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몽실언니]‘강아지똥’ ‘몽실언니’ 작가 권정생 선생,그 모진 삶 속, 어찌 이런 글들을 남기셨소-모두가 중생의 몸으로 오신 부처님,모두가 보현행자이십니다
작성자법혜작성시간12.05.26조회수457 목록 댓글 3
‘강아지똥’ ‘몽실언니’ 작가 권정생 선생 5주기 추모집 이달 말 출간
기사입력 2012-05-07 03:00:00 기사수정 2012-05-07 09:28:35
사람들은 권정생을 밀리언셀러 작가로 기억하지만 산문집에 비친 그의 삶에는 힘든 생활과 뼈아픈 질병밖에는 없었다. 19세에 발병한 결핵이 신장, 방광을 넘어 전신 결핵으로 이어졌다. 겨울밤의 고통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적었다.
“소변보기가 어려워졌다. 10분, 5분으로 변소에 드나들어야 했다. 아예 깡통을 기도하는 옆에다 갖다 놓고 밤을 새웠다. ‘주여’ ‘주여’를 되풀이하다 보면 어느 사이에 ‘어이 추워, 어이 추워’로 바뀌어 버린다.” 지쳐 까무룩 잠이 들어 깨보면 어느새 온통 바지가 젖어있었다. 새벽에 우물에 가서 손수 바지를 빨며, 고인은 서럽게 울었다.
가난한 집의 부담을 덜어주려 집을 떠난 고인은 3개월 동안 구걸을 하며 보내기도 했다. 현실은 참담했지만 문학만은 아름다웠다.
‘거지를 만나/우리는 하얀 눈으로/마주 보았습니다/서로가/나를 불행하다 말하기 싫어/그렇게 헤어졌습니다/삶이란/처음도 나중도 없는/어울려 날아가는 티끌같이/바람이 된 것뿐입니다.’(시 ‘거지’에서)
길거리생활을 전전하던 고인은 1968년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의 일직교회에서 종지기 일을 얻어 정착한다. 교회 옆 흙담집에서 살며 동화와 동시를 썼다. 외풍이 심해 겨울이면 귀에 동상이 걸리고 이듬해 봄이면 나았다. 척박한 이곳에서 ‘강아지똥’ ‘깜둥바가지 아줌마’ 등이 나왔다.
2007년 고인이 된 아동문학가 권정생이 생전 홀로 살던 경북 안동시 일직면 집 앞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다. 전선을 잘라서 만든 빨래집게가 눈에 띈다.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제공
‘강아지똥’이 이오덕 작가의 눈에 띄어 문단에서 조명받고, 1973년 동화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지만 그는 흙담집을 벗어나지 않았고, 오전 4시와 오후 6시에는 어김없이 교회 종을 쳤다. 그가 생전에 남기고 간 작품은 100여 점에 이른다. ‘강아지똥’ ‘몽실언니’가 각각 100만 부 넘게 팔렸지만 그의 삶은 크게 변한 게 없었다. 그는 책에서 연유를 이렇게 밝혔다.
“분수를 지킬 줄 모르면 그 이상 불행할 수가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처지에 알맞게 행동하며 지나친 욕심을 버린다면 타인에게 끼치는 해가 훨씬 줄어들 것이다.”
고인이 아껴 모은 10억 원과 인세는 2009년 설립된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에 돌아갔다.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널리 사랑받아 매년 1억5000만 원의 인세가 재단의 운영비로 기탁되고 있다.
6·25전쟁의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여자아이를 그린 ‘몽실언니’는 요즘도 매년 4만 부가 팔린다. 재단은 매해 전국 소외지역 공부방에 총 1만1000권이 넘는 책을 지원하고 있으며,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급식 지원과 결핵사업 지원에도 매년 3900만 원을 후원하고 있다. 앞으로는 국내 어린이들을 위한 장학사업에도 나설 계획이다. 고인의 보석 같은 동화 작품들이 그의 분신처럼 남아 어린이에 대한 사랑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http://news.donga.com/3/all/20120507/46047561/1
'절름발이' 몽실언니, 30년 이상 사랑받는 비결은?
- 입력 : 2012.05.01 15:49
▨몽실 언니|권정생 글|이철수 그림|창비|1만원
“…몽실은 그렇게 해서 한 달 동안을 꼬박 누워 있어야 했다. 한 달이 지나자 그래도 신통하게 버티고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몽실의 다리는 전과 같이 꼿꼿하지 못하고 무릎이 굽은 채 뼈가 굳어버렸다. 몽실은 절름발이가 된 것이다.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보다 반 뼘이나 짧았다. 그러나 몽실은 걸어 다니게 된 것만으로도 기뻤다. 절뚝거리면서 몽실은 또다시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하고 심부름도 하면서 바쁘게 하루하루를 지냈다…”. (‘몽실 언니’ 38쪽)
그 시절은 그랬다. 일본이 전쟁으로 패망한 뒤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았지만 여전히 세상은 어수선했다. 사람들은 가난했고 굶기를 밥 먹듯 했다. 일곱 살 몽실이는 가난 때문에 진짜 아버지 대신 새 아버지와 살게 됐다. 구박을 받던 몽실이는 새 아버지에게 떠밀려 넘어져 절름발이가 된다. 친아버지에게 맡겨진 몽실이는 이번에는 새어머니를 맞이한다. 다행히 새어머니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행복도 잠시. 이번엔 6·25전쟁이 소녀를 덮친다. 아버지가 전쟁터로 끌려간 사이 새어머니는 여동생 난남이를 낳고 세상을 떠난다. 갓난아기를 혼자서 보살피게 된 몽실이. 겨우 열 살 나이였다.
권정생 작가의 대표작 ‘몽실 언니’가 출간 100만부 돌파를 기념해 최근 개정 4판으로 나왔다. 1984년 초판 출간된 ‘몽실 언니’는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두루 읽히며 사랑받는 한국 아동문학의 고전(古典). 해방과 한국전쟁, 극심한 이념 대립 등 우리 현대사의 아프고 어두운 이야기를 어린 소녀의 시선으로 차곡차곡 담아낸 작품이다.
몽실이는 동생 난남을 키우며 온갖 시련을 겪는다. 전쟁이 끝난 뒤 몸이 상해 돌아온 아버지와 어린 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면 구걸도 마다하지 않는다. 처참한 가난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주변 사람을 보듬으며 고난을 이겨내는 몽실이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용기를 준다. 출간 30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이 여전히 ‘몽실 언니’를 사랑하고 아끼는 이유다.
한편 이번 개정판에서는 초판부터 삽화를 맡아온 판화가 이철수의 새로운 판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한층 선명해진 채색, 섬세하고 부드러운 표현으로 작품의 감동을 새롭게 전한다. 세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지닌 작품. 읽고 또 읽어도 좋다.
◆권정생 작가는…
권정생 작가(1937~2007년)는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경북 안동 일직면에서 마을 교회 종지기로 일했고 빌뱅이 언덕 작은 흙집에 살면서 ‘몽실 언니’를 썼다. 가난 때문에 얻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인세를 어린이들에게 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대표작으로 ‘강아지똥’ ‘무명 저고리와 엄마’ ‘사과나무 밭 달님’ ‘바닷가 아이들’ ‘점득이네’ ‘하느님의 눈물’ ‘밥데기 죽데기’ 등이 있다.
年1억 인세 받고도 흙담집 생활… 아이들 돕는 데 쓰도록 재산 남겨
기사입력 2012-05-10 03:00:00 기사수정 2012-05-10 1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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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海印心 작성시간 12.05.27 어린 아이의 맑고 초롱한 눈동자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탁해지고 순수함을 잃어버린 채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 책을 선별해 같이 읽고 토론도 하면서 눈높이를 맞추기도 했는데 세월의 흐름속에서도
전혀 때 묻지 않고 동화같은 모습으로 강아지 똥의 민들레꽃처럼 아낌없이 사랑을 주시고 가신
물질 만능주의 현대인들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삶이 무엇인지 화두를 두고 가셨습니다
좋은 자료 고맙습니다_()_ -
작성자연지행 작성시간 12.05.28 아주오래전에 저는 읽은책중에....(작가가 생각안나지만은...)오싱 .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제목은 몽실언니 와는다르지만은 내용은 일부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것입니다..
긴글 구절구절 쓸수없지만은 현세대의 아이들이 자극이 되는책이라 여겨집니다...
책속에 길이있다는,,,짧은명언을 저는 깊이인식하고 삶에 지침이 되도록 노력하고 살아왔으닌깐요
힘이되는글,,,책!!...그환경에 맞는것이라면은 더없이 좋은책이라 생각됩니다
가정과행복 ,,,가족과사랑...삶과희망의 부드러운 메세지가 있는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올만에 옛생각에 마음이 다져집니다..._()()()_ -
작성자자비향 작성시간 12.05.29 나무관세음보살 좋은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