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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소중함.

작성자아우라|작성시간26.05.05|조회수105 목록 댓글 7

멋진칭구 님 올리신 글을 방금 읽었습니다.

댓글로 올리려 했으나 글이 길어질 것 같아

직접 올립니다.

 

그때는 모두 가난하던 시절이라 중학교를 마치고 친구들은 육지 방직공장으로 아니면 海女로

살았지요.

부잣집 딸도 해녀하던 때였으니.

어머니는 "해녀하라."고 다그쳤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집에 찾아와 

"지 밥벌이라도 하게 商高라도 보내자."고 어머니께 말했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야 "좌선생이 몇 번이

나 찾아와 말씀을 하니 어쩔수 없이 학교를 보냈다."고 합니다.

딸 하나 공부시키려고 어머니는 육지에 몇 년간 다니며 돈을 벌어야 했지요.

 

졸업을 해도 직장을 못 구했습니다.

학교에서 추천하는 곳은 극소수였죠.

공부도 못하던 친구들이 부모님의 재력으로 은행에 돈 많이 넣고 은행원이 되는 경우도 많았고.

요즘은 알바도 쌓였잖아요.

좌절에 쌓인 채 두문불출하던 그때

신문에 성이시돌에서 직원모집하는 광고가 떴더군요.

이시돌목장에서 나오는 양돈을 육가공해서 일본으로 수출하는 무역회사를 창업하는데 생산부, 기계부,총무부, 영업부 등 50여 명 직원을 모집하는 광고였어요.

나는 이미 인맥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기에 주위의 사람들을 찾아보았지요.

천주교 다니는 사람, 목장과 관련이 있는 친척을

찾아가 부탁을 했습니다.

면접은 형식이었죠.

주산 2급, 부기 3급, 타자 자격증을 제출하고

합격을 했어요.

그때는 주판알을 튀기며 전표를 작성하고 장부가 어마어마하게 많던 때였어요.

매일 은행에 입금하러 다니고.

100원이라도 틀리면 막차시간 전까지 장부를

일일이 대조해 찾아내야 했지요.

 

사장님, 전무님도 경리 출신이고 상무님은 일본에서 공부하셔서 일본어를 자주 사용하더군요.

옛날에 공부하셨던 분들이라 전부 한자를 썼어요.

결재하러 가면 한자 틀린 데를 콕 집어 지적하고 

"困ったな~" (곤란하네~)하며 돋보기를 콧등에 걸친 상무님이 눈쌀을 찌푸리셨죠.

전표를 작성하면서 작은 칸에 피.제이.맥그린치를 일일이 기장해야 했는데 그냥 존 웨인처럼 간단한 이름이면 안되나?했답니다.

그후, 고무명판이 나와 일하기가 편해졌죠.

 

공장에 오시면 사무실에 들리는데 제주 사투리만 했어요.

사장님이나 부장님 설명을 들으시다가 

"무사 요새 실적이 시원치 안햄서?"

"경허영 돼여게?"

다른 여직원과 숨어서 웃기도 했답니다.

茶라도 드리면 "고마워이" 하시고.

 

신부님은

6.25 전쟁 직후 제주도에 내려와 60 여년 이상을 제주에 헌신한 분입니다.

아일랜드에서 가져온 양돈을 주민들에게 분양하고 대규모 양돈단지를 조성해 주민들의 소득에 큰 도움을 주셨죠.

양을 키워 한림수직사를 설립하고 양털을 이용한 양털이불 스웨터, 목도리, 장갑 등을 제주도 여성들의 뜨게질로 만들어 서울판매점 등 전국에 유행을 일으켰죠.

사료공장을 지어 양돈업자들에게 도움을 주셨고

성이시돌 병원을 지어 도민들의 의료 복지에도 힘을 보탰지요.

금악리에 암 센터와 요양 의료원도 지었답니다.

 

새파란 벽안의 청년이 척박한 제주땅에 내려와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지요. 

처음에는 어리숙한 외국 신부님을 속이고 돈을 안 갚고 줄 행랑을 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인연의 소중함을 오늘에서야 새삼 느꼈습니다.

모집광고를 보고 일자리를 얻어 5년을 일하고

같은 직장에서 평생지기 남편을 만났지요.

일본에 수출하던 경험이 계기가 됐는지 지금은

일본과 중국에 수산물을 수출하고 100억불 수출의 날 기념식에서 상패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과의 인연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다른 인생을 살고 있겠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쁜 손자들을 어디서 얻을 수 있겠어요.

 

신부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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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아우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5.05 new 道伴 님.
    이렇게 이쁜 손주를 볼 수 있겠습니까?
    소중한 인연이 없었다면.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청솔. | 작성시간 26.05.05 new 이시돌 목장에서 근무하셨군요
    제주 축산의 시작이었다고 봅니다
    그 전에야 똥돼지를 기르던 제주였지요

    나중에 조중훈씨 제동목장도 들어서고
    조중건씨 목장도 들어섰지만요

    제동목장의 4천두 흑색 앵거스종 소들
    거기 제가 마케팅했던 제품인
    루멘신 때문에 몇 번 갔었습니다

    외국인 신부님들 중에
    훌륭하신 분들 계시지요
    수녀님들도 그렇구요

    전국의 나환자촌을 누비고 다녔는데
    평생을 헌신하시는 수녀님들을 보고
    감동받은 적 있습니다
  • 작성자아우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5.05 new 이시돌목장은 주로 양돈사업이죠.
    저는 가공된 고기를 일본에 수출하는
    무역회사에서 근무했어요.
    계열이 많았지요.
    회사가 한림에 있어요.
  • 작성자그대안의 블루 | 작성시간 02:25 new 임피제신부님
    정말 감사한 분이시지요

    삼위일체 성당에 제주에
    세컨하우스를 소유하기 전부터도
    다녔었구요
    요즘도 그러합니다
    피정의 집에도 친구들과
    다녀가곤 했지요

    아우라님과 그런 깊은 인연이...

    감사하시는 님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이 일고 있어요 💕

    우유부단 ~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요 ㅎ

    요양병원이 예쁘고 밝아서
    좋아보이더군요...

    아..고운 기억들에 행복합니다^^*
  • 작성자두용 | 작성시간 2시간 58분 전 new 오래전 이시돌 피정에서 뵈었던 신부님은 뚱뚱하셨었는데
    젊은 시절에는 날씬하셨네요~
    임실 치즈를 시작하신 신부님도 계시고
    안성 포도를 유명하게 만든 신부님도 외국인이셔요..
    그들은 목자의 정신과 투철한 사명감으로
    오늘을 있게 하셨어요..
    아우라 님의 젊은 시절 이야기 감동 입니다~
    지금도 참 열심히 사는 모습이 아름답구요~
    올리는 사진도 늘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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