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리스트
-
작성자 리오타 작성시간24.01.24 강만수는 1978년 세계선수권 4강 이후로 소련의 사빈(200m)와 함께 세계 4대거포로 불리웠죠
강만수의 공에 얼굴을 맞은 일본선수가 잠시 기절했던 일화도있어요
강만수는 잘생긴 얼굴에 체격도 당당해서 일본 여성팬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당시 일본에서는 강만수 관광이라는 여행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비교적 어리신 분들은 장윤창의 임팩트가 크다고 느끼실듯 하나 강만수 시대를 본 사람들은 강만수의 거대함에 경의를 표합니다
1984년 LA올림픽때 강만수,김호철, 강두태, 장윤창, 이종경 등으로 구성된 역대급 멤버였죠. 여기에 당시 인창고 3학년이었던 이상열까지
우리나라는 키랄리와 티몬스가 이끄는 미국의 우승을 저지할 유일한 대항마였죠.
그런데.....
오늘은 늦어서 여기까지 -
답댓글 작성자 리오타 작성시간24.01.25 당시 LA배구경기는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우리나라는 브라질(3:1) 아르헨티나(3:2) 등을 물리쳤고
미국과의 대결에서 1세트는 주전이 총출동해서 맞대결했죠
이때 그무섭던 미국도 우리블로킹 위 강타는 없었고 노련한 키랄리가 처내기 공격등으로 지저분한(친구들끼리 그렇게 얘기할정도로 시원한공격이 우리코트에 안떨어졌습니다?) 득점위주
우리는 이종경(201cm)의 철벽 블로킹과 강만수의 힘을 이용한 우겨넣기 득점으로 접전끝에
1세트는 미국승
우리는 미국이 최종 브라질전에ㅅㆍ한세트만 따내도 결선리그에 진출하기 때문에 남은 두세트는 강만수 등 주전을 쉬게하고 포기
3:0으로 패배
미국이 브라질에 3대0 패배 - 딱 봐도 져주기 게임이었죠
우리는 전승에 1패만 하고 세트득실차로 예선탈락
브라질이 결선진출
미국은 결승에세 브라질 손목을 비틀며 3대0 셧아웃 우승
우리는 1패만 하고도 5위
미국은 1패 하고 우승
브라질은 2패하고 준우승
미국이 승부조작한 대회로 낙인찍힌 올림픽이었죠
당시 올림픽때 강만수는 매 게임 100개 이상 스파이크를 때려냈습니다.
반다편에 실력이 완성단계였던 장윤창이 있었지만
김호철은 그우명한 "만수야 "를 외치며 몰빵배구를 시전했죠 -
답댓글 작성자 리오타 작성시간24.01.25 리오타 강만수의 위력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안방에서 강만수를 보게된 미국은 한국을 떨어뜨리기 위해 브라질에 누가봐도 져주기 게임을 한거죠
장윤창이 불쌍해보인 정도로 강만수몰빵이 심했습니다
다행히 천재적인 BQ를 지닌 장신센터 이종경과 노련한 속공수 이인 유중탁 문용관이 받춰주면서 승승장구
저는 조던의 경기를 본것 만큼이나
NBA의 모제스말론, 줄리어스어빙, 아티스길모어, 랄프샘슨, 압둘자바. 그리고 배구의 신 키랄리의 경기를 봤었다는 게 소중한 기억입니다.
이상 아재의 기억!
-
답댓글 작성자 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1.25 리오타 하하. 바로 그 '지저분함'이 키라이를 GOAT로 만들어줬죠 (Kiraly 의 L은 묵음입니다. 그래서 '키라이').
상대팀의 약점과 빈 곳만 노리거나, 블라커 손 끝에 스핀 먹인 스파이크로 터치아웃 시키거나, 블라커 높이가 조금 낮다 싶으면 1미터를 웃도는 점프력으로 강공을 퍼붓곤 했죠.
그런데 수비력은 이 무시무시한 공격력보다 더 좋았고, 큰 경기일수록 더 잘하던 키라이... 4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키라이처럼 영리하고 카리스마 있는 배구선수는 본 적이 없습니다.
본인이 비치발리볼을 너무 좋아해서 실내배구 커리어가 짧았던 점이 많이 아쉽습니다. 키라이만 대표팀에 몇 년 더 머물러 있었다면, 90년 세계선수권과 92년 올림픽도 금메달은 미국이 가져갔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