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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묘지는 바람에 써라

작성자낭만|작성시간24.05.07|조회수231 목록 댓글 32

내 묘를 바람에 써라

 


사진 인터넷 펌 .


내일이 어버이 날이다.
나는 자식 손주들한테 대접 받는 것보다  나의 아버지 엄마가 보고 싶다.


찾아갈 산소도 없이
바람이되어 구름이 되어 흐르는 내 부모님의 안부를 묻고 싶어 산으로 가고 싶다.


예전에 할머니는 일구월심 내 아버지 하나만을 건지기 위해 늘 손비빔을 하며 살아오셨다.
그 덕에  아버지는 잘 성장해 할머니께 효도하며 일본인 회사를 다녔다. (아마도 기술직?) 
그런데 일본이 망하자  아버지는 집안 내력답게 큰돈을 벌겠다고 다시 어딘가 투자를 하신 모양이다.

설마 떼돈을 벌겠다고 뗏목타고 물길따라 서울로 오가는 뗏꾼은 아니실테고
일확천금을 위해 광산에 투자를 하셨나?


돈을 다 잃고 아버지는 미친사람이 다 되어 마지막 집을 팔려고 하는데
어느 쓰레기통에 아주 어린 웬 예쁜 계집애가 사과 껍질을 보고 침을 삼키며 있었단다.


그 여자 아이가 바로 나였다.
아버지는 내 그런 모습에 이러다간 처 자식 다 굶기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뒤집혔던 눈이 제 자리를 찾았단다.


성실한 아버지는 다시 정상적인 일을 찾아 열심히 사셨다. 


그런데 6.25전쟁이 났다.
정말 피난살이 중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다시 우리식구는 고향인 서울로 왔다.


아버지는 다시 종업원 몇명을 두고 사업을 하셨다.
아버지 사업은 금방 불길 일어나듯 잘 됐다.
우리집은 새집으로 이사를 갔고 엄마는 일제 재봉틀을 사서 주위에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한가지 걱정이 생겼다.
 할아버지가 미아리의 공동 묘지에 썼는데 날마다 정부에서 파 가라고 했다.
엄마는 시집 집안이 하루 아침에 망한 것이 선조 무덤 이장한 이유라고 생각했기에 
할아버지 묘를 건드리는 것을 극구 반대했지만 아버지는 정부 협박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화장을 하려고 맘을 먹었다.
아버지는 일꾼을 데리고 미아리 공동묘지에 갔다.

내가 그 곳에 왜 있었을까? 
아버지를 늘 붙어 다녀 아마도 내가 울고 불고 발버둥을 치니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가신 모양이다.
어쩌면 내 뿌리이기에 보여 주려고 하셨나?


나는 산소를 보면 동그란 초록 도자기 빛깔 밥그릇을 뒤집어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거부감 보다는 동그란  묘지는 산 능선이나 꽃잎처럼  늘 예쁘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의 산소 봉을 건디리자 난 보았다.
흙 속에서  하얀 연기가 스스르 안개 피듯 피어나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다.
나는 당시에도 무서운 것을 모르고  할아버지의  혼이  하늘로 올라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할아버지 뼈는  뾰얗고 깨끗했다.
지금 내 생각에 땅이 명당인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화장되었다.


그 아래 길을 내려 오는데 어느 여인이 통곡을 하고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었다.
묘지가 물길이었나 시커멓게 썪은 뼈들을  진흙 속에서 추려내고 있었다. 
묘 앞에서 땅을 치던 여인이 말하였다.
이런 곳에 묘를 썼으니 6.25 때  8남매 중  다 죽고 자기만 남아 이 묘를 처리하고 있단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산소를 건드린지 만 일년 후 생때 같은 아버지가 쓰러졌다.
미아리 공동묘지에 가서 일했던  일꾼이 말하길 저 집은 좋은 산소자리 건드려
집안에 탈이 났다고 했다.


6.25난지 만10년 아버지는 나이 48살.
우리 4남매는 다 어렸다.
엄마의 나이는 41살 한창 때지만 원래 가녀렸고 더욱 아버지 죽음으로 늘 파김치가 된 채로 살았다.


그래도 엄마는 선비집 딸이라 나중에 콩나물 장사를 해도 배워야 한다고  모두 대학에 보낼 생각을 했다.
우리는 늘 숨어서  우는 엄마의  울음소리를 들어가면서 잘 자랐고 잘 배웠다.


엄마가 쓰러지는 날. 
나는 너희 아버지를 화장했다.
산에 올라가 구름 위로 네 아버지를 훨훨 날렸다.
나도 태워 바람에 묘지를 쓰라고 말했다.

나는 바람이 되어 흐르련다.
그러다  보면 구름이 된 네 아버지도 만날 것이다.


아버지는 서울의 아주 높은 싱그러운 산에 뿌려졌고 
엄마는 경기도 양주군이 고향이라 근처에 자주 찾았던 감악산의 산바람이 되었다.


5월 어버이 날이면
나는 자식을 가르치느라 몸이 송곳처럼 말라 가엾이 가신 엄마를 그리면서 산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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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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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낭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08 복매님 어버이 날입니다.
    이날 우린 먼저 부모님을 생각하게 되죠.
    부모님을 잘 날려드리셨습니다.
    육신은 으례 날아가지만 혼은 주님 품에 계실 것이니 자손의 입장으로 얼마나 든든하시고 편안하시겠어요.
    아주 잘 하셨습니다.
    늘 예쁘게 늘 곱게 그대로 이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별꽃 | 작성시간 24.05.08 집안의 역사를 고스란히
    산 증인이 된 듯 써 놓으셨군요.
    나이도 어린데 묘를 파내는 일을 직접 보시고
    참 예쁜 따님이십니다.
    저도 묘지가 무섭지가 않고 평화롭더라고요.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낭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08 별꽃님
    우리 나이가 아니면 공감하기 어려운 글이죠.
    이런 글을 길게 세세히 쓸 필요가 있을까 했지만 산소 문제도 있고...
    아름답지도 않은 글이라 미안해요.
    대신 오늘을 위한 아름다운 사랑의 표시를 받으셨으니 맘껏 즐겁게 보내세요.
  • 작성자금빛 | 작성시간 24.05.08 글을 읽으면서
    명당터는 있는걸까?
    후손이 발복하려면
    고인을 명당터에 모시는 일인데
    그게 어디 뜻대로 되는것도 아니고
    고인 사후의 복인가 싶네요

    지금은 화장하는 문화인데 무슨 명당터?
    낭만님의 가족사에 얽힌 얘기
    숙연해 집니다
  • 답댓글 작성자낭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08 금빛님
    이 글은 제 집안 이야기지만
    옛날, 우리나라의 통속적인 풍속과 내려오는 관습에 의한 이야기 중 하나 일 것입니다.
    저도 무조건 화장을 권합니다.
    이 작은 나라의 금수 강산을 즐기며 행복하게 사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라 생각하기에...
    금빛님 객관적으로 옳으신 말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곱고 아름답게 생활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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