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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약의 십일조는 다른가? 글/扈一麥 牧師 최근 기독교 안티들은 유난히도 십일조에 대하여 거론을 많이 합니다. 그들은 십일조를 말할 때 구약의 율법을 들고 나와서는 "성전이 무너지고 제사장이 없는데 십일조를 왜? 누구에게 바친단말이냐?" 하고 거부 투쟁을 하며 교회를 어지렵히고 있습니다. 물론 자기 기준에서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가 하는 일은 항상 정의롭고 선한 것이고 정당하다고 여깁니다. 나는 옳고 항상 남이 틀렸다고 합니다. 결국 내가 아는 것 외는 다 틀렸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교회인지? 자기 자신이 제사장인지를 모르고 교회를 세우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교회를 허물려는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보면 됩니다.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십일조에 대해 말씀하실 때 구약과 신약 성경말씀을 통해 정확하게 가르쳐 주어야 성도들이 혼란을 겪지않는데 구약의 십일조만 강조할 뿐 신약 이후에 십일조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돕는 성경 교육이 없다보니 이단이나, 안티들의 말을 듣게 된 순진한 일부 성도들이 목사들은 다 사기꾼이요, 강도로 생각하게 되기 일쑤입니다. 이 자료를 보시고 다 공감하라는 생각은 안 합니다. 다만 들을 귀가 있는 분만 공감하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 십일조 문제로 많은 문제들이 야기되었기로 오늘은 일맥과 십일조에 관한 문제를 성경을 통해서 여러분들과 함께 자세히 알아보기 원합니다. 1. 구약의 십일조 모든 분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간혹 어떤 목사님께서는 구약의 말라기를 잘못 이해를 하고 계시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아서 부족하나마 제가 배움을 통해 깨닫게 된 말라기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나이 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소금언약'이라고 합니다. 변할 수 없는 계약이란 의미이지요. 그래서 모든 제사 때마다 그 언약을 잊지 말라고 소금이 꼭 들어 갔습니다. 신명기의 내용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잘 지키면 복을 주시고 만약 어기면 저주를 당한다는 내용입니다. 출애굽기 19장 3절-8절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러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산에서 모세를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야곱 자손들에게 말하여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여라. 너희 모두는 내가 이집트 백성에게 한 일을 다 보았다. 그리고 독수리가 날개로 새끼들을 실어 나르듯 내가 너희를 어떻게 나에게 데리고 왔는가도 보았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백성 중에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온 땅의 백성이 다 내게 속하였지만, 너희는 내게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다.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여라 그리하여 모세는 산 아래로 내려가서 백성의 장로들을 모아 놓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말씀을 다 전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 하겠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말을 하나님께 알려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후에 율법인 십계명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도 깨닫지 못한채,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말씀만 듣고서 쉽게 "다 지키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약속으로 받은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저주를 당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말라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을 파하고, 이스라엘에게 이혼장을 써 주는 것이라는 뜻으로 말라기(瑪拉基)입니다. 그 이혼장에는 그동안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속인 것을 조목조목 말씀하고 계십니다. 십일조란? 가장 작은 단위에 물질을 구별하여 하나님께드리는 물질입니다. 율법이 있기전 유대 공동체에는 하나님이 택한 제사장(장자)에게 구별하여 거룩하게 지내는 사람에게 구별하여 드리는 물질입니다. 율법을 받기전 이집트의 노예였던 이스라엘인들은 아무도 430년동안 십일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으면서 십일조를 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그것은 장자(제사장)를 살려서 이집트를 탈출하게 하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후에 광야 훈련중에 각 집파마다 한 가정마다 장자를 내놓아서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하였는데 장자를 위해 가족들이 생활비 십일조를 하라고 하셨지만, 장자를 다모아 놓고 보니 2만명쯤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2지파 중에 제일 작은 수의 레위 지파가 2만명쯤 되었으니 이스라엘의 온 지파의 장자를 대신하는 지파로 구별하고 그들에게 십일조를 하여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게 하라고 명하시면서 십일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을 명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십일조를 잘할 때는 백성들이 평안하였고 십일조를 않하여서 레위인들이 먹고 살기위해 이곳저곳 헤매일 때는 이스라엘이 힘든 시기를 보낸 것을 성경에서 보면 압니다. 신약도 교회를 세우시면서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위해 물질로 십일조 하여 주의 일을 하게 한 것을 성경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 목사님들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복 받는다"는 말씀으로 알고 있는 말라기 3장 8절 말씀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만군의 하나님이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라고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말라기서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속였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도둑질을 했다고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이스라엘은 공동체 사회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준수하는 나라입니다. 십일조도 율법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안내면 율법을 어긴 사람이 되므로 그 사회에서는 살 수가 없고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시무시한 율법 중에 하나인 십일조를 안낼수는 없고 최대한 낮추는 방법을 썼습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드리기는 하되 작게 드리는 방법을 취한 것입니다. 온 나라가 다 그렇게 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습니다. 십계명이 있다면 자기들이 추가로 만든 11계명도 있기 마련인데 "최대한 속이되 들키지 말라" 이런 생각을 가진 이스라엘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듯 너무나 잘지켰습니다. 그러다보니 십일조를 얼마나 속였으면 하나님께서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서 시험해 보라"고 하셨겠는가를 아셔야 합니다. 결코 말라기 3장10절은 복주시겠다는 성경이 아닙니다. 율법은 생사화복(生死禍福) 입니다. 참고로 말라기서를 다시 한번 정독해 보시길 바랍니다. 구약 말라기 3장 7-12절○만군의 하나님이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하나님이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하나님이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하나님의 말이니라 2. 신약의 십일조 헌금에 강제성을 주지 않으면 사람들이 헌금을 하지 않게 되고 그러면 교회가 운영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계약한 구약의 율법을 가지고 강제적으로 헌금을 하게 하는 것이 관행처럼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교회는 운영될지 모르겠지만 때때로 성도들을 혼란속에 집어넣기도 합니다. 과거에 순진하게 말씀을 가르치는대로 순종했던 우리들의 선조들은 당연한 일로 알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켜왔지만 인터넷이란 세계가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 공동체 밖의 정보를 서로 공유하다보니 일부 성도들이 의혹을 제기하면서 십일조 문제가 불거져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지켜라" 라는 논리가 성립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은 이방인입니다. 성경 가르치는 목사님마저도 신약 시대 이후의 십일조에 대한 정의(定意)를 못내리고 구약과 연관을 짓고 "무조건 지켜라" 하는 것이 안티들의 공격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도 인용을 잘 못한 것이 문제의 발단입니다. 사실 신약의 십일조는 교회 법과 관계가 있는데 구약은 이방인 신약의 성도와 계약 하지도 않은 구약의 성전 제사장과 비교를 하고 있으니 "율법이 폐하여졌으니 십일조를 바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라고 주장하는 세력을 키워낸 것입니다. ♠십일조의 의미는 구약에는 법적으로 정해서 하고 하니 그 정의를 모르고 정한 기준에 신경만 썼습니다. 의미도 모른채 십일조하면 복이라는 단어보다 강제성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현 시대도 십일조라고 하면 그것을 연상하는 것 같습니다. 그 속에 담긴 의미도 모르고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명칭이 문제이지 구약의 십일조 차원도 아니며 그렇다고 월정헌금이라고 하기도 그렇습니다. 십일조하면 구약의 십일조라고 생각하여 오해를 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 6-14절(쉬운성경 인용) 6. 나와 바나바만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한단 말입니까? 7. 자기가 비용을 대 가면서 군대 생활을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포도 농사를 지으면서 그 포도원에서 나는 포도를 따 먹지 않는 농부가 어디 있으며, 양을 기르면서 거기서 나는 젖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8. 내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만 가지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9. 모세의 율법에 이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곡식을 타작하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마라. 하나님께서 소를 생각해서 이 말씀을 하신 줄 아십니까? 10. 아니면 우리 모두를 위한 말씀이겠습니까? 이 말씀은 우리를 위해 기록된 말씀이 분명합니다. 밭을 가는 사람은 당연히 어떤 소망을 가지고 밭을 갈며, 곡식을 타작하는 사람이 대가를 기대하며 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11. 우리가 여러분에게 영적인 것을 뿌렸다면, 우리가 여러분이 갖고 있는 물질을 거두어들인다고 해서 지나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12.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이런 것을 요구하는 권리를 가졌다면, 우리는 그럴 권리가 더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참았습니다. 13. 여러분은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성전에서 나오는 음식을 먹으며, 제단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제단에 바친 것 중의 일부분을 나누어 가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까? 14.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일로 생활하라고 정하셨습니다 신약시대의 대표자 이방인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자는 복음을 전하여 먹고 살라고 정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성전에서 일하는 사람은 레위지파 사람들이며, 제사장들입니다. ②-제단에서 봉사하는 사람들도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③-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그와 같은 위치에서 먹고살라 명하셨다면 십일조를 받는다 하여서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성경에 십일조의 근거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성경에 무식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교회시대가 되면서 많은 사람을 관리하는 감독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필요에 의하여 법을 만들고 직분을 세분화하고 헌금을 세분화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법에 의하여 성직자와 신자들로 나누어지게 되었고, 교회 건물과 전도에 사용하는 물질을 헌금을 충당하게 되었으며, 십일조 항목도 생겼지만 교인이라면 의무금으로 일정량을 정하게 하였습니다. 신약의 십일조는 구약의 십일조와 성격은 다르지만 목적은 같습니다. 십일조의 사용처는 예배당에서 성경을 교육하는 목사와 담임자를 비롯해서 교회내에서 전임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성도들이 구별하여 드려지는 헌금을 십일조라고 해서 헌금한 것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것은 교회공동체를 위해서 자기의 것을 일정량을 구별해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 강요도 아니고 자발적이며 '교회의 공동체의 임원은 그 책임 감당해야 한다'는 교회법에 의하여 기쁨과 자원함으로 헌금하는 것입니다. 구약처럼 '안한다' 하여서 강제 징수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믿는 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생사(生死)를 담당하셨기에 복음시대는 육신을 가지고 있는 동안 화복(禍福)만 있습니다. 말씀을 지키면 복(福)을주시고 지키지 않으면 화(禍)입니다. 말씀을 믿으면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원하고, 사람은 자기가 좋은 것을 원합니다. 정한 것을 바치면 복이고 하기싫어서 하지않아도 누가 뭐라할 사람이 없지만 성경에 정한대로 바치지 않으면 안주신다는 법입니다. 누구의 뜻에 맞추어야 할까요? 십일조에 사랑이 빠지면 물질에 불과합니다. 십일조는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성도만 할 수 있는 거룩한 제사입니다. 제사에는 제물이 필요합니다. 구별하면 제물이고 아까우면 제물이 아닙니다. 사람들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려고 오셨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완성이란 덜 된을 것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가지고 완성하셨을까요? 에베소서 2장14-16절에 보면 십자가에서 육체가 죽음으로 그것은 사랑으로 채우셨습니다. 법만 있는 것에 사랑으로 채우신 것입니다. 십일조는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성령의 감동된 성도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3. 그러면 연보는 무엇인가요? 연보(捐補)는 구제헌금입니다. 구약에도 신약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독교 안티들은 '구제헌금'을 하면서 '십일조를 안한다'는 것을 자랑합니다. 겨우 구제헌금 하면서 자랑합니다. 나라에도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 교육의 의무 등, 3대 의무가 있습니다. 나라도 그러할찐데 당연히 교회에서도 성도라면 의무를 감당하여야 합니다. 그런면에서 연보는"(捐補)구제의연금이란 의미이기에 일명 '구제 헌금'이며 돈으로 물질로 드린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가 연보궤에 돈을 넣는 것을 보시고 '자기도 먹고 살기 힘든데 남을 위해 자기의 전부를 내놓았다'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이 연보궤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모금하는 헌금통입니다. 성전 입구에 6개가 있는데 나팔 같은 헌금 구멍이 있어서 일명 나팔궤라고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앉아 계실때 가난한 과부가 두렙 돈을 넣은 것을 칭찬하신 내용인데 가끔 이스라엘 배경사를 잘 모르는 목사님들이 헌금 강요용으로 설교를 하시는 것 같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예루살렘에 오래도록 가뭄이 있어서 각지역에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서 각지역 교회마다 연보를 하였는데 사도들에게 그것을 전하고 또, 고린도전서 9장에는 고린도교회에게 연보를 미리하여서 바울이 도착했을 때 하지말고 미리 준비하라고 사람을 보낸 것을 알게 됩니다. 미리 준비하여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물질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즐겨내는 것이 헌물입니다. 억지로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큰교회가 문제인데 목회자의 생활비와 사례비를 주고 남습니다. 그것을 다른 지역이나 작은 교회 목회자의 생활비로 나누어야 하는데 다른 항목으로 변경하여 나누어 주지않고 다른 곳에 사용합니다. 일명 선교비라는 명목으로 조금 나누어 주고 생색을 냅니다. 큰교회는 물질의 壯者로 세웠으니 그 물질은 하나님 것이며 나누어 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주님의 것을 공평하게 나누라고 주님께서 장자교회로 택하여 세웠더니 주님의 것을 숨기고 도독질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십일조를 내고 생색 내고 싶은 사람들이 십의 몇조를 한다고 자랑합니다. 성경의 약속은 십일조입니다. 더하고 싶다면 조용히 다른 가난한 교회에 하시면 주님께서 아십니다. 그리고 십의 일을 내고, 십의 구를 가져야만 생활 할 수 있는 사람과, 십의 일만 가지고도 풍족하게 잘 살만큼 넉넉한 가운데서 많이 구제하고 봉사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어느 사람이 물질적으로 더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겠습니까? 약속한 십일조를 하고도 풍성한 자와 십일조도 못드리고 힘든 사람이라면 어느쪽을 택하시겠습니까? 우리의 성도들은 앞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고, 교회 재정을 위해서도 약속된 헌물을 하고도 넉넉히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해 봅니다. 이제 구약의 십일조와 신약의 십일조가 어떻게 다른지와 현재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의무를 감당하는 십일조가 무슨 십일조인지를 알게되었습니다. 신약의 십일조는 교회를 세우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구세주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곳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의무를 감당할 때 적게 심은 자는 적게 많이 심은자 는 많이 거두는 복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십일조 때문에 혼란을 갖지 마시고 믿음으로 성경대로 하시길 바랍니다.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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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와 그리스도*송태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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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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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시아와세데스 작성시간 20.11.08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교회의 관계성 속에서 안하게 되면 어색하고 민망하고 소속감을 갖기 힘들기에 냴수도 있는것이 십일조인것 같습니다..... 주일에 헌금바구니 돌리는것은 문화이지요 불편할때도 있지만 빈손으로 오는것은 아닌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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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미니멀리즘 작성시간 20.11.14 음...
신약에 십일조는 없습니다
그래도 십일조를 하고 싶으신분들은 마음에작정하여 자유롭게 십일조 액수에 맞게 연보하시면 될 듯 합니다 -
작성자천향 작성시간 20.11.14 십일조를 하려면 먼저 몸의 할례를 행하라. 무할례자가 십일조를 할 수가 있는가? 무할례자는 언약 밖에 있는 부정한 자이다. 그런 무할례자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참여할 수가 있는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첫 걸음이 할례이다. 먼저 할례를 행한 후에야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 성전에 나아갈 수가 있고 제사를 드릴 수가 있으며 십일조를 할 수가 있다. 그것이 구약성경이 강조하는 바이다. 구약성경의 말씀대로 십일조를 한다면서 기초적인 구약성경의 가르침도 모르는가? 할례와 십일조 가운데 어느 것이 중요한가? 할례를 행하지 않으면 언약백성이 아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할례 받은 후에야 십일조가 가능한 것이다. 성경을 알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글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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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천향 작성시간 20.11.14 만일 할례가 폐하였다면 할례 위에 서있는 십일조제도는 더더욱 당연지사 폐한 것이다. 토대인 할례가 폐하였는데 할례자들과 함께 사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성전과 제사장 제도 그리고 그들을 위한 십일조제도도 폐하는 것은 당연지사....할례는 영적으로 폐하엿다고 하면서 십일조는 강조한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따라 왜곡하는 일.... 이러한 십일조를 가르치는 자는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일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허무신 모세제도(성전제도)를 다시 세우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성전을 폐하셨는데 그 성전제사를 위하여 세우셨던 제사장도 폐하였으며 제사장을 위하여 세워졌던 십일조제도도 폐지되는 것은 너무나도 상식적인 일이 아닌가. 성경의 가르침을 자신들의 욕망을 위하여 취사선택하여 주장한 결과 십일조로 인하여 들어온 돈 때문에 한국교회는 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