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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네가 음식을 탐하는 자이거든 네 목에 칼을 두어라

작성자이야기밥|작성시간11.05.03|조회수836 목록 댓글 7

예배 시간에 잠언(23:1~8)의 말씀을 적어보았다.

 

1 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며

2 네가 만일 음식을 탐하는 자이거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

3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속이는 음식이니라

4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 지어다

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6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지어다

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찌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 즉 그가 네게 먹고 마시라 할 지라도 그의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 함이라

8 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겠고 네 아름다운 말도 헛된 데로 돌아가리라. 

 

 이 말이 무슨 말일까. 어린이날이 낀 주일이라 목사님이 어린이 이야기를 하려고, 잠언 말씀 가운데 아이 이야기 나오는 부분을 봉독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부분에는 별 투사가 일어나지 않아, 잠언의 다른 부분을 읽다가 위 구절에서 마음이 꽃혔다.

 

 저 말씀에서 음식이 주는 상징의 의미는 무엇일까. 참으로 의미 심장한 상징의 의미가 있는 걸로 느껴진다.

'음식을 탐하는 자'라고 말할 때 저 음식은 아마도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욕망의 어떤 대상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도 싶다. 그렇다. 권력이든 명예든, 아니면 무언가 대단한 작품을 쓰겠다는 욕심이든, 유명해지려는 마음이든,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아부를 하면서라도 무언가 지금 여기에서 맛난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다면, 그런 마음이 일어날 때 목에 칼을 두라는 것이다.

 참으로 비장한 말이다.

 

 살다 보면 늘 이런 어떤 기회 앞에 내가 서야 할 때가 있다. 나에게 어떤 좋은 조건이나, 어떤 좋은 상황이 열리고, 거기에만 가면, 그 사람 줄에만 서면, 이번만 넘기면, 그 돈만 생기면 하는 식으로 무언가 내가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존의 권력에 기대서, 줄에 기대서 위기를 넘기고 싶은 욕심이 들 때가 있다. 이때가 사실은 위기이면서 기회가 될 것이다.

 

 내가 스스로 가면서 얻는 열매가 아니라면, 나 혼자 고립된 자리에서 나의 자유로운 목소리를 내면서 즐기는 기쁨이 아니라면, 일단 목에 칼을 두고 볼 일이다. 이 말의 의미는 이쯤 되면 자명해지는 것도 같다. 그러한 욕심을 칼 같이 잘라 버리라. 내 목에 칼을 두고 좀더 낮은 자리. 좀더 자유로운 자리, 좀더 고립된 자리로 돌아가 기도하라는 말이 아닐까도 싶다.

 홀로 서야 한다. 음식을 탐하는 마음이 들거든, 목에 칼을 두어라. 고립되어라. 네 영혼을 고립된 자리에 두거라. 홀로 가거라. 이런 소리가 아닐까 싶다. 

 

 목사님 말씀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아 이런 저런 잠언 말씀을 읽다가 다시 목사님이 이사야서에서 한 말씀을 인용한다. 그래서 다시 책장을 넘겨 이사야 한 부분을 또 마음 대로 읽다가 이 부분을 공책에 옮겨보았다.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이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 얼굴을 가리었고, 둘로는 자기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 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 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데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가지 니라

13 그 중의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 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이가 이 땅의 그루터기이니라 하시더라. (이사야 6:1~13)

 

 설교를 들으면서 여기까지 공책에 적었다. 필사를 하는데 예배 시간이 끝났다.

 참으로 처절한 말씀이다.

나는 성경을 모른다 이사야 서도 세세하게 읽어보지 못하였다. 이사야서가 갖고 있는 성경에서의 독특한 의미도 잘 모른다.

그러나 무언가 여기까지의 말씀만 들어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내가 느낀 기운이 맞는지 틀리는지 나는 모른다. 그래도 그냥 기운으로 느껴지는 서늘함이 있다. 무언가 황폐하고 절망으로, 어둠으로, 바닥으로, 심연으로, 혼란으로 가는 삶의 과정을 암시하고 있다. 이런 혼란의 때에, 위기의 때에 선지자가 오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 그야말로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들리고, 보이고 하는 자가 오는 것이다.

  이 한 사람의 내면에 찾아오는 저 환상의 말씀, 없이 계시는 존재 자체의 기운과 에너지와 소통하는 깨어난 몸의 에너지를 우리는 지금 어떻게 이어받을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 아까 잠언의 말씀이 번뜩 떠올랐다.

그렇다. 절대 절명의 위기, 어둠의 시기라 할 지라도 우리는 오히려 그때에 저 그루터기에 대한 어떤 회복의 감정, 결코 죽지 않는다는 어떤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힘들수록 오히려 우리의 목에 칼을 두는 저러한 깊은 심리 에너지의 흐름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교감하고 소통할 때 절대로 밤나무나 상수리나무와 같이 그루터기는 남는다.

 

 목에 칼을 두어서 밤나무와 상수리나무의 몸통이 잘려 나가도 그루터기는 남는다는 이 강한 믿음이라할까. 자기 존중감이라 할까, 이러한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게 바로 사랑인가. 사랑은 소통이고 교감이고 굴복이고 비움이고, 조화인가. 

 예배를 보면서도 참으로 많은 생각이 마음 속에서 강물처럼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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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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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모래 | 작성시간 11.05.04 밀가님 제 꿈 속의 그 '칼' 빌려드릴까요?
  • 작성자밀가 | 작성시간 11.05.04 ㅎㅎ 모래님..그 칼은 너무 섬뜩해서..좀 무딘 청동검으로다가...하나 장만했습니다.
    전쟁터로 나가면서 원탁의 기사처럼 칼을 하나 획득했답니다. 무뎌 보이는 청동칼...아마 프로이트의 환자들이란 책을 읽은 뒤였던 것 같아요...
  • 답댓글 작성자지오 | 작성시간 11.05.04 무뎌보이는 칼은 힘이 강한 사람만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밀가님한테 어울리는 칼이라고 여겨짐..^^
  • 답댓글 작성자모래 | 작성시간 11.05.04 동감..^^
  • 작성자산딸기 | 작성시간 11.06.12 선생님 말씀대로 자기 존중감-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은 사랑에서 온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바로 사랑이니까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면 바로 자유가 진리이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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