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7:46)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행7:47)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행7:48)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바
(행7:49)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행7:50)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위 사도행전은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무엇입니까?
구약 성경에 솔로몬이 지은 책이 세 권 있습니다. 잠언, 전도서, 아가서가 그것입니다. 이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말입니다.
(잠1:1)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전1:1)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아1:1)솔로몬의 아가라
성경은 영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눈에 보이는 성전이 우리 마음을 거룩하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했고 하나님은 영이시니 말씀이 곧 영입니다.
(요1: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4: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6:6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성전은 반드시 언약궤, 즉 하나님의 언약인 '법'이 있어야 성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법이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모세의 율법이었고 그 다음 솔로몬이 받아 쓴 잠언과 전도서입니다. 솔로몬이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성전을 건축한 것으로 구약은 기록하고 있지만 사실은 솔로몬이 법을 받아 쓴 것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히9:4)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그런데 이 잠언과 전도서는 구약시대에 이미 솔로몬에 의해 기록이 되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공의가 실현되지 않으면 그 효력을 발생할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마5: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마5: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법을 쓰신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이나 서신서나 계시록에도 법이라고 할 만한 말씀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완전케 하려고 오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예수님과 제자들이 솔로몬이 받아 쓴 성령의 법을 가르쳤다는 증거가 '솔로몬의 행각'이라는 말로 성경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요 10: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행 3: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행 5:12)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예수님이 완전케 하신 법이 바로 솔로몬이 받아 쓴 잠언과 전도서이며 이것을 사도 바울은 '성령의 법', '믿음의 법', '마음의 법'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롬8: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8: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8:3)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롬8:4)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8:5)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8: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8:7)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롬3:27)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롬7: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7: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롬7: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리고 구약의 예레미야는 이 성령의 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렘31:31)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렘31:32)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렘31:33)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렘31:34)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성경에서 하늘은 하나님의 구원의 법을 뜻하는 방언입니다. 서신서에 보면 사도 바울이 셋째 하늘에 올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후12:2)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셋째 하늘'이란 세번 째 구원의 법인 성령의 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첫째 하늘은 아벨의 제사법이었고 둘째 하늘은 모세의 율법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늘이 우리 눈에 보이는 하늘이 아님을 사도행전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행1:10)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행1:11)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그래서 하늘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시 68:33)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발하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사 34:4)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
(렘 4:23)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
(렘 10:12)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그러므로 성전은 성령의 법을 말하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성전, 즉 성령의 법이 우리 마음에 서게 될 때, 즉 성령의 법이 가르치는 '비움과 낮아짐'을 따를 때,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이며 '거룩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법의 가르침과 반대로 '채움과 높음'을 추구할 때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야 할 우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입니다.
(고전3:16)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3:17)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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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믿음안에 새 은혜 작성시간 09.05.07 신추공님! 빌립보서 부분에서의 비유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이미 사랑과 생명의 성령의 법안으로 사는 형제간에 피차를 더욱 귀히 여기라는 권면과 비유이지요. 무한광대하신 하나님을 드러내신 그리스도(하나님의 기름부음)의 한 부분을 열어 보이신것이지요. 그것이 성령(자녀된 우리에게 기름부으신 진리의 영)역사의 전부인 것으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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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진달래~@@ 작성시간 09.05.06 네이버의 에끌레시아 까페분 혹시 아니신지요. 원글의 내용은 별 문제 없어 보이시지만 그 까페의 주장과 유사하다고 하시는군요. 성령께서 아내이고 성령의 법은 잠언의 지혜이다 라고 하시면서 지혜서에서 성령의 법을 찾고자 하시는 분들의 주장이라고 하시던데....만일 아니시면 실례되지만 맞다면 해명을 좀 부탁드려야 겠네요. 원글의 맞는 부분은 차치하고 좀 처음 듣는 주장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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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신추공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05.06 '성령의 법'을 처음 듣는 현실을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지칭한 성령의 법이 에끌레시아라는 카페의 전유물이 될 수도 없을 뿐더러 성경이 가르치는 바에 의해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 데 그렇다면 에끌레시아 카페를 방문해 보아야 하겠네요.^^ 문득 다음 구절이 생각이 나네요. (요5:41)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요5:42)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요5:43)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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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진달래~@@ 작성시간 09.05.06 신추공님께서 생각하시고 믿고 계시는 생명의 성령의 법은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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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신추공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05.06 굳이 성령의 법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기를 부인하라"는 명령을 따랐다면 오늘날 교회가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요?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만 따랐어도 그랬을까요? 말씀을 따른다고 말은 하지만 마음은 세상에 가 있었기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심판과 불법 또 죄와 악 그리고 선이라는 단어는 모두 법이 전제되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단어라는 것은 어린 초등학생들도 아는 바입니다. 왜 그것을 모호하게 뭉뚱그리고 성경 기록대로 알려고 하지 않으시는 것인지요? 성령의 법을 제가 말했습니까? 사도 바울이 했습니다. 저의 개인적 주장으로 몰고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