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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중후반 한국 배구를 세계 정상권에 올려놓은 3인방 - 이인, 김호철, 강만수

작성자Doctor J| 작성시간24.01.24| 조회수0| 댓글 38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 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1.24 저도 그렇습니다. 이인은 전성기인 70년대엔 8년간 한국 전력 소속이었죠. 현대 입단은 전성기가 완전히 지난 후...
  • 작성자 가즈나이트1 작성시간24.01.24 저는 고려증권 후기 부터 배구에 빠져서 잼있게 봤었어요ㅎㅎ
  • 작성자 Franchise3 작성시간24.01.24 저는 임도헌 때문에 현대자동차써비스 팬이었는데
    고려증권이 악마같았습니다ㅎㅎ
  • 작성자 EJ핑거롤롤 작성시간24.01.24 개인 시간차 공격은 정의탁이 이인의 뒤를 이었죠. 정의탁도 거의 장인 수준이었는데 이인은 더 했군요 ㄷ ㄷ ㄷ
  • 답댓글 작성자 리오타 작성시간24.01.24 정의탁은 이인에 비하면 과장하자면 어른과 아이수준이었죠, 그정도로 이인은 엄청난 선수
  • 작성자 리오타 작성시간24.01.24 강만수는 1978년 세계선수권 4강 이후로 소련의 사빈(200m)와 함께 세계 4대거포로 불리웠죠
    강만수의 공에 얼굴을 맞은 일본선수가 잠시 기절했던 일화도있어요

    강만수는 잘생긴 얼굴에 체격도 당당해서 일본 여성팬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당시 일본에서는 강만수 관광이라는 여행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비교적 어리신 분들은 장윤창의 임팩트가 크다고 느끼실듯 하나 강만수 시대를 본 사람들은 강만수의 거대함에 경의를 표합니다

    1984년 LA올림픽때 강만수,김호철, 강두태, 장윤창, 이종경 등으로 구성된 역대급 멤버였죠. 여기에 당시 인창고 3학년이었던 이상열까지
    우리나라는 키랄리와 티몬스가 이끄는 미국의 우승을 저지할 유일한 대항마였죠.
    그런데.....
    오늘은 늦어서 여기까지
  • 답댓글 작성자 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1.25 84년 올림픽은... 홈그라운드의 미국이 진짜 이름값 못하고 치졸한 방식으로 우승했던 대회였죠.

    한국과 붙었어도 충분히 이길만한 전력의 팀이었는데... 아마도 84 올림픽 이전까지는 미국이 굵직한 대회 우승경험이 없었기때문에 한국을 상대로 진짜로 쫄았던 것 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SenesQ 작성시간24.01.25 과연 어떻게 된 것인가요. 어린이에게도 알려주셔요.
  • 답댓글 작성자 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1.25 SenesQ https://mania.kr/g2/bbs/board.php?bo_table=freetalk&wr_id=1555114
  • 답댓글 작성자 SenesQ 작성시간24.01.25 Doctor J 아. 이런 일이 있었군요. 어찌보면 유일했던 기회를 그렇게 날리게 된거였네요.
  • 답댓글 작성자 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1.25 SenesQ 저는 솔직히 미국이 금메달 가져가는게 맞다고 봅니다. 전력이 너무 좋았고 게다가 홈그라운드였죠.

    하지만 한국이 메달은 딸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습니다. 같은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농구가 은메달을 땄듯이 말이죠
  • 답댓글 작성자 리오타 작성시간24.01.25 당시 LA배구경기는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우리나라는 브라질(3:1) 아르헨티나(3:2) 등을 물리쳤고
    미국과의 대결에서 1세트는 주전이 총출동해서 맞대결했죠
    이때 그무섭던 미국도 우리블로킹 위 강타는 없었고 노련한 키랄리가 처내기 공격등으로 지저분한(친구들끼리 그렇게 얘기할정도로 시원한공격이 우리코트에 안떨어졌습니다?) 득점위주

    우리는 이종경(201cm)의 철벽 블로킹과 강만수의 힘을 이용한 우겨넣기 득점으로 접전끝에
    1세트는 미국승

    우리는 미국이 최종 브라질전에ㅅㆍ한세트만 따내도 결선리그에 진출하기 때문에 남은 두세트는 강만수 등 주전을 쉬게하고 포기
    3:0으로 패배

    미국이 브라질에 3대0 패배 - 딱 봐도 져주기 게임이었죠

    우리는 전승에 1패만 하고 세트득실차로 예선탈락
    브라질이 결선진출

    미국은 결승에세 브라질 손목을 비틀며 3대0 셧아웃 우승

    우리는 1패만 하고도 5위
    미국은 1패 하고 우승
    브라질은 2패하고 준우승

    미국이 승부조작한 대회로 낙인찍힌 올림픽이었죠

    당시 올림픽때 강만수는 매 게임 100개 이상 스파이크를 때려냈습니다.
    반다편에 실력이 완성단계였던 장윤창이 있었지만
    김호철은 그우명한 "만수야 "를 외치며 몰빵배구를 시전했죠
  • 답댓글 작성자 리오타 작성시간24.01.25 리오타 강만수의 위력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안방에서 강만수를 보게된 미국은 한국을 떨어뜨리기 위해 브라질에 누가봐도 져주기 게임을 한거죠

    장윤창이 불쌍해보인 정도로 강만수몰빵이 심했습니다
    다행히 천재적인 BQ를 지닌 장신센터 이종경과 노련한 속공수 이인 유중탁 문용관이 받춰주면서 승승장구

    저는 조던의 경기를 본것 만큼이나
    NBA의 모제스말론, 줄리어스어빙, 아티스길모어, 랄프샘슨, 압둘자바. 그리고 배구의 신 키랄리의 경기를 봤었다는 게 소중한 기억입니다.
    이상 아재의 기억!

  • 답댓글 작성자 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1.25 리오타 하하. 바로 그 '지저분함'이 키라이를 GOAT로 만들어줬죠 (Kiraly 의 L은 묵음입니다. 그래서 '키라이').

    상대팀의 약점과 빈 곳만 노리거나, 블라커 손 끝에 스핀 먹인 스파이크로 터치아웃 시키거나, 블라커 높이가 조금 낮다 싶으면 1미터를 웃도는 점프력으로 강공을 퍼붓곤 했죠.

    그런데 수비력은 이 무시무시한 공격력보다 더 좋았고, 큰 경기일수록 더 잘하던 키라이... 4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키라이처럼 영리하고 카리스마 있는 배구선수는 본 적이 없습니다.

    본인이 비치발리볼을 너무 좋아해서 실내배구 커리어가 짧았던 점이 많이 아쉽습니다. 키라이만 대표팀에 몇 년 더 머물러 있었다면, 90년 세계선수권과 92년 올림픽도 금메달은 미국이 가져갔을 겁니다.
  • 작성자 내당AIR 작성시간24.01.25 강만수는 선수로써 최고의 선수였으나, 그 후 감독으로썬 삼성화재라는 팀에게 ㅜㅜ
  • 작성자 Hi- ν Gundam 작성시간24.01.25 이인 선수는 처음보는데 말 그대로 토탈패키지였네요. 김호철 감독님 토스는 진짜 리얼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리오타 작성시간24.01.25 캐스터가 중계방송중에 "이인 블로킹" 을 외칠때마다 마치 '2인 블로킹' 처럼 들릴정도로 센터에서는 레전드였습니다
  • 작성자 SenesQ 작성시간24.01.25 댓글에 형님들 다 모이셨네요.ㅎ 좋은 화질과 박사님의 명 해설이 있으니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인데도 재미나게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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