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증인과 토론하는 개신교분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올렸던 글 입니다.
< 영혼과 영과 육체로서 사람에 관한 문제 > 아담의 창조기사 재해석
[영혼] = soul, 네페쉬 하야(living being)/푸쉬케
[영] = spirit, 루아흐/푸뉴마
[육체] = flesh/body, 바싸르/소마
[땅의 티끌] = dust from the ground, 아파르
[생기/생명의 호흡] = breath of life, 니쉬마트 하임
[사람] = man, 하아담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아파르)으로 사람(하아담)을 지으시고 생기(니쉬마트 하임)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네페쉬 하야)이 된지라”
아담창조 기사를 위의 정의에 따라서 제대로 번역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티끌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호흡을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가 됩니다..
[영혼]으로 주로 번역되는 네페쉬 하야(living being)는 살아 있는 존재를 가리키는 “하야“와 ”숨쉬다”는 동사 나파슈에서 나온 명사인 네페쉬가 합쳐져서 “숨쉬며 살아 있는 존재”(생명체)를 의미 합니다.[생기/생명의 호흡](breath of life)의 니쉬마트 하임은 호흡이라는 뜻의 “네솨마”와 살아 있음을 뜻하는 “하이”가 합쳐져 살아 있는 호흡 곧 생명의 호흡이 됩니다.
아담창조 기사에서 보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영혼의 이미지와 관념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기사에서 인간론(the human)을 보면 흙 + 생명(life)의 호흡 = 산존재/생명체로서의 사람이 됩니다. 육체 + 생명 = 사람이다라는 결론이 됩니다.
여기서 생각할 문제는 [생기/생명의 호흡] = breath of life, 니쉬마트 하임 입니다. 이것이 대체 무엇이냐 하는 것 입니다. 단순히 산소/공기를 말하는지 다른 무엇을 말하는지 말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의 코에 불어넣은 것이 호흡일까요? 이미 지구상에는 호흡이 있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20:22절)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숨(breath)], [성령을 받으라, (Receive the Holy Spirit)]
여호와의 숨은 주님의 숨으로 성령이다는 것은 (예레미야 애가 4:20)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의 기름부으신자가 저희 함정에 빠졌음이여...”
아담 창조기사에서 [숨]은 니쉬마트 하임으로서 호흡을 뜻하는 “네솨마”와 살아 있음을 뜻하는 “하이”가 합쳐진 것이라고 설명을 하였습니다.(breath of life) 살아 있는 호흡이 되는데 호흡에도 산호흡과 죽음 호흡이 있습니까? 산 호흡 곧 생명의 호흡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마태8:22)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쫒으라”
사망한자를 돌보고 있는 산 사람을 주님은 죽은자라고 말하며 그 장례를 거들려고 하는 사람에게 너는 나를 따라 와라라고 말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육체적으로 살아 있지만 주님으로부터 죽었다고 선고된 그 사람들의 죽음(death)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영적죽음을 말 합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불어 넣어 주신 호흡(breath)은 단순한 공기(air)가 아니라 영적으로 살게 하는 생명의 호흡(breath of life)인 성령(Holy Sprirt)이였다 이것 입니다. 아담의 창조(create)기사는 문자적으로 최초의 인간 창조로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나 이런 각도에서 보면 그것은 재창조인 중생(Regeneration)을 말하는 것이 됩니다.
아담기사가 물질적 인간 창조가 아니라 영적인 재창조인 중생을 말한다는 관점에서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들에게 들어간 생기(루아흐)로 인해 부활하게 되는 장면들은 자연적인 시각에서 죽은 사람의 육체의 부활(Resurrection)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어서 하나님에 대하여 살아 있지 못한 상태하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의 성령이 강림하여 산 사람으로 만드는 거듭남을 말한다는 것을 생각할수 있습니다.
(에스겔 37:14) “내가 또 내 신(루히:호흡/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요엘 2:28-30) “내 신(루아흐/spirit)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예레 31:33) “내가 나의 법(성령은 진리의 영)을 그들의 속에 두며”
(겔 11:19) “내가..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신(루아흐/spirit)을 주며”
(고후 3:3)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것이며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영적으로 산존재(네페쉬 하야 living being)가 되기 전에는 사람은 산존재가 아니고 사람도 아닙니다. 세상사람들은 지정의가 있으나 그 지정의는 지옥(hell)에 속한 것 입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있고 사람의 말을 하고 있지만 사람이 영적으로는 아니라는 것은 죽은 존재들이기 때문 입니다. 아담이 창조될때 땅의 티끌인 아파르(dust)로 지음을 받았듯이 그 전에는 사람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다는 것을 뜻 합니다.
티끌 같은 존재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죄인들이라는 것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사람의 말을 한다고 해서 사람이 아니고, 주님 앞에서는 산존재가 아니여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뜻 합니다. 그렇게 미미하고 무가치한 상태가 곧 티끌(아파르/dust)이라는 것 입니다.
(마태22:31,32)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사람이 사람으로 불리울려면 주님을 믿는 믿음(faith)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하여 주님에게 속한 진리(truth)와 사랑(good)을 받을수가 있기 때문 입니다. 의인들이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존재인 이유는 주님에게 속한 것이 그들안에 없기 때문 입니다. 주님에게 속한 진선미가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것이고 이것으로 인해서 인간은 사람이라고 비로서 불리울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의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천지창조 같지만 중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성령)
티끌 같은 존재를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성령으로 인한 중생을 말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안에 주님에게 속한 진선미가 들어 있기 때문 입니다. 그것으로 우리 마음판에는 주님의 진리가 기록이 되고, 주님의 사랑의 불꽃이 심어지게 되는 것 입니다. 그 주님의 선과 진리로 사람은 비로서 산존재가 되는 것이고 주님의 형상(image)과 모양(likeness)을 닮은 사람이 되게 되는 것 입니다.
우주에서 참 사람(Divine Human)은 오로지 주님뿐 입니다. 창조(create)의 원판/원형으로서 주님은 참 사람이며 인간은 그 참 사람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된 거울(mirror)과 같은 존재 입니다. 주님의 목적은 사람을 티끌에서 주님을 닮은 사람으로 완성하는 것에 있기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음과 부활은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 됩니다. 주님의 속죄(Atone)가 제한적이라는 것은 비성경적 입니다. 주님의 속죄는 보편적이고 무제한적 입니다.(Genreal Atonement)
< 영혼과 영과 육체로서 사람에 관한 문제 > 아담의 창조기사 재해석
[영혼] = soul, 네페쉬 하야(living being)/푸쉬케
[영] = spirit, 루아흐/푸뉴마
[육체] = flesh/body, 바싸르/소마
[땅의 티끌] = dust from the ground, 아파르
[생기/생명의 호흡] = breath of life, 니쉬마트 하임
[사람] = man, 하아담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아파르)으로 사람(하아담)을 지으시고 생기(니쉬마트 하임)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네페쉬 하야)이 된지라”
아담창조 기사를 위의 정의에 따라서 제대로 번역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티끌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호흡을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가 됩니다..
[영혼]으로 주로 번역되는 네페쉬 하야(living being)는 살아 있는 존재를 가리키는 “하야“와 ”숨쉬다”는 동사 나파슈에서 나온 명사인 네페쉬가 합쳐져서 “숨쉬며 살아 있는 존재”(생명체)를 의미 합니다.[생기/생명의 호흡](breath of life)의 니쉬마트 하임은 호흡이라는 뜻의 “네솨마”와 살아 있음을 뜻하는 “하이”가 합쳐져 살아 있는 호흡 곧 생명의 호흡이 됩니다.
아담창조 기사에서 보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영혼의 이미지와 관념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기사에서 인간론(the human)을 보면 흙 + 생명(life)의 호흡 = 산존재/생명체로서의 사람이 됩니다. 육체 + 생명 = 사람이다라는 결론이 됩니다.
여기서 생각할 문제는 [생기/생명의 호흡] = breath of life, 니쉬마트 하임 입니다. 이것이 대체 무엇이냐 하는 것 입니다. 단순히 산소/공기를 말하는지 다른 무엇을 말하는지 말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의 코에 불어넣은 것이 호흡일까요? 이미 지구상에는 호흡이 있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20:22절)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숨(breath)], [성령을 받으라, (Receive the Holy Spirit)]
여호와의 숨은 주님의 숨으로 성령이다는 것은 (예레미야 애가 4:20)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의 기름부으신자가 저희 함정에 빠졌음이여...”
아담 창조기사에서 [숨]은 니쉬마트 하임으로서 호흡을 뜻하는 “네솨마”와 살아 있음을 뜻하는 “하이”가 합쳐진 것이라고 설명을 하였습니다.(breath of life) 살아 있는 호흡이 되는데 호흡에도 산호흡과 죽음 호흡이 있습니까? 산 호흡 곧 생명의 호흡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마태8:22)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쫒으라”
사망한자를 돌보고 있는 산 사람을 주님은 죽은자라고 말하며 그 장례를 거들려고 하는 사람에게 너는 나를 따라 와라라고 말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육체적으로 살아 있지만 주님으로부터 죽었다고 선고된 그 사람들의 죽음(death)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영적죽음을 말 합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불어 넣어 주신 호흡(breath)은 단순한 공기(air)가 아니라 영적으로 살게 하는 생명의 호흡(breath of life)인 성령(Holy Sprirt)이였다 이것 입니다. 아담의 창조(create)기사는 문자적으로 최초의 인간 창조로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나 이런 각도에서 보면 그것은 재창조인 중생(Regeneration)을 말하는 것이 됩니다.
아담기사가 물질적 인간 창조가 아니라 영적인 재창조인 중생을 말한다는 관점에서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들에게 들어간 생기(루아흐)로 인해 부활하게 되는 장면들은 자연적인 시각에서 죽은 사람의 육체의 부활(Resurrection)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어서 하나님에 대하여 살아 있지 못한 상태하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의 성령이 강림하여 산 사람으로 만드는 거듭남을 말한다는 것을 생각할수 있습니다.
(에스겔 37:14) “내가 또 내 신(루히:호흡/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요엘 2:28-30) “내 신(루아흐/spirit)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예레 31:33) “내가 나의 법(성령은 진리의 영)을 그들의 속에 두며”
(겔 11:19) “내가..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신(루아흐/spirit)을 주며”
(고후 3:3)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것이며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영적으로 산존재(네페쉬 하야 living being)가 되기 전에는 사람은 산존재가 아니고 사람도 아닙니다. 세상사람들은 지정의가 있으나 그 지정의는 지옥(hell)에 속한 것 입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있고 사람의 말을 하고 있지만 사람이 영적으로는 아니라는 것은 죽은 존재들이기 때문 입니다. 아담이 창조될때 땅의 티끌인 아파르(dust)로 지음을 받았듯이 그 전에는 사람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다는 것을 뜻 합니다.
티끌 같은 존재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죄인들이라는 것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사람의 말을 한다고 해서 사람이 아니고, 주님 앞에서는 산존재가 아니여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뜻 합니다. 그렇게 미미하고 무가치한 상태가 곧 티끌(아파르/dust)이라는 것 입니다.
(마태22:31,32)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사람이 사람으로 불리울려면 주님을 믿는 믿음(faith)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하여 주님에게 속한 진리(truth)와 사랑(good)을 받을수가 있기 때문 입니다. 의인들이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존재인 이유는 주님에게 속한 것이 그들안에 없기 때문 입니다. 주님에게 속한 진선미가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것이고 이것으로 인해서 인간은 사람이라고 비로서 불리울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의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천지창조 같지만 중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성령)
티끌 같은 존재를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성령으로 인한 중생을 말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안에 주님에게 속한 진선미가 들어 있기 때문 입니다. 그것으로 우리 마음판에는 주님의 진리가 기록이 되고, 주님의 사랑의 불꽃이 심어지게 되는 것 입니다. 그 주님의 선과 진리로 사람은 비로서 산존재가 되는 것이고 주님의 형상(image)과 모양(likeness)을 닮은 사람이 되게 되는 것 입니다.
우주에서 참 사람(Divine Human)은 오로지 주님뿐 입니다. 창조(create)의 원판/원형으로서 주님은 참 사람이며 인간은 그 참 사람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된 거울(mirror)과 같은 존재 입니다. 주님의 목적은 사람을 티끌에서 주님을 닮은 사람으로 완성하는 것에 있기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음과 부활은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 됩니다. 주님의 속죄(Atone)가 제한적이라는 것은 비성경적 입니다. 주님의 속죄는 보편적이고 무제한적 입니다.(Genreal Aton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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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야베스 작성시간 05.07.05 그리고..<주님의 목적은 사람을 티끌에서 주님을 닮은 사람으로 완성하는 것에 있기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음과 부활은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 됩니다.>...이말도 틀린말은 아니지만,...우선은 죽을수 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여 주심에 촛점이 모아져야 하지 않나요?..딴지 라고 생각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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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인권의 왕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5.07.05 구원은 믿음만으로 되어 집니다. 그것으로 끝이며 더욱이 성령세례 받았으면 칼빈의 성도의 견인론을 믿음으로 받아 드린다면 결과적으로 무조건 구원 입니다. 이제 구원문제는 끝이므로 남는 것은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성화에 있을 것 입니다. 정교회에서는 신화를 말하고 가톨릭에서는 같은 단어를 의화로 번역하여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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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인권의 왕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5.07.05 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도는 주님의 닮음의 측면인 인성적인 영화와 그 대속적 측면인 속량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구원과 성화는 같이 가는 것이라 생각 합니다. 우리도 주님과 같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과 이웃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인애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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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인권의 왕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5.07.05 가 아닐까요? 구원의 감격과 감사로서 하든 주님을 닮으려는 의지로 하든 믿음은 곧 행함이다는 깨달음으로 하든 주님과 같은 삶으로의 전진은 피할수 없는 칼빈의 저항할수 없는 주님의 은혜요 메세지라고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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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야베스 작성시간 05.07.05 왕도님의 말씀을 듣다보면 종을 잡을수가 없네요...온건적인 성향(지금 글에서는)을 띄우는 것 같다가,...어느 때는 제가 이해할수 없는 성향에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아마도 여러 성향의 교리나 신학을 접해 보신것 같아요!..왕도님도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한다 하니 우리 모두 예수안에서 사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