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박창서작성시간05.03.18
초기 로마의 기독교인들은 로마중심지에서 벗어나 기독교인들끼리 모여살았습니다 그것에서 바울의 말에따라 조용히 로마의 제의에 참석도하지않으며 살았습니다 박해를 받기 시작하는 2세기경 로마가 파르티아를 제압하는데 이들 병사들이 페스트를 가져와 로마군단의 상당수가 페스트에 걸려죽게됩니다
작성자박창서작성시간05.03.18
병력손실로 약해진 북방방어선을 게르만인들이 위협을 하게되죠 위기에 시기에 애국심이 높아진 로마인들에게 로마의 것을 거부하는 기독교인에게 대한 반감이 커집니다 게다가 기독교인들은 자신들 끼리는 서로 돕는데 로마의 시민이면서도 공공사업이나 복지사업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작성자이진주작성시간05.03.18
카타콤은 원래부터 종교적 박해를 피하기 위한 피난처로 만들어 진것은 아니라고 합니다.당시 로마의 가난했던 사람들은 가족을 위한 무덤을 땅위에 만들 수 없었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돈이 들지 않는 자연동굴에 무덤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작성자이진주작성시간05.03.18
그런데 자연동굴도 다 차버리자 그때부터 땅을 파고 지하에 무덤을 만들었죠.카타콤도 그 중의 하나인데요. 투파라는 응회암이 있어 굴을 안전하게 팔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5세기 초기까지 공동묘지로 이용되다가 그후에 순교자들이 매장되면서 성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작성자2002010205최은영작성시간05.03.18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된 후에 예배장소가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공공 예배당이 필요해지고, 그 필요에 의해 지어진 초기 교회 양식이 바실리카 양식이고, 이것이 주된 흐름이 되어,바실리카 미술가들은 카타콤브 세대를 참고하여 새로운 미술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모자이크 양식이라고 합니다.
작성자곽현희작성시간05.03.19
카타콤 미술에 대해.. 지하 묘굴의 프레스코 벽화로 대표되는 카타콤 미술은 크리스트교 박해 시대의 미술로 초기 기독교 미술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벽화들이 당시 회화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는데 기독교의 상징주의에 입각하여 그림의 모티브가 신중하게 선택되고 있음을 볼 수있져...