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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詩

질문해도 될까요(15)- 십오행 / 조온윤

작성자이정은|작성시간24.04.12|조회수18 목록 댓글 2

<십오행>

 

영원이라 믿었던 사람이 실은 영원이 아니라고 했다

보름이 지나면 달이 기울듯 영원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런 말을 들은 뒤에야 영원에 대해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루에 한행씩 십오행을 써보기로 한다

 

최선을 다해보자고 다짐을 하기까지도 벌써 많은 밤이 지나버렸다

십오행은 너무 짧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제는 할머니를 만나러 갔습니다

할머니, 나의 곁에서, 예쁜 곡선을 그리며 잠들어 계셨습니다

 

밤새 그 뒤를 따라 구불구불한 꿈을 넘어가다가 그래, 역시나 십오행은 너무 짧다고 생각한다 달에게는 고작 눈꺼풀을 닫는 시간 양손의 손가락을 모두 접은 뒤에 다시 한 손바닥을 펴 보이는 시간 영원이 영원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시간, 십오행이라 정한 이에게 따져 말하고 싶다 그의 옷소매를 붙잡고 매달려서 행을 늘려달라 애원하고 싶다 제발 단 한줄만이라도,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하기에 십오행은 너무 짧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줄 속에 모든 이야기를 욱여넣고 싶고 한줄 속에 아름다운 묘사를 가득 채우고 싶고 할머니의 추운 잠 속으로 기어들어가 내 온기를 가득 채우고만 싶다가......

 

또 하루가 가버린다

그렇게 한줄을 더 써내려가는 건 쉽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마지막이라면

 

영원이라 믿었던 사람의 음성을 듣게 된다

오래 머물를 수 있는 문장은 아름답지 않아도 된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조온윤, <햇볕 쬐기>, 창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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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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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양동림 작성시간 24.04.12 나는 할머니 얼굴을 못뵈고 살았다. 막내의 설움이 그런듯하다. 태어나보니 할머니는 성가든 외가든 다 돌아가시고 안계셨다. 지금도 할머니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 답댓글 작성자이정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14 양동림 선생님의 댓글을 읽는다..
    5시 46분으로 가는 이 시간은 새벽일까?
    멀리 한라산의 능선이 자리 잡으려한다.
    나에게 할머니는 울음이다.
    엄마의 등에 업혀서 내내 울었다.
    엄마는 싸늘해지는 할머니를 붙잡고 우셨고.
    그 울음은 새벽 아픔 같았다.
    누군가의 아픔은 새벽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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