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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산소

작성자낭만|작성시간24.05.01|조회수239 목록 댓글 32

 

나는 남동생을 따라서 양주군 깊고 깊은 산골에 있는  산소를 찾았다.

수십년만에 보는 산소다.

 

 나는 할머니 얼굴도 모른다.

산소의 주인공인 할머니는

근대의 우리나라 역사만큼이나 처절한 사연이 깊다는 것을 엄마한테 들어 알고 있다.

 

나는 서울 토박이로 성이 전주 이씨 효령손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양반이 아닌 중인 신분으로 바뀌었는지 모른다.

 

하여간 내가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는 

고조 할아버지는 충청도 보은에서 대추 등을 갖고  황해도 원산에 팔았고

그리고 원산에서 북어등을 갖고 여기 저기 넘기는 상인이라 했다.

상인치고는 거상인 것 같았다. 

 

그리고 내 할아버지는 말을 37필까지 키웠다 한다.

아마도 요즘 개인 택시 37대나 갖고 있는 사장은 된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러니 할머니도 비록 중인 집으로 시집을 왔지만 아들 둘,딸 둘인 4남매를 낳고 

食모 針모 饌모를 두고  젊은 시절 잘 살아오신 모양이다.

 

그 덕분에 할머니는 음식이 서울 특유의 담백하고 개운한 맛을 즐기도록 하였고

우리 엄마 음식 솜씨도 역시  늘 간단하면서도 깔끔한  상차림을 우리들에게 내 놓았다.

 

뻔하다. 종교는 조상 대대로 믿어 온 샤머니즘 아니면  애니미즘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내 고조할머니는 남편이 늘 먼 길을 다니니 초 하루, 보름 날이면

붉은 팥떡 담긴 작은 시루, 그리고 주. 과. 포를 놓고 남편의 안녕을 늘 신께 빌었을 것이고

증조할머니도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사연이 있어 선조의 산소를 건드려 移葬을 한 모양이다. 

문제는 이와 맞물려 집안이 소름이 끼치도록 물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장할 때 무꾸리를 할만큼 해 가릴 건 다 가리고 좋은 때 방법을 택했을텐데 

소용이 없다.

 

그러고 보면 나라고 집안의 흥망성쇠는 자연으로 꽃이 필 때는 피고 질 때는 어김없이 지나 보다.

 

할머니 생각에 분명히 명당인 산소를 건드린 이후로 집이 망했다고 했다.

제일 먼저 말이 이유없이 한필 두필 턱턱 쓰러지고 

이에 노심초사하던 할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졌다.

큰 아들이 사고로 죽었다.

그리고 딸 둘도 전염병에 걸려 죽었다.

 

처음엔 슬픔이 가득찬 생활로 넋이 나갔지만 나중에 독이 난 할머니는 죽은 사람들 위해

흘릴 눈물 한방울 씨알조차도 없다며 오직 하나 남은 막내 아들을 건지겠다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한다.

 

남은 재산이라고는  鍮器그릇인 놋그릇과 도자기 몇점 남았다. 

이것을 팔아 초하루 보름이면 상을 차려 놓고 오직 아들. 아들. 막내 아들을 무사하게 살려 달라고

내 아버지를 위해  무당 이상으로 손바닥을 빌며 넋두리를 했단다. 

 

할머니는 밤이 아무리 깊어도 아버지가 집에 들어 와야 잠을 잔다.

또한 아버지도 천심으로 동네 주위에서 저런 효자가 있나  할 정도로 할머니를 위하셨다. 

어쩜 신이 할머니께 마지막 남은 자비를 내려 주셨는가도 모른다.

 

그 아버지 속에서 내가 나왔다. 

할머니의 기쁨은 하늘을 치솟았고  나를 금쪽보다 더 귀히 여겼다.

내가 3살 되던해 돌아가신 할머니는 손녀인 나에 대한 사랑은 정말 끔찍하도록  대단했다.

 

겨울이면 날이 춥다고 솜 버선을, 솜 옷을 그리고 솜 처네에 나를 업고 방바닥에

내려 놓지 않았으며 밤에도 업고 잤다,

 

그런 사랑을 받은 내가 할머니 무덤에 찾아 와 떼가 잘 살도록 잡초를 뽑고 있다.

그리고 간간이 할머니를 부르며 "나 이렇게 잘 살고 있어요" 하고 묘지를 껴안는다.

 

난 할머니 품에 안기듯 묘지 앞에 앉아 앞을 내다 본다.

툭 터진 앞은  산과 산이 이어지는 푸른 물결과 물결이 일렁이는 초록빛 바다다. 

 

죽은 자와 산 자와의 사랑. 

말을 안해도 알겠고 말을 하지 못한 그 사연 속의 애절했던 할머니의 마음이 공감된다.

 

정서적으로 하나된  두 마음이 어우러져 저 깊은 바닷 속 심연에서 타기 시작한 혼불은

꿈 속처럼 지금 이 깊고 깊은 산 속까지 넘치도록 푸르게 푸르게 활활 뜨겁게 타고 있다.

 

끝없이 사방으로 펼쳐지고  부서지는 광선.

그 햇살로 인해 수천 수만 종류로 隆隆히 흐르는  빛. 빛. 빛.

연두 청록 초록빛깔이 바람 불 때마다 파란 음계로 '솔라시도'하며 절로 음을 탄다.

 

새들이 그 음을 줏어 노래하며 이 나무 저 나무 가지를 날아다니다 하늘을 높이 오른다.

원래 산 자의 안부를 죽은 자에게 전하는 것이 새들의 임무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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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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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낭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02 오랫만에 뵙는 망중한님 반갑습니다.
    저도 망중한님과 비슷합니다.
    할머니가 3살에 돌아가셨으니 얼굴도 모르고 기억도 없습니다.
    5월이 되니 사진 찍으러 다니시려면 바쁘시겠습니다.
    이럴 때 댓글을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 작성자뿌뜨리 | 작성시간 24.05.01 낭만선배님 오랫만에 친정
    할머님 산소를 찾아뵙군요.
    옛어른들 말씀에 조상님
    묵은(오래된) 산소 이장은
    함부로 못한다고 들었네요.
    명당자리를 손을데서가
    아니고 아마도 산소 이장
    하는 시와 날과 방향이 안
    맞아을수도 있을것 같네요.
    그시대 풍수지리에 덫붙
    인다면 산소 이장은 잘해
    야 본전이라는 설도 들었
    고 아니면 3대가 잘못 된
    다는 엄중함도. 들었네요.
    오랫만에 조상님 이야기에
    관심있게 잘 봤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낭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02 아! 뿌드리님
    좋은 지적을 해 주셨어요,
    전 단순히 땅이 길지인가 흉지인가만 알았는데
    시와 날과 방향과도 관계가 다 있네요,
    귀한 얘기를 해 주셔셔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 작성자복매 | 작성시간 24.05.01 낭만선배님 한편의 단편입니다

    특별한 사랑 주신 할머니 의 무덤 갸 에서 잡초 뽑는 낭만(손녀)선배님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이 있는 옛 이야기 속으로 이끌어 갑니다

    건필 하셔요


  • 답댓글 작성자낭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02 전 모처럼 복매님께서 올리신 글을 보고 얼마나 반갑던지요,
    그렇게 일상적인 글을 자주 올려주세요,
    글도 잘 쓰시고 내용도 좋고요.
    눈이 놀래고 귀가 놀래도록 화사한 5월입니다.
    맘껏 여기 저기 즐기며 기쁨에 넘치는 생활 하시기를 바랍니다.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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