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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고, 잃고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

작성자고르비|작성시간26.01.06|조회수261 목록 댓글 6

"너는 늙어 봤나?
나는 젊어 봤다."
"젊음이 네가 잘해서 받은 상이
아니듯이 늙음도 내가 잘못해서
받는 벌이 아니다."
 
위는 누가 한 말인지 모르지만
어느 책의 표제에서 봤던 것
으로 기억되고, 밑의 말은
박범신이 그의 소설 은교에서
한 말이다. 둘 다 늙음의 자조
섞인 항변의 말이다.

젊음도 가지가지, 늙음도 천태
만상이다. 늙으면 그 곱고 윤이
나던 피부도 생기를 잃고 거칠
거칠한 주름으로 늘어지고,
초롱한던 눈도 흐릿한 빛으로
변한다. 총기도 사라진다.
사람이름도 고유명사도 도대체가
생각이나지 않아 그 전날
그렇게도 알려고 했던 말이 하룻
밤 자고 난 뒤에야 능청스럽게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슬그머니
나타난다. 그나마 덜 변하는 게
목소린 것 같다. 목소리는 변하
더라도 부드럽고 따스한 톤으로
변해 그런 노래도 아름답고 은은
하게 느껴져 그래도 위안이 된다.
늙는다는 것
모두가 처음 경험하는 낯선 그
무엇이다. 살아오면서 부모나
친척들과 주위 사람들의
수없는 늙음을 보아왔지만
피상적으로 겉 모습만 봤지 정작
그 적나라한 속살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어떻게 늙어가야할 지
몰라 속절없이 허둥댄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늙어가면서 나는 자주 화가 난다.
늙어가면서 나는 자주 음흉
스러워진다. 늙어가면서 나는
자주 삐진다. 늙어가면서 나는
자주 교활해진다. 늙어가면서
나는 자주 한탄하다.
늙어가면서 나는 자주 감사를
잊어버린다.
늙어가면서 나는 겉과 속이
다르다. 늙음의 이런 것들이
나를 슬프게 하고 괴롭게 한다.
부드럽고 품위있고 올바르게 늙어
가기를 소망하지만 내 늙은 몸과
마음이 제어하기에는 너무 벅찬
강적들이다. 진즉 알았더라면
늙기 전에 마음 챙김이나 명상
으로 연습이라도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늙어서의
후회는 하나마나하다.
그 중에서 나를 가장 참기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음흉함과 교활함,
감사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 음흉함과 교활함이 천박스러운
모습으로 눈에 띠게 나타나면
쉬이 알아보려만 대개는 부드
럽고 태연하게, 때로는 웃음의
모습으로 나타나 분간을
하기 어렵게 한다.
그러나 감사함을 잊어버릴 때는
뻔뻔스럽기 짝이 없다.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이 신의
선물이라는 감사함 말이다.

 
새해 들어 또 다짐을 한다.
화를 낼 때는 화를 내어라.
분노할 때는 분노하라.
그러나 분칠을 해서 위장하거나
음흉하거나 교활하지는 마라.
적어도 나 자신만을 위한 이기
적인 거짓말만은 하지 말고
곱게 늙어가자. 생각처럼, 다짐
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넘어지고 또 넘어
지더라도  아름다운 늙음을 위해
기도하고 애써나가자.
아직도 가야할 머나먼 길이다.
그 길 다가기 전에 생명이 끝난다
해도 가치 있는 일이다.
공기의 소중함을, 신의 신성함을
잃어 버리고 살아왔다.
흔하고 공짜여서 그 소중함 잊고,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어서
신성함을 모르고 살아왔다.
이제 세상 끝나는 날 언제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살기에는 살
날이 너무 적게 남았다.
삶이 오직 모를 뿐이라 해도,
아무리 백세시대, 120세까지
살 수 있다고 목청높혀 외쳐도

그것은 진실일 것이다.
 
살아오면서 부모, 친척, 친구 등
많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베품을
받았다. 갚은 것은 너무 적었으니
아무래도 이 생에서 내 삶은
빚쟁이의 삶이라는 굴레를 벗어
나는  것은 가망이 없어 보인다.
그러기에 나는 베품의 마음이 큰
사람들, 부지런한 사람들을
그렇게도 존경하고 부러워하면서도
가끔 질시했던 것 같다.
그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늙어가는 것 또한 내 늙음의 삶의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아무래도 부모님이
가장 마음 아파, 소년기 끝 무렵에
이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평생의 가이없는 그리움과
원통함과  한스러움, 비교적
장수하신 아버지에 대한 송구함에
자주 눈시울이 붉어지는 까닭은 비단
내가 너무 늙은 탓만은 아닐 것
이다. 베푼 은혜에 하나도 갚지
못한 분이 바로 어머니, 자장면
조차 드셔 보시지 못하고 너무도
일찍 떠나신 분이 어머니이기에
자주 눈시울이 붉어진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
에게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또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내가 걸림돌이었던  분들, 내게
디딤돌이 되어주신 분들에게
미안함과 감사하는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내 삶 결코 헛
딘 것만은 아닐 것이다.

 
자연과 감사만이 노년의 삶을
평온하게 해주는 것 같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말이 아니라 늙음은 우리를
자연으로 돌아가게 한다.
언제부턴가 감사할 게 생각날
때마다 그걸 메모해두는 습관이
생겼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삶
에서 감사할 게 많다는 것을
알지만 내 마음의 눈으로 그걸
찾아 내기에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어쩌다가 찾아낸다고
해도 쉬이 혼탁해지는 마음의
눈은 그걸 보지 못했다.
부득이 감사할 것을 발견하고
적어두고 자주 들여다 보는 수
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한 겨울 일주일을 산과 냇물과
하늘만 보이는 산골의 자연
속에서 거칠어지고 앙칼진
마음을 정화하고 왔다.
지난 여름  땀흘린 밭을 찿았다.
구슬 땀을 흘리시며 한치 흔들림
없이 잡초를 뽑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신성을 느꼈다.
어쩌다 함께 농사일을 할 때
느꼈던 티없는 느낌 그대로였다.
잡초를 뽑고 흙을 어루만지는
일은 마음을 살피는 인내와
사랑이 필요한 명상이다.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은
우리의 마음에서 미움, 성냄,
분노, 질시와 질투가 차지한
자리를 소박함과 겸허함으로
채워 우리를 평온케 한다.
자연은 타인과 나를 시도때도
없이  괴롭히던 맺힌 감정과 꼬인
마음에서 나를 해방시켜 준다.

지금 마음이 사람에 대한
실망과 미움으로 맺히고
꼬여 평화를 잃어버린 분들이
있으면 자연 속으로 침잠해보시라.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리며 살 수 잇다는 것은
신의 큰 선물이다.
봄, 여름, 가을과는 아주 다른
겨울의 고독과 쓸쓸함과
겸허함의 아름다움을 자연 속에
묻혀 누려 보시라.
봄, 여름, 가을에 풍요로움과
풍성함의 아름다움이 있다면
겨울에는 비움의, 티없는 마음의
고요함의 아름다움이 있다.

운좋으면 흰눈 맞으며
슈베르트의 가곡 겨울나그네를
들으며 겨울 나그네가 되어 눈
덮힌 설원을 걸으며 감정의 사
치도 누려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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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고르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1.06 저도
    부지런하고 베푸는 마음
    큰 수리산님 알게 되어 기쁩니다.

    부지런함과 베푸는 마음이
    인간의 가장 빛나는 자질
    이라는 것을 늙어서야
    알게 되더군요.

    세월은 가고 모든 건
    변하지요.
    혼자 몸과 마음 가누기도
    버거워지니까요.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부르는 게 범보다 더
    무서웠던 기나긴 시절 한이
    맺혀 가로늦게 나대지요.

    저도 전립선 비대증으로
    오랫동안 불편을 겪어오는데 다니던 개인
    병원 의사가 하도 보채서
    집 가까이 있는 대학병원으로 옮겨 3개월
    주기로 진료받디가 시골로
    이사했다고 했더니 6개월치를 처방해주는 겁니다.
    그래서 그 의사분을 감사목록에 올리고 마음
    거칠어지면 드다보곤하지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소리꾼(이원경) | 작성시간 26.01.07 고르님 지나고 나면 모두가 그리운것 쁜인데
    나도 1월 1일 아침에 집사람이 하나니에 부름
    받아 하늘 나라로 영영 떠나는 바랍에 이제
    정신이 들어 댓글을 딸고 있네요 고르비님 늘
    건강 하세요.
  • 답댓글 작성자고르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1.07 아! 사모님께서 하늘나라로
    가셨군요.
    명복을 빕니다.
    선배님 팔순 때 사진으로
    뵈었을 때 단아히고 건강하신 모습 떠오릅니다.

    사모님이 못다한 삶까지
    선배님께서 건강하게
    사시기를 하늘 나라에서
    염원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건승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 첫날 큰 슬픔을
    맞이하신 선배님께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 작성자트레비스 | 작성시간 26.01.07 어쩌면 이리도 글로 마음을 잘 표현하시나요?

    훌륭한 친구를 알게되어 흐뭇한 기분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고르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1.08 트레비스친
    최고의 명문대 출신 친구에게서
    칭찬을 들으니 기쁩니다.
    지 멋대로 지껄이는 글인데
    늙어가면서 힘내 살라는
    격려로 생각할게요.

    우리 새해에도
    건강하고 올바른 정신으로
    때로는 분노하고 또 때로는
    고뇌하면서도 아름답게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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