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증조할머니는 아흔 다섯을 아주 건강하게 사셨다.
모든 사람들의 희망사항인'자는듯이 자는듯이'주무시다가 아침 6시10분에 돌아 가셨다.
평생 단 한번도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으며 약을 먹어보거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난리때 '대한청년단원'에게 아들을 숨겼다고 끌려가 몽둥이로 머리를 죽을만큼 얻어맞고 다쳐
두개골이 달걀크기로 함몰이 되었음에도 그것으로 인한 후유증은 기적처럼 전혀 없었다는거였다.
그 당시그 상처에 된장만을 바르고도 바로 아무 탈없이 그냥 신기하게도 잘 아물었다는거였다.
그 당시 그 기막힌일들을 어린 내게 구술하듯 하셨고 몇번 내 손을 가져가 만져 보게 하였는데
정말 측두엽 쪽의 머리뼈가 움푹 달걀크기만큼 들어가 있어 무척 놀란적이 있었다.
"훗날 내가 죽어 이 머리뼈만 보면 나를 바로 찾을수 있을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곤 하였다.
그런 기가막힌일이 있었음에도 평생 한번도 아프거나 한적이 없었다니 참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다.
내가 이분의 백분의 일만 닮았더래도 나는 아주 건강할수 있을것 같다.
"밥을 먹을때는 밥을 먼저 입에 넣지 말고 지렁장으로 먼저 입을 한번 다신다음 먹도록 하거라.
그러면 몸이 아주 건강하게 되고 일체의 속병이 없게 된다"라고 가르쳐 주셨다.
나중에 내가 의학쪽을 공부하고 자료를 보니 과연 그것은 일리 있는 말이었다.
내가 베개 베고 자는것을 싫어 하고 아주 낮은 베개를 베었는데
"우리 아무꺼시는 아무래도 東方朔이 될라나 보다"라고 하시며 껄껄 웃으셨다.
三千 甲子를 살은 東方朔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재미나게 듣고는
그때마다 매번 나는"이야기 한개만 더. 한개만 더" 하며 또다른 이야기를 하나만 더 해달라고 조르곤 하였다.
내가 그러면 껄껄 웃으시며 "그럼 하나 더 해주꾸마 단디 귀담아 새기 잘 듣거라"라고 하시며
"이 전에 아무때에 아무개라는 사람이 이만저만한 까닭으로 이러저러 했고 요렇게 조렇게 되었다."
라는 식으로 古典에 나오는 이야기부터 설화.당신의 이전의 이야기.감상들을 정말 재미나게
담담하게 가만가만 웃으시며 해주셨다.
그 중간 중간에 내가 당신의 이야길 잘 듣고 있는지 알아 듣고 있는지를 꼭 되묻곤 하셨다.
생각할수록 우리 증조할머니의 기억력은 참으로 놀라울 정도였었다.
90년.그러니까 한 세기의 기억을.어머니등에 업히고 손잡고 다니던 다섯살까지의 기억을
단편으로 기억하는게 아니고 바로 어제처럼 소상하게 口述을 모두 할수 있다 하셨다.
그래서인지 증조 할머니는 神童중에 신동인 외아들을 두셨다.
그 아들의 명석함과 聰氣는 바로 이 어머니로 부터 물려 받은것이 분명한 것이리라.
생각해보면 그래서 돌아 가실때까지 그토록 맑은 정신을 가지시지 않았나 싶다.
起寢시간이 항상 워낙 정확하셨기 때문에 자손 모두가 이를 본받아 다들 그런 편이고 나도 역시 그러하다.
아무리 음식이 맛이 있어도 식탐을 절대 하지 않으셨고 음식을 아주 골고루 잘 드셨다.
나는 살면서 그분이 정갈하지 않거나, 흐트러지거나, 게으른 모습과 화를 내시거나 남을 욕을 하거나 하는것을 단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나는 그분이 나를 보며 늘상 예언하신 말씀이 정말 맞는지 앞으로 살면서 두고 볼 생각이다.
"우리 아무꺼씨는 훗날 참 잘 살게 될끼다.두고 보라문".껄껄 웃으시며 내게 말씀을 하시곤 하셨다.
어린시절 난 증조할머니가 너무 좋아서 자주 한번씩 등에 업고 마당을 빙빙 돌고 좋아하였는데
너무 즐거워 하시고 기뻐하셨으며 '우리 강생이.우리 똥강생이"하시며 이런 나를 무척이나 기특해 하셨다.
나는 건강이 좋지 않은 편이어서 많이 아플적마다 그분이 어떻게 그렇게 건강하셨을까를 생각해 본다.
난리때 그 아까운 외아들이 行方不明이 되고 손자가 마음 못잡고 노름으로 亡家가 되어 가는것을 보았어도
홧병도 전혀 나지 않으셨고 항상 마음이 如一하시고 건강하셨던 이유는 항상 道人術도 하시고
마음을 조급하게 하지 않고 매사 긍정적으로 하셨기 때문이 아니었나싶다.
그러나 며느리인 할머니는 그분과 정반대로 돌아가실때까지 홧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셨고
입이 늘 소태같다 하시고 위장약인 노루모와 약을 달고 사셨다.
지금 내가 앓고있는 아픈 내용과 모양새를 보면 할머니와 거의 같은 양상의 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난리중에 남편이 행불(行不)이 되자 할머니는 애가 말라서 홧병을 얻으셨고 돌아가실때도 눈을 못 감으셨다.
그러나, 증조할머니는 아들이 죽지 않고 어디선가 분명 살아 있을거라고 하시고, 건강하게 오래
살아 있어야 나중에 아들도 만날수 있을거라시며 그 아들의 무사안녕을 천지신명께
날마다 30년을 하루같이 매일 기도를 하시고 祝願을 하셨다.
밥을 뜰때도 맨먼저 밥을 한그릇 수북이 퍼서 따뜻한 부뚜막에 꼭 담아 두셨다.
그래야 객지에서 아들이 어디서든 배를 곯지 않는다라고 하셨다.
밤이면 대문을 완전히 걸어 잠그지 않고 돌로 항상 살짝 걸쳐 지씨 놓았다.
그래야 집나간 아들이 헤매지 않고 어서 집으로 돌아올수 있다고 하셨다.
늘상 할머니가 이를 보고 "그래도 다 씰데없다"라고 하여도 뜻을 굽히지 않으셨는데
어린 마음에도 왠지 나는 증조 할머니의 그 마음을 깊이 이해 할수 있었다.
세월은 그렇게 흐르고 '자는짐에 자는짐에 소로록 소로록'그렇게 자는듯이 편하게 가시기를
그렇게 願을 하시더니만 정말 당신의 願대로 그리 가시었다.
나는 동생이 세상을 떠난 이후부터 잔병치례가 많아 죽을 고비를 참 많이도 넘긴사람이다.
어릴적 증조할머니는 내가 몸이 전혀 약하거나 아무데도 아프지 않았음에도 미리보셨는지
항상 훗날 나의 命이 길지 않고 짧지 않을까를 염려를 하시곤 하셨다.
나를 바라보실때마다 내 얼굴과 눈썹.귀을 만지시며 "괜찮을꺼다.괜찮을꺼다"라고 말씀은 그리 하셨으나
나는 그때 그말이 무슨 의미의 말인지를 근심어린 눈빛으로 나를 보시던 그 얼굴이
무엇을 뜻하는건지를 이미 그때 알았다.
사람이 한세상을 지나가면서 그렇게 하나도 아프지도 않고 天壽를 다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여지껏 반백년을 살아오면서 그런 경우는 딱 두번을 보았을 뿐이다.
정말이지 하늘에서 내어준 壽福을 타고나신 분이라 생각한다.
작년에 나는 하도 많이 아파 드디어 내가 마흔 여덟을 日記로 이 세상을 마침내 終하는가 생각하였다.
지난 3년. 5년이 내가 죽을 命運이라는것을 사실 나는 몇년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알고 있다. 그것은 내가 구십 다섯까지는 꼬랑하게라도 살게 될것이라는 것이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海印心 작성시간 12.04.05 봉두총각님 기억력도 대단하시네요
동시대를 살아가는데도 기억할수있는게 별로 없습니다
수명은 뜻대로 할 수없지만 사는동안 누구라도 건강하게
살수있길 발원합니다 고맙습니다_()_ -
답댓글 작성자봉두 총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04.05 해인심님도 항상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고맙습니다.^^ -
작성자경성(慶聖) 작성시간 12.04.05 태어 났으니 한번은 가야겠지요..연생연멸...갈때 편안하게 갈수있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수행정진..보살만행을 해야 겠습니다...........성불하십시요...()()()... -
답댓글 작성자봉두 총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04.05 예전에 이불을 새로 손질하고 호청을 갈아 끼울때 제가 바늘에다 실을 꿰어드리곤 하였지요.
증조할머니는 시력이 저보다도 좋으셔서 누가 바늘에 실을 빨리 넣는가를 여러번 시합을 했었는데
제가 다 졌었습니다. 할머니가 무명실을 바늘에 꿰어달라시면
제가 실을 아주아주 길게 해서 드렸습니다
.
그랬더니 증조할머니와 할머니가 저더러 너의 명이 참 길겠다시며 허허 웃으시곤 하셨지요.
옛부터 내려오는말에 실을 짧게 꿰는사람이 단명을 한다는군요. -
작성자자비향 작성시간 12.04.05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