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의 대표작을 들라면 빠지지 않고 드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림자>입니다. 이 작품은 아동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관점으로 보는 아주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한 작품을 놓고도 연구자들 사이에서 빛과 그림자 양 쪽 면을 모두 보고 있습니다. 한 작품이 이렇게 다양한 울림을 주면서 다양한 감상을 만들어낸다면 어떻든 그 작품은 상당한 문제작이라 할 수 있겠지요. 안데르센의 공부를 하는데, 워낙 작품이 많으니 다 말할 수는 없고, 여기서는 우선 한 작품이라도 깊이읽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자리는 안데르센의 삶과 문학 전체를 조명해보기 보다는, 근대동화 언어의 뿌리를 찾아가는 작업을 하는 자리이니만큼 한 작품을 깊이 읽다보면 그런 시도를 통해서, 아, 동화는 이렇게 다양한 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구나 하는 어떤 관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림자>한 편을 놓고, 안데르센의 삶과 세계관(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이야기 구조 면에서, 내면심리 면에서 이렇게 다양한 자리에서 살펴본 서양사람들이 쓴 글을 읽어보면서, 나도 참 공부가 많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내가 읽어본 글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그림자>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추운 지방에 살던 학자가 더운 나라로 여행을 갔습니다. 학자는 날씨가 더워 집안에만 갇혀 있다가 저녁이 되면 발코니에 앉아 자기 그림자를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하루는 등 뒤에서 빛이 비쳐 그림자가 건녀편 집 벽에 드리워졌습니다. 학자는 농담 삼아 그림자에게 건너편 집 안으로 들어가 무엇이 있는 지 보고 오란 말을 합니다. 그랬더니 그림자는 집안으로 들어가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학자는 하는 수 없이 예전 그림자는 잃어버린 채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런 뒤 어느 날 비쩍 마른 한 사내가 학자를 찾아왔습니다. 예전에 학자가 잃어버렸던 그림자였습니다. 그림자는 비쩍 마르긴 하였지만 학자를 떠난 뒤에 여러 면에서 넉넉해져 필요하면 하인을 둘 수도 있을 정도로 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주인의 몸에서 독립하여 그림
자는 이를테면 성공을 한 것이지요.
안데르센이 살던 시대만 해도 덴마크는 계급사회였습니다. 주인의 삶과 비천한 신분을 상징하는 그림자의 삶은 엄격하게 신분제로 구별되어 있던 사회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림자가 주인을 벗어나서 하인을 둘 정도로 부자가 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늘 지배계급의 주변에 머물러 살아야만 했던 안데르센이 이런 <그림자>와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건 하여튼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주인을 떠나 부자가 되어 돌아온 <그림자>는 어쩌면 안데르센 자신을 상징하는 목숨이라 할 수도 있겠지요.
안데르센은 그림자의 입을 빌어서 이렇게 자기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나는 나의 내적 존재를 깨달았어요. 태어날 때부터 시를 좋아한다는 걸 말예요. 당신과 함께 있을 때는 그걸 깨닫지 못했어요. 하지만 당신도 아실 거에요. 태양이 뜨고 질 때 내가 아주 커지고 달빛 속에서는 오히려 당신보다도 더 또렷하게 보인다는 걸요. 하지만 그때는 나의 참모습을 몰랐지요. 그런데 바로 그 응접실에 들어서자 나의 참모습이 나타났어요. 난 사람이 된 거죠. 완전히 성숙해 졌다구요.”
그림자(안데르센)는 자신이 갖고 있는 내적 존재의 우월성에 대한 자기 확신에 차 있습니다. 그림자는 자기 주인에게 시의 여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삼주 동안 머물면서 시나 신문을 모두 읽어 치워 이제는 모든 것을 배우게 되었다는 말을 합니다. 그림자는 자신이 타고난 능력은 결코 주인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안데르센은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났으면서도 타고난 글쓰기 재능 때문에 지배계급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지배계급의 한 구성원이 되긴 하였지만 그래
도 여전히 상류계급내에서는 비천한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잭자이프스는 “안데르센이 한 사람의 작가로서 이룬 업적과, 지배계급에 대한 아부근성, 그리고 그 아부근성과 작품에 대한 문화적인 찬사 사이의 관계”(Fairy tales and the art of subversion. Jack zipes. routledge. 1991. 71쪽)를 잘 풀어나가다 보면 안데르센이 19세기 당시 대중으로부터 받은 명성의 숨은 배경이 좀더 뚜렷이 드러날 것이란 얘기를 합니다.
잭 자이프스는 안데르센의 작품세계를 다룬 글 첫머리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그림 형제가 옛이야기에 문장의 옷을 입히는 작업을 통해서 부르주아(중산계급의 자본가)계급이 사회 전면에 나서는 동안 그들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자리매김해 준 첫 작가들이었다면,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은 부르주아 계급의 근본적인 이데올로기를 찬양하면서 1835년부터 1875년에 걸쳐 어린이를 위한 창작동화(창작옛이야기)의 장르를 개척하여 이들 계급의 이상을 완성해 간”(위책. 71쪽)작가랍니다.
안데르센은 자기 이야기에 부르주아 계급의 이상을 담아내 “이들 계급의 좋은 지킴이”구실을 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지배계급의 관점에서 볼 때 안데르센의 이야기는 지배계급의 아이들을 기르는데 쓸모나 가치가 인정되어 그 당시 서구 문화에서 문학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71쪽)는 것입니다.
잭 자이프스는 안데르센의 동화를 지배이데올로기와 그 지배 이데올로기를 한 작가가 어떻게 작품에 반영하고 또 맞서는 자리에 서 있는지를 밝히는, 다시 말해서 주로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보고 있습니다.
안데르센의 이야기에는 “뚜렷한 이데올로기적 경향이 존재하는데 이 경향은 안데르센의 비천한 출생 신분과 그의 성공을 손에 쥐고 있던 덴마크 지배계급에 대한 이중의 감정이 만들어낸 결과물”(72쪽)이라는 것이지요. 안데르센의 작품을 읽다보면 지배계급에 대한 풍자와 찬사 이 두 가지 이중의 태도를 쉽게 엿볼 수 있습니다.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러한 이중의 태도가 바로 안데르센 동화에 극적인 긴장을 가져오게 해서 오늘날까지 시간의 무게를 견뎌내며 읽히는 이야기”(72쪽)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림자>에서 주인을 풍자하는 그림자의 말만을 보더라도 쉽게 안데르센이 갖고 있던 지배계급에 대한 풍자와 동경이 함께 드러나는 이중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안데르센이 살던 당시 덴마크는 계급사회였습니다. 비서렛(Bisseret)은 19세기 안데르센이 살던 시기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타고난 능력의 차이가 있어 지능이나 언어 같은 다양한 정신능력의 요소들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 그래서 사회 제도 안에서 개인의 위치는 이미 변할 수 없는 것”(옛이야기 뒤집기의 예술. 75쪽)으로 간주하였답니다. 그러니까 “자유시장 경제에서는 특출 나게 선택된 사람이 있고 이들은 지능이나 근면성, 책임감과 같은 근본적인 자질들을 다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타고난 재능으로 이미 성공이 예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래서 안데르센이 살던 당시 19세기에는 “생물학, 우생학, 인종에 관한 관심이 크게 일어나 찰스 다윈이나 허버트 스펜서의 이론이 빛을 받기 시작하였다”는군요. 이들의 이론은 이 당시 “중간계급이 사회 전면에 나서는 과정에 하나의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해 준” 것인데, 푸코(Foucault)는 사람들이 타고난 재능에 차이가 있다는 불평등개념이 갖고 있는 문제를 이렇게 지적합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에 차이가 있다는 이데올로기는 어느 한 시기의 사회 계급 사람들에 의해 조장되어 왔다. 이러한 개념이 경제적인 힘을 얻고 다시 뒤에 정치적인 힘을 얻을 때 하나의 과학적인 진실로 둔갑하게 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두개골연구학이나 나가서 인체 연구학, 생물학, 심리학, 그리고 사회학에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를 빌려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타고난 재능이 다르다는 불평등 이데올로기는 사회 구성원들 위에 군림하며 사람들은 타고난 재능을 우선시하는 개념을 진보적이고 과학적인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적대시하고, 마침내는 논쟁의 여지없이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특출난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교육적인 안내자가 되어 사회 전체의 흐름을 유도하게 되었다. 교육제도는 엘리트를 뽑아 훈련시키는 일을 목적으로 하고, 엘리트들은 그들의 능력, 즉 재능과 재질에 따라 높은 기능의 일을 맡게 되고, 그 책임 여하에 따라 사회 경제적인 이권이 주어지는 것이다.”(위책 76쪽)
안데르센의 삶과 문학은 크게 다음 두 가지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은 남다른 능력을 타고난 선택된 인간이라는 ‘태생적 이데올로기’이고, 또 하나는 ‘기독교적 구복신앙’입니다. 안데르센은 “요정이야기와 같은 삶”이란 자서전에서 “내 삶은 나에게 사랑스런 하느님은 최상의 것만을 준비해놓으신다는 교훈을 가르쳐주었다. 내가 살면서 배운데로 나는 세상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내 이야기를 썼다.”(안데르센 전기. 프레데릭 부크. 3쪽)고 말합니다.
‘태생적 이데올로기’와 ‘기독교적 구복신앙’ 이 두 가지 사상은 다시 한 가지 사상으로 통합니다. 바로 ‘개인주의’입니다. 우수한 능력을 타고났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계급사회의 벽을 뛰어 넘어 돈과 권력이 주어져야 하며, 이러한 돈과 권력은 마땅히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복음의 결과물이라는 구복신앙적인 믿음에 의해 한번 더 개인주의가 그 정당성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지요. ‘태생적 이데올로기’와 ‘기독교적 구복신앙’에 근거를 둔 ‘개인주의’는 안데르센에게 정치 경제 사법적으로 내려오던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손쉽게 초월하는 정신적인 근거를 제시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론적으론 이렇다 하더라도 실제 덴마크에서 안데르센과 같이 비천한 신분에서 태어난 사람이 지배계급의 한 구성원이 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잭자이프스는 안데르센이 살던 당시 덴마크의 상황을 이렇게 말합니다.
“당시 덴마크는 아주 작은 나라였다. 급격하게 중산 계급의 자본가들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겪고 있었지만, 여전히 봉건 관료 구조로 꽉 짜여진 나라였다. 당시 덴마크에는 약 20만명이 살았는데, 이 가운데 12만명이 덴마크의 수도인 코펜하겐에 살았다. 이렇게 작은 나라였기 때문에 교육을 받은 중산계급의 자본가들이나 귀족계급의 사람들은 모두가 누가 중요 인물인지 잘 알고 있었다”(위책 76쪽)는 것이지요. 세상이 점점 중산계급의 관료들과, 자본투자가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로 변해가긴 하였지만 여전히 왕과 주변의 조언자들은 1840년대 초까지만 해도 중요한 결정권을 행사하였답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볼 때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덴마크 사회를 지배하는 지배계급은 왕과 그 주변 세력들, 그리고 중산계급의 자본가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기득권을 가진 지배계급들이 누가 누구인지를 뻔히 알고 있는 작은 나라에서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난 사람이 계급 장벽을 넘어서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이런 계급사회에서 예외적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선천적으로 예술적인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예외적인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안데르센이었습니다. 그러나 안데르센은 “지배 계급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기는 하였지만 그 사회 안에서는 여전히 지배받는 자리”(잭자이프스. 77쪽)에 서 있어야 했습니다. 이래서 안데르센이 남긴 글에는 늘 이중의 감정이 섞여 있습니다. 비천한 신분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성공의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을 나타내면서도, 한편으론 그 당시 계급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여 왕이나 공작이나 공주나 국내외의 귀족계급들과 교류하며 그들에게 칭찬받는 일을 큰 기쁨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럼 당시 덴마크에서 안데르센의 사회적인 위치를 고려하면서 ‘그림자’를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학자에게 찾아와 자신의 성공담을 들려준 그림자는 다시 훌쩍 떠난 뒤 몇 년이 지나서 돌아왔습니다. 이때 학자는 세상의 착함, 선함, 아름다움에 대한 글을 쓰다 지치고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있을 때였습니다. 이런 학자에게 그림자는 당신은 세상을 너무 모른다면서 같이 여행을 떠나잡니다. 여행경비는 그림자가 다 댈 테니 대신 자기가 주인이 되고, 학자는 자신의 그림자가 되어달랍니다. 이렇게 해서 주인과 그림자가 서로 바뀐 자리에서 두 사람은 여행을 떠나는데 여행 중에 학자와 그림자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지요.
학자가 주인이 된 그림자에게 하는 말부터 들어보지요.
“우린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고 이젠 함께 여행하는 친구가 되었으니까 우정을 위해 건배하는 게 어떨까. 그리고 서로에게 너라고 부르기로 하고 말야.”
“참으로 솔직하고 호의적이시군요.” 지금은 주인이 되어 있는 그림자가 말했다. “나도 솔직하고 호의적으로 한 마디 하겠어요. 당신은 학자로서 사람의 본성이 얼마나 불가사의한지 알 거예요. 갈색 포장지 냄새가 역겨워서 구역질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못으로 유리를 긁으면 온 몸에 소름이 끼친다는 사람도 있지요. 누가 나한테 ‘너’라고 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런 느낌이 들어요. 당신의 그림자로 있었을 때처럼 기가 죽어요. 이건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기분 문제라는 걸 알 거에요. 당신이 나한테 ‘너’라고 부르는 걸 참지 못하겠어요. 하지만 난 당신에게 기꺼이 ‘너’라고 부르겠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원하는 것이 반은 이루어진 거죠.” 그림자는 이렇게 말하고는 옛 주인을 ‘너’라고 불렀다.
“난 당신에게 ‘당신’이라고 하는데 상대는 나한테 ‘너’라고 한다니, 참 너무하군.” 학자는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림자>도 안데르센의 자전적인 삶이 들어있는 대표적인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비천한 신분의 안데르센이 무작정 코펜하겐으로 왔을 때,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준 사람이 요나스 콜린이었습니다. 콜린은 안데르센을 실제 양자처럼 보살펴주었습니다. 이래서 자연 안데르센은 콜린의 가족과도 친하게 지냈는데, 특히 요나스 콜린의 아들 에드바르트 콜린은 안데르센의 글쓰기와 출판 전반에 관한 일을 도와준 둘도 없는 친구사이였습니다. 안데르센은 에드바르트에게 너 나 하는 가까운 사이로 지내길 원했지만 에드바르트 콜린은 그때마다 거절을 하였습니다. 이래서 안데르센은 격식을 차리고 당신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요. 두 사람은 어릴 때 형제처럼 지냈지만, 에드바르트는 늘 마음 한 구석에 안데르센보다 높은 신분상의 우월감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안데르센은 또한 에드바르트에게 이런 넘을 수 없는 신분상의 벽을 느끼며, 한편으론 그런 높은 신분을 갈망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증오하는 양면의 감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안데르센은 주인(에드바르트 콜린)으로부터 몸이 떨어져 나온 그림자(자기 자신)가 나중에는 크게 성공하여 자신의 앙갚음을 하는 <그림자>와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림자(안데르센)가 주인이 되고 학자가 이제는 그림자의 자리에 섰습니다. 학자와 그림자 사이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그림자(안데르센)는 학자에게 자신이 겪었던 수모를 되갚아주었습니다. 나중에 그림자는 공주와 결혼을 합니다. 그림자는 학자에게 궁전에 가서 나와 함께 살면 임금님의 마차를 타면서 해마다 많은 돈을 받게 될 거랍니다. 이러면서 그림자는 “하지만 사람들이 널 보고 그림자라 부르게 하겠어. 그리고 네가 한 때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절대로 말해선 안돼. 일년에 한 번씩 내가 햇살이 비치는 발코니에 나가 앉아 있을 때 넌 내 발 아래 누워 있어야 해. 그림자처럼 말야.”이런 얘길 합니다. 그러나 학자는 그림자의 말을 듣고 “이건 말도 안돼. 그럴 수 없어. 난 그렇게 못해. 어떻게 그런 바보 같은 말을 따르라고 하는 거지? 그건 온 나라를 속이고 공주를 속이는 짓이야. 모두 사실대로 털어 놓겠어. 내가 사람이고 넌 사람 옷을 입은 그림자일 뿐이라고 말이야” 하고 소리쳤습니다. 결국 학자는 그림자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창작동화(창작옛이야기)의 뿌리는 옛이야기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창작동화를 감상할 때는 옛이야기 세계를 어떻게 작가가 나름의 상상력을 통해 변화시켜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감동을 주는 옛이야기에는 잭자이프스의 말대로 ‘뒤집기의 미학’이 들어 있습니다. <그림자>도 드러난 형식만을 놓고 볼 때는 고립된 자리에 서 있던 그림자가 나중에는 주인이 되는 자리에 서는 뒤집기의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그림자가 주인을 자신의 그림자로 만든 과정이 얼마나 진실한 세계를 창조해내는 뒤집기의 예술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림자>에서 주인이 된 그림자는 결국 공주와 결혼을 합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1840년대 초까지만 해도 왕과 그 주변 세력들은 덴마크 사회를 지배하는 중요한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림자는 개인의 신분 상승을 이루어내긴 하였지만, 결국은 그 당시 지배계급의 한 축이었던 공주와 손을 잡는 자리에 서고 말았습니다. 이래서 잭자이프스는 “그림자는 여전히 상황이 뒤바뀌었는데도 지배계급의 비위를 맞추는 자리에 서 있다. 이런 관점에서 안데르센의 주인공들은 신분의 상승을 이루긴 하였지만 사회 존재 기반의 질적인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고 단지 힘의 요구에 복종하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위책.90쪽) 있을 뿐이랍니다. 달리 말하면 안데르센의 창작옛이야기는 진정한 뒤집기의 예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계급장벽의 벽을 뛰어 넘어 낮은 자리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에 빛을 가져오는, ‘참된 해방을 가져오는 인물’을 창조해내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안데르센의 작품하고, 동시대 다른 작가들이 쓴 창작옛이야기를 비교해보면 쉽게 드러난다. 안데르센은 이야기의 결말과 줄거리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줄곧 ‘하느님’과 ‘청교도 윤리’에 기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안데르센 이야기에서 고립된 목숨은 자신의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상류계급과 중산자본가들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아야만 했다”(위책.84쪽)는 것이지요. <인어공주>가 바로 안데르센의 이런 세계관을 드러내는 가장 대표적인 창작옛이야기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인어공주는 왕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자기 영혼을 팔았지만, 나중에는 왕자의 사랑마저도 얻지 못하고, 결국은 하느님의 복음에 의존하여 하늘나라로 올라갑니다. 안데르센은 그 당시 사회 밑바닥에서 고통당하는 백성의 자리에 서 있지 않고, 철저하게 지배계급의 자리에서 사유하고 있는 것이지요. 잭 자이프스는 이래서 “당시 중간계급의 도덕률과 가치관에 의존하여 안데르센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었고, 안데르센 자신의 사회적인 성공도 보장된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오늘날까지 안데르센 이야기는 성공적으로 살아남을 수”(84쪽) 있었답니다.
안데르센의 작품에 드러난 주인공들이 간직한 바람의 세계는 안데르센 자신의 신분상승 욕구를 만족해주는 작가 한 사람에 갇힌 바람의 세계에 불과하였다는 것이지요. 문학의 본질이 작가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작가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고립된 목숨들의 삶까지도 대신 살아주는 데 있다고 할 때, 안데르센의 창작옛이야기는 여기까지 나아가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잭자이프스는 주로 안데르센의 창작옛이야기를 안데르센이 살던 시대 현실을 중심에 놓고, 사회학적인 분석을 통해 얻은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잭자이프스의 이런 사회학적인 관점은 문학을 보는 아주 중요한 잣대 가운데 하나라 볼 수 있습니다. 잭자이프스는 사회학적인 잣대로 안데르센의 창작옛이야기를 비춰보면서 그림자(한계)가 되는 점을 조명해 주었습니다. 잭자이프스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아, 한 편의 동화를 볼 때는 사회학적인 관점이 우선 올바로 서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해 보았습니다. 이것 한가지만이라도 확실히 할 수 있었으니 잭 자이프스의 글을 통해 아주 많은 공부를 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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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야기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4.11.15 한 <밤의 언어>란 수필집이 있어요. 그 책에서 안데르센에 대해 한 얘긴데요. 그림형제 얘기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그 얘기도 좀 들려주십시오. 여러 사람들 말을 좀 참고해서 책을 낼 때는 흠이 덜한 책을 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책을 낼 때 좋은 말씀은 꼭 도움주신 이의 인용주를 달겠으니 좋은 글 올려주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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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vabene 작성시간 04.11.20 선생님, <밤의 언어>는 번역된 책이 있나요? 아님 원서 제목 좀 가르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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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야기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4.11.20 <The language of the night>(ursula k. le guin. The women's press.)입니다. 부제는 Essays on Fantasy and Science fiction 입니다. 아마 아마존 같은데 주문하면 가능하겠지요. 한국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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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야기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4.11.20 아, 그리고, 정말 푸코군요. 흐흐. 무식이..... 짧은 영어로 원서를 읽다보니까 무식이 탄로났군요. 고맙습니다. 고칠게요. 너그럽게 용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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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뺑덕어멈 작성시간 04.11.21 그림자라...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선생님 이야기,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