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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성묘를 다녀 왔습니다

작성자청솔|작성시간24.04.30|조회수193 목록 댓글 14

묵은 성묘를 다녀 왔습니다

 

벌써 다녀왔어야할 성묘를 어제서야 겨우 다녀 왔습니다

그 동안 집사람의 척추협착증 시술 등

이런저런 궂은 일 들이 많았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제수 몇 가지와 꽃을 사 들고

쨍쨍 내리쬐는 햇볕에 에어컨까지 틀고

선글라스도 끼고 다녀 왔습니다

 

예전에는 이천가는 산업도로를 타고 가야했지만

지금은 여수대로라는 큰 길이 생겨 편리합니다

어제 받아온 팜프렛의 새 주소를 살펴보니

경기도 광주시 매산동으로 나옵니다

 

여수대로 초입에서 잠시 붐빈 거 말고는

쌩쌩 차를 달려 묘원에 도착합니다

성묘 온 차 들은 몇 대 안 됩니다

 

허리와 다리가 불편한 집사람

천천히 산 중턱의 묘소로 올라 갑니다

겨우 짐을 풀고 둘러보니 작은 흙더미가 있습니다

아마도 두더지가 땅을 판 듯합니다

 

다시 주차장까지 내려가서 차 트렁크에서

겨울 폭설기를 대비한 작은 야전삽을 챙깁니다

나이든 탓인지 한번 더 내려갔다 올라오니

다리가 조금 후둘거립니다

 

산신령에게 우선 한 잔 올린 후

차려간 음식을 차려놓고 부지런히 절을 합니다

79년에 아버님 돌아가신 후부터 했으니까

벌써 만으로 45년이나 됐습니다

 

어머님은 칠순을 드시고 96년에 돌아 가셨습니다

아버님보다 17년을 더 살다 가셨습니다

얼마 전에 새로 앞으로 5년치 관리비도 납부했습니다

 

초창기에는 단체버스를 예약해서

동작동 현충원 앞에서 모여 버스를 타고

어렵게 성묘를 다녔습니다

 

묘원입구 길도 제대로 닦여있지 않아서

명절이면 온통 교통경찰 들이 나서서 정리를 하고

동네 뒷길을 돌고 돌아서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어려운 성묘길을 다녔습니다

 

82년도에 처음 포니2 차를 몰게 되고

그 때부터는 쭉 내 차로 성묘를 다녔습니다

새로 산업도로가 뚫리고, 43번 국도가 포장되고

그렇게 년년이 도로사정이 좋아졌습니다

 

나중에는 형제들이 각자 차를 몰고

산소에서 만나기도 하고 함께 식당으로 옮겨

단체로 식사를 하기도 했지요

지금은 각자 사정이 생기고 해서 따로 다닙니다

요즘은 대를 물려 조카들이 차를 몰고 옵니다

 

묘소를 보더라도 많은 변천이 있었지요

초기에는 100% 매장이었고 흙으로 봉분을 만들었는데

요즘은 석관으로 장식을 하고 가족묘를 꾸밉니다

화장 후에 납골묘 형태로 모시는 것이지요

봉안묘라고 부르더라구요

 

우리 부모님 양 옆으로도 가족묘가 들어 섰습니다

오른쪽은 원래 부친묘였다가 몇 해 전에 바뀌었지요

아마도 모친이 돌아가신 후 바꾼 듯합니다

 

왼쪽은 예전 묘가 철거되더니 새로 가족묘가 들어섰습니다

젊은 남자의 묘였는데 사라지고 새 이웃이 들어 왔습니다

꽤 큰 돌로된 묘를 꾸미고 비석도 크게 세웠습니다

상대적으로 떼 입힌 우리 부모님 산소가 작아 보입니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을 피해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성묘를 마친 후 작별을 고했습니다

나름대로 마음 속에 품은 이런저런 바램을

돌아가신 부모님들께 빌고 왔지요

그러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제가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어려서부터 큰아버님댁에 다니며 지냈던 제사

절을 하면서 뭔가 작은 소원을 빌곤 했었습니다

이북에 남으신 할머님 제사는 할아버지 제사와 함께

어느 해부터인가 지내기 시작했었지요

 

지금은 큰아버님도 돌아가신지 오래 됐고

또 외아들인 사촌동생이 10년 전에 돌아가서

큰 집의 제사는 대가 끊겼습니다

제수씨가 성당엘 다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집사람이 참 고맙습니다

철따라 군소리없이 차근차근 준비해서 제사를 지내주고

꼬박꼬박 성묘도 챙겨주는 우리 집사람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경기도 파주에 있는 동화경모공원에 모신

장인어른 성묘도 거르지 않습니다

보통은 장모님을 모시고 가게 되지요

 

부모님 들이 모두 황해도 피난민 들이셔서

서로 공통점이 많습니다. 동병상련이지요

파주에 가면 둘째 큰아버님과 막내 작은 아버님

두 쌍의 무덤이 인근에 모셔져 있습니다

같은 황해도 묘역

 

매번은 아니지만 장모님 잠시 기다리시는 동안

두 분의 묘소에도 부지런히 들르게 됩니다

그에 대해서도 집사람에게 매우 고맙습니다

 

매번 성묘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새삼 부모님의 은공을 생각하게 됩니다

요즘 하나나 둘 키우기도 이렇게 힘든데

5남매씩 어떻게 키우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묵은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다시한번 부모님 은공을 생각해 봤습니다

이제 내가 돌아가신 두 분 보다 더 나이가 많네요

참으로 세월이 무심한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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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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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청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01 샛별사랑님이 잘 안 보이셔서 섭섭합니다
    늘 건강하게 잘 지내셨기를 바랍니다

    맞습니다, 부모님들의 망향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습니다
    특히 어머님은 8남매의 장녀셨는데
    혈혈단신 월남하셨습니다

    제게는 외갓집이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없지요
    어머님의 외로움을 짐작도 못하겠지만
    나이들어 보니 측은한 생각이 듭니다

    이산가족상봉 한참 할 때
    저도 사설기관을 통해
    어머님 가족을 찾아보려고 했지요
    한겨레상봉회라는 곳을 통해서...
    결국 돈만 날렸습니다

    새로운 5월을 맞이하여
    샛별사랑님을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낭만 | 작성시간 24.05.01 산소에 다녀오셨네요.
    온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아주 좋아 보입니다.
    늘 건강하세요
  • 답댓글 작성자청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01 네 조금 늦게 다녀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낭만선배님도 건강 잘 챙기시길요 ^^*
  • 작성자박희정 | 작성시간 24.05.01 저는 아버님 백세 생일상 차리고 산소에 갔다왔습니다
    선배 님의 삶 아름다운 삶입니다
    저의 헝님과 같으신것같아요
    부인의 내조도
    참고마운일 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청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01 그러셨군요
    저의 아버님도 생존해 계셨다면
    올해 106세가 되셨겠네요
    기미년 1919년 생이시니까요

    형님이 계시는군요
    형님께 잘 하실 거 같습니다
    평소에 카페활동 하시는거 보면...

    집사람에게는 늘 고맙습니다
    칭찬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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