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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동 사랑방

"사요나라"에 깃든 일본인의 생사관

작성자위험한 탱고|작성시간10.07.04|조회수267 목록 댓글 3

나는 평소 중국인이나 한국인의 인생관보다는 일본인의 인생관에

근접한 인생관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요,

최근 소설을 쓰다가 일본인이 사용하는 사요나라, 라는 말을 쓸 일이 있어서

헤어짐의 의식에 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 말에 대해 자세히 쓰인 책을 찾게 되었네요.

 

<일본인은 왜 헤어질 때 사요나라라고 말할까>라는 책입니다.

사요나라,라는 말의 어원부터 쓰임, 그 안에 깃든 운명에 대한, 더 나아가 무상한 인생에 대한

인식이 깃든 말이라는 것을 죽 풀어놓은 글입니다.

 

사요나라의 어원은, 사라바, 라는 말로써 앞에 일어나는 일을 받아 뒤에 일어나는 일과 연결해주는

그러면, 그렇다면, 그럼과 같은 의미의 접속사랍니다.

사요나라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렇다면, 그럼' 과 또 하나는 '꼭 그래야만 한다면'입니다.

 

이 설명 하나만으로도 사요나라에 담긴 뜻이 분명해지는데 그건 바로,

지금까지의 일이 끝났으니 이제부터는 새로운 일에 맞서겠다는,

즉 앞의 사태를 받아들이고 뒤이어 행동이나 결의를 하겠다는 뜻입니다.

사요나라가 대체로 죽음이나 긴 이별 등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쓰여지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전국시대에 여성이 살아가는 법이라는 글이 실려 있습니다.

 

"전국시대 여성의 매력은 그녀가 가진 기품에 있다.

그러나 그 기품이란 가문이나 혈통의 문제가 아니라 난관에 부짖쳤을 때 보이는 자세, 태도와 관련이 있다.

난관에 부딪쳤을 때 흐물흐물 무너져내리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해서 미리채를 흩날리며 소리를 지르는 모습도 아니다. 등줄기를 꼿꼿하게 세우고 사태를 마주하는 자세이다.

그런 자세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을 나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점은,

살아온 시점까지의 인생을 디딤돌로 삼아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다만 전국시대의 여성뿐만이 아니라 일본인 특유의 사생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무라이라든지 위정자들이라든지, 거의 모든 일본인들의 언어와 일상에 스며 있는 것이겠죠.

 

"무사도에서보자면 무사가 가장 중시했던 명예나 수치심 같은 윤리는 철저히 이 세상의 모습이며,

일반적으로 무사는 내세의 삶을 정열적으로 갈구하지 않았다.

오로지 이 세상의 공동체 속에서 살다가 가는 것이 '죽음'의 실체적인 이미지다.

할복자살도 어디까지나 남겨진 사람들과 공동체를 향해 하는 것이지 미래에 그 시선을 두지 않는다."

 

"오늘(삶)이라는 이편 세계의 확인, 집약에는 내일(죽음, 사후)라고 하는 저편 세계로의 한 걸음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고,

그것은 혼동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제각기 절대적이다.

장작은 장작이고 재는 재이며 각각 절대적 의미와 위치를 가진다. 이는 재는 이후의 것이고, 장작으니 이전의 것이라고 고집해서는 안된다"는 정토교 사상가 도겐의 말도 실려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일본인이 죽음에 대처하는 태도란 감정적으로는 우주의 질서로,

지적으로는 자연의 질서로 이해하며, 체념하고 받아들임을 뜻한다.

그 배경이 죽음과 일상생활의 단절, 다시 말해 죽임이라는 잔혹함으로 빚어지는

극적인 비일상성을 강조하지 않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사요나라라는 말에 대해  앤 린드버그라는 미국의 여성비행기조종사이며 기행작가가 쓴 글도 있습니다.

 

-요코하마의 항구에서 서로 헤어지는 사람들 간의 외마디 외침이 배와 해안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입니다.

 

-사요나라의 사전적인 뜻은 "꼭 그래야만 한다면"이다.

지금까지 들은 수많은 이별의 말중 이처럼 아름다운 것이 과연 있을까?

Auf Wiedersehen, Au revoir, Till we meet again처럼

이별의 아픔을 다시 만날 희망으로 희석서키려는 시도를 사요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눈을 깜박거리며 씩씩하게 참아내면서 말하는 Farewell처럼 헤어짐의 쓴맛을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일본인은 이별을 불가피한 상황으로 받아들여 헤어지기 전에 '꼭 그래야 한다면'을 뜻하는 말인 '사요나라'를 말한다.

그 순간 자체가 지닌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고,

이별 그 자체에 대해 아무 언급도 없으며, 그 순간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감정이 불처럼 타오르기보다 조용히 그을려 있다. 모든 감정이 잿불처럼 여리게 남아있다.

 

 

이런 이별의 의식은

삶의 우연성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우리의 존재가 우연한 존재라는 인식이지요.

결락과 부정을 포함한 존재라는 것, 없어도 무방한 일이 일어나는 것, 즉 존재해도 이상하지 않으나 존재하지 않는 것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라는 뜻이며 우리는 그러한 존재로서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답니다.

우연한 해후는 당연한 것이면서도 이별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잇으며

애당초 상대가 없을 수도 있는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인 것이지요.

 

이렇게 말하면 너무 허무한가요? 우리 존재의 의미가 너무 약화되나요?

그러나 바로 이런 해후의 우연성에 의해 긴장이 형성됩니다.

이렇게 허약한 인연 때문에 자기와 상대간의 자유로운 선택과 더불어 애달픈 긴장감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상대와 간단하게 하나가 되지 않는다는 긴장감이야 말로

언제나 명징한 자세를 요구하게 하지요.

   

삶, 자연, 인간의 만남과 헤어짐 등 기본적인 자세가 제가 가진 생각과 흡사해서 옮겨보았습니다.

이 우연한 존재가 겪는 삶에서의 슬픔과 고통과 즐거움, 희열 등이 그리 대단치 않다고,

그리고 내가 살아온 그 과정은 나로서는 충분한 것이었다고, (사실 속내는 두번 다시 인생이란 것을 살고 싶지 않다고)

어리광이나 의타심이나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그리고 기꺼이 사요나라, 라고 말하고 헤어질 수 있다면, 나는 정말 행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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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無何翁 | 작성시간 10.07.05 말하자면 사요나라는 'If you should go, I'll let you go.' 란 말이겠군요. 깔끔하네요.
    단칼에 베어버리는 일본인들의 군더더기 없는 깨끗함을 담고 있는 것 같긴한데,
    왠지 여운은 안 느껴집니다. 붙들고 늘어지고 울고 불고 하는...
  • 작성자위험한 탱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07.05 바로 그겁니다. 붙들고 늘어지고 울고불고 하는 게 없죠.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고개를 들면 냉정을 되찾고 의연히 걸어갑니다. 저는 이것이 훨신 여운있다고 느껴지는뎅...삶은 생명이 최초 발생한 것과 같이 우연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우연이란 게 수많은 우연의 동시발생적 만남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 작성자無何翁 | 작성시간 10.07.05 확실히 다르군요. 어느 유학생이 일본 갔는데, 일본 학생들이 반가이 마중을 나왔더래요. 한국학생은 의레 멀뚱했고...몇 년 있다 한국학생 돌아오는데, 다시 그 학생들이 공항 배웅나왔는데, 한국 학생은 그간 정들어서 눈물을 흘리며 작별을 아쉬워했는데, 일본 학생들은 마중나왔을 때와 똑같은 밝은 얼굴로 잘가라고 말하더래요. 눈물을 흘리는 한국학생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며... 좋고 나쁘골 떠나서 확실이 두 나라 사람들 사이에는 정서적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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