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칭구 님 올리신 글을 방금 읽었습니다.
댓글로 올리려 했으나 글이 길어질 것 같아
직접 올립니다.
그때는 모두 가난하던 시절이라 중학교를 마치고 친구들은 육지 방직공장으로 아니면 海女로
살았지요.
부잣집 딸도 해녀하던 때였으니.
어머니는 "해녀하라."고 다그쳤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집에 찾아와
"지 밥벌이라도 하게 商高라도 보내자."고 어머니께 말했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야 "좌선생이 몇 번이
나 찾아와 말씀을 하니 어쩔수 없이 학교를 보냈다."고 합니다.
딸 하나 공부시키려고 어머니는 육지에 몇 년간 다니며 돈을 벌어야 했지요.
졸업을 해도 직장을 못 구했습니다.
학교에서 추천하는 곳은 극소수였죠.
공부도 못하던 친구들이 부모님의 재력으로 은행에 돈 많이 넣고 은행원이 되는 경우도 많았고.
요즘은 알바도 쌓였잖아요.
좌절에 쌓인 채 두문불출하던 그때
신문에 성이시돌에서 직원모집하는 광고가 떴더군요.
이시돌목장에서 나오는 양돈을 육가공해서 일본으로 수출하는 무역회사를 창업하는데 생산부, 기계부,총무부, 영업부 등 50여 명 직원을 모집하는 광고였어요.
나는 이미 인맥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기에 주위의 사람들을 찾아보았지요.
천주교 다니는 사람, 목장과 관련이 있는 친척을
찾아가 부탁을 했습니다.
면접은 형식이었죠.
주산 2급, 부기 3급, 타자 자격증을 제출하고
합격을 했어요.
그때는 주판알을 튀기며 전표를 작성하고 장부가 어마어마하게 많던 때였어요.
매일 은행에 입,출금하러 다니고.
100원이라도 틀리면 막차시간 전까지 장부를
일일이 대조해 찾아내야 했지요.
그때 한창 히트치던 하남석의 '막차로 떠난 여인'
이 버스에서 흘러나오면 검은 밤의 차창에 비친
쓸쓸한 내 얼굴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장님, 전무님도 경리 출신이고 부장님은 일본에서 공부하셔서 일본어를 자주 사용하더군요.
옛날에 공부하셨던 분들이라 전부 한자를 썼어요.
결재하러 가면 한자 틀린 데를 콕 집어 지적하고
"困ったな~" (곤란하네~)하며 돋보기 안경을
콧등에 걸친 부장님이 눈쌀을 찌푸리셨죠.
전표를 작성하면서 대표자를 적는 칸에 피.제이.맥그린치를 일일이 기장해야 했는데
"그냥 존 웨인처럼 간단한 이름이면 안되나?"
했답니다.
그후, 고무명판이 나와 일하기가 편해졌죠.
공장에 오시면 사무실에 들리는데 제주 사투리만 했어요.
사장님이나 부장님 설명을 들으시다가
"무사 요새 실적이 시원치 안햄서?"
"경허영 돼여게?"
다른 여직원과 숨어서 웃기도 했답니다.
茶라도 드리면 "고마워이" 하시고.
신부님은
6.25 전쟁 직후 제주도에 내려와 60 여년 이상을 제주에 헌신한 분입니다.
아일랜드에서 가져온 양돈을 주민들에게 분양하고 대규모 양돈단지를 조성해 주민들의 소득에 큰 도움을 주셨죠.
양을 키워 한림수직사를 설립하고 양털을 이용한 양털이불 스웨터, 목도리, 장갑 등을 제주도 여성들의 뜨게질로 만들어 서울판매점 등 전국에 유행을 일으켰죠.
사료공장을 지어 양돈업자들에게 도움을 주셨고
성이시돌 병원을 지어 도민들의 의료 복지에도 힘을 보탰지요.
금악리에 암 센터와 요양 의료원도 지었답니다.
새파란 벽안의 청년이 척박한 제주땅에 내려와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지요.
처음에는 어리숙한 외국 신부님을 속이고 돈을 안 갚고 줄 행랑을 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인연의 소중함을 오늘에서야 새삼 느꼈습니다.
모집광고를 보고 일자리를 얻어 5년을 일하고
같은 직장에서 평생지기 남편을 만났지요.
일본에 수출하던 경험이 계기가 됐는지 지금은
일본과 중국에 수산물을 수출하고 100억불 수출의 날 기념식에서 상패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과의 인연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다른 인생을 살고 있겠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쁜 손자들을 어디서 얻을 수 있겠어요.
신부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아우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5.06 제주도는 신부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지요.
능청스럽게 제주 사투리를 너무 잘 하셔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어요.
친구 남편이 금악요양원에서
마지막을 보냈답니다.
저세상 갈 때까지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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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두용 작성시간 26.05.06 오래전 이시돌 피정에서 뵈었던 신부님은 뚱뚱하셨었는데
젊은 시절에는 날씬하셨네요~
임실 치즈를 시작하신 신부님도 계시고
안성 포도를 유명하게 만든 신부님도 외국인이셔요..
그들은 목자의 정신과 투철한 사명감으로
오늘을 있게 하셨어요..
아우라 님의 젊은 시절 이야기 감동 입니다~
지금도 참 열심히 사는 모습이 아름답구요~
올리는 사진도 늘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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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아우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5.06 고맙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의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삶방에 자주
글 올리겠습니다.
가끔, 심드렁할 때가 있었거든요.
많은 용기를 얻고 힘을 냅니다.
아름다운 봄날 보내시길..... -
작성자안단테 작성시간 26.05.06 많은 경험이 오늘의 성공의 주춧돌이 된듯 하네요 좋은 사람들
좋은 인연은 복 이랍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하시니 예쁜 손녀 보심도 복~~ 행복한 미소지으시는 모습이 보이네요 -
작성자아우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5.06 감사합니다.
안단테 님처럼 저도 속도를 조정하면서
살아가겠습니다.
요즘 햇볕이 좋네요.
일하러 가서 걸으렵니다.
이쁜 풍경 찍어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