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쪽 그림은 '산칼리스토 카타콤'의 내부 전경입니다. 벽 옆쪽에 구멍 보이시죠? 거기에 시체가..생각만해도 으스스 합니다. 이곳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노타우르스의 미궁'처럼 미로 형식입니다. 만일 로마병사가 들어오게 된다면 길을 잃게 될것이고 그것은 죽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볼수 있죠..뭐..밀고자라도 있다면 이야기가 틀려 지겠죠? 어찌되었든 이런 연유로 인해 알고서도 들어가기를 꺼릴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합니다. 이러한 카타콤이 약 30개가량이 있고 총길이는 500km에 이르며 '산칼리스토'에만 10만명 가량이 묻혀있다고 합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저도 한번 가봤습니다. 물론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서요^^;;
지금 사진에서는 통로 밖에 보이지 않지만 안쪽에는 커다란 방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던 것이죠. 크기는 각양 각색이고 그중에 큰것들은 저희 강의실만한 크기도 있습니다. 또 신도들이 그곳을 아지트로 삼은 이유는 로마에 "묘소에 가까이 가는것을 금지한다"라는 법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쪽 그림은 은둔자 마을의 전경입니다.한 마디로 그당시 박해받고있던 교인들이 모여서 살던 곳입니다..구멍이 아주 많죠? 입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숨거나 도망가기 쉬웠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그만큼 단속도 힘들었겠죠? 종교에 자유라는건 정말 행복한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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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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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창서 작성시간 05.03.18 박해가 시작된 최초의 판결에서 트라야누스법(로마인들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기 저부한 자는 채찍질후 참수형한다)에 의해 콜로세움에서가 아니라 감옥에서 목이 베어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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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진주 작성시간 05.03.18 카타콤은 원래부터 종교적 박해를 피하기 위한 피난처로 만들어 진것은 아니라고 합니다.당시 로마의 가난했던 사람들은 가족을 위한 무덤을 땅위에 만들 수 없었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돈이 들지 않는 자연동굴에 무덤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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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진주 작성시간 05.03.18 그런데 자연동굴도 다 차버리자 그때부터 땅을 파고 지하에 무덤을 만들었죠.카타콤도 그 중의 하나인데요. 투파라는 응회암이 있어 굴을 안전하게 팔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5세기 초기까지 공동묘지로 이용되다가 그후에 순교자들이 매장되면서 성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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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2002010205최은영 작성시간 05.03.18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된 후에 예배장소가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공공 예배당이 필요해지고, 그 필요에 의해 지어진 초기 교회 양식이 바실리카 양식이고, 이것이 주된 흐름이 되어,바실리카 미술가들은 카타콤브 세대를 참고하여 새로운 미술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모자이크 양식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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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곽현희 작성시간 05.03.19 카타콤 미술에 대해.. 지하 묘굴의 프레스코 벽화로 대표되는 카타콤 미술은 크리스트교 박해 시대의 미술로 초기 기독교 미술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벽화들이 당시 회화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는데 기독교의 상징주의에 입각하여 그림의 모티브가 신중하게 선택되고 있음을 볼 수있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