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이야기
내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랄 땐 도깨비도 참 많았다.
고장마다 다르겠지만 청도깨비, 낮도깨비, 불도깨비도 있었다.
청도깨비는 해를 끼친다는 것이고
낮도깨비는 낮에 나타나지만
불도깨비는 밤에만 나타난다고 했다.
그 도깨비들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말들도 무성한데
어머니는 불도깨비에 홀려서 죽을 뻔했다고 했다.
시어른을 비롯해 시집식구들 스물을 섬기려니
보리방아며 길쌈이며 빨래 등에 영일이 없던 어느 하루,
콩밭 매다가 돌아오는 길에 고개 마루에서 도깨비를 만났다 했다.
빨간 불을 쓰고 있는 게
이리 가면 이리 쫓아오고, 저리 가면 저리 쫓아오고~
그러다가 어지러워서 한동안 정신을 잃고 넘어졌지만
“내가 소태보다 더 쓴 시집살이도 견디는데
도깨비인들 무서울 게 무어냐” 며
다시 일어나 도깨비와 맞짱을 떴다 한다.
그러다가 어찌어찌해서 일어나 집에 돌아오긴 했지만
그 도깨비가 하도 궁금해서 낮에 그곳에 다시 가보니
고갯마루에 대추나무 한 그루만 서있고
그 대추나무 가지에 치맛자락에서 풀려나간 실오라기만 엉켜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고 했다.
아마도 그건 내가 상상하기로 불도깨비였을 텐데
불도깨비는 사람을 해치지 않고 장난만 친다고 했다.
우리들 어린 시절에 산에, 들에, 바다에
밤이면 심심치 않게 도깨비불이 출몰했던 기억이다.
나도 한국전쟁 때 시골로 피란 내려가 숱하게 목격했지만
그건 인(燐)이 습기를 만나 발화하는 현상이라 하는데
지금도 밤바다에 나가면 그런 현상이 목격된다고 한다.
이와 달리 정신세계의 도깨비도 있다고 전해진다.
무언지 모를 동체(動體)가 나타나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하고
그게 의도한 것인지는 몰라도 사람을 현혹시킨다는 건데
사람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른 것이어서
현혹시킨다고도, 또는 현혹당했다고도 하는 게 아닐까...?
인간에겐 태생적으로 속성(俗性)과 영성(靈性)이 있다고 한다.
(멀치아 엘리아데의 '성과 속' 중에서)
속성과 달리 영성이 여러 신앙이나 종교현상을 만들어나간다는 건데
그중에서도 원시적인 게 토테미즘이 아닐까 싶다.
(특정집단이 특정동물이나 식물, 또는 자연현상을 신성시하고 섬기는 풍습)
다른 한 편 인간에겐 파레이돌리아(Pareidolia), 즉
변상증(變像症)이란 게 있다 한다.
뚜렸한 형태가 없거나 모호한 시각, 청각의 자극을 받으면
뇌가 이미 알고 있는 패턴을 찾아 인식한다는 건데
알고 있는 가장 쉬운 패턴이 인간의 모습일 테니
알 수 없는 형체가 나타나 움직일 때, 이를 알 수 없는 존재 즉
영물이나 도깨비로 인식하는 게 아닐까...?
그걸 인정한다면 정신작용도 그에 따라 다양한 작용이 일어날 테다.
이와 같은 내용은 나만의 부족한 생각에 기인한 거지만
글을 쓸 때마다 나는 늘 <일반화의 오류>를 걱정한다.
일반화의 오류란 인간의 단편적인 생각이나 현상을 근거로
전체를 단정짓는 걸 말하는데
천당이나 극락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또는
귀신이 있다, 없다를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도 그에 해당할 테다.
미국 나사에서 인류 최초로 로켓을 설계해 하늘에 발사했을 때
책임자인 폰 브라운 박사의 일화가 생각난다.
과학적인 근거에 의해 동체를 설계해 발사하면서
"오, 신이시여!" 라고 가호를 빌었다니 하는 말인데
신(神)이 발사의 성공을 담보해 주는 걸까...?
과학 너머의 세계나 영역을 생각해 보는 대목이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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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도반(道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4.15 저의 모친도 굿을 했는데요,
지나가는 스님으로부터 굿을 하지않으면 부친이 오래 못 산다는 말을 듣고 쌀 한말을 걸고 굿을 했는데
그런걸 질색하던 부친도 받아들이시데요.
어린 저도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고요.
정신이 강하다는 정치인들도 별의별 굿이나 기원제를 많이 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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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아우라 작성시간 26.04.15 우리는 충격을 받을 때
"OH My God"을 외칩니다.
神을 부르는 인간의 연약함이죠.
제주도는 섬이라서 그런지
굿당과 할망당, 무속신앙이 많았지요.
태풍과 자연재해에 의지할 데 없는 섬사람들의 위안처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뱀을 모시는 마을도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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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도반(道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4.15 제주도는 참 특이한 문화단지라고 봐요.
다 재미있어요.
민속학자들이 주목해야 할 것들인데
외면하는 것 같아 서운하데요.
아우라님이 대학원에 가서 연구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
작성자아우라 작성시간 26.04.16 道伴 님.
저는 미천해서 무얼 연구할만한 재목이
못됩니다.
다만 어릴 때부터 주위에서 보고 들은
것을 재탕할뿐이죠.
내일은 시부모님 제사라 장도 보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꿈같은 제안을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