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대형교회를 해야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대형교회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점점 확산되면서 무엇보다도 주님께 이문제를 여쭈어 보게 된다. 사실을 말하자면 필자가 신학교 다닐 때쯤인 1970년 대 쯤에만 해도 어느 교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여러분이 목사가 되었을 때, 두 교회에서 청빙이 들어왔다고 합시다. 한 교회는 아주 부유한 도시교회요, 또 하나는 아주 가난한 시골교회입니다. 이때에 어느 교회를 선택하는 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될까요?
물론, 가난한 시골교회로 가는 것입니다. 부유한 도시교회는 여러분이 가지않아도 갈 사람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시 교회 성도들은 아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시골교회는 갈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헌신적인 목사가 가주지 않는다면 그 교회 성도들은 버림받는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유한 교회 성도들이나 가난한 교회 성도들이나 다 주님에게는 소중한 존재들인데 시골의 가난한 교회로 가주는 목사야 말로 얼마나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하는 것이겠습니까?"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40년전만해도 그랬었다. 그런데 지금은 신학교에도 교회성장이니 목회성장이니 하는 과목이 생겨가지고 양적성장을 못시키면 무능한 목사로 취급되는 시대인지라 그런 교수님이 계실 것 같지가 않다.
그러므로 불가불 예수님한테 물어보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 부유한 교회로 갈까요? 가난한 교회로 갈까요? 아니 부유한 교회를 만들까요? 가난한 교회를 만들까요?"
주님께서는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이렇게 대답을 하시는 것 같다. "작은 교회로 가거라. 아니 작은 교회를 만들거라!"
이유는 이렇다.
1. 예수님께서 성경의 진리를 풀어주실 때는 작은 무리속에서 였다. 예수님은 수천명 모이는 큰 무리 앞에서도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는 깊은 비밀을 풀어주시지는 아니하셨다. 유명한 씨뿌리는 비유도 해변에 앉은 큰 무리 앞에서 선포한 말씀이다. 그런데 그 비유를 풀어주실 때는 고작 십수명에 불과한 제자들 앞에서 였다. 왜 그러셨을까? 선포할 때와 가르치실 때의 목소리 부담때문에 그러셨을까?
그런 이유도 있을 수 있겠으나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비유 속에 담겨있는 깊은 진리는 대중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 앞에서는 설명하시지 않았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우리 말중에 "할말이 있고 할 수 없는 말이 있다"는 말이 있다. 목사의 설교중에도 당연히 대중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할 수 없는 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의 규모가 크면 클 수록 할 수 있는 말의 깊이는 얕아진다. 대부분 복음의 아웃 드라인이나 보편성의 범위내에서만 전할 수 있을 뿐이지 더 심도있는 가르침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래가지고는 성도들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2. 또 하나는 주님은 막상 중요한 일에는 소수만을 데리고 일하셨다는 점이다. 신약성경중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 무엇이겠는가? 새로운 언약을 맺는 일일 것이다. 이 중요한 새언약을 맺는 장소는 마가의 다락방이었으며 참석인원은 고작 제자들 12명이었다. 변화산에서 자신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여주신 것도 세제자 앞에서 였으며 죽은 소녀를 살려낸 기적의 현장에도 그 여자의 부모와 세 제자만 있었고 최후의 겟세마네 기도를 하실 때에도 세 제자만을 대동하셨다.
왜 예수님은 그의 중요한 사역에 있어서 이처럼 소규모를 지향하셨을까? 그것은 천국의 특성상 진정성과 친밀성에 더 우선권을 두셨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수효가 많으면 가짜도 많은 법이다. 가짜는 아무리 많아도 제 구실을 할 수 없다.
천국은 보석으로 꾸며져야지 짚이나 나무나 풀로 지어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교회가 대중화되면 될 수록 그 속에서 보석같은 자재는 나오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12:32) 는 이 말씀은 아무 부담없이 복음이 싸구려로 전파되는 곳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씀인 것이다.
대형교회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점점 확산되면서 무엇보다도 주님께 이문제를 여쭈어 보게 된다. 사실을 말하자면 필자가 신학교 다닐 때쯤인 1970년 대 쯤에만 해도 어느 교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여러분이 목사가 되었을 때, 두 교회에서 청빙이 들어왔다고 합시다. 한 교회는 아주 부유한 도시교회요, 또 하나는 아주 가난한 시골교회입니다. 이때에 어느 교회를 선택하는 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될까요?
물론, 가난한 시골교회로 가는 것입니다. 부유한 도시교회는 여러분이 가지않아도 갈 사람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시 교회 성도들은 아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시골교회는 갈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헌신적인 목사가 가주지 않는다면 그 교회 성도들은 버림받는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유한 교회 성도들이나 가난한 교회 성도들이나 다 주님에게는 소중한 존재들인데 시골의 가난한 교회로 가주는 목사야 말로 얼마나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하는 것이겠습니까?"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40년전만해도 그랬었다. 그런데 지금은 신학교에도 교회성장이니 목회성장이니 하는 과목이 생겨가지고 양적성장을 못시키면 무능한 목사로 취급되는 시대인지라 그런 교수님이 계실 것 같지가 않다.
그러므로 불가불 예수님한테 물어보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 부유한 교회로 갈까요? 가난한 교회로 갈까요? 아니 부유한 교회를 만들까요? 가난한 교회를 만들까요?"
주님께서는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이렇게 대답을 하시는 것 같다. "작은 교회로 가거라. 아니 작은 교회를 만들거라!"
이유는 이렇다.
1. 예수님께서 성경의 진리를 풀어주실 때는 작은 무리속에서 였다. 예수님은 수천명 모이는 큰 무리 앞에서도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는 깊은 비밀을 풀어주시지는 아니하셨다. 유명한 씨뿌리는 비유도 해변에 앉은 큰 무리 앞에서 선포한 말씀이다. 그런데 그 비유를 풀어주실 때는 고작 십수명에 불과한 제자들 앞에서 였다. 왜 그러셨을까? 선포할 때와 가르치실 때의 목소리 부담때문에 그러셨을까?
그런 이유도 있을 수 있겠으나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비유 속에 담겨있는 깊은 진리는 대중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 앞에서는 설명하시지 않았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우리 말중에 "할말이 있고 할 수 없는 말이 있다"는 말이 있다. 목사의 설교중에도 당연히 대중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할 수 없는 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의 규모가 크면 클 수록 할 수 있는 말의 깊이는 얕아진다. 대부분 복음의 아웃 드라인이나 보편성의 범위내에서만 전할 수 있을 뿐이지 더 심도있는 가르침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래가지고는 성도들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2. 또 하나는 주님은 막상 중요한 일에는 소수만을 데리고 일하셨다는 점이다. 신약성경중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 무엇이겠는가? 새로운 언약을 맺는 일일 것이다. 이 중요한 새언약을 맺는 장소는 마가의 다락방이었으며 참석인원은 고작 제자들 12명이었다. 변화산에서 자신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여주신 것도 세제자 앞에서 였으며 죽은 소녀를 살려낸 기적의 현장에도 그 여자의 부모와 세 제자만 있었고 최후의 겟세마네 기도를 하실 때에도 세 제자만을 대동하셨다.
왜 예수님은 그의 중요한 사역에 있어서 이처럼 소규모를 지향하셨을까? 그것은 천국의 특성상 진정성과 친밀성에 더 우선권을 두셨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수효가 많으면 가짜도 많은 법이다. 가짜는 아무리 많아도 제 구실을 할 수 없다.
천국은 보석으로 꾸며져야지 짚이나 나무나 풀로 지어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교회가 대중화되면 될 수록 그 속에서 보석같은 자재는 나오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12:32) 는 이 말씀은 아무 부담없이 복음이 싸구려로 전파되는 곳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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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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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예수사랑 작성시간 08.04.13 천상의 비밀은 천기나 다름 없는데도 , 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점에서 문제점입니다.전에는 알리시기를 꺼려 하시던 분이 여러 사람들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알리시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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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예수사랑 작성시간 08.04.13 조금 알려 주시니까 부작용도 많이 발생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렇게 고대하던 예수님의 품속에 있던 비기를 한장 얻고 나니, 내가 제일이라고 하는데, 서로 제일이라 하니 .... 꼭 야고보 두 형제와 10제자들이 서로 자리 다툼을 하는것 처럼 싸우고만 있는 작금의 현실이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읍니다... 이런 모습은 천기를 누설하신 예수님 뜻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 가고 있다고 볼수 있겠는데요...꼭 그렇치만 않음을 알수 있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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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예수사랑 작성시간 08.04.13 마지막때 나타날 거짓 선지자가 엄청나게 많다고 하셨음으로 , 그 거짓선지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에고^^....자신이 성경속에 기록된 인물로서 거짓선지자란 사실을 어떻게 알리요. 거짓 선지자 역활을 더하지 못해서 안달을 하고 있음에도 모르고 있으니, 거짓 선지자 하기 어려운 말을 듣고 되면 소경되게 만들어 버리고. 거짓 선지자가 되어 대형교회를 꿈꾸고 있으니 애석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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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예수사랑 작성시간 08.04.13 현재 예수님은 하시는 일은 제가 생각하기에 대형교회를 찢으시고 있는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와중에서 그 중에 알곡을 가리는 방법으로 나는 아볼로라 나는 바울이라 하는 사람들을 분명하게 가리고 있는 중이라고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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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예수사랑 작성시간 08.04.13 이미 뜻있는 인사들은 밤중에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 밤중에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교인들에게 알려주지 않고 도적같이 선한 싸움을 위해서 달려갈길을 마련하기 위해 틈틈히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원~~~ 몰래 먹는 꽃감이 달고나 하겠지만, 그래도 주인이 올때에 채주를 불러다가 빚을 탕감시키려고 ...(!!, 말씀이 이루어져야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