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태어나 처음 만난 나의 첫 남자...
이른봄 처음 만난 그 남자는 아직 목도 가누지 못하는 작고 어린 여인을 나일론 강보에 싸안고 창경궁 벗꽃을 보여 주려 길을 나선다.
세상에 태어나 한번도 제것을 가져 보지 못한 서러운 남자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질 않았고 품에 안은 작은 여인이 불편할까 걷는 걸음은 마치 공기를 머금은 왈츠를 추듯 부드럽고 조심스럽다.
유난히도 하얀 어린 여인은 출생신고를 미룰 만큼 참 많이도 참 자주도 아파 남자의 애간장을 녹인다.
키 172cm, 길고 가는 팔다리를 가진 마른 남자는 어린 여인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도록 아프면 등에 업고 병원을 다닌다.
지금도 그 남자의 등과 끊여 주던 오뚜기 스프맛을 여인은 잊지 못한다.
퇴근후 집에 돌아온 그 남자의 무릎은 항상 어린 여인의 것이었고 밥을 먹을때도 신문을 볼때도 늘 무릎을 차지한 여인을 안고 불편함 한번 내색하지 않는다.
저녁이면 자라나 까끌한 수염을 볼에 부빌때면 따가와
앙앙거리는 어린 여인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그 남자는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여인은 까끌한 수염 있는 남자가 좋다.
월급 봉투가 손에 쥐어 지는 날이면 남자는 외식을 한다.
당연한듯 메뉴는 어린 여인의 몫이었고 단 한번도 안돼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 가는 길엔 다리가 아프다는 어린 여인에게 등을 내어 주었고 어린 여인은 내려 놓을까 두려워 잠든척 연기를 한다.
그 남자와 어린 여인은 속이고 속아주는 그런 관계였다.
영화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나의 첫 남자는 로맨틱하고 유머러스했다.
사랑 받고 싶어 했고 사랑하고 싶어 했던...
늘 사랑을 꿈꾸던 나의 첫 남자.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도화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05.10 보리심님 덕분에 또 깨닫습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주는 사랑을 이루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
작성자이채은 작성시간 20.05.11 도화지님의 아버님은 참 멋지는 분이셨네요~
그 사랑 다시 찾게 되었음을 축하합니다.
아팠던 만큼 앞으로는
내내 더 큰 사랑의 축복이 함께하여 행복한
여자의 인생으로 거듭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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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도화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05.11 이채은님 감사합니다~♡
정말 행복한 여자가 되고 싶습니다...그날이 빨리 왔으면요...ㅎ -
작성자만남 작성시간 20.05.19 눈물이 떨어지네요.
사랑하는 도화지님,글에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가슴이 아리도록 아프고 따뜻하게 느껴지네요.
한편 행복했어요.
저의 딸도 어릴적에 외출후 귀가시에는 항상 아빠가 안아주는데,늘어져서 잠들지요.
집에 도착하여 내려눕히는 순간~!훅~깨어나지요.ㅎㅎ
아빠의 사랑을 확인받고 싶었군요.엄마의 사랑도 확인받고 싶었군요~
우리는 이토록 사랑 하나,그 사랑 하나로 마음으로 소통하면서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잘 몰라서
몸으로 해보려고 시도해 온 인류의 성장과정인지도 모릅니다.
잊혀지던 아빠의 사랑을 회상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도화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05.23 어쩜...닉네임...ㅎ 만남님 만나서 너무 좋아여~~
얼굴도 모르는 만남이라니... 마음이 묘하게 일렁이네요. 사랑 주셔 감사합니다~사랑 받아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