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야채를 받아왔다.
앞집 할머니와 나눠 먹으려고 현관을 나오는데
마침 할머니도 지팡이를 짚고 나오셨다.
야채가 든 비닐봉투를 드리고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추운데 어디 가시려구요?"
"눈이 내려 화분을 옮기려고...."
1층에 내려오니 문 입구에 골판지를 미리 깔아놓은 게 보였다.
지팡이를 문에 걸고 화분을 옮기려고 밖으로 나가시길래
"아이구~ 제가 할게요."
아파트 입구 화단 위에 놓인 화분 여섯개를 문
안쪽 골판지 위로 옮겼다.
화분은 무겁지 않았으나 눈발이 날려 현관 입구가
약간 미끄러웠다.
"고마우이."
할머니는 안심이 됐는지 집으로 올라가셨다.
쓰레기를 버리고 올라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90세 가까운 연세에 나무를 가꿔서 무엇하나?'
'지팡이 없으면 걷지도 못하면서.'
'저번에도 돈나무를 키운다고 하더니 다 죽여
놓고는....'
남의 일에 이러쿵저러쿵할 처지는 아니지만 과연
저 나무가 잘 자라줄지는 의문이다.
요즘 자주 아파트 앞 화단의 돌 위에 앉아 계시길래
"춥지 않으세요?" 했더니
"집에만 있으니 갑갑해서 나왔어." 하셨다.
스티로폼 뚜껑을 주워서 엉덩이에 깔아주었다.
"차가운데 앉지 마시고 이것 깔고 앉으세요,
올라올 때는 저쪽 구석에 두었다가 다음에 꺼내 쓰시고요."
이제서야 알고보니 누가 나무를 훔쳐갈까봐
확인하려고 자주 오르락내리락하신거였다.
워낙 의심이 많은 할머니여서 이사올 때도
제일 먼저 도어락을 바꾸셨다.
정말 방에 금고가 있는 것 같다.
젊었을 때 제주 부동산업계에 큰손이라더니 배포가 여간 아니시다.
저번에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일이 성사되면 수수료 10억이 떨어질건데...."
하셔서
"허풍쟁이 할머니신가?" 하고 웃어 넘겼다.
가끔, 리무진이 대기했다가 태우고 가는 걸 보면
허풍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왜 나무 이름을 물어도 말해주지 않는지?'
'이번에도 돈 버는 나무인가?'
어쨌든 나무가 쑥쑥 자라서 할머니가
낙담하지 않기를 빌어본다.
키우는 정성과 희망이 당분간은 할머니의 소일거리가 될테니......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아우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1.06 예.
우리도 금방 늙어갈테니까요.
손에서 '놓치 못함' 이 많더라구요.
햇볕 많이 쬐게 할려고
나무를 밖에 내놓은 것 같아요.
당뇨가 있는지 인슐린 주사를
맞으면서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할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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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금은화 작성시간 26.01.06 좋은일 착한일 하셨습니다 봉사정신 없으면 그냥 가지요 ㅉㅉㅉ
봉사는 아무나 못합니다 돈만 들어야 봉사는 아니지요
힘에 벽찬일 도와 주셨으니 그 얼마나 고마웠겠습니다
사탕 한 보따리 준것 보다 고맙지요 스치로폴까지 정이 많으신 입니다
건강만 하십시요 착한일 좋은 일하면 내가 편하고 기분도 좋지요 ㅉㅉㅉ -
답댓글 작성자아우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1.06 부자 할머니인데도
어떤 때는 쓰레기장에서
쓸만한 게 있으면 주워 옵니다.
가끔, 딸들이 오는데 타박을 해도
또 주워 옵니다.
고마운 글, 감사합니다.
추운 날씨에 감기 조심하세요. -
작성자오개 작성시간 26.01.06 "오곳죽여먹언"이 제주도 방언인 모양입니다.
노욕이라도 가진사람들 얘기지 저같은 빈 털터리는 "존버"정신으로 삽니다
'존버'는 이외수 선생이 만든 신조어죠.ㅎ -
작성자아우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1.06 예. 제주 방언입니다.
낙담과 아쉬움이 담긴 말이지요.
비싼 돈 주고 산 나무가 죽었으니
속상했던 모양입니다.
끈질기게 버티기,
좋은 정신입니다.
저도 '존버'하겠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