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삼신론은 존재론의 입장에선 삼위일체론과 똑같습니다..
*'성부라는 신≠ 성자라는 신≠ 성령이라는 신' 곧 우주적인 신이 한(One) 분이 아니라 존재적으로 세분(Three) 이였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삼위일체론이나 삼신론이나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삼신론에선 인격면에서도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 삼신론과 삼위일체의 차이는.... 삼위일체는 삼신이 유일신이란 논리안에서 한분으로 묘사하지만... 삼신은 완전히 서로다른 개체로써의 개별적 삼신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성부라는 신과 성자라는 신과 성령이라는 신은 완전히 다른 신들이며 서로 협력하고 합력하나... 서로 다른 신들이기에... 본질에 있어서도 삼신이 서로 다른 신들이라는 다신론적 개념이 삼신론의 핵심입니다...
3.본질적 양태론....
교리신학에서 말하는 양태론이 있고... 교린신학에서 말하지 않는 양태론도 있습니다..
교리신학에서 말하는 양태론은... 본질의 변화 혹 본질의 변형이라는 개념으로 봅니다.. 하나님이 한(One) 분이신데 그분이 구약에선 성부로의 본질만 계셨고... 신약으로 오시면서 성자로 그 모습이 바뀌시면서 본질이 바뀌셨고... 예수께서 승천하신후엔 성령으로의 본질적 모습으로 또한 바꾸시고 변형되셨다는 이론입니다...
성부시대엔 성자와 성령은 없으며... 성자 시대엔 성부와 성령이 또한 없고.. 성령시대엔 성부와 성자가 또한 없다는 기본적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이 시대별로 그 모양과 형질의 변형을 바꾸셧다는게 교리신학적 양태론의 핵심이며 본질의 변화도 해당됩니다.. 이점에서 지방교회의 윗트니스리가 양태론으로 비난을 받았습니다만... 윗트니스리의 교리가 사실 이런 본질변화의 양태론에 상당 해당되기도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성부께서.. 신약의 예수님으로 오시면서 인간을 경험하시고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성령이 되셨는데... 이 성령이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가지신 형질의 변형을 주장하기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론에 대한 교리도... 그분의 이름을 부를때 성령이 들어오면... 인성과 신성과 또한 인성으로써 겪으셨던 모든 과정들의 어떠함들도 모두 생명주는 영이 되신 그분안에 내재적으로 다 포함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자의 과정 곧 인성의 과정을 통과한 결과로써 성령의 본질이 변형되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성자 하나님의 과정을 사역적 측면에서 보는 것이지... 이 사역을 행하셨다고 본질의 변화가 있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원래부터 생명이셨고 우리에게 생명이 되시는 영이셨으며.. 그분이 우리에게 생명이 되시기 위해 성자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승천의 사역을 기다리셨다고 보는 것이며... 그분이 그런 사역을 행하셨기에 성령이 변형되신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4.사역적 삼위일체론(사역적 양태론이라 해도 무방하다봄)....
제가 보는 관점을 말씀드리면....
*존재론입장에서 - 하나님은 존재론적으로 한 신으로 믿습니다.. 성부라는 신= 성자라는 신= 성령이라는 신... 3신이 아니라 한분의 신으로 저는 봅니다.. 삼위일체론자에겐 전 이단깜이겠지만... (*참고 - 교리신학적 삼위일체론에는 하나님이라는 개념과 신이라는 개념이 다릅니다.. '하나님 = 신'이 아닙니다.. 이 부분에 주의가 필요하겠습니다. 이미 앞에서 설명드린대로.. 그들에게 있어 개념과 관점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전 하나님을 보통명사로 보지 않고 그들과의 차별을 위해 고유명사로 표명하겠습니다... 곧 성부 하나님 = 성자 하나님 = 성령 하나님...
*그러나 사역적으론 세분을 구별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본질에 있어서 하나이시고 동일하시며.. 생명에 있어서도 동일하시며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분들이 사역면에서 구별되시는 것이지 존재론적으론 한분이시기때문입니다....
사역적 구별이라는 것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지만...
나라는 존재는 하나이지만... 학교에선 선생님으로써 완전이고... 집에서는 아버지로써 완전이고... 부모님에겐 아들로써 완전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위치하는 지위와 역활과 기능안에서 저는 완전하게 그 사역에 충실할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아들로 오셨을 때 아들로써 완전히 충실하셨고... 아버지로써는 아버지로써 완전히 충실하시며... 생명의 성령으로써는 생명의 성령으로써 완전히 충실하신 분이십니다...
아들의 신분으로 성자 하나님은... 신분으로써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를 사역적 위치에서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떠함에 있어서는 이해가 쉽진 않지만.. 우리는 사역적 지위면에서 완전하지 못하기때문에 그런것이고... 하나님은 사역을 그렇게 완전 충실하게 행하실 수 있고 행하셨기에 그것을 우리는 왜그러시느냐는 말보다는... 그러셨던 것을 발견하고 깨닫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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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레마의말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11.19 하나님이 한분이시라는 부분에 있어... 교리신학적 삼위일체론은 한분이라는 개념이 일반적 개념으로써의 하나 곧 계수적 의미로서의 하나를 가리키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이 한분이라고만 말하시면... 이 이론의 정의를 모르는 분들은 계수적 '1(one)'을 말하는구나라고 이해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리신학에서 말하는 한분이라는 의미는... 계수적 1이 아닌 완전신이라는 개념으로써... 전혀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신님께서도 교리신학적 삼위일체론적 논조로 여러번 글 올리신것을 본듯 싶은데... 암튼.. 삼위일체론이라는 이 신학이... 언어유희를 하도 많이 해놓아서.. 사람들을 정신못차리게 해놓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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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레마의말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11.19 비굴한 면이 있다고 전 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론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분들 아마 대다수는.. 교리신학에서 말하는 삼위일체론과는 전혀 다른 신관을 가지면서도... 이 이론을 지지하는 넌센스가 한두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론이 용어를 완전 혼돈시킴으로 여러사람을 미혹했다고 보는게 제 견해입니다.. 그러나.. 신님께선 여러차례의 글에서.. 교리신학적 삼위일체론자인 것은 제가 확인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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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신재연 작성시간 09.11.19 남이하면 비굴이고? 님이 하면 정확무호한것이지요? 아타나시우스가 비굴해서 삼위일체논리를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확정지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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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레마의말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11.19 아타나시우스가 예수님이신가요? 아타나시우스가 바울이라고 되는지요? 죄솔스럽지만.. 전 아타나시우스에 대해 관심도 없고.. 전혀 신뢰를 두지도 않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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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신재연 작성시간 09.11.19 결국 개혁신학에서 말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님이 설명하고 있는것이고 이것을 얼핏보면 양태론적 삼위일체에 빠질수 있는 함정이 있는것이라서 조심해야 한다는것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나타나는 모습 형태는 다르고 본질은 하나다! 이것이 양태론의핵심인데 물/수증기/얼음......전기/열/힘..........사장/아버지/장로......이런식으로 똑같은 한사람이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는것은 양태론이고 사장으로서의 성부하나님 아버지로서의 성자하나님 장로로서의 성령하나님...이런식으로 나뉘면 삼신론이 될수도 있는데 결국 레마님의 설명은 이런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진정한 모습이 아닌가! 하는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