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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2015년 5월 24일

작성자꽃보라|작성시간15.06.02|조회수144 목록 댓글 6

구례지리산둘레길
'탑동~화엄사'까지 걸을계획이었으나
발바닥에 불이 날것같아 중간에 포기했다.
시멘트 임도길이 너무 길다ㅠ

'탑동~방광'구간엔
음식점이 하나도 없다.
물한병 사먹을 슈퍼도 없다.
어젯밤 막걸리 한잔 나누며 얻은 정보다.

500ml 두병 가득 물을 채우고
잼바른 토스트하나 챙기고
구례 터미널에서 김밥도 두줄이나 사고
사과,파프리카,곶감,자유시간>.
배낭에 짐이 없으니 먹거리만 가득ㅋ

'난동'마을지나 '당동'마을 다다를즈음..
첨으로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럴땐 자연스럽게~ 예의바르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것이 덜 어색하다.
남자 두분이서 3년전에 주천에서 시작하여
이제 거의 끝까지 한바퀴를 다 걸었단다.
햐~~~274km를요?
그런데 이구간엔 밥 먹을곳이 하나도 없어
쫄쫄 굶고 있다고 푸념이시다.
'저기요.. 제 배낭에 먹을게 쫌 있는데요ㅎ'
아저씨들은 내가 걸어야할 길에 가게가 없다고
한사코 거절하신다.
전 이미 먹었으니 괜찮다고 남은 김밥 한줄과
파프리카 두개와 곶감 두개를 드리고
발걸음 가볍게 돌아서 다시 걸었다.


걸었다.
그냥 걸었다.
그러다가 가끔씩.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흘러가니..
나도 따라..
그냥 그렇게 걸었다.


발바닥에 불이 나는데도
머릿속이 정리가 안된다.
계속 걷기를 포기하고 터미널로 와서
'화엄사' '연기암'만 걷고 오기로 계획을 수정.
4시30분 화엄사행 버스를 탔다.
'연기암 추천코스'를 찾았으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르쳐주는 길은...
뭐가 쫌 다르다.
어케하지? 어케할까?
'두어시간 코스라니까 금방 갔다오지뭐'

계속 걸었다.
추천코스는 계곡길을 따라 '연기암'을 올라
임도로 내려오는 코스였는뎅..
사람들이 가르켜준 길따라 얼떨결에
임도로 올라왔으니 계곡길로 내려가야지.

어랏!
근데 내려가는 계곡길이 어디지?
계곡 옆에 길이 하나 보이길래
계곡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계곡 물소리에 잘 안들리는듯 뭐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으로 길이라는
표시를 한다..

그래. 한시간이면 내려가니까..
그냥 일루 가보장.
어.. 근데 좀 오르막이넹ㅠ 에둘러 가는길인가?
시간이 애매한데ㅠ 그냥 돌아내려갈까?
아니야.. 여기까지 왔는데.. 쫌만가면 될꺼야ㅠ
그리하여 복잡한 정신속에서
생각은 자꾸만 자꾸만 꼬여가고
산길을 마구마구 헤메이게했습니다.

저 원래 이런사람 아닌뎅ㅠ
계획없이 사전조사없이 움직이는
그런 사람 아닌뎅ㅠ
해지기전에는 항상 산에서 내려오는뎅..
그런데..
그런데..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나봅니다.
판단력이 사정없이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계곡옆 산길이 화엄사로 내려가는길이 아니라
노고단 산속으로 올라가는 길이였던것입니다!!!

결국
산에서 길을 잃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핸폰 밧데리마저 끝!
둘레길에 오고가는 사람들이 없어서 '커피소년3집'을
줄구장창 들었더니 그만 밧데리가ㅠ.ㅠ
보조밧데리도 깜빡하고 안가져왔는데ㅠ
손전등도 없고ㅠ
119를 누르는 순간 핸폰이 작별인사를ㅠ

그만 당황하여
길도 아닌 길을 계속 올라가게 되버렸고
'아니야.. 나는 내려갔어야해'라고
정신이 들었을때는 이미 어두워져버렸다.

저 멀리 화엄사의 불빛들이 보였다.
그래 저방향으로 내려가보자.
길도 아닌 바위와 나무숲사이를 헤치며
내려오다 한치앞도 안보이는 어둠앞에
그만 포기하고 털썩 주저 앉았다.

이제 난 죽는건가?

바위옆에 자리를 잡고 불빛의 방향을
기억하면서.. 만약 살아있게된다면..
저방향..저방향으로..
죽을힘을 다해 내려가야겠다.

하지만 만약 저체온증으로 죽는다면..

달빛에 의지해 메모지를 꺼내
한장엔 나와 남편의 이름과 연락처를
한장엔 게하사장님께 죄송함을..
한장엔 남편에게 사랑함과 미안함을..
나름 몇자 남기고..
새소리도 잠이들어
달님마저 잠이들고
바람마저 잠이드는
깊고깊은 산속에서의 하룻밤.
나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것들이 잠이 든듯한 적막함.

화엄사에서 들려오는 새벽 타종소리.
살았다.
새벽녘에 추워서
관광안내지까지 펼쳐 덮고 견뎠는데.
죽지않고 살았다.

날이 밝자
조심스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향을 제대로 잡고
이제 계속해서 내리걷고 또 걸었다.
길이 보이기 시작했고
드문드문 끊긴 길도 옆으로 돌아가면
다시 길을 찾을수 있었다.
계곡소리도 다시 들리고
걷는 다리는 천근만근이지만
살았다는것에 감사하며 가벼워진 마음으로
온통 싱그러운 초록숲길을 맘껏 걷는다.
편안해지는 맘.

'연기암'이다.
전화를 빌려 택시를 불러 난 게하로 돌아왔다.

이제서야 눈물이 쪼끔났다.

게하사장님의 모습에 죄송할따름이다.
잠도 못 주무시고 얼마나 걱정하셨을지 알기에..
구례경찰서에서도 오시고..
제 손끝을 잡아보면서 병원에 안가도 괜찮겠냐며
저의 건강상태를 살피신다.
남편에게 무사함을 알리고..
내려오다 미끄러져 나무에 긁힌 얼굴상처 말고는
다친곳 없이 무사히 돌아온 나.

마치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이 감사함이 계속되기를
잊지않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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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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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꽃보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6.03 ㅎㅎ살아돌아왔는데.. 얼굴의 상처쯤이야.. 이케 생각했습니다.
    저도 제가 조난을 당할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해본일이라.. 어리석은 생각들이 판단들이.. 주위분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할따름입니다;;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꽃보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6.03 ^^~감사해욤ㅎㅎ 제가 만났던분일까요? 그날 많은분들이 걱정해주고 보살펴주어서 정말 정말 감사했었습니다^^~
  • 작성자산수리 | 작성시간 15.06.03 제가 묵었던 날이었네요....

    늦은 저녁 때 화엄사에 가서 등불이 아름답네...종소리가 깊은 울림이 있네...
    호들갑을 떨었는데...
    깊은 밤 산속에서 그 불빛과 종소리를 보고 들으며 두려워 하셨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네요...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혼자 너무 무서운 경험을 하셨지만 흐릿하고 복잡하셨던 마음은...
    왠지 선명해지셨을 것 같네요...

    감사한 마음으로 가족분들과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답댓글 작성자꽃보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6.03 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더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살다보니 이런일도 겪게되고..
    무모했던.. 무식하게 용감했던 제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네요.. 산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을 배웠다고 할까요? 산을 좋아하는만큼 사랑하는만큼 지키고 보호해야하지만 조심해야할것도 주의해야할것도 소홀히 하지않아야겠다는 다짐도 해봅니다.

    남편이 이제는 어딜가든 항상 함께 가자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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