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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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7.10.17 마지막 3시즌을 인디애나에서 마쳤습니다. 미친 리치몬드님 말씀대로, 퍼킨스는 댈러스 시절에는 아주 훌륭한 인사이더였습니다. 그러다가 1992~93 시즌에 시애틀로 옮기면서부터 게임당 4개씩의 3점슛을 쏴대는 기형적인 빅맨이 되어갔죠. 빨래줄같이 날아가 꽂히던 3점슛보다는 댈러스 시절의 전형적인 빅맨 플레이가 훨씬 더 위력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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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Chris 작성시간07.10.17 그래도 덕분에 샤크나 기타 다른 빅맨들을 밖으로 끌고 나올 수 있는 장점이 있었죠.. -_-; 샤크가 첨엔 쬐금 당황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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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Baron&Veron 작성시간07.10.18 레이커스 시절이나 시애틀 시절이나.. 당시 팀에 뛰어난 골밑 자원들이 없었으면 퍼킨스가 그토록 빼어난 외곽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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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harles #34 작성시간07.10.17 바클리는 바비 나이트 감독이랑 싸우고 짤린걸로 알고 있는데요 뭐 농구화가 낡았다고 불평하다가 짤렸던걸로 뭐 수비를 못해서 겸사겸사 짤렸던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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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7.10.18 유잉은 전 경기 주전센터로 출전했고, 게임당 25분 정도 뛴 것으로 기억합니다. 게임당 평균은 11-7-2.5 정도였습니다. 주로 골밑 수비가 유잉의 주된 역활이었습니다. 팀의 주득점원은 멀린, 퍼킨스, 그리고 조던이었습니다. 팀의 리더와 에이스도 물론 마이클 조던이었죠. 게임당 17~18점 정도를 득점하며, 팀의 인사이드/미드레인지 공격을 조율했습니다. 티스데일이나 퍼킨스가 벤치에 있으면 포스트업 공격까지 도맡아 한 것도 조던이었습니다. 저 당시만 해도, 유잉의 포스트업 공격력은 미흡할 때였고, 턴어라운드 점퍼는 시도조차 못 할 때였습니다. 그저 덩크나 팁인, 그리고 점프 훅슛 정도가 유잉의 공격 repertoire였을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