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놓지 못하는 시어머니, 며느리를 경쟁자로 보는 심리

작성자무명자|작성시간25.11.16|조회수1,348 목록 댓글 5

 

 

 

 

 

 

 

 

 

 

 

한국 사회의 주요 갈등 레파토리 중 하나인 고부 갈등.

 

시어머니 vs 며느리의 대립 구도와

그 사이에 껴서 이도저도 못하는 아들(&남편)이 합주하는 이 비극적 심포니에서

이 모든 갈등을 지휘하는 중심축은 누구일까?

 

바로, "특정 유형"의 시어머니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엄마가 장성한 아들의 결혼 생활에까지 개입하려는 시어머니가 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아들은 그러한 어머니의 개입에 전전긍긍하며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못하는 걸까?

 

 

 

 

 

 

 

인에이블러 (Enabler)

 

 

 

 

 

 

인에이블러는 친절을 베푼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인류애를 기반으로 하는 친절이 아니다. 인에이블러가 행하는 배려 행동의 기반에는 바로 통제에 대한 욕구가 숨어 있다. 관계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 이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창출하고, 관계에서 주도적 위치를 점함으로써 "통제력의 획득"이라는 무의식적 소망을 실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배려와 도움이라는 것은,

그 수혜자가 기꺼이 바라고 고마워해야지만 빛을 발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변에서 원하지 않는데도 계속 뭔가를 해 주려고 하는 사람들.

 

난 집에서 밥을 안 해먹는데,

반찬을 만들어 왔으니 사양치 말고 받으라며 매번 반찬을 내미는 직장 동료.

 

항상 내 주위를 맴돌며,

필요한 거 없냐, 도와줄 거 없냐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직장 선배 등등.

 

물론 이러한 배려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접근이 내 영역을 침범하려는 시도처럼 느껴지면서

매우 신경 쓰이고 불편감을 유발시키는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즉, 누군가에게는 인에이블러의 친절이 오히려 과도한 개입이나 위협처럼 느껴지는 것.

 

 

 

 

 

 

다 자란 성인의 입장에서는 누군가의 일방적 호의가 당연히 불편한 일일 수 있다. 따라서, 좋게좋게 거절하거나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방식으로 그러한 접근을 차단할 수 있다. 문제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존재들, 즉, 아이에게 향하는 인에이블러 부모들의 왜곡된 사랑이다. 사실 인에이블러 본인조차도 내 사랑이 통제력의 획득이라는 왜곡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중요한 존재가 됨으로써 이 관계를 통제하고 싶다는 명제는 의식적 생각이 아니라 무의식적 소망에 가깝기 때문. 인에이블러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를 향한 자신의 지극정성을 보며 이 모든 건 숭고한 사랑과 자기희생의 결과라고 스스로 포장하기 쉽다. 즉, 이들에게 사랑이란, 끊임없는 개입과 보살핌, 자기희생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왜곡된 형태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이다.

 

 

 

 

 

 

마마보이나 파파걸은 인에이블러 부모의 개입으로 만들어집니다.

 

설혹, 마마보이나 파파걸까지는 아니라 해도,

이들이 장성하여 결혼하게 되면, 여전히 인에이블러 부모의 슬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죠.

 

인에이블러 엄마가 아들을 애지중지 키웠다고 가정해 봅시다.

 

누가 봐도 지극정성으로 케어했기 때문에,

아들은 그러한 엄마의 품이 갑갑함과 동시에 

그래도 내가 한없이 사랑을 받은 존재임은 틀림없다는 생각이 각인됐겠죠.

 

인에이블러들의 무의식은

한없는 보살핌으로 완성시킨 최측근과의 유대감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평가합니다.

 

따라서, 장성한 아들이 내 슬하를 떠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려 할 때,

인에이블러 엄마는 심각한 정체성 위협을 느끼게 돼요. 

 

내 자기가치감을 지탱하고 있던 중요한 관계가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으로 훼손되고 망가진다고 느끼는 거죠. 

 

내가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 너에게 주긴 아까워!

 

며느리를 향한 시어머니의 질투.

 

원래 질투란 나에게 향하던 관심이 다른 사람에게 나눠질 때 비롯되는 공격적 감정입니다. 

어떡해서든지 다른 사람에게 나눠질 관심을 나에게 붙잡아두고 싶은 것.

 

이러한 공격적 감정이 며느리를 향하게 될 때,

바야흐로 한국 시월드의 매서운 시집살이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에이블러 엄마는 지극정성으로 키운 아들이 날 떠나 다른 보금자리로 향하는 데서 위협을 느낀다. 최측근과의 유대감에서 자존감을 챙기던 사람이, 그 유대감이 약화될 수 있음을 직감할 때 위협을 느끼게 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리이다. 따라서 질투라는 자기방어기제가 발동, 며느리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각종 견제가 쏟아지게 되는 것이다. 아들은 중간에서 어머니가 왜 저러나 싶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굉장히 난감해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지극정성으로 자신을 키웠다는 걸 알기에, 그러한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왜곡되었을지언정 사랑은 사랑이기에, 그러한 사랑을 배신하는 행위 자체가 아들에겐 불효막심한 금기처럼 여겨진달까? 이성의 영역에서는 엄마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감성의 영역에서는 이제까지 자신을 위해 불철주야 희생해 온 엄마에게 차마 상처를 줄 수 없는 것이다.

 

 

 

 

 

 

지극정성으로 아들을 키운 "인에이블러" 엄마

시어머니의 이해 못할 질투심에 경악함을 느끼는 며느리

어머니의 왜곡된 사랑을 배신할 수 없어 이도저도 못하는 아들

 

그렇다면, 인에이블러들이 관계에 집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심리적 기제란 무엇일까?

 


① 관계의존적 자존감
→ 최측근과의 유대감이 어떠한가가 내 가치의 가장 중요한 평가 잣대가 됨

※ 관계에서 내가 중요한 역할(공헌)을 한다고 믿을 수록 자존감이 상승
보살핌의 본질이 인류애보다는 "자기애" 쪽에 더 가까움


② 구원자 정체성 
→ 나 없인 아무 것도 안 돼, 결국 내가 다 해결해야 해 식의 신념

※ 어린 시절부터 가족 문제에서 해결사 역할을 맡아 왔거나,
감정적 돌봄을 담당해 온 경험이 반복되면,
"나는 돌보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굳어질 수 있음

③ 자기 회피
→ 관계에 몰입하면, 자기 자신의 문제를 마주하지 않아도 됨

※ 커리어가 끊겨 자아실현에서 멀어진 엄마가
자녀나 남편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자신의 현실에서 도피함

④ 왜곡된 사랑관
→ 보살핌과 개입, 자기희생이 곧 사랑이라고 믿음

※ "사랑은 곧 희생이야"
"내 자식이 상처받지 않도록 내가 모든 걸 다 해 줄거야".
이러한 신념으로 인해, 상대의 성장을 가로막는 행동을 하면서도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함

 

 

 

 

 

 

자아는 대체될 수 있는 게 아니다. 특히, 자아를 누군가와의 관계로 대체할 경우,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에 내 자아의 향방이 매번 출렁이게 된다. 타인은 언제나 비통제요인에 해당한다. 당연하게도 자녀 또한 타인이다. 언젠간 내 슬하를 떠나 내 통제 영역의 저 쪽 끝으로 사라져버릴 존재에게, 여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갖는다면 그 말로는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노자는 말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흐르는 물처럼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타인을 통제할 수 있고, 관계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버리는 순간, 물은 한없이 고여 곧 썩어버리고 말 것이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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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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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V5 밥수라 | 작성시간 25.11.17 저의 경우랑 거의 90% 일치합니다. 다큰 아들을 통제?하려는 어머니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답댓글 작성자무명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11.29 감정적으로 만족스러울만한 정답지는 존재하지 않나 싶습니다.
    어머니의 감정을 생각하자면, 아들이 참고 살아야 하고, 아들의 감정을 생각하자면, 어머니에게 상처를 줘야 하니까요.
    저는 양 쪽 모두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해서 뭐가 더 나은 방안인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아내와 어머니가 반목하고 있다면, 나+아내+아이들 > 어머니로 부등호가 기울게 되므로,
    현실적으로는 어머니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나은 방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V5 밥수라 | 작성시간 25.12.15 무명자 참고할 수 있는 답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파란미소 | 작성시간 25.11.18 통제하려는 부모가 나르시시스트성향인 경우도 많을까요?
  • 답댓글 작성자무명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11.29 물론입니다. 에코이스트뿐만 아니라 나르시시스트 부모들도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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