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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의 환영2/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작성자노덕순|작성시간09.09.24|조회수216 목록 댓글 6

노벨상의 환영2

 
   최근 80년 동안 위대한 작가들은 노벨상을 받지 못하고 죽었다고들 말한다. 이것은 과장된 말이기는 하지만,그리 과장됐다고 보이지는않는다. 소설 "전쟁과 평화"의 레오 톨스토이는 의심의 여지없이 소설 장르의 역사를살펴볼 때 가장 중요한 작가이지만, 1910년 82세의 아주 멋진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그 해는 노벨상이 시작된지 10년째 되는 해였다. 그의 대작은 이미 전 세계에 걸쳐 수없이 번역되고 재판을 거듭하면서 45년 간의영광을 누리고 있었으며, 그 어떤 비평가도 그 작품이 영원히 사람들의 뇌리 속에 존재하리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 있던 때였다.

 

   반면에 톨스토이가 살아 있을 당시 노벨상을 받았던 열 명의 작가 중에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유일한작가는 영국인 키플링 뿐이었다. 그 상을 처음으로 수상했던 사람은 프랑스의 작가 쉴리 프뤼돔이었다. 그는 당대에매우 유명했지만, 이제 그의 책은 특별히 문학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서점이 아니면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프랑스 사전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보면, "만족스럽지만 쓸모 없으며,멋지지만 하찮은 현대의 전형"이라는 정의를 발견하는데, 이것은 운명의 장난을 미리 예언한 것처럼 보이까지 한다. 노벨상의 월계관을 쓴 최초의 열 명의 작가중에는 폴란드 작가인 헨리크 센케비치의 이름도 보이는데, 그는 이런 보것없는 작가들을 틈을 몰래 빠져 나와 불멸의작품인 "쿼바디스"로 영광의 대열에 섰다. 또 다른 훌륭한 작가는 토착어로 글을 쓴 로방스의 시인인 프레데리크 미스트랄인데, 그는 모국 스페인이 탄생시킨 가장 형편없는 극작가 중의 하나와 공동 수상하는 비참한 명예를 안았다.그 극작가는 하느님이 자신의 성스런 왕국에 데리고 있을  유명한 수학자 호세 에체가라이였다.


  이후 16년이란 기간 동안에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다섯 명의 작가가 상을 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1916년헨리 제임스, 1922년 마르셀 프루스트, 1924년 조셉 콘래드. 그리고 같은 해에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숨을 거두었다.또한 이 기간 동안에도 이런 천재들의 반열에 있던 작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상을 받지 못하고 1936년에 죽은 길버트체스터튼이나 출간된 지 19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세계문학의 흐름을 바꾸었던 "율리시즈"의 저자이자 1941년에 죽은제임스 조이스였다(또한 노벨상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었던 다른 작가들도 있었다. 가령, 토머스 하디, 올더스 혹슬리.버지니아 울프, 몽테를랑과 앙드레 말로 등을 들 수 있다).


  반면에 이런 불운한 기간에 상을 받았던 열네 명의 작가들 중에는 단지 네 명만이 아직도 오래도록 이름을 유지하고있다. 벨기에의 작가 모리스 메테를링크와 프랑스 작가인 로맹 롤랑과 아나톨 프랑스, 그리고 아일랜드의 조지 버나드 쇼가 그들이다.우리가 읽으면서 달콤한 눈물을 흘렸던 타고르는 벵골 분할 반대 투쟁으로 인해서 빌어먹을 법의 이름으로 사라졌으며, 한창 명예를 누리고 있던 1920년에 상을 수상한 노르웨이의 크누트 함순도 부당하게 타고르와 같은운명을 맞이했다. 그로부터 2년 후 스웨덴 한림원은 두 번째로 스페인 작가인 하신토 베나벤테에게 수상을 하는 정말로끔찍한 사고를 저지른다. 그는 형언할 수 없이 엉터리이며, 아마도 하느님이  이 세상이 망할 때까지 가능한 한 호세에체가라이와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싶어할 사람이었다.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 기간에 수상한 작가들 중에서 그 누구도 그 상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카프카와 프루스트가 노벨상 명단에서 제외된 것은 이해할만하다. 덴마크에서 유명했던 겔레루프와 폰토피단이 공동수상할 당시, 프란츠 카프카는 그가 일하던 보험회사에서 나와야만 했고 7년 후 비엔나의 어느 병원에서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대작인 "변신"은 그가 죽기 얼마 전에 독일 잡지에 출판되었다. 그러나 너무 늦은 시기인 1926년에야 비로소 그의 친구였던 막스 브로트는 죽은 사람의 뜻을 어기고 두 편의 천재적인 소설인 "성"과 "심판"을 출판했다.그 해 노벨상은 이탈리아의 시인이었던 그라치아 델라다에게 돌아가며, 그녀는 수상후 10년 이상을 살았다.

 

  마르셀 프루스트 역시 노벨상의 영광을 안지 못하고 죽었다.
1916년에 그의 대작 중의 제 1권은 여러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았다. 그 중에는 1947년에 매우 합당하게 노벨상을 수상한앙드레 지드가 문학 주간으로 있었던 갈리마르 출판사도 끼어 있었다, 그 작품은 수년 후에 자비로 출판되었다. 그 후1919년에 제 2권인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는 즉각적으로 명성을 얻으며, 프랑스 문학의 최대의 특전인 콩쿠르상을받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공정해야만 한다. 사실 정말로 예언적 힘만이 작가가 죽은 후에애 전집(全集)이 출판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금세기의 가장 멋진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 이곳에서 약속했던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그레이엄 그린은 자가기 결정적으로 받은 영향은 바로 헨리 제임스와 조셉 콘래드라고 내게 말했다. 이 두 사람은 영어권에서 대가들로 평가받는 사람들이다. 헨리 제임스가 죽은 해에 노벨상은 스위스의 페르네 폰 헤이덴스탐에게 돌아갔다. 콘래드가 죽은 해에는 콘래드처럼 폴란드에서 태어난 다른 작가인 레이몬트에게 수여되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모두 1963년에 수상한 그리스의 게오르게 세페리스와 1978년에 상을 탄 미국의 아이작 싱어처럼숨은 천재는 아니었다.


  카프카와 프루스트와는 반대로 콘래드는 명예를 누리며 살았다. 그는 16편의 소설과 수많은 단편을 출간했으며, 대부분의 작품은 걸작이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작가 중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었으며, 영국의 기사 작위 수여를 거부하는 화려함까지 누리고 있었다. 67세가 되자 그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마리 퀴리는 190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남편인 피에르 퀴리와 함께 받았고, 그 후 1971년에는 그녀 혼자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또한 미국인 존 바딤은 1956년에 트랜지스터의 효과를 발견하여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1972년에는 초전도이론 개발에 대한 공헌으로 공동 수상했다. 마지막으로 리누스 칼 폴링 교수는 1954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았고,1962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반면에 두 번씩 노벨 화학상을 받아도 마땅했던 아인슈타인은 단 한번만 수상했을 뿐이다. 그것은 노벨상 결정권자들이 너무 조심스러웠기때문이다. 그들은 상대성 이론이 거짓으로 판명될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그에게 광전류(光電流) 이론의 발견으로 상을 주었던 것이다.

 

  이처럼 스웨덴 한림원은 경망스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와 정반대이다. 인정해야만 할 한림원의 미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감성이다. 한림원은실수를 범한다는 사실에 겁을 먹지 않으며-물론 수없이 실수를 범한다-평생 동안 단 한 작품만 쓴 사람에게도 노벨상을 수여하며, 과학 분야에셔 뛰어난 사람은 문학 분야에서는 그렇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스웨덴 한림워너이 저질렀던 단 한번의 모순은-그 이후에는 아마도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6개월 전에 세상을 떠난 스웨덴의 가장
대중적인 시인인 에릭 악셀 카를펠트에게 1931년 상을 수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이상한 것은 카를펠트가 1918년에 상을받을 뻔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해는 수상자가 없다고 발표되었다. 사실 1958년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와 1964년에 장 폴 사르트르가 수상을 거부했을 때 수상자 없음을 공표하지 않은 채. 왜 그들의 의지와 정반대로계속해서 그들을 수상자로 간주했는가에 대해서는 별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


 어쨌거나 작가들 사이에 익히 널리 퍼진 미신능 노벨 문학상은 죽음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75명의 수상자들 중에서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은 12명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에 보르헤스가 느꼈던 갈망을 느끼지 않는 몇몇 위대한 작가를 알고 있다. 그들은 보르헤스와는 반대로 형이상학적 공포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 아무도 7년 이상을 살지 못한다는 믿음이 갈수록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것은 통계적으로 증명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22명이 이 기간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부인할 수도 없다.

 

  그런 나쁜 선례를 남긴 사람들은 초기의 수상자들이다. 쉴리 프뤼돔은 수상 후 6년 후에 숨을 거두었다. 독일 작가 테오도어 몸젠은 1년 후에 죽었다. 노르웨이의
비욘스티에르네 비외른손은 7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최초의 10년간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 중에서 기록을 남긴 사람은 이탈리아의 시인 지오수에 카르두치이다. 그는
1906년 11월에 수상하고 이듬해 2월에 숨을 거두었다. 그렇지만 현재의 최고 기록은 영국의 위대한 시인인 존 골드워디가 보유하고 있다. 그는 1932년에 노벨상을 받고
60일 만에 죽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즉 노벨상이 수여되는 평균 나이는 64세이며, 따라서 수상자들이 7년 이내에 숨을 거둔다는 것은 통계학상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그들은 아주 젊어서 수상한 작가들을 예로 들면서 이런 미신을 부정한다. 그들 중에서 가장 젊은 나이로 수상한 사람은 키플링이었다. 그는 42세에 상을 탔고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싱클레어 루이스는 45세에 수상했으며 66세에 죽었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펄벅은 46세 때
상을 받았고 8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유진 오닐은 48세에 받고는 73세의 나이로 죽었다. 이 중의 아주 슬픈 예는 알베르 카뮈이다. 그는 자신의 영예와 재주를 맘껏 발휘하던 44세의 나이에 상을 받았지만, 2년 후에 아마도 그가 가고자 했던 곳이 아닌 목적지로 운전하던 자동차에 치여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항상 우리의 삶은 논리에 반대하는 방법을 발견하기 마련이다. 그런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주 나이를 먹어서 상을 받은 세 사람을 들 수 있다. 그들은 80세에 수상한 독일의 파울 폰 하이제와 78세에 수상한 버트란트 러셀, 79세에 상을 받은 윈스턴 처칠이다. 하이제는 상을 수상한 후 4년 후에 죽었으며, 따라서 우리가 말하려는 것과 반대의 경우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처칠은 매일 한 곽이 넘는 시가를 피우고 매일 두 병의 코냑을 마시면서도 11년이나 더 살았다. 그리고 버트란트 러셀은 세계 기록을 갱신했다. 그는 노벨상을 받은 지 20년이 지나 9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가장 이상한 경우이자 모든 통계의 상식에서 벗어난 노벨상 수상은 1966년에 공동 수상했던 쉬뮈엘 아그논과 넬리 작스였다. 아그논은 1888년에 폴란드에서 태어났지만 가족과 함께 이스라엘로 이민을 가서 이스라엘 국적을 취득했다.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가장 위대한 이스라엘 작가였다. 위대한 시인이자 아주 훌륭한 여류 극작가인 넬리 작스는 1891년에 베를린에서 역시 이스라엘 가족으로 태어났지만, 항상 독일 국적을 간직했다. 제2차세계대전 초기에 그녀는 나치의 추적을 피해 도망쳐 스위스에 정착했다. 아그논은 노벨상을 받은 지 4년 후인 1970년2월17일에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84일 후, 그러니까 5월12일에 넬리 작스는 70세의 나이로 스톡홀름에서 숨을 거두었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이런 숫자의 미스터리를 믿는다는 증거를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단 한번 그런 것을 말했다. 즉, 어느 기자가 노벨상을 거부한 것을 후회하느냐고 묻자, 그는 "아닙니다. 그 정반대입니다. 그래서 내가 목숨을 구했으니까요."라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는 이렇게 말한 후 6개월 후에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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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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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최인천 | 작성시간 09.09.26 부분은 말해야겠네요. 번역상에 오류인지 윤문과정에서 인지 모르지만 카뮈를 이야기하는 곳에 이 귀절이 "2년 후에 아마도 그가 가고자 했던 곳이 아닌 목적지로 운전하던 자동차에 치여 숨을 거두었다." 좀 이상합니다. 아마..아마..^^* 아마에 대한 해답은 책세상에서 출판한 카뮈전집 권말 부록을 보시면 해결에 실마리를 찾지않을까합니다. 다시 한번 낄낄거리면 읽을 수 있는 꺼리를 열심히 워드해 올려주시어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노덕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9.27 저도 그 부분 조금 이상해서 한 글자 씩 대조하며 옮기긴 했었는데요. 번역시의 문맥상의 부자연스러움이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출판사 이름을 금방 잊어버렸는데요 가끔 좋은 작품들을 내는 출판사였던 것 같아요.참 옮기고 나서 출판사와 번역가 이름을 빠트렸던 것이 생각났었는데 이미 책을 반납한 상태...그나마 마르케스의 작품을 대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단 생각을 했었답니다.
  • 작성자노덕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9.27 얼마 전에 역시 출판사 이름을 잊어버렸는데요( 이런 기억력으로 영문학 공부를 하고 있다는게 참 신기합니다 ㅎ) 3권으로 된 일본의 추리소설시리즈를 역시 도서관에서 빌어다가 읽는데 그 중 특정 부분에서 (철자 상의) 상당한 오류가 발견된 적이 있었어요. 답답한 나머지 그 쪽 수와 행 수를 대충 기록해 두었다는, 그러나 역시나 출판사에 연락은 못했다는... 혹시 같은 출판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 답댓글 작성자최인천 | 작성시간 09.09.27 아니요. 기억력 나쁜 사람만 영문학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문학은 더 기억력이 나쁜 사람이.. 그 많은 이상한 이름들 기억에 넣어두려면 내가 미치고 말지요^^* 늘 곱디 고은 나날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아 missing piece는 병가지상사라하지요. 근데 다음에는 아니시겠죠 ㅎㅎㅎ
  • 작성자여국현 | 작성시간 09.09.28 올려주신 글과 두 분의 필담, 재밌게 보았습니다^^*~ 덕순 님, 저도 다음 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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