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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막강했던 1984년 Team USA

작성자Doctor J|작성시간07.10.17|조회수2,634 목록 댓글 34

 

 

아마도, 여러 회원분들이 자주 사용하시는 신조어 "초레어"급 사진이 아닐런지요?^^

 

제가 소장하고 있는 1984년도 The Sporting News지에 실린 1984년도 올림픽 팀의 모습입니다.

 

모두 프로에 들어 왔지만, 훗날 레전드가 되어버린 선수들이 있는가 하면, 3~4년을 못 넘기고 도태된 선수도 있고....

프로에서 벤치만 지키다가 우승반지를 얻은 선수도 있고, 레전드가 될 수 있었는데 강간과 부인폭행으로 감방을 간 선수도 있네요.

 

하지만, 1984년 올림픽 당시만큼은, 바비 나이트 감독의 철통같은 훈련 스케쥴 아래, 미국 올림픽 팀 역사상 최고의 팀 케미스트리를 자랑한 팀이었습니다.

나이트 감독이 강조한 것은 딱 세가지 - 팀웍, 수비 그리고 연습이었습니다.

찰스 바클리는 15인 로스터에 들어갈 정도로, 대표팀 선발전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 줬는데도 최종 엔트리 12명에는 들지를 못했습니다.

수비력에서 걸렸지요. 바클리의 신장은 193~4 정도지만, 대학시절의 포지션은 센터였습니다. 결국 빅맨 수비를 잘해줘야 하는 입장이었는데

최종 엔트리 12인을 가리는 청백전에서, 상대팀의 로렌조 찰스라는 파워포워드의 골밑공격을 전혀 못 막아내는 바람에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1984년 올림픽 팀 - 유잉, 퍼킨스, 티스데일이 책임 진 골밑은 무시무시했고,

조던과 멀린의 미드레인지 공격은 상대팀이 손을 쓸 수 조차 없는 다른 세상의 화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앨빈 로벗슨과 번 플레밍, 리온 우드가 공수에 걸친 스피드로 상대팀 가드들의 혼을 다 빼놓았었지요.

 

한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당시에 유럽 최고였던 소련과 체코슬로바키아가 올림픽 보이코트로 불참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날아 다니던 19세의 농구신동 아비다스 사보니스와 미대학 최고센터 패트릭 유잉의 대결이 무산되어버린 것이죠. 

 

 

 


웨이먼 티스데일, 제프 터너, 패트릭 유잉, 존 콩캑, 조 클라인, 샘 퍼킨스, 크리스 멀린

스티브 알포드, 리온 우드, 마이클 조던, 앨빈 로벗슨, 번 플레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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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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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ShowStopper | 작성시간 07.10.17 Doctor J님은 그야말로 진정한 이 카페의 '큰 형님'이십니다...^^
  • 작성자nycmania | 작성시간 07.10.18 저때의 유잉 활약은 어땠나요? 그리고 누가 에이스였고 누가 리더였죠?
  • 답댓글 작성자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7.10.18 유잉은 전 경기 주전센터로 출전했고, 게임당 25분 정도 뛴 것으로 기억합니다. 게임당 평균은 11-7-2.5 정도였습니다. 주로 골밑 수비가 유잉의 주된 역활이었습니다. 팀의 주득점원은 멀린, 퍼킨스, 그리고 조던이었습니다. 팀의 리더와 에이스도 물론 마이클 조던이었죠. 게임당 17~18점 정도를 득점하며, 팀의 인사이드/미드레인지 공격을 조율했습니다. 티스데일이나 퍼킨스가 벤치에 있으면 포스트업 공격까지 도맡아 한 것도 조던이었습니다. 저 당시만 해도, 유잉의 포스트업 공격력은 미흡할 때였고, 턴어라운드 점퍼는 시도조차 못 할 때였습니다. 그저 덩크나 팁인, 그리고 점프 훅슛 정도가 유잉의 공격 repertoire였을 때입니다.
  • 작성자폭주천사 | 작성시간 07.10.18 사진 잘봤습니다. 닥터 제이님은 무슨 박물관 같아요~~
  • 작성자HeatFlash | 작성시간 10.12.22 오... 이렇게 예전에 올라왔던 글이 다시 되새겨지니 정말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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