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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479호 완도 정자리 황칠나무

작성자원초적스톤|작성시간17.01.23|조회수102 목록 댓글 4

아름다운 황칠(黃漆)의 맥을 이어온 보길도 정자리 황칠나무



겨울바다는 언재나 파도가 넘실거린다. 그래도 훌쩍 배 한편에 몸을 싣고 일렁이는 파도를 벗으로 삼을 수 있어서 좋다. 멀리 해남 땅끝에서 1시간 거리의 보길도에 자라는 황칠나무 한 그루를 만나러 가 본다.

청별항에 내려 일주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4km쯤이 정자리란 마을이다. 윤선도가 정자를 지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마을 뒷산 늘 푸른 나무로 이루어진 숲속에 아래부터 V자로 갈라져 자라는 황칠나무 한 그루가 찾아간 나그네를 덤덤히 맞는다. 주위는 둥그렇게 다른 나무들을 잘라주었지만 숲이 울창하여 대낮에도 거의 껌껌하다. 나무는 높이 15m, 밑동둘레 180cm로서 한 아름 남짓이다. 나이도 100~150년 정도에 불과하다. 웅장한 다른 천연기념물 고목나무에 비하면 조금은 실망스럽다. 원래 황칠나무는 이 보다 더 크게 자랄 수 있으며 더 큰 나무도 있었을 터이나 대부분 잘려 나가 버렸다. 남아있는 나무 중에는 규모가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이다. 전통 황칠의 상징목으로서 천연기념물이란 영예를 얻었다.

황칠나무는 어떤 나무인가? 우선 황칠나무에 얽힌 역사부터 찾아보자. 첫 기록은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本紀) 보장왕4년(645)조에 등장한다. 이 해 봄, 당 태종은 명장 이세적을 선봉으로 삼아 직접 요동성을 공격하여 12일 만에 함락시킨다. 이 작전에 ‘백제는 금 옻칠한 갑옷(金髹鎧)을 바치고 군사를 파견하였다. 태종이 이세적과 만날 때 갑옷의 광채가 햇빛에 번쩍거렸다.’다고 적혀있다. 금 옻칠은 바로 황칠을 말한다. 흔히 옻칠이라면 옻나무 진에서 얻어지는 옻으로, 칠을 하여 짙은 적갈색을 내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없어져 버린 칠공예의 한 기법으로 황금빛이 나는 황칠(黃漆)이 있었다. 음력 6월쯤 나무줄기에 칼로 금을 그으면 매우 적은 양의 수액이 나온다. 처음에는 우유 빛이나 공기 중에서 산화되어 황색이 된다. 각종 기물은 물론 철제 갑옷까지 아름다운 황칠을 할 수 있다. 부와 권력의 상징인 황금의 빛을 낼 수 있는 황칠은 귀족들의 고급품에 빠질 수 없는 귀중한 도료였다. 황금으로 도금한 것 같다하여 아예 금칠(金漆)이라 부르기도 한다.

실증자료도 있다. 2007년 경주 황남동 통일신라시대 유적지에서 나온 항아리 밑바닥의 유기물 덩어리를 분석하였더니 황칠이었다는 것이다.

옻나무는 전국 어디에나 자라지만 황칠나무는 서남해안에서 제주도에 걸쳐 자라는 난대식물이다. 따라서 백제의 특산물로서 중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송나라 손목이 쓴 계림지(鷄林志)에는 '고려 황칠은 섬에서 나고 본래 백제에서 산출되며 신라칠이라고 부른다'하였다. 고려사에 보면 원나라에서 황칠을 보내 달라는 요구가 여러 번 있었다. 원종 12년(1271) 왕은 '우리나라가 저축하였던 황칠은 강화도에서 육지로 나올 때 모두 잃어버렸으며 그 산지는 남해 바다의 섬들이다. 우선 가지고 있는 열 항아리를 먼저 보낸다.' 하였으며 이어서 충렬왕 2년(1276)과 8년(1282)에는 직접 사신을 파견하여 황칠을 가져갔다.

황칠에 관련된 기록은 잠깐 훑어보아도 이와 같이 수없이 나온다. 백제와 통일신라, 고려에 걸쳐 면면히 이어오던 우리의 황칠은 조선조 후기로 들어오면서 관리들의 수탈이 심해지자 백성들이 심기를 꺼려하여 아예 맥이 끊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황칠(黃漆)이란 시(송재소 역)를 잠시 훑어본다.‘그대 아니 보았더냐 궁복산 가득한 황(黃)/금빛 액 맑고 고와 반짝 반짝 빛이 나네/껍질 벗겨 즙을 받기 옻칠 받듯 하네/아름드리나무에서 겨우 한잔 넘칠 정도/상자에 칠을 하면 검붉은 색 없어지나니/잘 익은 치자 물감 어찌 이와 견줄소냐...

공납으로 해마다 공장(工匠)에게 옮기는데/아전들 농간을 막을 길 없어/지방민들은 그 나무를 악목(惡木)이라 여기고서/밤마다 도끼 들고 몰래 와서 찍었다네.‘

궁복산은 완도의 주산인 상황산을 가린키는 것이니 황칠의 주 생산지가 완도임을 암시하고 있다. 또 정조 18년(1794) 호남 위유사 서용보가 올린 글 중에도‘완도의 황칠은 근년 산출은 점점 전보다 못한데도 추가로 징수가 해마다 더 늘어나고, 아전들이 농간을 부리고 뇌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고 하여 역시 완도가 황칠의 주산지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불과 200여 년 전까지도 완도 일대에는 널리 자라던 황칠나무는 이 처럼 관리들의 수탈을 피하여 모두 잘려나가 버리고 보길도의 이 한 그루가 옛 영광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다행이라면 최근 전통 황칠 관련 연구가 활발하여 재현에 성공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479호, 완도 정자리 황칠나무
2007.08.09 지정, 전남 완도군 보길면 정자리 산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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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별사랑 | 작성시간 17.01.23 부와 권력의 상징인 황금의 빛을 낼 수 있는 황칠은 귀족들의 고급품에 빠질 수 없는 귀중한 도료였군요

    황금으로 도금한 것 같다하여 아예 금칠(金漆)이라 부르고..

    옻나무는 전국 어디에나 자라지만 황칠나무는 서남해안에서 제주도에 걸쳐 자라고..

    중국인들이 좋아할만하네요^^
  • 작성자사랑하라 | 작성시간 17.01.23 그대 아니 보았더냐 궁복산 가득한 황(黃)/금빛 액 맑고 고와 반짝 반짝 빛이 나네/껍질 벗겨 즙을 받기 옻칠 받듯 하네/아름드리나무에서 겨우 한잔 넘칠 정도/상자에 칠을 하면 검붉은 색 없어지나니/잘 익은 치자 물감 어찌 이와 견줄소냐... ..................치자나무보다 더 좋은 황칠이네요..
  • 답댓글 작성자원초적스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1.23 표현이 멋지십니다~
    박문수에게 어사화전해준 곤룡포의 주인 같읍니다~

    아름다운 싯구절에 절로 흥이납니다~~워^^
  • 작성자혜산별무리 | 작성시간 17.01.24 서민들은 치자나무..
    왕족은 황칠 나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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