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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참봉의 별 밤

찬도루묵가

작성자박참봉|작성시간18.01.25|조회수65 목록 댓글 3

도루묵가

 

 

매일 출근하는 것도 모자라 마수걸이 경쟁하는 충성도 높은 고객들. 도무지 알 수 없는 도루묵 맛처럼 매력이라곤 왼쪽 콧구멍 아래 좁쌀만 한 까만 점뿐인 주모, 그럼에도 하루건너 곗날이자 장날이다.

 

하필 초라하기 짝이 없는 행색의 도루묵일까. 생선이라곤 하지만, 손바닥만 한 크기에 내장과 대가리를 빼면 입으로 들어갈 몫이 별로 없다. 해작거리다 보면 살점이 낱낱이 떨어져 빈 젓가락만 빨아 서러울 때도 있다. 배때기가 볼록 튀어나온 알배기가 걸리면 다행이지만, 일 년에 한 달 남짓뿐이니 어물전 꼴뚜기와 그놈이 그놈이다.

 

콤콤하게 익어가는 생선 냄새가 술통의 막걸리 냄새와 뒤섞여 공간에 먼지를 헤집는다. 누렇게 뜬 벽지 사이에 줄지어 걸린 사진들이 네놈 솜병아리 시절부터 막걸리를 팔던 곳이라고 일갈한다. 조선시대 미수眉叟 허목許穆 선생도 보인다. 선생이 사악한 영혼을 물리치기 위해 삼척에 세운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가 망망대해에서 태어난 도루묵을 따라와 술통 앞에 붙었다. 술에 스며드는 잡귀를 물리치는 것은 물론, 취객들 감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초라한 행색의 서러움은 솥뚜껑에 내장을 드러내며 익어가는 도루묵뿐만 아니다. 포대화상을 닮은 노름꾼의 젊은 날의 치기는 한낱 일장춘몽, 탈탈 먼지만 날리는 작금의 주머니 사정은 볏술을 사정하는 나락을 맛보고 있다. 하루 품삯을 받지 못해 화를 삭이며 뼈째 도루묵을 씹는 막노동꾼의 눈은 동해바다 성난 파도 같지만, 서러움의 포말도 보인다. 술과 요기를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막걸리 한 잔에 두 마리씩 강요하는 민대가리의 너덜너덜한 풍취는 가히 혼자 보기 아깝다. 우러러 부모를 섬기거나 처자를 애써 기르지 않았음에도 이태백의 정취만 따라하니 애처롭기 짝이 없지만,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속내의 서러움은 스스로 도루묵이다.

 

노쇠한 몸으로 가족의 울타리를 안간힘으로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인생의 후반기를 종교 교리에 빠져 뒤늦은 득도(?)의 경지를 막걸리에 도루묵을 벗 삼아 향유하고 있는 퇴직한 은행가도 있고, 50대 중반 사회에서 내쳐진 후 10년 강산을 뛰어넘어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단골도 있다. 이들은 꿈과 휴식이 포개진 우아한 결핍을 즐기는데, 퇴근 시간이면 석양에 맞서 휘적휘적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광낸 구두만큼이나 뺀질뺀질한 춤꾼, 온 종일 저 혼자 있어도 내내 시끄러운 떠버리, 고드름장아찌 같은 전직 세무장이, 이 모두가 있으면 거슬리고, 없으면 허전한 인사들이다. 환쟁이, 산쟁이, 기자, 교수, 향교 학동, 딴따라, 글쟁이는 덤이다.

 

어쩌다 주워들은 말로 비분강개하며 오류투성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부류도 있다. 마음은 음탕한 소굴에 두고서 세 치 혀로 요리조리 뒤집어 희롱하는 인간에게 비하면 차라리 낫다. 탁자에서 배를 드러낸 채 실소하는 도루묵은 안중에도 없다. 2500년 세월도 거침없이 거스른다. 복잡다단한 희망을 치열하게 고뇌해 선험적이고 형이상학적 이상을 세련된 논리로 제시한 붓다와 소크라테스, 공자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대화 도중 얼굴만 잠깐 비추다 사라지는 관음보살과 최제우는 카메오다.

 

서툰 장인 벗장이 잔칫날도 있다. 짧은 터수를 자랑하며 나날이 진화한다. 우크렐레, 오카리나, 팬플루트 연주라도 펼치면 술렁이던 객석은 물론 술잔이 침묵하고, 가슴 속 먼 기억을 헤집는다. 때론 장구를 곁들인 가락이라도 늘어지는 날이면 도로묵 살점이 낱알로 들썩이고, 놋그릇의 막걸리가 파도치며 춤춘다. 공연이 끝나면 문득 고독이 술을 따르는데, 긴 여운은 새롭게 목을 축여도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안팎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 같이 쏟아낸 말의 파편들이 술에 뒤섞여 이리저리 허공에서 비틀거리다 별 무게를 얻지 못하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마치 절제의 미학을 실천하듯 붉그데데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둥지로 향하는 뒷모습에 세월의 단호함이 걸망처럼 걸려 흔들린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서릿바람이 휘감는 삶은 언제 어느 때 긴 겨울잠에 들지 모르는 처지지만, 험한 날을 택해 힘찬 꼬리 짓으로 수면에서 알을 낳는 도루묵의 용기를 품고 있다.

 

대대로 이어온 한민족의 빛, 노르스름한 놋그릇에 담긴 신비의 비밀과 용감한 도루묵의 기상을 알려고 하는 이 없지만, 그 혜택은 톡톡히 누리고 있으니, 은혜라면 이 집 이마에 붙어서 잔잔한 미소로 내려다보고 있는 시어머니 덕이다.

그 옛날 은어銀魚로 팔자가 수직상승하는가 싶더니 도로 묵어로 부르라!”던 어리바리한 임금님께 받은 말짱 도루묵충격의 서러움은 이 집으로 인해 어느 정도 보상이 된 셈이다.

 

아서라, 말짱 꼴뚜기는 면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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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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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유현 | 작성시간 18.01.25 은어라고 부르시오.
  • 작성자추임새 | 작성시간 18.01.26 재치있고 화려한 글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
    아직 어리던 70년초, 그때 도루묵이 대풍였는지 시장 바닥에 쌓아 놓고 함지나 양동이 등에 퍼담아주며 팔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도루묵조림을 먹을 때면 뱃속에 든 약간은 단단했던 알을 씹던 기억도 함께요~~ㅎㅎ
  • 작성자박참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1.26 찬바람 몰아치고 귓볼이 빨갛게 얼어도 두손 호호 부는것도 잊은채 거센파도 기다렸던 마음은 바닷가에 밀려온 도루묵알 주어담는 날는 횡재한 날이였습니다.

    연탄불에 삶아서 오독오독 씹다보면 입안에서 질긴 껍질 터트리고 나오는 그 구수한 맛에 내주머니 가득 두루묵 알로 채워진 날은 날리는 눈보라도 축복이였습니다. (동해가 고향인 어느 분의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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