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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사육신묘를 다녀와서

작성자마초|작성시간24.08.16|조회수234 목록 댓글 7

불의(不義)를 위해,

절개(節介)를 굽히지 않았던 위대한 영웅이 바로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사육신(死六臣)이다.거사에 가담하여 처형된 70명 모두가 고고한 기백(氣魄)

을 지닌 충신(忠臣)으로 그 기상은 후세에 본받아야 마땅하다 그 중에서도 성삼문을

대표로 꼽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 상승을 비롯하여 형제 아들 젖먹이 아이까지 살해되

어 혈손이 끊기고 멸문(滅門)의 참화(慘禍)를 당한 것이다.


시뻘겋게,

달군 쇠로 다리를 꿰고 팔을 잘라내는 잔혹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호통 치

는 성삼문의 기백은 가상하기만 하다.지존한 아내와 딸은 관비(官婢)가 되었으며 가산

은 몰수 되었다 세조에게 충성(忠誠)한다는 말 한마디면 부귀영화(富貴榮華)를 자자손

손 누릴 것인데도 불의(不義)와 타협하지 않은 기개(氣槪)는 선조의 얼인 것이다.

 

그 후

사육신(死六臣)의 충성심(忠誠心)과 장렬한 의기를 추모하고자 숙종이 산기슭에 민절

서원 (愍節書院) 을 세웠고 정조는 신도비 (神道碑) 를 세웠으며 1955년 5월에 육각의

사육신 (死六臣) 비를 세웠다 서울특별시에서는 이들의 충성스럽고 의로운 영혼(靈魂)

을 위로하고 그 정신을 널리 현창 하고자 묘역(墓域)을 확장하고 사육신(死六臣)의 위

패(位牌)를 모신 의절사(義節祠) 불이문 홍살문 비각(碑閣)을 새로지어 충효사상의 실

천도량으로 정화하였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을,

거치면서 성승의 묘는 찾을 수가 없었고 박팽년,성삼문,유응부,이개의 네 분의 묘소만

남아 있었으나 여전히 사육신(死六臣) 의 묘라고 불렀다.서울특별시가 사육신(死六臣)

묘 일대를 성역화하면서 하위지,유성원,김문기의 허묘(墟墓)도 함께 추봉 되었다.의절

(義節祠) 안에 일곱 분의 위패(位牌) 가 놓여 있었다.

 

의절사(義節祠)

뒤편의 묘소 (墓所) 는  좌측 서쪽으로부터 하위지 성삼문 유성원 이개 유응부 박팽년

김문기 순서로 모셔졌다 능지처형된 이들의 시체를 한강변에 버렸는데 김시습이 수습

하여 강 건너 노량진에 묘를 쓴 것이 지금의 사육신공원이다 김시습의 풍자와 기행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 가슴의 아픔이 너무 심하였기 때문에 미친 것이요 보통 똑똑한 

람으로 살아가기에는 그 사회가 너무 부끄러워서 미친 것이다.

생육신(生六臣)으로,

김시습,원호,이맹전,조여,성담수,남효온이 있는데 생육신(生六臣)의 대표로 학문이 

고 시를 잘하는 천재 김시습을 꼽지 않을 수 없다.권력(權力)에 아부하고 이익을 위해

서는 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요즘 정치인(政治人)들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묘소(墓所)

참배 (參拜) 하고 도수약한 차 술 한 병 꿰차고 자갈치 시장에서 회 한 접시 떠다가

5670 동행 선후배님 들과 담소(談笑)함이 을 것인데 이런 모임은 결코 망사항(希望

事項)이라 기대도 지 않겠지만~~푸하하하

충성스러운,

영혼(靈魂)을 위로하고 그 정신을 널리 현창하고자 묘역(墓域)을 확장하고 사육신(死

六臣)의 위패(位牌)를 모신 의절사(義節祠)를 세웠다.


비각(碑閣)을 지어 충효사상(忠孝思想)의 실천도량으로 정화하였다.비각(碑閣) 안에

화강암에 세겨진 비석 (碑石)은 오래되어 보였다.  

고고한,

기백(氣魄)을 지닌 충신 성삼문의 간결한 묘를 대표로 올렸다 흔한 망두석(望頭石)도

없고  달랑 비석 (碑石)하나 비문(碑文)에는 성씨지묘 (成氏之墓) 라는 글자밖에 쓰여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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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희은이 | 작성시간 24.08.16 역사적 사건에 대해 마초님의 메끄롭게 전개된
    감정표현이 참 놀랍습니다 왕릉치고는 너무 초라한
    무덤 앞에서 멸망한 고려를 떠올리고 힘 있는 자에 의해
    목메임 당한 왕에 대하여 동정적인 게 느껴집니다
    많지 않은 세월을 흘렀는데 이 정도라도 보존이
    되었는 걸 보면 조선의 창건자들이 마음이 넓은 것 같습니다
    증거 자체를 없애어야 되는 것이 정석인데
    민초들을 통해서 이어 왔다 기는 한계가 있으니 말입니다

    시녀 무덤이 있다는 게 새로운 감동을 줍니다 역사적 고찰에
    대한 좋은 글입니다 몰랐던 역사를 하나하나 배워나가니 재미있네요 은근히 기다려집니다
    정성스러운 글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 작성자소몽 | 작성시간 24.08.16 곡차 한병 꿰차고 회 한접시 떠다가..
    동행선후배님들과 담소함이 좋을 것인데..
    이런 모임은 결코 희망사항이라...
    에 아쉬움이 꽂힙니다^^
  • 작성자썬맨 | 작성시간 24.08.16 숙연해 집니다.
    님의 말대로 요즘 정치인들
    행태를 보면 사람도 아닙니다.
    저위 용산부터 여야 통털어서.
    어디 한사람의 정치인도
    전혀 아니올시다 입니다.
    노량진 사육신묘엔 몇번 스쳐 지나가긴 했으나 부끄럽게도
    단한번 그들의 숭고한 절개에 대한 생각을 깊히 한적이 없었는데.
    글을 읽고 많은것을 느끼게 되네요.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큰산. | 작성시간 24.08.16 과거 어린시절 사육신묘를 탐방하며 몇년전도 걷기팀들과 함께 이제는 칠육신을 모신 공원입니다.
  • 작성자윤슬. | 작성시간 24.08.16
    국사공부는 확실하게
    한듯하옵니다
    요즘 정치인들이 이런
    충성심 강했던
    위인들을 조금만
    닮았드라도 나라가
    이모양 이꼴이
    아닐진대 한심하기
    짝이 없네요..

    옛날 선진들의 지혜도
    그렇고..충신들이 많은
    옛날...요즘은 왜그런지
    개그맨들보다 더 우긴
    정치인들로 타락해버린
    ...답답하고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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