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訃告 소식을 듣고.

작성자아우라|작성시간24.07.11|조회수332 목록 댓글 14

아침에 訃告 문자가 떴다.

앞집에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문자다.

사흘 전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딸의 울먹이는 전화를 받았었는데....

 

할머니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유치원 원장으로 오래 일하셨고 작년에 제주에 오셨다.

딸은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해 왔는지 한국말이 능숙했지만 할머니는 좀 어눌했다.

하지만 '언니, 들어 와' 초대 받아 가 보면 할머니는

아이패드를 세워 놓고 인터넷 서핑에 빠져 마우스를 바쁘게 움직이고 계셨다.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집 정리하고 와야겠다고

'엄마를 부탁한다'며 한 달간 집을 비우고

'아들 결혼식에 서울 간다'고

'갑자기 부산 출장을 가게 됐다'는 등으로 2,3일씩 부탁 받을 때는 곤혹스러웠다.

할머니가 거동은 하지만 다섯시에 일 끝나는 내게는

부담이 됐다.

홈쇼핑으로 부식을 배달받았는지 할머니는 잘 

지내셨고

가끔, 없는 솜씨에 채소를 잘게 썰어 삼삼하게 무치고  곰탕, 갈비탕을 포장해 와 냉장고에 넣어 두기도 했다. 입맛에 맞을런지도 걱정됐는데 

복도에서 왔다갔다 운동하시는 할머니와 마주치면

'나물 잘 먹었어'

'국 잘 먹었어' 고마워 하셨다.

 

운전하는 도중에도 전화를 걸어 와

'언니, 엄마가 전화를 안 받아. 집에 좀 들어가 봐'

비밀번호를 따고 방에 들어가 보면 할머니는

깊은 잠에 빠져 있곤 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꿈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언니, 엄마가 코피 터졌는데 지혈이 안돼.'

119를 부르고 한밤중에도 나를 당황하게 하는 일이 한두번 아니었다.

한동안 할머니가 안 보여 안부를 물으니 

병이 악화돼 '기저귀를 차고 계신다'고 했다.

 

하루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는데 창가 쪽에 놓여

있는 싱싱하던 넝쿨이 누렇게 말라가고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넝쿨이다.

할머니가 복도 끝 문턱에 올려 놓고 물과 영양제로

정성껏 키우던 초록색 잎사귀들이 주인 손을 잃고 축 늘어졌다.

몇 번 물을 줬지만 살아나지 않는다.

할머니 병환이 깊어질수록 넝쿨은 까맣게 죽어갔다.

어느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오는데 넝쿨은

빙빙 감겨 화단 구석에 버려지고 화분은 플라스틱

수거함에 버려져 있었다.

청소 아줌마가 치운 모양이다.

왠지, 할머니의 삶이 다 한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휠체어와 어르신보행기는

계단 손잡이에 묶여 먼지에 쌓여 있다.

할머니의 자존감은 지팡이만 고집했다

 

같이 동네길을 걷고

농담도 주고받고

항상 빙그레 웃으시던 예쁜 할머니.

삼가 故人의 冥福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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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아우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7.12 복지관에서 놀다 오신 할머니 놀려
    줄 심산으로
    "어르신, 거기 할으방들도 많이 있수광?" 했더니
    "아바이들 있듸." 수줍게 웃으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이쿠 ~
    눈물 나려 하네.
  • 작성자별꽃 | 작성시간 24.07.13 잘 읽었습니다.
    정 주고받던 구십 앞집할머니가 돌아가셨군요.
    복도에서 왔다갔다 운동하시다가
    화분과 힐체어와 어르신보행기를 남기고...
    수고하셨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아우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7.13 길가 화단턱에 앉아
    지팡이 잡은 손에 턱을 괴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구경하시던 할머니.
    스티로폼을 드렸더니 빙그레 웃으시더군요.
    앉았던 자리만 움푹 들어간 누런 스티로폼이
    한동안 화단 구석에 세워져 있던데
    아마 쓰레기통에 들어갔는가 봅니다.
  • 작성자수피 | 작성시간 24.07.13 따스한 삶의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요즘은 시멘트처럼 각박하기 만한 도시인들 인심이 보통인데 이웃 간에 소소한 정을 나누며 사는 모습은 주위에 귀감이 될만 합니다. ^^~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아우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7.13 보통은 다 그렇치 않을까요.

    예전에 시골에선 결혼이나 장례식에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다들어
    거들어 주곤 했지요.
    그때는 5일장도 했고
    결혼식 때도 집에서 돼지 10마리도 잡아
    잔치 하고 했으니까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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