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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남자농구 남북대결 - 1978년 아시안게임 (feat. 김동광)

작성자Doctor J| 작성시간24.04.23| 조회수0|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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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uckyyap 작성시간24.04.23 김동광님...연세드신 후엔 좀 꼰대짓도 하셨지만 삼성썬더스팬인 제겐 영원한 "상남자"이십니다.
  • 작성자 interceptor #.23 작성시간24.04.23 김동광 박수교님은 화질 나쁜 선수시절 모습만 봐도 딱 구분이 갈 정도네요. 워낙 최근까지 왕성히 활동하셔서 눈에 익어서 그런지.. 그나저나 북한은 진짜 바리바리 싸들고 가버리네요ㅎ 스포츠 정신이 이념과 공포의 김일성 때문에 실종된 사건이군요.
  • 답댓글 작성자 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4.23 둘 다 장발이었죠. 둘 다 얼굴도 잘 생겼고... 실루엣만 봐도 구분이 쉽게 됩니다.

    여담이지만, 70년대는 유신시대여서 장발이 금지되었던 시절입니다. 길거리에서 바리깡으로 머리 밀리던 시절... 하지만 김동광을 좋아했던 김택수 체육협회장의 특권 남용(?)으로 김동광만 머리를 기르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박수교, 신선우, 신동찬 등도 당시에 단속의 선을 넘었던 장발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지금으로선 이해가 안 되는 상황입니다. 그런 시절도 있었습니다.
  • 작성자 이사장 작성시간24.04.23 와 젊은시절 다니엘헤니 느낌이네요 ㅎㄷㄷ
  • 작성자 제주소년대장 작성시간24.04.23 진짜 잘생겼네요 요즘 시대에 플레이하셨으면 인기 진짜 많을거 같네요!
  • 답댓글 작성자 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4.23 그렇죠. 저 당시만 해도 혼혈인들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고 보는 눈도 곱지 않았을 때입니다. 미군에게 몸을 팔던 여성들로부터 출생하는 경우가 많았었고요. 그들 면전에 대놓고 '튀기'라고 놀리던 시절이었죠. 그런데도 인기가 하늘을 찔렀는데... 지금 뛰었다면 인기 진짜 많았을 겁니다.
  • 작성자 SenesQ 작성시간24.04.24 덕분에 귀한 자료 잘 봤습니다. 가끔 회자되는 무티에추 선수는 야오밍 같은? 그런 위상이었나보네요. 아 근데 우리 (후웨이동 덕분에) 야오밍은 이겼었네요? ㅎㅎ
  • 답댓글 작성자 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4.24 당시엔 위상이 컸죠. 238센티였다는 말도 있었고... 적어도 225센티는 족히 넘었던 선수였고, 행동은 굼떴지만 하체가 튼튼해서 골밑에선 막강했습니다.

    한국도 무티에추의 중공을 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딱 한 번 이긴 적이 있습니다. 그 경기가 제가 알기론, 70년대 통틀어 유일하게 한국이 중공을 이긴 경기였습니다. 하지만 결승에서 아시아 국가라곤 할 수 없었던 이스라엘에게 패배했죠.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 kazuya 작성시간24.04.24 예전 박사님의 게시물을 통해서도 접했지만
    그 자존심 강한 허재가 롤모델로 꼽을 정도로 신선우 감독님께서 그렇게 대단한 선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뛰어난 피딩 능력을 바탕으로 한 올어라운드 플레이어에 높은 BQ, 투지까지 갖춘...
    부상이 심하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부상 전의 플레이 모습이 무척 궁금합니다ㅎㅎ
    박사님의 귀중한 게시물을 보면서 느낀게 요새 일부에서 예전 레전드들에 대한 평가가 다소 박해진거 같아 안타깝습니다.
    시대가 발전한 만큼 당연히 신체적, 기술적, 환경적으로 봐도
    현 세대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예전 선수들보다 우수해진 건 맞지만
    예전 레전드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코트에서 멋진 모습들을 보여줬는데 말입니다.
    귀중한 자료 너무감사 드리고 멀리서나마 박사님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 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 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4.24 무릎부상 당하기 전의 신선우 선수는 허재와 빼박이었습니다. 허재가 더 나은 건 중장거리슛과 빠른 드리블 정도였고요. 리바운드나 수비력은 신선우가 더 나았죠.

    센터로서 신장이 작다보니, 1미터에 육박하는 점프를 너무 자주 하다가 무릎연골이 다 닳아 없어지다시피 했지만, 82년 아시안 게임 중공과의 결승전을 보시면 점프 없이도 경기 잘 풀어나갔죠.

    예전 선수들을 논할 땐, 당시의 열악한 환경 등을 감안해 평가하는 게 옳습니다. 요즘 같이 관리받았으면 무릎 건강도 훨씬 더 잘 유지될 수 있었을 거예요.

    멀리서도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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