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디 가시나야! 왜 멀쩡한 옷을 놔두고 쥐가 뜯어먹은 옷을 입고 싸돌아 다니노!
거 뭐고.! 얼룩덜룩 굉이가 오줌을 싼 기가! 낡아서 그런 기가! "
" 아부지는...일부러 탈색도 하고 쏭당질로 헌 옷처럼 입고 다녀야 멋이 있는 줄 왜 모른데요!
새옷보다 이 옷이 더 비싸단 말입니더..."
" 썩을...뭔놈의 세상이 요로코롬 변했단 말이고...에잉..."
평소엔 눈에 걸리지 않던 여식의 옷차림에 오늘따라 트집을 잡는 것은
여식이 미워서도 아니고, 삐다닥 종잡을 수 없이 변해버린 세태에 적개심을 품고
대들자는 것도 아니었다.
곱살스레 밭일에만 매달려 항시 이쁜이 댁내를 두었다고
마을사람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던 여편네쟁이가
최근 들어 허구헌날 읍내를 들락거리는 폼생으로 미루어보아
별별 생각을 다하게 만드는 통에 울화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그저 맵시나 뽐내고 헐렁배기 가재도구나 바꿀 심사려니 하다가도
조반을 서둘러 마치고 여식에게 설겆이를 맡기는 폼이
춤바람이 나도 단단히 났을 거란 생각을 안가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 하늘이 엄마!~ 아침 다했으면 어여 가자구~"
" 어~ 왔어?!. 그래 가자구...어제 봐둔 그 밥솥이 아직 남아있을까?"
" 그럼 있겠지! 떨어지면 또 채워놓겠지 뭐. ...어~ 안녕하세요? 하늘이 아빠!""
" 아...예 예 예. 아침부터 어딜 가시게요?"
" 예. 가을걷이도 얼추 끝났고해서 장도 볼겸 읍내나 다녀오게요 하늘이 엄마랑..."
읍내를 나갔다가 온지 사흘 만이지만 뻔질나게 들락거린다고 생각한 하늘이 아빠.
무엇이 궁금했는지 낫가리 뒤를 어정이며 그 들의 동태를 살피던 중 인천댁에게 들키고 말았다.
인천댁은 도시에서 이 마을로 들어온지 6개월 남짓, 남편의 퇴직 후 서둘러 귀농을 한 인천댁
식구들은 마을에서 경계의 대상이었다. 도무지 농사일을 할만한 체구와 모습들이 아니었고,
나이들은 있었지만 겉으로는 여나문 살 씩은 적어보였기 때문이다. 척 봐도 농사일을 해본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경계심을 늦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인천댁은 하늘이 엄마와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십년은 젊어보였다.
게다가 눈꼬리의 잔잔한 미소에 싹싹한 말씨는 하늘이 아빠로하여금 열등감을 갖게 했다.
오히려 하늘이 엄마가 열등감을 보여야했지만 하늘이 아빠가 더 심술을 부렸던 것이다.
몸베를 주로 입고 활보하는 여편네쟁이를 생각하니 괜히 심술이 나는 것이었을까.
뻔질나게 읍내를 나다니는 여편네들이 못내 못마땅한지 하늘이 아빤,
잘 다녀오란 말도 죽상에 묻어버린 채 뒷곁으로 향한다.
다락논에 두엄도 부리고, 몇 그루의 사과나무 가지치기도 해야했지만 일이 잡히질 않는다.
여식도 설겆이를 마치고 읍내에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고 했으니 집에는 비실이 멍멍이와 둘 뿐이다.
심사가 뒤틀려 쇠스랑을 내동댕이 치고는 집안으로 들어가니 비실이가 꼬리를 살살 흔든다.
' 저것이 지금 약을 올리나?' 꼬일대로 꼬여 돌맹이를 걷어찬다.
' 왜 그러는 거냐?"며 비실이 멍멍이가 옆걸음질로 고개를 떨군 채 피해버린다.
' 들어오면 오늘은 취조를 해야지 도저히 안되겠어!' 혼잣말을 씹어삼키며 방으로 들어가는 김씨.
김씨는 사흘 전에 먹다가 만 소주 4홉들이를 한 번 흔들고는 금새 들이킨다. 그리고는 손가락, 인지를
'쩝!' 빨아 안주로 대신한다. 이내 이불 속으로 들어가 발가락이 나오도록 이불을 풀렁 뒤집어쓴다.
죽어도 손에 흙을 묻히게는 안한다며 데려온 하늘이 엄마, 연지와 곤지의 색시가 수줍게 피어나고
파르르 떨며 옷고름을 내맡겼던 첫날밤이 술기운과 이불 속의 온기와 함께 꿈 속으로 빠져든다.
***
" 여보! 일어나봐요 여보!"
" 음...누구야~? 어? 당신 언제 왔어? "
" 언제 오긴요. 지금 왔지. 그런데 웬 낮잠이예요? 어디 아파요?...아휴...술냄새...술 드셨어요?"
"으? 아 아 아니. 조금. 조금 먹었어."
김씨의 예상은 빗나갔다. 오후 늦어야 겨들어올 것이란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가도 말았다.
" 여보. 이 옷좀 입어보세요. 맞지 않으면 바꿔야하니까 한 번 입어봐요."
" 옷? 옷은 왜..."
" 당신 농한기 때는 좀 놀러도 다니고 그러세요. 맨날 일에만 파묻히니 쉬 늙어보이잖아요.
인천댁 아저씨만 보면 속이 편치 않단 말이예요."
서투른 몸짓으로 옷을 며미는 김씨, 하늘이 엄마가 매무새를 도와주니
고개를 좌우로 움직여 가랭이도 살피고, 손바닥을 곧게 펴 바지 주머니에도 찔러본다.
춤바람의 의심이 계면쩍은 웃음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 그런데 지난 번엔 어디를 갔다가 그렇게 늦게 왔었어?"
"엊그저께? 호호호. 그 날은 인천댁이 엔젤인가 뭔가하는 투자설명회에 같이 가보자고 해서
나갔었지. 벤처기업이 몇 년 있으면 주식시장에 올라간대나? 그러면 대박이 난다고 그러더라구.
인천댁이 돈이 조금 있나봐. 시골에 들어오니 생각보다 힘은 들고..."
한창 춤바람으로 가정파탄이 뉴스거리가 되던 때였다.
좁쌀태기같은 김씨는 여인들이 차려입고 읍내를 나가면 다 춤바람 난 여인들로밖에 보이질 않았었다.
그 생각은 이제 주식과 복부인들의 허세로 이어지고 있었다. 약간 남은 취기가 더욱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새로 장만해준 옷을 걸쳤다고는하나 시각을 넘나드는 상상의 날개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주식세계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 주식? 엔젤은 또 뭐하는 곳이야? "
" 하하하...나도 처음 가봤어. 모두가 허풍쟁이더라구. 돈으로 돈을 먹으라는 거드라구.
도박인 거야. 우리처럼 땅의 순수와 진실을 믿고 사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어."
"그래서?"
"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인천댁에게 내가 일침을 가했지. 샘밭에서 살려면 흙이 삶의 전부라는 것을
깨닫지 않는한 버티기 어려울 거라고...맞지? 내 말이..."
먹먹하고 어지럽고...김씨의 머리 위에서 천사가 날개를 펴고 서너바퀴를 돌 즈음
하늘이 엄마가 계속 말을 잇는다.
" 매일 일밖에 모르는 당신이 너무 불쌍한 거 있지! ...
에구야~ 옷이 딱 맞네...여보 어때요? 좋지 좋지?"
'''''''''''''''''
" 어이구 내 마누라~~~"
와락!
대 낮에 이 게 무슨 일이데?
이불 속이 따스하구먼
.
.
.
" 하늘이 엄마~~ 하늘이 엄마~~ 어? 그새 어딜 갔지? 어? 신발은 있는데...서방 신발도 있네?
밭에 있을 시간인데? 대낮에 뭐하는 거여 이것들이....하늘이 엄마~~아까 장 본 장바구니가 어딨지?
툇마루에 있구먼. 양파 꾸러미 하나는 내 껀데 자네 보따리에 들어갔어. 내꺼 꺼내 갈께~.
하늘이네 처마 밑엔
비실이 멍멍이만이 퇴상에 앉아 싱글벙글 땅바닥에 꼬리를 치고있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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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수줍은하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07.09 주위엔 감동을 주는 삶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경우 지금껏 사회면에 치중하며 살았던 것 같네요.
힘들지만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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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바다 작성시간 20.07.09 한편의 단편 소설의 내용속에
폭 빠졌어요
하늘이 엄마의 삶속에 행복이
가득 담겨져 있어요
오래 오래 행복으로
가득 채워 주세요~~♡ -
답댓글 작성자수줍은하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07.10 ^^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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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수줍은하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07.15 주위에는 깨우침을 주거나 감동을 주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기와 질투로 세월 속에 묻느니보다는 좀 더 알려서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읽어주심에 감사드리며
기쁨이 가득한 날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