티, 유타, 비행기가 이륙할때 소음과 맞먹는다는 소리를 내는 열과적인 델타 센터입니다.
경기장 안에는 비명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이들의 영웅, 작은 키, 더 짧은 반바지와 이에 대비되는 거대한 심장을 지닌 존 스탁턴이 던진 3점슛이 림을 아깝게 빗나갔기 때문입니다. 직전에 또다른 영웅 칼 말론의 태산같은 어께가, 결정적인 턴오버를 범하며 무너진 것을 봤기에 안타까움은 더했습니다. 이제 경기장에 모인 2만여명은 저 가증스러운 빨간 옷 입은 대머리가 기뻐 날뛰는 꼴을 지켜봐야 합니다.
이날 마이클 제프리 조던은 35세의 노화한 다리를 이끌고 3점차로 뒤지고 있는 시점에 1점차로 쫓아가는 레이업, 기습 더블팀에 이은 스틸, 그리고 기가 막힌 크로스오버 스텝백에 이은 중거리 점퍼로 팀의 1점차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칭송했고, 그는 "역대 최고의 선수"로서 스스로의 위치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스탯상으로 본 그의 활약은? 45점 1리바운드 1어시스트 4스틸, 야투율 42.9%였습니다.
사실 스탯만으로 본 조던의 98파이널 활약상은 그렇게까지 ㅎㄷㄷㄷ하진 않습니다. 그는 시리즈 평균 33.5점 4리바운드 2.3어시스트 1.8스틸에 야투율 42.7% 3점 30.8% 자유투 81.4%를 기록했고, eFG%는 43.9%, TS%는 51.6%를 기록했습니다. 팀 야투율이 43%란 걸 생각하면, "차라리 슛감이 더 좋은 선수에게 볼을 돌리지 그랬나"란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오히려 반대쪽의 칼 말론이 스탯만으로 보면 더 훌륭할 지도 모릅니다. 그는 평균 25점 10.5리바운드 3.8어시스트 1스틸에 1.2블럭, 야투율 50.4%를 기록했습니다. 득점이 8점 낮지만 야투율이 8% 앞서고, 리바운드는 6개나 더 많고 심지어 어시스트도 더 많습니다. 효율적이죠.
그러나 스탯은 이 시리즈에 조던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전하지 못합니다. 1차전 당시 조던의 야투율은 44.8%였지만, 그의 어께를 가볍게 해줘야 할 2옵션 피펜은 36.8%, 토니 쿠코치는 33.3%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불스에 대해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여기서 스스로 득점을 만들어줄 선수는 저 둘 제외하곤 사실상 없다시피 합니다. 이 상황에서 연장에서 석패했죠.
98파이널은 사실 농구적으로 보면 그리 훌륭한 시리즈라고 보기 힘듭니다. 2년째 연속으로 붙는 양팀은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았고, 팀전술을 파훼하는 방법을 서로 너무 잘 알고 있었죠. 이 시리즈에서 양팀 통틀어 단 한번 90점을 넘겼고, 이는 불스가 96대 54로 재즈를 박살낸 3차전이었습니다. 불스의 조력자들은 조던, 평균 15.7점과 15.2점을 기록한 피펜과 쿠코치를 제외하면 5.3점을 넣은 하퍼가 가장 득점이 높았을 정도로 부진했고, 재즈의 경우 호너섹이 10.7점, 스탁턴이 9.7점, 브라이언 러셀이 8.8점, 섄던 앤더슨이 7.3점일 정도로 도움이 안 됐습니다. 예전에 누가 "오직 마이클 조던과 칼 말론이 얼마나 농구를 잘하는지만 볼 수 있는 시리즈"라고 표현했는데, 딱 정확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6차전 초반에는 피펜이 첫 공격권에서 덩크를 하다가 등을 삐끗해 아웃되기까지 합니다. 물론 피펜은 이후 복귀해 25분을 뛰었지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상 공격에서 제몫을 하는 선수가 조던 뿐이고, 공격전술까지 삐걱되는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이 경기에서 조던은 조금 느리게 경기를 시작했다가 2쿼터에 불이 붙어 15점을 기록하고, 3쿼터에 페이스가 좀 떨어졌다가 4쿼터에 슛감이 안 좋자 연달아 골밑돌파를 통해 자유투를 얻어내면서 4쿼터 16점을 기록했습니다.
기록은 불스가 바로 직전인 인디애나 시리즈에서 7차전까지 가느라 단 이틀밖에 못 쉬어 10일이나 쉰 재즈에 비해 지쳐있었다는 것, 조던이 5차전에 무려 45분을 뛰었다는 것, 그가 35세 나이에도 1쿼터를 전부 뛰고 2쿼터에 2분 정도 쉰 뒤에, 3쿼터를 전부 뛰었다는 것, 이로 인해서 6차전에서 44분째 뛰던 4쿼터에는 다리가 순간 풀릴 지경이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타 수비진을 제치고 레이업, 스틸, 자기보다 훨씬 젊은 바이런 러셀을 제치고 위닝샷을 넣었다는 걸 제대로 전하지 못합니다. 이때 불스에서 조던이 공격을 억지로 이끌어내지 않으면 바로 무너지는 상황이었다는 것, 피펜의 7차전 출장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그야말로 벼랑 끝까지 몰린 조던이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했다는 걸 전하지 못합니다.
이 시리즈에서 조던은 그야말로 GOAT가 어떤 존재인지 보여주었습니다. "시리즈 평균 33.5점 4리바운드 2.3어시스트 야투율 42.7%"란 수치로 95년 6월에 마이클 조던이 어떤 존재였는지 요약할 수 있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농구는 산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승이나 MVP같은 수상실적이 중요한 것이 그래서입니다. 스탯은 모든 걸 말해주지 않습니다. 98시즌에 조던은 28.7점 5.8리바운드 3.5어시스트 1.7스틸 0.5블럭 야투율 46.5%를 기록했고, 2위 칼 말론은 27점 10.3리바운드 3.9어시스트 1.2스틸 0.9블럭 야투율 53%을 기록했습니다. 수치상으로 보면 말론이 1.7점 뒤지지만 리바운드 4.5개, 야투율 6.5%, 어시스트까지 소폭 앞섭니다. 그러나 당시 전문가들, 선수들은 당연한 듯 "리그 최고의 선수는 마이클 조던"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물론 수상실적만 보자는 얘기도 아닙니다)
스탯은 선수들을 비교하는데 좋은 참고자료가 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같은 환경, 같은 조건에서 뛸 때도 저런데, 하물며 룰도, 트렌드도, 환경도 모든게 다른 20년 뒤와 비교하면 말할 것도 없죠. 그렇기 때문에 스탯만으로 비교하면 그릇된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3. 사족
끝으로 GOAT논쟁에 대해 한 마디 하고 싶은게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난번에 얘기했듯이 아직 마이클 조던의 커리어가 객관적으로 역대 선수들 중 가장 뛰어나다고 여기며, 앞으로 르브론의 행적에 따라 르브론의 커리어가 조던보다도 더 객관적으로 뛰어나게 될 확률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역대 1위, 역대 2위" 이런 것이 그렇게까지 큰 의미가 있다고 보진 않습니다.
"위대함"을 누가 객관적으로 재단할 수 있을까요? "압도적임"을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에겐 2016년 르브론이 파이널을 지배하며 73승 워리어즈를 침몰시킨 것이 역대 가장 위대한 퍼포먼스일 수 있습니다. 혹은 00년 상대를 그야말로 박살내던 샤크일 수도, NBA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스테픈 커리일 수도, 역사상 최초로 MVP와 수비왕을 동시에 차지하던 하킴일 수도 있죠. 맘바 멘탈리티의 코비, 래리 레전드, 매직, 카림, "괴물" 윌트와 "가장 위대한 승리자" 빌 러셀 등 위대함이란 수식어가 어울리는 선수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비교를 좋아하는 인간의 특성상 이들의 업적을 서열화하지만, 이는 이들의 대단함을 온전히 평가하는 방식은 아니라고 봅니다.
마이클 조던은 당시 NBA에서 가장 압도적인 선수였고, 르브론은 그의 시대에서 가장 압도적인 선수였습니다. 이들은 같은 코트 위에서 NBA시합을 펼친 적이 없고, 당연히 전성기 시절의 그들의 기량을 "객관적으로" 겨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선수 비교를 할 때 이 점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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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지네딘조단★ 작성시간 20.10.16 진짜 재밋고 글 잘쓰시는데 정말 사소한 감정싸움에 가버리시니 허탈하기 그지없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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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캠프만세 작성시간 20.10.16 저는 닥터k님 말씀에 공감하고 뭘 그렇게 잘못하셨는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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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Super매리언 작성시간 20.10.17 저두요 , 이정도 생각차이의 글도 못쓰면 엔게의 존재 의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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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힘보 작성시간 20.10.16 두분의 이전 히스토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조던팬vs르브론팬인가요ㅜ)개인적으로 글 자체에서 조던vs르브론 이라던지 과거vs현재 를 비교하며 우위논쟁을 하려는 글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댓글을 보니 뭔가 히스토리가 있는듯 하네요..그래도 좋은글에 좋은 댓글이었는데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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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zerak 작성시간 20.10.17 "내가"라고 상대방에게 본인을 높이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농구에 관해 공부하기 전에 민주사회의 기본 소양인 담론의식부터 배우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분의 생각을 정리하면,
"나는 그냥 게시판에 말할테니 너희는 들어라. 오직 내 의견에 동조하는 의견만 받겠다."
인데, 무슨 503의 소통방식도 아니고 이럴거면 그냥 일기장에 본인 생각을 쓰시는게 어떨지요. 여기는 다양한 nba팬들이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nba를 사랑하시고 평상시 많은 생각에 잠기시는 분 같습니다만, 너무 자기 생각에 갇혀서 다른 사람 의견은 보려고 하지도 않는 태도를 갖고 계시네요. 님이 그렇게 사랑하는 마이클 조던이 그런 성격이었는지 한 번 돌이켜보세요. 보통 30살이 넘으면 그래도 감정적인 성숙이 이뤄지는데 너무 농구만 보는 것도 사회생활에 안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